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밍후이왕 2016년 8월 10일](밍후이 기자 왕메이 밴쿠버 취재보도) 야오(姚) 이모와 남편 마(馬)선생은 2003년 중국 북방의 대도시에서 캐나다 밴쿠버로 이민했다. 그들 부부는 세속을 초월한 듯 조용하고 자유롭게 생활하고 있는데 모든 것이 그렇게 자연스럽고 아름답다. 왜 그들은 그런 함양과 심경일 수 있을까? 바로 파룬따파(파룬궁이라고도 함)를 수련하기 때문이다.
야오 이모와 남편 마 선생
바로 이 법을 얻기 위해 찾고 찾다
90년대 중국에서는 갖가지 기공이 성행했다. 야오 이모도 한 가지 공법을 연마하고 싶은 생각에 매일 아침 자전거를 타고 시내를 돌았다. 이쪽 공원에 가면 사람들이 춤을 추고 있었는데 자신이 요구하는 것이 아니었다. 저쪽에 가보면 사람들이 검무를 하고 있었는데 역시 자신이 좋아하는 게 아니었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을 원하는가, 자신도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어느 날, 바로 1994년 초, 그녀의 직장에 파룬궁창시자 리훙쯔선생님의 ‘9일 설법반’에 참가했던 한 대학생이 새로 배치돼 왔다. 그녀는 자발적으로 야오 이모에게 책 한 권—— ‘전법륜’을 빌려주었다. 야오 이모는 밤새 책을 다 읽었는데 아주 격동되었다. ‘이것이 바로 내가 찾던 것이다.’ 이튿날 야오 이모는 시 중심공원 연공장에 가서 5조(다섯 가지) 공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이어 일주일동안 야오 이모는 설사를 했고, 저녁에는 흐리멍덩하게 자고 싶었지만 낮의 출근에는 영향을 주지 않았다. 그렇게 일주일간 설사를 했다. 그 당시 그녀는 파룬궁을 수련한 후 나타나는 신체청리 현상이라는 것을 그리 똑똑히 모르고 있었다. 어느 날 그녀는 갑자기 오늘은 꼭 연공장으로 가야겠다는 생각에 연공장으로 갔다. 그 날 마침 보도원이 지난에서 열리는 사부님 9일 설법반에 참가할 입장권을 팔고 있었다.(1994년 6월 21일부터 28일까지) 야오 이모는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2장을 샀다.
남편이 갈 수 없자 야오 이모는 한 수련생과 함께 지난에 가서 리훙쯔 사부님의 설법을 직접 경청하는 행운을 가졌다. 야오 이모는 설법을 들으면서 스르르 잠들어 버렸는데 강의가 끝난 후 야오 이모를 오랫동안 괴롭히던 두통이 자신도 모르게 좋아졌고 그 후 다시는 재발하지 않았다. 후에 ‘전법륜’에서 “어떤 소수의 사람은 또 잠을 잘 것인데, 내가 강의를 끝내면 그도 잠을 깬다. 무엇 때문인가? 그의 머리 안에 병이 있어 그에게 조정(調整)해 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머리를 조정하면, 그는 전혀 견뎌내지 못한다. 그래서 반드시 그를 마취 상태로 들어가게 하는데, 그는 알지 못한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청각부분에 문제가 없어 그는 잠을 달콤히 자지만 도리어 한 글자도 빠뜨리지 않고 모두 듣는다. 사람은 이때부터 정신이 나며 이틀을 자지 않아도 졸리지 않는다.”라고 하신 말씀에 대해 그녀는 아주 깊은 체험이 있었다.
마 선생도 학교에 다닐 때 천문현상과 기공에 대해 특별히 흥취가 있었고 다른 공간의 화제에 대한 서적을 보기 좋아했다. 동시에 그의 머릿속에는 풀지 못한 많은 수수께끼들을 갖고 있었는데 수십 년 동안 풀지 못한 수수께끼를 파룬궁을 수련하면서 ‘전법륜’을 보고야 풀게 되었다.
마 선생은 1975년에 혈뇨현상이 있어 두 번이나 입원해 전문 검진을 받았지만 원인을 찾지 못했다. 후에 100세가 넘는 한의사를 청해 봤지만 역시 원인을 찾지 못했다. 그는 항상 허리가 아팠는데 직업병이라고 생각했다. 1994년 8월, 마 선생도 정식으로 대법 수련에 들어섰다. 하루아침 마 선생이 잠에서 깨어나 오줌을 누는데 ‘땅’하는 소리가 나면서 변기에 콩알 크기의 돌멩이가 떨어졌다. 그 후부터 마 선생의 혈뇨현상은 없어졌다.
명리를 좇지 않고 다투지 않다
수련 후, 야오 이모 부부는 몸이 좋아졌을 뿐만 아니라 세간의 일체는 인과관계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들은 명리를 담담히 보게 되었고, 월급이 오르거나 승급하는 것에도 마음을 움직이지 않았다.
직장에서 사람들이 자그마한 이익을 위해 말다툼을 하고 아귀다툼을 하는 것을 보면서, 일부 관리들이 명리를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고 서로 해치고, 패거리 짓는 것을 보면서 조금도 재미를 느끼지 못했으며 마치 옆에서 사람들의 연기를 보는 것처럼 자신들은 그중에 있지 않았다.
야오 이모는 말했다. “우리는 아무것도 다투지 않고 자연스럽게 되어감에 따랐지만, 마지막에 보면 우리에게는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집도 월급도 있을 것은 다 있었습니다. 바로 사부님께서 ‘전법륜’에서 말씀하신 것과 같았습니다. ‘우리 수련인은 자연스럽게 되어감에 따름을 중시하는데, 당신의 것이라면 잃지 않을 것이고, 당신의 것이 아니라면 당신은 다퉈서도 얻지 못한다.’”
