简体 | 正體 | 대법서적

치욕을 참아가며 중책을 감당하고 겸손을 유지하다

글/ 대륙 대법제자

[밍후이왕] 치욕을 참아가며 중책을 감당하고 겸손을 유지하는 것은 대덕지사가 갖추어야 할 기본 품성이다. 대법제자는 진정으로 진·선·인(眞·善·忍)의 법리대로 자신에게 요구하고 어떤 일에 부딪혀도 안을 향해 자신을 찾고 사람 마음을 없애야 대법제자로서 조사정법하고 중생을 구도하는 사명을 이룰 수 있다.

사부님께서 “참음(忍)은 나약한 것이 아니지만, 온갖 수모를 다 참고 견뎌내는 것은 더욱 아니다.”[1]라고 우리에게 알려주셨다. 속인 중에서 도덕이 있고 지혜가 있는 사람이야말로 다른 사람이 용인할 수 없는 것을 용인할 수 있고 모욕을 당했을 때 겸손하고 자신을 연마할 수 있으며 원망하는 마음이 생기지 않게 할 수 있다. 옛사람은 늘 너그러운 마음을 사람 됨됨이의 원칙으로 했다. ‘운유적록(雲遊摘錄)’ 중 무릇 횡포한 일을 당했을 때 먼저 자신이 왜 이런 횡포한 일을 당하는가를 생각한 후 횡포한 그 일을 처리하는 것을 생각하고 마음을 조용히 하고 분노하지 않으면, 재난을 없애고 불의의 화와 멀리할 수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것은 횡포한 일을 당했을 때 처리하는 요령이다.

예로부터 ‘辱(욕)’이란 가장 참기 힘든 것이다. 삼국 시기의 명신 왕창(王昶)은 ‘치욕을 참는 방법은 자아 반성이다’라고 늘 말했다. 옛사람은 ‘다른 사람이 나를 거역할 때 조용히 자신을 약간 성찰하기만 하면 순경(顺境)에 처하고 넓은 경지에 이를 수 있다고 했다. 두목(杜牧)의 시 중 ‘인과사감희(忍過事堪喜, 견딜 수 없는 일을 견뎌내면 기쁨이 나온다)’라고 했다. 이것이 바로 역경을 참는 방법이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이 자신을 비난하는 것을 두려워한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흔히 주목을 받으려는 허영심과 체면을 차리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자신의 명성이 손상되는 일을 피하고 손상 받을까 봐 걱정한다. 그러나 타인의 지적이 없으면 자신은 또 어찌 자신의 과실을 볼 수 있겠는가? 과실을 볼 수 없는데 또 어찌 자신을 바르게 연마할 수 있겠는가?

만약 우리가 모욕당했을 때 사람의 자존심을 내려놓고 다른 사람의 말로 자신의 행위를 가늠할 수 있다면 아마도 우리는 새로운 진보와 제고가 있을 것이다. 우리가 존경하는 마음으로 다른 사람을 대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자신을 가늠할 때 비로소 정신 경지의 다른 세상을 발견할 수 있다. 증자(曾子, 중국 춘추시대 노나라의 유학자)는 ‘오일삼성오신(吾日三省吾身)해야 한다고 했다. 스스로 많이 반성해야 문제점을 볼 수 있고 따라서 끊임없이 자신을 제고해야 겸손한 덕행을 갖출 수 있다. 만약 한 사람이 자부하고 자만하는데 또 어찌 자신의 잘못을 반성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교만하면 손해를 보고, 겸손하면 이익을 본다고 한다.

교양이 있고 수양이 있는 사람이 매사 겸손하고 신중하면 다른 사람이 용인할 수 없는 일을 용인할 수 있다.

북송 문학가 범중엄(范仲淹)의 아들 범순인(范純仁)은 제자를 가르칠 때 ‘인수지우(人雖智愚), 책인칙명(責人則明), 수유총명서기칙혼(雖有聰明恕己則昬), 상이책인지심책기(常以責人之心責己), 서기지심서인(恕己之心恕人), 불환불도성현지위(不患不到聖賢地位).’라고 했다. 즉 아무리 어리석은 사람이라도 다른 사람을 비평할 때는 능하고 아무리 총명한 사람이라도 자신의 잘못을 용서할 때는 어리석다는 것이며, 늘 다른 사람을 대하는 마음으로 자신을 대하고 자신을 용서하는 마음으로 다른 사람을 용서한다면 성현의 경지에 이르지 못하는 것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또 ‘유간가이조렴(唯簡可以廉), 유서가이성덕(唯恕可以成德)’이라고 했다. 즉 오로지 겸손해야 만 청렴을 키울수 있고 오로지 용서만이 인덕을 해낼 수 있다는 것이다.

