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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 여성 ‘결혼의 위기에서 벗어나도록 한, 한 권의 책’

[밍후이왕](쉐리 밍후이기자) 현대 사회에서 14살 이상의 십 대 소녀라면 대부분 모두 자신을 치장하기 좋아하고, 파티와 춤추러 다니고 남자 친구를 사귄다. 하지만 오스트리아에서 태어나 자란 카티아(Katja)는 그런 일반적인 십 대와는 다르다. 그 해를 회상하면, 청소년 시기의 그녀는 마치 다른 세계에서 온 듯이 책 속에만 깊이 파묻혀 있었다. 생사윤회와 남다른 생명 체험, 육체 바깥 세계에 더없이 큰 흥미를 느꼈다. 생명의 의의에 대해서도 또래 친구들에 비해 뚜렷하게 다른 사고가 있었다.

'图:自信乐观的卡迪娅(Katja)'

자신 있고 낙관적인 카티아 (Katja)

무신론을 믿지 않는 카티아의 엄마는 늘 사람이 탄생한 후의 생명에 관한 것과, 전생에 관련된 책을 가지고 집에 왔다. 그런 책을 흥미롭게 읽은 카티아는 업력윤보, 윤회전생 등에 대해 어릴 때부터 아주 익숙하게 알고 있었다.

19살 되던 해, 그녀는 일본 불교사원에 6주일간 있으면서 사람이 승화할 방법을 찾으려고 했다. 하지만 그녀는 단지 구두로 전술된 것만 얻었지, 가부좌 요령은 얻지 못했고 장시간 벽을 마주하는 진정한 의의는 알지 못했다. 그 후에도 몇 년간 그녀는 선종, 태극과 각종 도가 공법을 배웠다. 그녀와 지금의 남편 한스(Heinz)는 심지어 수차례 멀리 인도와 일본 선원에서 수행하기도 했다. 그들 둘은 진정한 대법 대도가 손만 뻗으면 닿을 수 있는 곳에 있다는 것은 생각하지 못한 채 단지 시기가 되지 않았을 뿐이라고 여겼다.

그녀는 회상했다. “나는 자율적으로, 규율을 준수하면서 청춘기도 아무런 굴곡 없이 조용히 지나갔다. 그러나 20살에 결혼한 후부터 36살까지는 내 인생 중 가장 어려운 단계였다.” 그 단계는 그처럼 길어서 그녀는 정신적으로 많이 시달렸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가 그녀에게 ‘불가사의한’ 책 한 권을 가져다준 뒤에야 비로소 그런 상황을 바꿀 수 있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발생했을까? 어떤 위기였을까? 또 어떤 일이기에 그녀의 삶을 바꾼 것일까?

결혼의 위기

카티아는 16살 때 이미 한스에게 정이 들었고, 몇 년 후 염원대로 첫사랑한 사람과 결혼식장에 들어섰다. 세 아이가 태어나면서 이미 부부간에 불화가 끊임없이 생겼는데, 그녀는 이미 자신이 결혼 위기에 빠졌음을 의식했다. 매일 같이 남편과 아이들을 보살피느라 애를 썼지만, 도리어 관심과 사랑받지 못한 그녀는 억울함과 자기비하로 망연하기만 했다. 그때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그에게 심상치 않은 소식을 전했다. 카티아는 한스의 마음을 여는 열쇠가 줄곧 자기 손에 쥐어져 있음을 갑자기 깨달았다. 대법 공부를 통해 그녀는 많은 도리를 알게 되었고, 마침내 결혼을 서로 존중하고 서로 소중히 여기는 관계로 발전시켰다.

'图:卡迪娅(Katja)和丈夫汉斯(Heinz)'

카티아와 남편 한스

올해 50살인 카티아와 한스 부부는 17년 전 오스트리아의 이곳 작은 마을로 이사 왔다. 그곳은 빈에서 1백여㎞ 떨어진, 향토 맛이 다분히 풍기는, 비교적 보수적이고 엄격한 천주교 지역 사회였다. 그들 부부는 담배를 피우지 않고 술을 마시지 않았으며, 교회당이나 맥줏집에도 다니지 않았다. 35년간 완전한 채식주의자로 이 작은 고장에서는 전혀 어울리지 않았지만, 그들 스스로 행복과 추구에 대한 정의가 있었다. 조용하게 생활했는데 그들에게 세 아이가 출생하고 커 감에 따라 그들 부부에게 문제가 생겼다.

