简体 | 正體 | 대법서적

안전에 주의하는 것은 우리 정법 수련의 일부분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우리 주변에 수련생들이 안전에 주의하지 않는 것은 보편적이고도 심각하다. 예를 들면 자료소와 자료 출처를 쉽게 폭로하고 공개된 휴대폰 번호와 전화번호에 차단조치를 취하지 않으며 이런 전화 앞에서 아무 말이나 다 한다.

오랫동안 밍후이왕에 이 방면 문장들이 아주 많았지만 적지 않은 수련생들은 이 방면에서 아직도 부족하다. 많은 지역에서 누가 안전에 주의하자는 말만 하면 이 사람은 연락하기 두려워하는 사람이 되므로 이것도 수련생들이 안전에 주의할 수 없는 장애가 된다.

그러나 우리는 많은 지역에서 박해 형세가 엄중한 것을 볼 수 있다. 최근에 주변에 적지 않은 수련생들에게 문제가 생기고 대부분 수련생들이 안전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듣게 된다. 10여 년 동안 아무 일도 없던 일부 자료점도 파괴돼 가슴이 아프다.

문제가 생기기 전에 수련생들은 보편적으로 일종 억제와 마비 상태에 처한다고 들었는데 현재 형세가 느슨해져서 사악이 없다고 생각하고 오랫동안 이렇게 해와도 문제가 생기지 않았기에 두려워하지 않는다. 결국 박해가 일어나 손실이 극심해지고 적지 않은 수련생 혹은 당사자가 놀라서 정신을 차리게 된다.

당연히 수련생에게 문제가 생기면 당사자를 포함한 모든 수련생들이 안으로 찾기에 많은 집착도 찾아낸다. 이것은 틀림없다. 그러나 나는 여기서 금방 깨달은 이치를 말하려 한다. “우리 많은 사람들은 안전에 주의하지 않고 소홀히 하는데 이것이 바로 정법수련 중 하나의 아주 큰 누락이다.” 오랫동안 우리는 안전에 주의하는 것과 우리의 정법수련을 갈라놓았다. 나는 이렇게 한지 오래 됐다고 생각한다. 이 방면에서 많은 수련생들이 의견을 쉽게 받아들이려 하지 않고 안전에 주의하는 것을 무서워하는 것으로 생각하는데 안전에 주의해도 되고 안 해도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1. 안전에 주의하는 것은 사부님과 대법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해외 설법에서 안전에 주의하라고 여러 번 언급하셨다. 특히 최근에 법으로 아주 명백하게 말씀하셨다. 예를 들면 휴대전화 문제다.

“제자: 사부님께서 휴대폰 사용 안전문제를 주의하는 것에 대해 좀 더 말씀해주시기 바랍니다.

사부: 이는 말할 것도 없다. 당신은 하나의 도청기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간첩과 정부뿐만 아니라, 누구든 마음대로 당신을 도청할 수 있는데, 매우 간단하다. 바로 이러한 일이고, 핸드폰을 끄든지 안 끄든지 마찬가지이다. 내가 여기서 말하고 있는데, 당신이 알다시피 중공사당 거기에서도 듣고 있다.”[1]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신 것은 법이다. 사부님께서 우리 휴대전화는 ‘도청기’라고 알려주셨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 무조건 사부님 말씀을 들어야 하는지 아니면 여전히 자신의 관념과 마음으로 제멋대로 해야 하는가? 어떤 수련생들은 휴대전화를 잘 모른다. 밍후이왕, 천지행에서 휴대전화 안전에 대한 문제를 토론하고 상세한 요구가 아주 많지만 많은 수련생들이 보지 못했고 구체적인 기술도 잘 모른다. 어떤 사람들은 봐도 문제 삼지 않으며 수련생 교류문장이니 따를 수도, 아닐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부님께서 법에서 우리에게 아주 명백하게 알려주셨다. “당신은 하나의 도청기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간첩과 정부뿐만 아니라, 누구든 마음대로 당신을 도청할 수 있는데, 매우 간단하다. 바로 이러한 일이고, 핸드폰을 끄든지 안 끄든지 마찬가지이다.”[1] 그렇다면 우리는 그대로 따라 해야 하지 않겠는가?

우리 수련생들이 일을 논의할 때 우리의 대화와 법을 실증한 정보도 피해갈 수 없다. 단체로 협조하는 세부적인 절차도 피해갈 수 없다. 우리가 공개적으로 드러낸 휴대전화나 전화기가 도청기라는 것을 분명히 아는 상황에서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 정확한 방법은 이럴 때 반드시 효과적으로 차단하거나 배터리를 제거해 도청기 작용을 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아닌가? 이런 전화로 법을 실증하는 말이나 수련생들 사이에 연락을 말해서는 안 된다.