노자는 ‘도덕경’ 중 ‘불자견고명(不自見故明), 불고시고창(不自是故彰), 불자아고유공(不自伐故有功), 불자긍고장(不自矜故長).’이라고 했다. 즉 자기의 의견을 고집하지 말아야 똑똑히 볼 수 있고, 스스로 자기를 과시하지 말아야만 시비를 가릴 수 있으며, 자랑하지 말아야 공을 세우고 업적을 쌓을 수 있으며, 거만하고 잘난 체하지 말아야 오래갈 수 있다는 것이다. 자기를 아는 사람은 자기를 드러내지 않고,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은 자신을 추켜세우지 않는다. 자기 자신을 잘 알고, 자아를 표현해서는 안 되고 자존자애하고 망자존대(妄自尊大)해서는 안 되고 자신의 주장을 굽히고 다른 사람을 존중해야 하며 다른 사람이 자신에게 무례한 행동을 했어도 따지지 말아야 하며 절대 오만한 마음이 있어서는 안 된다.

명대 사상가 서간(徐干)은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한 사람의 품덕은 하나의 그릇과 같다. 그릇이 비어 있어야 물건을 담을 수 있지 가득 차 있으면 담을 수 없다. 그러므로 사람은 늘 겸손하고 공손한 마음을 유지해야지 뛰어난 인재라고만 믿고 세운 공로가 있다고 교만하고 다른 사람 위에 군림해서는 안 되며 각 방면에서 다른 사람의 장점을 보고 자신의 결점을 더 봐야 한다. 이렇게 해야 다른 사람이 당신을 도와 가르쳐주고 다른 사람의 존중을 받을 수 있다. 오로지 겸근하고 너그러우며 사심이 없어야만 인욕부중하고 후덕재물(厚德載物)할 수 있다. 반대로 소견이 좁고 망자존대하는 것은 바로 질투심의 표현이고 한 수련자로서 꼭 연마해 없애야 한다.”

사부님께서 “사상의 경지를 높이려면 반드시 세간(世間)의 각종 마난(魔難)의 고험을 겪어야 한다. 이런 과정에 당신의 心性(씬씽)이 정말 올라가고 안정되며, 업도 없어지고 당신의 마난(魔難)도 지나가며 공도 자란다. 설령 心性(씬씽)을 고험하는 기회에 心性(씬씽)을 지키지 못해 일을 그르쳤더라도, 이때 당신은 낙심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교훈을 잘 새기면서 차이점을 찾아 ‘眞(쩐)·善(싼)·忍(런)’ 수련에 노력해야 한다. 다음번에 心性(씬씽)을 검증하는 어려운 문제가 또 뒤따라올 것이다. 공력이 높아짐에 따라 心性(씬씽)을 고험하는 마난(魔難)도 더욱 맹렬하고 갑작스럽게 올 것이다. 당신이 매 한 고비를 넘길 때마다 공력이 그만큼 자랄 것이며, 고비를 넘기지 못하면 공은 곧 정체된다. 작은 고험에서는 작게 자라고, 큰 고험에서는 크게 자란다. 매 연공인은 큰 고생을 겪을 준비가 있어야 하고, 큰 곤란을 맞이할 결심과 의지력이 있어야 한다. 대가를 치르지 않고서는 진정한 공을 얻을 수 없다. 대가를 치르지 않고 고생도 겪지 않으면서 편안하게 공을 얻으려고 생각하는데, 그건 이치에 맞지 않는다. 心性(씬씽)을 근본적으로 고치지 않고, 개인의 그 어떤 집착심을 가지고서는 대각자(大覺者)로 수련할 수 없다.”[2]라고 말씀하셨다.

사부님께서는 줄곧 우리에게 자신을 잘 연마할 기회를 주고 있지만 우리가 강렬한 자아 및 후천적인 관념하에 많이 제고할 기회를 낭비해 옛 업력을 없애지 못하고 또 새로운 업력을 증가할 뿐이다. 매우 많은 대법제자는 세 가지 일에 작심삼일(作心三日)이다. 정말로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으므로 우리는 정말로 공을 들여야 하고 천천히 연마할 시간이 없다. 빨리 뿌리를 뽑아 단번에 목표에 도달해야 한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저작: ‘정진요지2-더는 참을 수 없다’

[2]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파룬궁-제3장 心性(씬씽) 수련’

문장발표: 2016년 7월 16일
문장분류: 수련마당>정법수련마당>이성인식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6/7/16/331307.html

ⓒ 2024 명혜망.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