“세 아이는 나의 모든 시간과 정력을 앗아갔고, 한스는 그저 나를 세 아이의 엄마로만 간주했어요, 그는 늘 혼자 외출했고 심지어 새로운 여성을 반려자로 찾고자 했어요. 16살부터 한스를 사랑했던 나는 열등감을 느꼈고, 그런 저 자신이 좋지 않았다는 걸 느꼈어요.” 깊은 수심에 잠긴 그녀는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아주 컸고, 그런 자신의 상황이 아주 불만스러웠다.

‘불가사의한 책’ 우리 집에까지 보내다

그런 상황에서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옛 친구에게서 갑자기 전화가 왔다고 한다. “그 친구는 독일에서 사업하는데, 아주 드물게 만났지요. 그때는 2001년 12월이었는데, 며칠 후에 우리를 만나러 오겠다는 거예요, 게다가 책 한 권을 갖고 와서 우리와 이야기를 나누겠다고 했어요. 전화를 놓으니 어떤 물건이 공기 중에서 흐르는 게 분명히 느껴졌고, 나를 기대하고 흥분하게 했어요. 며칠 후 우리의 친구가 정말 왔는데 그는 여전히 총망했어요. 온 후에 그는 즉각 우리와 연공하기 시작했어요.”

연공을 마치고 나서 그 친구는 ‘전법륜’ 책과 연공 음악, 동영상을 그들에게 준 후 기뻐하면서 말했다. “우리에게는 또 사부님이 계십니다!” 그 친구는 또 바람처럼 가버렸다. 그가 떠나간 후 그들 부부는 이틀 만에 차례로 돌아가며 ‘전법륜’을 다 읽었다. “이 책은 우리가 읽은 모든 책 중에서 가장 ‘불가사의’한 책이라고 그녀는 말했다.

더 큰 시각으로 사물을 이해하다

“책을 읽으면서 저로 인해 생긴 문제는 저에게도 몫이 있다는 것을 서서히 알게 됐어요, 전체 이야기의 일부분은 제 이야기로 틀림없이 어느 때 그를 해쳤을 거예요. 이를테면 과거의 어느 일생에 그를 잘 대하지 않았거나 무의식중 무슨 일을 잘못하여 오늘의 국면에 복선을 깔았을 수도 있어요. 이처럼 새롭게 인식하면서 저는 서서히 피해자의 자태를 고쳤어요. 제가 어찌 남에게 부부관계에 실패한 책임을 전가할 수 있겠어요? 피해자는 사실 그 일에 대한 작용일 수 있고, 절대적으로 누가 옳고 누가 그른가를 말하기 어려우므로, 제가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자신을 개변하는 것임을 알게 됐어요.”

“예를 든다면, 저는 늘 자신의 흐리멍덩한 감수를 말로 표현하는 데 많은 어려움을 느끼곤 해요, 그런데 제 남편은 서술이 분명하고 솔직한 대답을 듣기 더욱 좋아해요. 몇 년 후에야 저는 이 점을 알게 됐어요. 저도 더는 자신의 각도를 고집하지 않았고, 우리는 상대방에게 더 관심을 가지고 지켜봄으로써, 관계는 서서히 호전되고 완전히 융합되기까지 했어요.”

대법 수련은 카티아에게 가부좌할 때 마음을 가라앉히고 안으로 찾을 수 있게끔 했다. 오직 자신의 마음이 아주 조용하고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을 때라야만, 비로소 어느 생각이 의연히 활약하고 어느 욕념이 자신을 억제하지 못하게 하는지 볼 수 있었다. 조용히 가부좌 하고 정좌하면 카티아는 일상생활에서 어려운 일에 부닥치면 침착할 수 있었고, 일의 발전을 조용히 대할 수 있었다.

