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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악단에서 수련하다

글/ 캐나다 대법제자

[밍후이왕]

존경하는 사존 안녕하십니까?

수련생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나는 천국악단 단원으로 2013년 악단에 참가해 2014년 트롬본으로 악기를 바꿨으며 지금까지 이미 2년이 됐다. 최근 천국악단 항목에 참가한 약간의 체험을 교류하려 한다, 적절하지 않는 곳은 수련생 여러분께서 자비로 시정해주시기 바란다.

나태 중에서 놀라 깨닫다

작년 성탄절 퍼레이드부터 올해 3월 오타와 퍼레이드 기간 동안 우리는퍼레이드 활동이 없었다. 이 기간에 내 연습 시간은 대폭 감소됐다. 오타와 성패트릭 퍼레이드 후 사람들은 전력으로 션윈 항목에 협조했다. 처음에 몇 번 단체연습에 참가했고 그 후 2개월 동안 나는 거의 트롬본을 연습한 적이 없었다. 아주 부끄럽지만 주말 션윈 전단지 배포도 몇 번 밖에 가지 못했다. 대다수 시간은 자신의 공부가 바쁘다는 구실로 주말에 집에 숨어 게으름을 피웠다.

사실 나는 그리 바쁘지 않고 단지 나태한 마음이 작용을 한 것이다. 본질적으로 이기적인 마음이 부풀어 오른 것이다. ‘어쨌든 지금 션윈이 바쁘니 모두 연습할 시간이 없어. 나도 쉬어야지 자신을 그렇게 힘들게 할 필요가 있을까?’ 이런 생각이 내 머릿속에 2개월 간 차지하고 있었다. 나태할수록 트롬본 연습을 하기 더욱 싫었다. 때로 부끄럽지만 이렇게 긴 시간인데 더 길어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몇 년간 매번 설법 중 사존께서는 시간의 긴박성을 언급하셨다. 어투는 점차 무거우셨는데 나는 오히려 제구실을 못하고 나태와 안일심에 대량의 시간을 낭비했다. 때로 ‘부끄럽다’는 느낌은 심지어 다시 정신을 차려 좋은 상태로 가는 것을 가로막았다. 좋은 수련 상태와 악기를 연습하는 상태, 물론 수련 상태는 직접 연습 상태를 결정한다. 천국악단은 내 주요 진상 항목이고 아주 소중한 기회이며 반드시 완성해야 할 사명이다.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엄숙하게 알려주셨다. “당신은 이 세상에 올 때 일찍이 나와 서약을 맺었고, 당신이 그런 중생을 구도하겠다고 맹세했기에 당신은 비로소 대법제자가 될 수 있었으며, 당신은 비로소 이 일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당신은 이행하지 않았다. 당신이 완전하게 이행하지 못하면, 당신이 담당한 당신에게 분배해준 배후의 그러한 무량한 중생과 방대한 생명군(生命群)을 당신은 모두 구도하지 못하게 되는데, 그것은 무엇인가?! 그것이 간단하고도 간단한 수련에 정진하지 못하는 문제인가? 그것은 지극히 크고 지극히 큰 범죄이다!”[1] 내가 처음으로 이 한 단락 법을 읽을 때 놀라서 멍해졌다. 수련과 중생을 구도하는데 도대체 얼마나 엄숙한지 상상하지 못했다. 퍼레이드가 눈앞에 다가오고 학교 수업도 끝났다. 나는 자신에게 말했다. ‘정신을 차려 잘 수련하고 트롬본을 잘 연습하자!’

수련생과 협력

우연한 기회에 나는 토론토에 가서 여름방학 수업을 했다. 4번의 단체 연습과 3번의 퍼레이드에 참가했다. 익숙하지 않는 수련생과 협조하는 과정에서 나는 수확이 컸다.

처음에 연습할 때 완전히 다른 환경이었고, 토론토 악단의 수련생과도 그리 익숙하지 않아서 안절부절못하고 또 약간 흥분했다. 몬트리올에 있을 때 연습하는 효과는 갈수록 좋아 그들에게 과시하고 싶었다. 사실 이 생각은 옳지 않다. 동시에 내 스스로도 잘 연습했다고 생각했다. 특히 개별 수련생의 듣기 좋지 않는 음색을 듣고 내 과시심이 부풀어 올랐다. 토론토 악단의 수련생 중 일부는 전혀 만나본 적이 없었고 몬트리올처럼 자연스러운 환경이 아니라 이 정체와 간격이 생긴 듯했다. 연습을 시작한 후 주변 수련생의 정확하지 않는 음정을 듣고 부정적인 정서가 강하게 생겼다. 이 순간 생각은 몬트리올로 돌아가 있었다. 체면을 위해 억지로 첫 번째 연습을 끝마쳤지만 마음속 나쁜 물질이 계속 솟아오르고 있었다. 안으로 찾지 않고 반대로 현지 수련생만 원망했다.

