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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척과 친구 몇십 명이 파룬따파를 수련하게 되다

글/ 중국 대륙대법제자

[밍후이왕] 2012년 엄마의 병이 사라졌다. 엄마는 40여 년간 병을 앓은 중병환자였는데, 이번에는 갑자기 병세가 더욱 악화되면서 안색이 검푸르게 변하고 전신에 힘이 빠지고 불면증에 시달리면서, 자주 쥐구멍에라도 들어가려는 듯이 놀라곤 했다. 크고 작은 병원을 두루 찾아다니며 치료를 받았지만, 전문의들마저 무슨 병인지 모르겠다고 했다. 그렇게 되자 오빠는 어쩔 수 없이 점집을 찾아가기도 했는데, 엄마의 병세는 나아졌다 나빠지기를 반복했다.

그래서 나는 ‘대법만이 엄마의 병을 낫게 할 수 있다’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가족들은 대법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들은 나의 수련 초기에 수련 포기를 강요하며 나를 정신병원에 입소시킨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지금 엄마에게 대법을 받아들이라고 하는 것은 일정한 한계의 어려움이 있었다. 하지만 한 가닥 희망이 없는 것도 아니어서 ‘한번 시도해 보리라’ 맘먹었다. 나는 오빠와 올케가 오랫동안 엄마를 돌보느라 많이 힘들어했음을 알고, 그들에게 “집에 돌아가 좀 쉬라”고 한 후 내가 엄마 수발을 했다. 엄마는 밤에 나에게 불편하다고 했다. 나는 사람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엄마에게 확실히 존재하는 나쁜 물질을 제거해주었다. 그렇게 나쁜 물질을 제거하는 발정념을 하는 중에 엄마가 나를 불러 말했다. “이렇게 효과가 있구나. 나도 너를 따라 배우련다.” 뜻밖에도 그렇게 대법의 효험은 몇 분 사이에 엄마가 대법을 받아들이게 했다. 그 후 엄마와 아빠가 대법을 수련하게 됐다.

엄마의 몸이 크게 변화된 모습을 본 오빠 내외도 맘속으로 대법에 대해 탄복해 마지않았다. 그래서 그들도 대법과 나의 대한 태도가 180도 달라졌다. 부모가 건강을 회복했으므로 오빠 내외는 자신들의 일상생활로 돌아갈 수 있게 됐다. 그들은 더는 부모의 건강을 걱정할 필요가 없게 됐을 뿐만 아니라, 중국공산당의 거짓 선전을 알게 됐고, 파룬따파(法輪大法)가정법이라는 것을 믿게 됐다. 부모의 몸이 크게 변한 모습을 보고 우리 가족은 물론 친척과 친구 등 수십 명이 대법을 수련하게 됐으며, 그들은 모두 대법의 혜택을 받았다.

하루아침에 법을 얻어 영원히 후회가 없다

나는 생활조건이 비교적 좋은 가정에서 태어났다. 집에 여자애는 나 하나밖에 없어서 특별히 귀여움을 받으며 자랐지만, 체질이 병약해서 늘 잔병치레를 했으므로 부모와 오빠가 특히 나를 보살피며 총애했다. 나는 성인이 된 후에도 얌전하고 아름다웠지만 건강상태는 여전히 좋지 않았다. 내가 기억하기로는 다리에 마른버짐이 있었는데, 그것이 가렵기 시작하면 견딜 수 없었다. 참지 못하고 긁게 되면 환부에서 노란 물이 나오면서 가슴이 몹시 아팠고, 그것이 그렇게 터지고 나면 얼마 후 다시 생겨나고 그것이 터졌다가 다시 돋아나곤 하면서 반복됐다. 또 일 년 내내 몸의 혈액이 부족해 전신에 힘이 없어 힘들었으며, 비염과 기침까지 동반했으므로, 어린 친구들이 자주 “병자”라고 놀려댔다.

나는 질병의 고통이 너무 심해서 “부모가 나를 세상에 낳아 고생을 하게 했다”라고 원망했다. 물론 좋다는 약, 유명하다는 병원을 찾아 각처로 다니며 치료를 받았지만, 완치되지 않았으므로, 온갖 질병들이 나를 계속 괴롭혔다. 일 년 내내 약과 함께 살아야 했고, 삶의 희망이 없었으므로 꽃다운 나이였지만 행복한 마음을 찾을 수가 없었다. 친구들은 모두 나의 부유한 가정을 부러워했고, 또 가족들로부터 유독 총애를 받으며 생활하는 것도 부러워했지만, 그들은 내가 말하지 못하는 고통과 고생을 몰랐다.