가족 관계에서도 역시 같았다. 노부부는 오랫동안 아들과 함께 살았다. 오래 살다보면 마찰이 있게 마련인데 그들은 항상 ‘쩐,싼,런(真善忍)’표준에 따라 자신을 요구하고 자신에게서 원인을 찾고 주동적으로 상대방과 말하고, 자신이 잘하지 못한 것은 주동적으로 사과하여 가족관계는 갈수록 화목해졌다.
인연 있는 사람은 한 사람도 놓치지 않는다
마 선생부부는 모두 70세가 넘었다. 매일 아들을 도와 집안일을 보살피고, 아이를 데리고 있지만 그들의 마음속은 사람들이 파룬궁진상을 알도록 하는 것만을 생각하고 있다. 많은 화인들은 중공의 거짓말에 속아 파룬궁을 오해하고 있으며 심지어 사악한 중공의 편에 서서 나쁜 사람을 돕고 있다. ‘9평 공산당’은 중공의 사악한 본질과 그것의 내력 및 그것의 필연적인 결과를 폭로했다. 중공의 거짓말에 독해당한 민중은 모두 위험에 처해있다.
파룬궁수련자는 항상 다른 사람을 위해 생각한다. 야오 이모는 일심으로 중국인들에게 진상을 알려 사악을 멀리하게 해야만 비로소 아름다운 미래가 있고 이것이 진정으로 사람을 구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말했다. “저는 내가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진상을 말하고 그를 구하려고 해요.” “만일 내가 만난 사람을 구하지 못하면 나의 마음은 매우 괴로워요.” “저는 동포들마다 모두 아름다운 미래가 있기를 바랍니다.” 야오 이모는 이렇게 말했고, 또 이렇게 했다.
아들의 친구들이 그의 집에 놀러 오면 야오 이모는 그들에게 파룬궁은 무엇인지 알려 주고, 파룬궁에 대한 중공의 박해와 무엇 때문에 3퇴(중공의 당, 단, 대에서 탈퇴)해야 하는지 등등을 알려주었다. 그들은 분명히 알게 된 후 모두 3퇴를 했는데, 이런 사례는 매우 많다.
캐나다로 관광 온 마 선생의 동창이 밴쿠버를 지나게 되었다. 마 선생부부는 얻기 어려운 기회라 생각하고 곧 그들의 숙소로 찾아가 한 시간 넘게 진상을 말했고 두 사람은 그 자리에서 3퇴를 했다. 한 사람은 당시 3퇴를 하지 않았지만, 진상을 들었기에 그가 선량한 선택을 할 수 있도록 기초를 닦아주었다.
근래 밴쿠버에는 많은 중국 유학생이 온다. 야오 이모는 어려서부터 중공에 의해 거짓말을 주입당한 이런 학생들이 망치게 되면 얼마나 애석한 일인가고 말했다. 야오 이모는 학생들이 버스를 타려고 기다리는 버스정류소에서 학생들에게 진상을 알렸으며, 많은 학생들이 진상을 안 후 중공의 관련 조직에서 탈퇴했다.
마 선생은 환갑의 나이에 컴퓨터를 배웠다. 낮에 집안일로 바삐 보내면서 여유 시간을 모두 진상을 알리는 매체에서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 저녁에 가족들이 모두 휴식할 때 마 선생은 컴퓨터 앞에 앉아 일하다가 밤이 깊어서야 잠을 자지만 다음 날 평소대로 정력이 넘쳐흐른다.
자신이 인연이 있어 수련자가 된 것이 다행이다
야오 이모는 말하기를 1999년 중공의 파룬궁에 대한 박해가 시작된 후 그들도 수많은 파룬궁수련생과 마찬가지로 아주 큰 압력과 정신적 박해를 받았다. 그들은 암암리에 감시를 받았고, 직장의 책임자는 그들에게 ‘연공하지 않겠다는 보증서’를 쓰라고 핍박했다. 후에 그들은 외국으로 이민 오게 되어 비교적 편안한 수련환경이 있게 되었다.
그들은 이미 20년 넘게 수련의 길을 걸어왔다. 파룬궁수련은 그들로 하여금 매일 정력이 충만하고 싱글벙글하게 했다. 그들 둘은 모두 천국악단의 구성원이다. 매번 대행진 때마다 튜바를 부는 마 선생과 색소폰을 부는 야오 이모의 믿음직한 모습을 보게 된다. 그들은 자신들의 수련의 길을 돌아보면서 감개무량해서 말했다. “천만마디의 말로도 사부님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다 표현할 수 없습니다. 파룬따파의 수련자가 되었다는 것이 정말 행운입니다!”
파룬따파가 좋은가, 나쁜가? 오직 파룬따파 수련생 자신에게 맨 먼저 발언권이 있는 것이다. 박해가 17년이나 되지만 파룬궁의 대오는 갈수록 장대해지고, 세계 백여 개 나라와 지역에 전해졌는데 이것이 제일 좋은 증거이다. 야오 이모는 말했다. “대법은 제일 좋습니다. 사부님은 제일 바릅니다. 나는 22년 동안 종래로 이 믿음을 동요한 적이 없습니다.”
“저의 가장 큰 소망은 세인들이 특히 우리의 동포들이 중공의 거짓말에 피해를 입지 말고 모두 파룬궁진상을 이해하여 스스로 현명한 선택을 하는 것입니다.”
문장발표: 2016년 8월 10일
문장분류: 수련마당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6/8/10/332706p.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