돌아간 후 마음을 조용히 하고 또 다른 수련생의 일깨움이 있어 자신의 과시심, 구별심과 원망심을 인식했다. 이런 환경이 바로 아주 어려운 수련의 기회다. 몬트리올 악단에서 다른 사람에게 내가 나쁘다는 말을 들은 적이 없었고 악단 연습도 줄곧 순조로웠다. 하지만 수련은 그렇게 편안한 것이 아니다. 사부님께서 나에게 이런 환경을 배치해 주셨고 그런 나쁜 마음을 제거하게 하셨다. 여기까지 생각하니 단번에 깨달았다. 악단에 협조해야 하고 과시심이 없어야 한다. 어떻게 비기는 마음이 있을 수 있는가? 이는 과시심에서 나온 것이다. 사실 나도 많이 제고해야 한다. 단지 지금 많이 연주하는 곡에 좀 익숙할 뿐이다. 이후 연습에서 자신의 기본기가 튼튼하지 못하고 아직 과시심이 있다는 것을 알고 부끄러웠다. 이렇게 나가면 자신의 연주 실력이 향상되면 과시심이 더욱 부풀어 오를 것이다. 그때 주변 수련생이 내 수준보다 낮으면 심지어 자심생마할 수 있으며 이는 아주 위험하다.

이곳 수련생도 모두 대법제자인데 몬트리올과 토론토의 구별이 있겠는가? 어디에 가든지 모두 같고 모두 한 입자가 정체에 협력하는 것이고 가장 좋은 작용을 발휘하는 것이다. 수련생을 원망하는 마음은 더욱 마땅하지 않다. 이런 부정적 물질은 나를 장애하고 동시에 다른 수련생에 대해 아주 나쁜 작용을 일으킨다. 엄중하게 말하면 다른 수련생의 무량한 중생에 죄를 범하는 것이다. 나는이전에 갖고 있던 다른 수련생에 대한 원망심에 놀랐다. 되도록 빨리 이런 나쁜 물질을 제거해 버리겠다고 결심했다.

그 후 처음 퍼레이드 연습에서 마음이 태연해졌다. 마음속 나쁜 물질은 제거됐고 나를 장애하는 물질은 사라진 것 같았다. 퍼레이드 전 연습할 때 같은 성부에 박자 문제가 있어 침착하게 성부장에게 의견을 제출했다. 비록 퍼레이드를 할 때 단번에 개변하지 못했지만 마음은 이미 편안해졌다. 나도 묵묵히 수련생에 대한 원망심을 부정했고 이런 나쁜 물질을 청리했다. 퍼레이드에서 내 박자와 그들의 박자와 다를 때 나는 불지 않거나 작게 불었다. 그런 상황에서 자신을 포기하는 것이 마땅한 것이고 누가 옳고 틀린 것을 분별하지 않았다. 사존께서는 우리에게 알려주셨다. “누가 옳고 누가 그른가, 수련인이여, 스스로 자신의 과오를 찾으라, 갖가지 사람마음 많이 제거하고, 큰 고비 작은 고비 빠뜨릴 생각 말라, 옳은 것은 그이고, 잘못된 건 나이니, 다툴 게 뭐 있느냐.”[2]

한번은 퍼레이드를 끝마치고 내 앞에 걸어가는 수련생이 나에게 잘 분다고 격려해 주었다. 트롬본은 현지에서 임대한 것이라 내 법기처럼 편하지 않았다. 심지어 퍼레이드를 막 시작할 때 거부감을 표현했다. 그에게 발정념을 해줬더니 좀 잘 됐다. 주요 반주에서 나는 부는 것을 포기했고 전반 연주는 만족스럽지 않았다. 수련생의 칭찬은 사부님께서 나를 격려해주신 것이고 나에게 완전히 자신을 내려놓으라는 것이며 스스로 박자가 정확하다고 하더라도 필요할 때 포기해야 하고 무조건 협조하고 원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해야 관중에 대한 효과가 좋다. 만약 자신을 견지하고 상관하지 않고 부르면 반대로 교란하는 것이다.

나쁜 물질을 버리고 악단에 용해되자 모두 변한 것을 발견했다. 동성부 수련생도 나에게 어떤 박자를 어떻게 불어야 하는지 알려줬고 저음부의 교사이자 실내 지휘하는 수련생도 나에게 어떻게 음색을 향상시키고 정확한 입모양과 호흡이 어떤지 가르쳐줬다. 나는 수련생들이 아주 열심히 하는 것을 보았고 반대로 자신과 그들의 격차를 보았다. 한번은 퍼레이드를 할 때 날씨가 무더웠는데 내 뒤에 나이가 비교적 많은 수련생이 저음 트롬본을 매고 매 음색을 노력해 부는 것을 보고 큰 격려와 감동을 받았다. 점차 토론토 악단도 나에게 그리 서먹하지 않았다. 나 자신도 그중 일원이 됐다. 사실 전에 자신이 자신을 장애한 것이다.