나는 1993년 건강하고 튼튼한 능력 있는 젊은 남자와 결혼했다. 당시 부모님들이 결혼을 반대했지만, 나는 반대의 난관을 무릅쓰고 고집으로 그와 결혼했다. 그러나 결혼 후 아름다운 결혼생활은 한낱 꿈에 불과했다. ‘결혼을 하고 나면 건강해질 것이라’는 생각은 헛되고 말았다. 두 번의 유산과 테라토마(종양) 수술로 건강상태는 더욱 악화됐다. 또한 결혼 후 시어머니와 갈등이 생기면서 자연 부부간의 마찰도 잦아졌으므로 나를 더욱 힘들게 했다. 나는 결혼 전 집에서는 일하지 않았고, 모두 부모와 오빠 내외가 감당하고 처리했으므로 가사 일을 잘할 줄 모른다. 시부모 집과 우리 집이 대문을 서로 마주하고 있기 때문에, 시어머니는 내가 하는 일을 자주 보게 되어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으며, 급기야는 화가 치밀어 올라서 나에게 좋지 않은 표정으로 잔소리하고 질책했다.

나는 시어머니가 연로한 데다가 그분의 맘을 생각해서 좋지 않은 말로 대꾸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늘 억울한 생각이 들어 남편에게 하소연했다. 그러면 남편은 일의 전말에 대해서는생각해보지도 않고 거칠게 나를 나무랐다. 남편은 시어머니가 나에게 억울하게 대하든지, 박정하게 대하든지, 또는 가혹하게 대하든지를 막론하고, 나를 위해서는 한마디도 해주지 않았으므로 나는 속이 무척 상했다. 그러므로 일주일에 2번 정도의 부부싸움은 일상이 되었으므로 나의 심신은 극도로 피곤해졌다. 결국 나는 이혼을 생각하게 됐다. 나는 그동안 어려움 속에서도 딸이 출생했으므로 마음을 가라앉히고 남편과의 생활을 계속하기로 마음먹었지만, 시어머니와의 갈등으로 인해 우리 부부는 늘 날카롭게 맞서고 있었다. 그래서 이혼을 생각하기는 했지만, 그것도 쉽지가 않았다. 이혼하게 되면 아쉬움이 있을 것 같기도 해서 참고 살았지만, 참으로 삶이 불편하고 힘들었다. 결혼생활 5년은 정신과 육체적으로 모두 힘든 삶이었다.

90년대에 기공이 사회에 유행을 일으키고 있었는데, 병 치료 효과가 좋다는 기공은 의례 사람들의 입에 자주 오르내렸다. 나는 1998년 병을 치료하겠다는 생각으로 남편에게 “파룬궁(法輪功) 설법 비디오를 구해달라”라고 했다. 그런 우연한 나의 결정이 다행히 파룬따파를 접촉하게 된 것이다. 나는 그 후 수련의 길을 걷게 됐고, 따라서 나의 고생스러운 그간의 운명도 바뀌게 된 것이다. 나는 비디오를 보고 파룬궁은, 병 치료를 하고 몸을 건강히 하는 그런 보통 기공과는 다르다는 것을 알았다. 이 파룬궁은 사람에게 선을 행하게 가르치는 대법인 것이었다. 책에서, 병을 치료하려는 생각을 하고 기공을 배우면 안 된다고 했고, 대법은 병을 치료하는 것이 아니고 수련하여 반본귀진(返本歸真)하는 것이고, 사람에게 좋은 사람이 되라고 가르치는 최후 최고의 수련으로, 무사무아(無私無我)의 완전히 다른 사람을 수련해내는 것이었다. 대법 책은 사람이 어디에서 왔는가? 어디로 가는가? 사람은 왜, 병이 생기는가? 사람은 왜, 고생하는가? 등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해가 되지 않았던 많은 문제에 대해 답안을 주었다. 당시 ‘이것은 바로 내가 찾던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파룬궁을 수련 후 사부님의 요구에 따라 병을 치료한다는 관념을 내려놓고, 자신이‘진선인(眞善忍)’의 요구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스스로 요구했는데, 맘속으로 아주기뻤다. 생활도 달라졌고, 가족에 대한 마음가짐도 서서히 변했으므로 날이 갈수록 좋아졌다. 1년 내내 병고에 시달렸던 나는 남편을 도와 가사를 돕게 되기까지 됐다. 그렇게 나를 괴롭혔던 모든 질병은 나도 모르는 사이에 전부 사라졌다. 나는 20여 년간의 온갖 병고에서 벗어난 것이다. 진정으로 병이 없는 가벼운 몸으로 변해 아름다움을 느낄 정도에까지 이르렀다. 시어머니는 나의 변화된 모습을 보고 역시 대법을 배우게 됐으며, 그 외 가족들도 나의 건강한 모습을 보고 기뻐했으며, 약골인 나 때문 오랜 세월 동안 걱정했던 부모님들도 한시름 놓게 됐다.