수련생들이여,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만 주시기에 우리에게 알려주신 것은 꼭 우리에게 좋은 것일 것이다. 박해는 사람이 사람에 대한 박해가 아니다. 사부님 말씀을 듣지 않는 것이 우리 수련 중의 큰 누락이 아닌가? 그러면 사악에게 대법제자를 박해하는 사악에게 충분한 이유를 찾아주는 것이 아닌가? 이것은 정말로 우리가 제때에 법으로 바로 잡아야 한다.

2. 안전에 주의하지 않는 행위에 우리가 수련해서 제거해야 할 많은 마음 담겨 있어

1) 다른 사람을 고려하지 않는 마음

수구하지 않는 것은 많은 지역에서 두드러진 안전 문제다. 누가 자료를 만들고 누구에게서 자료를 받으며 누가 무엇을 하는지, 많은 수련생들이 이런 말을 할 때 마구 내키는 대로 한다.

대법제자 사이에서 비밀을 지켜야 하는 일이지만 한 사람이 알기만 하면 더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된다. 한 사람이 자료점을 알게 되면 곧 적지 않은 수련생들이 직접 자료점에 와서 자료를 가져간다. 아주 많은 수련생들이 자료를 만드는 수련생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열정적으로 소개하고, 자료점을 쉽게 노출시키며 자신이 다리를 놓아주는 좋은 일을 한다고 생각하지만 자료점 수련생이 어떤 압력을 견뎌야 하는지 생각하지 않는다. 특히 현재 많은 수련생들은 환경이 느슨해져서 마치 곧 끝날 것 같은 것을 보면서 늘 “두렵지 않다”를 입에 달고 다니는데 그것은 자신의 입장에서 생각한 일종 요행 심리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수련생들에게 정작 문제가 생겨 직접적으로 압력을 받으면 “두렵지 않다”를 생각하지 못할 수도 있다.

또 어떤 수련생들은 당신이 아무것도 묻지 않아도 자신이 무엇을 했으며 무엇을 하고 있다는 등 무슨 일이나 술술 털어놓는다. 아무데서나 말을 가리지 않고 안전에 주의하지 않는다. 당연히 다른 사람들의 안전을 고려하지 않고 안전에 대한 개념이 없는 배후에 환희심이 장난하고 있다.

어떤 수련생은 공개적으로 노출된 휴대전화를 잘 처리하라고 하면 아주 불쾌해하면서 겨우 다른 방에 놓는데 기본상 다른 데다 놓지 않은 것이랑 별 차이가 없다. 어떤 사람은 늘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라고 말한다. 그러나 자세히 들어보면 이런 수련생들은 누가 무엇을 하는지, 무엇을 했는지, 누가 협조를 하고 누가 자료를 만드는지, 내가 무엇을 했는지 무엇이든 다 말하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일상대화에서 자신도 모르게 많은 수련생들이 협조한 소식을 들먹인다. 수련생이 별말 안 했다는 것은 본인의 착각이고 그 잘못을 작은 일로 생각한다.(사악은 대법제자의 모든 일을 정보로 삼는다.) 그러나 그 시각 이런 전화 도청기로 똑똑히 듣고 있다.

국가보안부에서 대법제자의 전화를 도청하는 일이 가끔 있다고 생각하는가? 아니다. 모든 대법제자가 공개한 휴대전화나 전화기는 국가보안부에서 쭉 도청하고 있다. 사람이 듣고 있는 것도 있고 설비로 도청하는 것도 있는데(기술이 복잡하지 않음) 그것은 모두 국가보안부의 일상적인 일이다. 중국의 많은 지역에서 대법제자를 박해하는 장쩌민 집단이 힘들이지 않고 정보를 탐색하고 안전에 주의하지 않는 대법제자의 전화를 도청해 쉽게 그들이 알고 싶은 각종 정보를 얻을 수 있다. 그것은 가장 편리하고 힘을 들이지 않는 방법이다.

수련생 사이에서 수구(修口)하지 않는데다가 전화 안전에 주의하지 않아 국가보안부에서 장기적으로 도청해 무엇이나 다 알게 돼 중국의 많은 자료점이 거의 공개됐다. 이전에 우리 지역 국가보안원이 수련생에게 아는 체를 하면서 당신네 누가 무엇을 하고 있고 무엇을 했는지 우리는 모두 아주 잘 알고 있지만 움직이지 않고 있을 뿐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나는 무엇 때문에 사악이 휴대폰을 도청기로 만들어 이처럼 날뛸 수 있을까에 대해 생각했다. 세상의 모든 일의 발생과 존재는 원인이 있다. 마치 대법제자와 세인들이 대법 책을 존중하지 않는다는 핑계로 당시 사악이 대법서적을 감히 훼손할 때와 같다. 그렇다면 사악이 감히 휴대전화를 도청기로 만들었는데 대법제자가 수구하지 않고 다른 사람을 고려하지 않는 틈을 탄 것이 아닌가?