시간이 빨리 지나갔다. 눈 깜빡할 사이에 토론토 수업이 끝났다. 토요일 퍼레이드, 일요일 단체 연습의 충실함과 기쁨은 내가 집에서 게으름을 피울 때 얻을 수 없는 것이었다. 몬트리올로 돌아가기 전날의 퍼레이드에서 한번 ‘개선(凱旋)’ 곡의 트롬본 주요 선율을 불 때 갑자기 한줄기 열기가 온몸을 관통했다. 그 순간 느낌은 아주 복잡했다. 마치 악단의 모든 악기가 그 한순간에 함께 용합된 듯했다. 타악기의 견고함, 목관 악기의 민첩함과 부드러움, 트럼펫의 기쁨과 두근거림, 저음트롬본의 침착함과 진동, 그런 느낌은 아주 복잡했다. 대법제자가 수련해 나에게 준 느낌이고 이 느낌은 나에게 이후에 더욱 잘하고 열심히 하며 이런 기연을 소중히 여기도록 했다. 당시 심태는 한순간 정화됐고 3년 전 처음으로 퍼레이드에 참가한 것보다 더욱 순정해진 느낌이었다. 만약 처음에 퍼레이드는 순순한 백지라면 당시 느낌은 마치 갈수록 투명하고 곱고 윤기 나는 옥 같았다. 나는 사존께 감사드렸다. 내가 갈수록 잘 하지 못했는데 나에게 기회를 주셔서 단번에 높게 향상되게 하셨다. 토론토 행도 ‘개선’이라고 말할 수 있다.

몬트리올 퍼레이드로 돌아와

몬트리올에 돌아온 후 토론토 수련생들이 몬트리올에 와서 주(州) 경축 퍼레이드에 참가했다. 강대한 퍼레이드 대열, 중생의 환호성, 이 대열에 있는 것이 아주 자랑스러웠다. 동시에 갈수록 잘해야 천국악단의 명칭에 손색이 없을 것이다. 막 악단에 가입할 때와 지금 악단의 승화를 생각하면 마음이 기쁘다. 토론토 악단과의 이번 협력 역시 몇 년간 가장 잘 융합된 협력이었다.

건국기념일과 뉴욕 악단의 협조, 몬트리올 악단의 전진하는 기세를 보고 우리도 그들 수준만큼 잘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건국기념일 날 중국인들은 우리의 고대 복장을 보고 말했다. “파룬궁의 것이네.” 왜 규정한 완벽한 복장을 입어야 하는지 알았다. 그 복장을 입으면 우리의 일언일행은 개개인을 대표하는 것이 아니라 전체를 대표하며 중생이 모두 보게 된다. 우리는 마땅히 시시각각 가장 좋은 면모를 펼쳐야 한다. 대법제자의 일언일행, 일사일념은 무량한 뭇신과 중생이 보고 있기에 시시각각 마땅히 대법제자답게 해야 하며 이 명칭에 부끄러움이 없어야 한다.

몇 년간 악단의 비약을 본 목격자로서 내 느낌을 나누려 한다. 몬트리올을 떠난 짧은 5주 동안 마치고 다시 돌아오자 악단의 연주 실력이 향상됐다. 이런 향상은 악단의 매 수련생의 노력과 향상과 관계된다. 나는 우리 현존의 조건과 수련생이 노력해 도달한 현존의 상태와 수준을 소중히 여기고 이런 기연과 사명을 더욱 소중히 여기려 한다. 악단에서의 연습이든, 퍼레이드든 집착하는 모든 마음을 제거하는 과정이다. 폭풍우, 혹서, 엄동이든 백번의 담금질이 금강을 연마한다. 사존의 자비로운 구도에 감사드리고 매우 소중한 수련생의 연분에 감사드린다. 우리는 갈수록 잘할 것임을 믿고 천국악단의 아름다움을 더욱 많은 세인에게 전해 주고 법고법호로 그들을 위해 신성한 노래를 보내줄 것이다.

이상은 최근 악단에서 수련한 약간의 체험이다. 적절하지 않은 점은 수련생 여러분께서 자비롭게 시정해주시기 바란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수련생 여러분 감사합니다!

(2016년 캐나다 파룬따파 수련심득교류회)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경문: ‘2016년 뉴욕법회 설법’

[2] 리훙쯔 사부님의 시: ‘홍음3-누가 옳고 누가 그른가’

문장발표: 2016년 8월 2일
문장분류: 수련마당>정법수련마당>해외법회원고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6/8/2/332285.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