1999년 7월 중국공산당이 하늘을 뒤엎을 듯이 파룬따파를 먹칠하며 박해할 때, 1년을 수련한 나는 사회와 가정, 회사 등 각 방면으로부터 압력을 받게 되어 숨조차 쉬기 어려울 지경이었다. 남편은 이혼하겠다고 위협하며 집에서 24시간 감시했고, 회사에서 역시 같은 상황이라, 정말로 난감한 처지였다. 나는 홀로 회사의 작은 오솔길을 걸으면서 고뇌 어린 생각에 빠져 마음이 편치 않았다. 내가 대법을 견지해 수련하겠다는 마음을 가지게 되었으므로, 이 작은 길도 나에게는 아마 마지막으로 걷게 되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회사에서 나를 핍박할 뿐만 아니라, 남편 회사 책임자까지 찾아와 파룬궁을 포기하라고 압력을 가하고 있었다. 나는 진지하게 생각했다. 파룬따파는 나에게 건강한 신체를 주었고, 선을 행할 수 있는 영혼을 주었고, 내 주변의 암 환자인 이모가 대법을 배우고 건강을 회복했으며, 음식물을 전폐해 병원이 사형선고를 내린 언니도 대법을 배우고 완쾌됐다. 또 경찰조차도 어떻게 조치하지 못할 정도의 난폭한 싸움 대장도 대법을 배운 후 선량한 좋은 사람이 됐다는 등등을 떠올렸다. 나는 생각 끝에 ‘베이징에 가서 청원하겠다.’라고 결심했다. 단지 대법을 위해 공정한 말 한마디를 하겠다는 생각이었다.

내가 구치소에서 나온 후 남편은 이혼을 제기했고, 시아버지는 나를 핍박하며 무슨 검사를 위한 서류를 작성하라고 하는 등, 친정 부모와 오빠는 물론 시부모들이 모두 나를 경원시하며 좋지 않은 표정을 보내면서 걱정을 태산같이 했다. 그렇게 나를 알고 있는 사람들은 전부 중국공산당의 거짓선전에 속아서 나를 이상한 눈으로 보았다. 몇 번 박해를 당한 후 나의 직장은 겨우 유지될 수 있었다. 하지만 임금을 주지 않고 장려금도 주지 않고, 진급과 승급도 시켜주지 않았다. 그동안 고생의 경험으로 비춰볼 때, 만약 그때 나에게 대법이 준 넓은 흉금과 선량한 심태, 사람과 다투지 않는 미덕이 없었다면, 나는 그 길을 걸어오기 아주 힘들었을 것이다.

진선인의 대법은 이미 나의 영혼에 용해됐으므로, 시시각각 잘하지 못하지만, 더욱 잘하려고 노력한다. 자신의 성격과 결점을 바로 보고 바로 잡으려 생각하고 있다. 그러므로 나의 원망을 감사로 변화시킨다. 함께 일하는 동료를 포용하고 이해할 수 있고, 뒤에서 이간질하지 않고 다른 사람을 위해서 생각했다. 20여 년간 나와 일한 동료는 나에게 “딴 사람으로 변했다.”라고 한다. 그는 “원래 아주 날카롭고, 앞에 나서기를 좋아하고, 손해를 보려 하지 않았었다.”라고 과거의 나를 평했다. 내가 만약 대법을 수련하지 않았다면 이런 물욕이 넘쳐나는 사회에서 어떻게 되었을지는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그런 심태와 그런 몸으로 지금까지 살아있을 수 있었겠는가? 나는 대법에 감사한다. 대법이 나의 신심을 해탈시켰고, 대법이 나에게 화목한 가정을 주었고, 대법이 나에게 정과 사의 본질을 분간하게 했다. 대법은 나에게 희망을 주었다.

더 쓸 수 있는 체험은 많다. 수많은 말로도 대법에 대한 감사의 말은 표현하기가 어렵다. 여기에서 이 문장을 보는 친구와 인연이 있는 친구에게 단지 한마디 말을 전하려고 한 것인데, 문장을 작성하는 수준에서 한계가 있었다. 하지만 말마다 참말이니, 당신이 진상을 알기를 바란다. 사람을 속이는 중국공산당의 간교한 기량을 똑똑히 보고 당신이 나처럼 대법에서 혜택을 받기를 바란다.

문장발표: 2016년 9월 4일
문장분류: 수련마당>신수련마당>대법과의 인연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6/9/4/333098.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