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5월 13일 세계 파룬따파의 날로 시골 수련생들이 조직한 교류회에 참가했다. 40~50명이 참가했고 3개 방으로 나뉘었다. 법회는 매우 성공적이었고 새벽 1시까지 진행했는데 이 시간 동안 아이를 돌보는 아기 엄마든 70~80세 노인이든 도중에 떠나는 사람, 집으로 돌아가겠다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법회가 끝난 후 전례 없던 감동을 받았다.
법회를 조직한 수련생이 법회에서 발언했는데 몇 년 전에 승합차를 사서 주변 수련생을 데리고 몇 십리 범위 내에 있는 마을에 진상자료를 배포하고 붙이며 진상을 똑똑히 알렸고 연말에 12개 마을을 다니면서 CD 1만여 장, 9평공산당 등 진상자료를 포장해 파출소 문 앞에 놓거나 하급 경찰에게 직접 상관에게 가져다주라고도 했다. 그리고 ‘귀소 소장에게 드림, 당신의 친구’라고 써놓았다. 거기에 몇 번 고소당하고 파출소와 구치소 안에서 그들이 어떻게 흉악스럽게 굴든 그는 눈앞의 사람을 친구로 봤다. 지금 주변 몇 개 파출소 경찰과 정말로 친구가 됐으며 현지 환경을 개선시켰다.
집으로 돌아올 때 기사 수련생은 나보고 앞에 앉으라고 했다. 뒤에 10여 명의 수련생이 비좁게 있어 노부인마저 앉을 곳이 없는 것을 보고 나는 미안해 기사보고 차를 멈추고 자리를 바꾸자고 했다. 기사 수련생은 “괜찮아요, 그들이 나이가 많지만 진상자료를 배포할 때 당신보다 빠르게 뛰어요”라고 했다.
수련생들과 접촉하는 중 수련생의 서술에 의거해 그들이 경찰과 접촉한 몇 가지 짧은 이야기들을 정리했다.
파출소 소장, 당신들은 왜 낮에 자료를 배포하지 않아요?
한번은 우리 몇 명 수련생이 진상자료를 배포하러 갔는데 경찰이 와서 우리를 저지했다. 나는 진상자료 가방을 수련생에게 넘겨주고 경찰을 따라 파출소로 갔다. 그런데 소장은 자료를 배포한 것을 묻지 않고 “당신들 마을에 파룬궁을 연마하는 사람이 많다고 하지만 아들이 아버지를 때리는 사건이 두 건 발생했어요”라고 했다. 누구냐고 물었으나 그는 말하지 않고 또 “당신들 왜 저녁에만 자료를 배포해요, 왜 정정당당하게 배포하지 않아요, 왜 낮에 배포하지 않아요?”라고 했다. 나는 즉시 “이후에 진상자료가 있으면 낮에 갖다 줄게요”라고 했다. 소장은 또 “지금 국학(國學)에서 제자규(弟子規)를 배우고 있어요”라고 했다. 나는 “제자규 좋죠, 전통문화. 시간이 있으면 우리 집으로 와요, 함께 배웁시다”라고 했다. 이때 소장은 손을 흔들며 나보고 가라고 했다.
이튿날, 파출소 소장에게 진상자료와 내가 쓴 장쩌민 고소장을 가져다줬다.
우리는 이렇게 파출소에서 걸어 나왔다
한번은 한 여 수련생과 함께 경찰에게 파출소로 납치당했는데 수갑으로 침대에 채워졌다. 소장에게 “전해드린 진상자료를 보셨나요?”라고 했다. 그는 봤다고 했다. 나는 “보셨는데 왜 아직도 이런 짓을 하세요?”라고 했다. 그는 “이것은 당신을 제고시키는데 도움이 돼”라고 했다. 나는 “라오차오(勞曹)(전 소장)가 있을 때 아무런 일이 없었는데 당신이 온 후부터 왜 이런 일 뿐이죠?”라고 했다. 그는 “라오차오는 당신 친척이지”라고 말하고 갔다.