2) 번거롭고 고생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마음

안전에 주의하려면 조치를 취해야 한다. 그것은 확실히 이 방면의 문제를 고려해야 하고 대가를 치러야 한다. 그것은 확실히 사람을 불편하게 하고 불쾌하게 한다. 귀찮아하는 이것은 사실상 아주 많은 수련생들이 안전에 주의하지 않는 진짜 원인이다.

그러나 우리는 안전에 주의하는 것은 사부님과 대법의 요구에 따르는 것이라는 것을 생각해야 하고 다른 사람과 정체를 위해 생각해야 한다. 이 방면에서 고생을 좀 많이 할 수 있다면 다른 수련생들의 우환을 제거할 수 있고 사악이 나에게서 말하는 ‘정보’를 얻어 수련생들을 박해하지 못하며 자료점과 정체를 파괴하지 못한다. 그러면 바로 한 수련생의 경지를 체현한 것이 아닌가? 정법 수련에는 진정한 작은 일이 없는데 그것은 대법제자가 위덕을 쌓는 과정 아닌가?

그러나 다시 말하면 우리가 번거로움을 두려워하고 이 방면에서 고생을 하려하지 않는다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사악의 ‘무료 통신원’이 되고 끊임없이 ‘정보’를 제공해 수련생들에게 우환을 만들거나 손실을 입히는데 이것은 나쁜 일을 하는 것이 아닌가? 업력을 쌓을 수 있지 않는가? 자신의 수련에 마난과 장애를 더하는 것이 아닌가?

우리가 명백히 알 때는 누구도 이렇게 하려 하지 않는다. 그렇지 않은가?

그렇다면 이 방면에 주의하고 잘하는 것은 자신을 위해 책임지는 것이 아닌가? 만약 우리가 이 방면의 문제를 알았다면 많은 수련생들이 안전을 중시하고 잘할 것이라고 믿는다.

3) 이지적이지 못한 것과 허영심

이상의 마음이 수련생들을 안전에 주의하지 못하게 하는 외에 이 방면에 사악의 배치와 교란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렇게 오랫동안 우리는 개별적인 사람들이(각지에 모두 있음) 안전에 전혀 주의하지 않는데 아무리 말해도 듣지 않다가 이후에 모두 심한 손해를 본 것을 알고 있다. 이런 사람들은 후에 거의 모두 잘못 깨달았고 어떤 사람들은 오늘까지도 걸어 나오지 못한다. 그러나 이런 사람들은 당시 담이 큰 기적을 보여 많은 사람들이 숭배했다. 그들은 확실히 밍후이에서 안전 원칙을 재차 강조할 때 사람을 따라 하고 법을 배우지 않는 사람으로서 정념이 강한 것처럼 사람들을 미혹시켰다.

지금 와서 보면 이런 사람들의 이지는 사악에 의해 가려졌고 줄곧 구세력의 파괴적인 배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조종당하고 이용당해 파괴하는 일을 할 수 있었다. 또 다른 중요한 요소는 그의 주변 수련생들에게 허영의 장이 생기게 해 자신은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을 표현하고 과시하면서 안전에 주의하는 것을 배척하고 부정한다.

구세력은 우리 매 수련생의 일사일념에 모두 미세하게 배치해놓아 법을 확실하게 실수(實修)하지 못하면 법의 주견이 없어 우리 사상에 반영된 생각이 법에 부합되는지 분간하기 힘들다.

그렇다면 우리는 ‘두려움’으로 안전에 주의하라는 수련생의 일깨움을 배척할 때 우리는 반드시 경각성을 높여야 하지 않는가? 사실 우리가 두려워하지 않는다 해도 안전에 주의해야 한다! 그것은 법이 우리에게 요구한 것이기 때문이다.

중국에서 수년 간 박해가 엄혹했고 지금도 계속되고 있기에 현재 우리 정법수련에서 안전에 주의해야 하는 문제가 있다. 그 중에는 우리가 다른 사람을 위해 생각하는 마음을 수련해내는가, 다른 사람의 의견을 들을 수 있는가, 수구할 수 있는가, 태만함을 없앨 수 있는가, 환희심과 과시심을 제거할 수 있는가 등이 포함된다. 최후에 정념, 이지, 무사(無私) 등 우리가 갖춰야 할 상태를 수련해낸다.

안전에 주의하는 것은 우리 정법수련에 없어서는 안 될 일부분이라는 인식이 있다면 우리는 반드시 이 부분의 일을 잘할 수 있을 것이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경문: ‘2016년 뉴욕법회 설법’

문장발표: 2016년 9월 20일
문장분류: 수련마당>정법수련마당>수련체험>심성제고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6/9/20/335246.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