“대법은 완전히 저의 생활을 변화시켰어요, 법리는 저를 더욱 큰 시각으로 사물을 대하게 했고, 저에게 곳곳에서 남을 배려하게 했어요. 대법은 저의 사유방식과 시야를 철저히 개변시켰습니다. 이처럼 저 자신을 개선하자 주위 환경에 뚜렷한 작용이 일어났어요. 저는 생활 중의 적극적인 변화를 날마다 모두 감수할 수 있어요, 예를 들어, 예전에 저는 이른바 자유란 모든 일이 제가 바라는 대로 발생하는 것이라고 여겼지요. 오늘 이에 대한 저의 이해는 완전히 반대입니다. ‘자유’란 제가 당장 태연하게 받아들이고, 매 하루의 생활을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해요, 비록 매일매일 나에게 펼쳐주는 것은 도전이긴 하지만 평화적으로 이런 것을 직면하며, 일체 노력을 아끼지 않고 낙관적으로 직면합니다. 날마다 다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날마다 모두 진선인이 저를 지도하고 있으므로 저는 갈수록 더 잘하게 됩니다. 이것이 제가 ‘자유’라는 두 글자에 대한 감수입니다. 만약 대법을 수련하지 않았더라면 십중팔구 이렇게 해내지 못했을 것입니다.”

인연 있는 사람을 애써 찾다

카티아는 10년간 경영한 자신의 정품 가게가 있는데, 평소 오가는 사람 중에 낯익은 얼굴이 많아 바쁘지 않을 때는 손님과 생활 이야기를 나누기 일쑤다. 하지만 그녀가 열심히 손님에게 꺼내는 말은 그래도 파룬따파가 자신에게 준 영향이다.

“대법은 제 인생에 아주 적극적으로 작용했어요. 저는 당연히 대법을 다른 사람에게 소개하여 사람들이 모두 대법에서 이익을 얻도록 기회를 마련해 줘야지요. 동시에 그들도 대법이 박해당하는 진상을 알게 하여 우리와 함께 박해를 제지해야지요.”

카티아는 비교적 내향적이어서 공개적으로 불가공(佛家功)을 수련한다는 것은 그녀로서는 좀 난처한 일이었다. 그래서 그녀와 한스는 처음에는 집에서만 연공하다가 후에는 수련생의 학교에서 했다. 법을 얻은 지 몇 해가 지난 후 그들은 지역 사회의 작은 공원에서 연공했고, 또 여러 번 공립학교에서 공법을 시연했다. 하지만 그건 필경 자신이 익힌 환경이었다.

“제가 처음 그라츠(Graz)에서 파룬궁 정보 일에 참여했어요. 그때의 저는 아직도 그다지 자신이 없었고 부끄럼을 타는 사람이었어요. 저는 늘 그곳에 꼼짝하지 않고 서 있는 저를 오가는 사람들이 보고 뭐라고 생각할까 하는 생각을 하곤 했어요. 후에는 비가 내렸어요, 다른 수련생은 조금도 움직이지 않고 계속 연공을 했어요. 저는 맞은편 수련생을 보고 말했어요, ‘남들은 우리가 비를 맞으며 연공하는 것을 보고 우리를 미쳤다고 여길 거예요.’ 그는 오히려 조용히 말하는 것이었어요. ‘아니요, 반대로 그들은 우리의 입정력(入定力)에 깜짝 놀랄 겁니다.’ 당시 저는 그의 말의 함의를 이해하지 못했어요.”

“저는 많은 시간을 들여서야 진상 알리는 의의를 알게 됐어요. 우리는 유럽에서 대법과 인연 있는 사람을 찾아내려 했어요. 그때 유럽에는 적지 않은 사람이 중공의 비방 선전 때문에 대법에 오해가 생겼으므로, 우리는 사실 진상을 그들에게 알려야 했는데 그렇지 않으면 그들에게는 너무 아쉬운 것이었어요.”

카티아는 대법 수련에 들어선 지 이젠 15년째로 이전의 의문에 답안을 얻게 되었다. 생활 중의 마난을 되돌아보면 원래는 하늘로 오르는 사닥다리였다. 그녀는 파룬따파를 수련하면서 자신의 길은 갈수록 낙관적이며 확고부동할 것을 깊이 믿었다.

문장발표 : 2016년 9월 4일
문장분류 : 수련마당
원문위치 :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6/9/4/333935.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