나는 거기에 서서 끊임없이 발정념을 했다. 손목이 서서히 좀 붓고 수갑이 갈수록 조여지자 원망심이 생겼고 경찰이 내게 앉으라고 의자를 줘도 앉지 않았다. 그러나 또 생각해보니 이 경찰들이야말로 가련한 것이고 그들이야말로 진정한 피해자라고 생각하자 더는 그들을 미워하지 않고 원망하지 않았다.
저녁 6시 무렵에 부소장이 들어오더니 놔주라고 했다. 나는 손을 들어 그에게 보여주면서 “봐요, 수갑이 이렇게 깊게 들어갔으니 나가서 인터넷에 올려야겠어요”라고 했다. 그는 듣자 큰 소리로 “뭐, 인터넷에 올리려고? 가지마. 다들 돌아와”라고 했다. 바깥 경찰은 소리를 듣고 언니를 못 가게 했다. 나는 당황하지 않고 그 부소장에게 “그만해요, 당신만 제일 시끄럽게 굴잖아요”라고 했다. 부소장은 더는 말하지 않았다. 우리는 이렇게 파출소에서 걸어 나왔다.
경찰이 웃으며 차를 몰고 가다
3월에 이 지역에 묘회(절의 임시시장)가 있는데 이것은 사람을 구하는 좋은 기회다. 그래서 우리는 진상 스티커를 골목마다 붙이고 있는데 순찰차가 우리 차 뒤에 멈춰 섰다. 우리가 계속 앞으로 가자 경찰은 스피커로 끊임없이 “멈춰요, 멈춰요, 한쪽에 멈춰요”라고 외쳤다. 나는 교차로에서 멈췄다. 경찰차에서 몇 명이 내려왔는데 내가 보니 현지 파출소 사람이었다. 그들도 날 알아봤다. 한 부소장이 “왜 행동을 고치지 않아요? 이렇게 많이 붙였는데 아직 더 있나요?”라고 하면서 차문을 열어보고 ‘아’하더니 “이렇게 많이 붙이려고요! 갑시다. 파출소로”라고 했다. 나는 웃으며 그들에게 “당신들 장난하지 말아요. 시간이 늦었는데 빨리 집에 돌아가 쉬세요”라고 했다. 그는 또 “차에 또 뭐가 있어요?”라고 했다. 나는 “CD 몇 장이 있어요”라고 했다. 그러자 그들은 직접 차문을 열고 CD를 가져갔다. 나는 그들에게 “가져가 잘 봐요”라고 했고 그들은 웃으며 차를 몰고 갔다. 그리고 우리는 또 남은 스티커를 다 붙였다.
파출소 부소장, 왜 하나 주지 않아요?
한번은 우리가 한 마을에 사람을 구하러 갔다. 진상자료를 배포하고 스티커를 붙이는 중 마을 순찰대를 만났는데 그들에게 진상자료를 줘도 받지 않았다. 좀 지나 경찰차가 왔다. 우리가 도망가려 해도 이미 때는 늦었다. 내가 보니 현지 파출소 부소장이었다. 그는 내게 “파출소에 하루 밤 가 있어요”라고 했다. 나는 “파출소에 가서 뭘 해요, 당신들 빨리 들어가 쉬세요, 아이고, 당신들 어떻게 왔어요?”라고 했다. 그는 누가 전화로 신고했다고 했다. 나는 “당신들은 전화를 한 그 사람을 잡아가야 해요. 그야말로 진정한 나쁜 놈이니까 이후에 또 전화로 보고하는 사람이 있으면 오지 않으면 안 되요?”라고 물었다. 그는 “당신이 오지 말라고 하면 안 와요? 그 파출소가 당신 집에서 운영하는 건가요? 자꾸 이런 일을 하다니 만약 사위가 알게 되면 창피하지도 않아요?”라고 했다. 나는 “창피할 게 뭐에요, 나쁜 일을 한 것도 아닌데”라고 했다. 그러자 그들은 차를 몰고 떠났다.
이 과정 중 순경 몇 명이 줄곧 뒤에서 따라오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나는 그들 앞에 다가가 “당신들이 고발했어요?”라고 물었고 그들에게 진상을 알렸다. 그들은 고발을 했다고 감히 승인하지 못하고 ‘9평’을 달라고 왔다고 했고 한 사람은 삼퇴까지 했다.
이후에 불일이 있어 파출소에 간 김에 소장에게 진상내용이 저장되어 있는 미니 녹음기를 가져다주려고 했다. MP3를 들고 소장 사무실에 갔는데 당시 안에 사람이 매우 많았고 소장은 전화를 하고 있었는데 나보고 책상 위에 놓으라고 했다. 볼일이 아직 있어 오후에 또 갔는데 부소장이 날 보더니 “미니 녹음기를 소장에게만 주고 저에게 주지 않나요?”라고 했다. 이때 소장은 내가 온 것을 보고 이 방에 가까이 와서 “대단하네요, 전자용품까지 사용하다니, 또 있어요? 그(부소장)에게도 하나 줘요”라고 했다. 나는 지금 없고 있으면 주겠다고 했다.
가기 전에 소장은 또 “좋아요, 좋은 사람이니까요”라고 했다.
파출소 소장에게 특산품을 보내주다
작년 가을에 우리 몇 명 수련생이 차를 몰고 비교적 먼 읍에 가서 진상자료를 배포했다. 마지막 한 장 진상 현수막을 막 파출소와 향 정부 사이 전봇대에 걸었는데 파출소 경찰은 우리 차를 마주하고 멈췄다. 경찰 몇 명이 내려와 붙인 것이 뭐냐고 물었다. 이때 한 수련생이 차에서 내려와 큰 소리로 “우리는 파룬궁을 연마하는 사람이고 모두 좋은 사람입니다”라고 했다. 경찰은 “그럼 사무실 안에 들어가 앉으세요”라고 말하며 두 경찰이 수련생을 데리고 파출소로 들어갔다. 나도 차를 마당으로 몰고 들어왔는데 다른 두 수련생은 차에서 내려오지 않았다. 경찰은 “당신들 어디 사람이에요?”라고 했다. 나는 다만 근처에 사는 사람이라고 했다. 이때 소장이 다가와 내게 성이 뭐냐고 물어봤다. 내가 그에게 알려주자 그는 방에 들어가 전화 한 통을 한 후 내가 누군지를 알아봤다. 그는 나와서 “O동지(同志)”라고 불렀고 나는 즉시 “저는 동지라고 부르는 것을 싫어해요. 이것은 공산당 문화에요”라고 했다. 그는 “그럼 ○씨라고 부르죠”라고 했다. 나는 된다고 했다. 이렇게 나는 그에게 한 시간 넘게 진상을 알렸다. 마지막에 그는 “당신들 빨리 돌아가요, 우리는 계속 순찰해야 해요. 열쇠는 여기 있어요. 빨리 가요”라고 했다. 나는 소장에게 “당신을 보러 다시 올 거예요”라고 했다.
우리가 차를 몰고 가는데 그들의 경찰차가 뒤에서 따라왔다. 나중에 그들은 우리를 추월해 두 향에서 기다렸다. 우리가 거기에 도착했을 때 경찰이 스피커로 “이후로 우리 여기에 오지 마세요”라고 했다. 수련생은 경적을 울리면서 지나갔다. 며칠 후 나는 혼자서 또 그 파출소에 갔고 소장에게 특산품을 좀 가져다줬다.
문장발표: 2016년 6월 21일
문장분류: 수련마당>정법수련마당>수련체험>진상을 알려 세인을 구도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6/6/21/329899.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