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밍후이왕] 최근 늘 일부 수련생에게서 자신은 정진할 수 없는데 법학습하기도 싫고 연공하기도 싫다고 하거나 심지어 수련을 포기했다는 말을 들었다. 들은 후 마음이 서글펐다. 수련생은 1999년 전에 법을 얻은 노수련생으로서 박해를 겪었고 감옥살이도 했다. 그렇게 힘든 나날도 다 지나왔건만 왜 마지막 관건 시각에 포기했을까?
여기에서 나 자신이 이 문제에 부딪혔을 때 어떻게 넘어왔는지 얘기하려 한다.
2013년 쯤, 박해 때문에 나는 집을 떠나 떠돌아다녔다. 항목과 환경적인 원인 때문에 거의 혼자서 수련하는 상태에 처했는데 갑자기 어느 날 미칠 것 같고 조급해지면서 더 이상 수련하고 싶지 않았다. 자신이 한계에 달한 것 같았는데 당시 정말로 매우 놀랐다. 이는 한 번도 없었던 현상이다. 수련의 이 길에서 비틀거리며 오늘까지 오기는 정말 쉽지 않았는데 사부님께서는 나에게 얼마나 많은 심혈을 쏟아 부으셨는가. 정법이 곧 종결될 때 왜 나에게 이런 상태가 나타났을가? 법학습하기도 싫고 연공하기도 싫었다. 대체 어찌된 영문인가? 나는 자신에게 이것이 내가 맞는지, 왜 이렇게 변했는지 물었다.
안으로 찾아보니 이 몇 해 동안 나는 줄곧 진정으로 착실히 수련하지 않았다. 지금까지 나는 예전의 고만한 근기로 버텨냈던 것이다. 그러기에 이후에 법학습할 때 늘 자신이 법과 한 층 간격이 있다는 것을 느꼈고 법이 마음에 들어오지 않았다. 사상 업력도 아주 심하게 교란해 말로는 법학습을 한다고 하지만 사실은 전혀 제대로 법을 학습하지 못했다. 이후에 자신이 갖고 있던 고만한 근기가 바닥 나 결국 지금 이 상태로 변해버렸다. 즉 더 이상 수련할 수 없게 됐다. 한 동안 조절한 후 끝내 지나왔는데 이 방면에 대한 자신의 체득을 얘기하고자 한다. 수련생 여러분께서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첫째는 다들 법학습이 근본이라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자신이 법학습할 때의 상태를 분석해보자. 어떻게 해야만 진정으로 자신이 법을 학습하는 것인가? 나는 사상업력이 아주 중한데 채소를 썰 때 자기 손을 베라는 생각이 들지 않으면 자료를 만들 때 갑자기 한 가지 의념이 나보고 컴퓨터를 향해 뜨거운 물을 뿌리라고 한다. 이러하기에 법학습은 나에게 정말 문제가 되어 졸리지 않으면 잡생각을 한다. 2012년, 법학습 팀에 참가한 적이 있는데 이때서야 자신이 법학습할 때 글씨를 빠뜨려 읽는 현상이 아주 심하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후에 항목 때문에 수련생들과 별로 만나지 않았다. 매일 대법 일을 하는 외에 법학습을 했는데 혼자 사는 데 문제가 없고 외롭고 고독한 것도 문제가 아니지만 법학습을 할 때 교란이 매우 컸다. 최근 몇 년간, 나는 끝내 사부님의 모든 설법을 다 구했다. ‘파룬궁’, ‘파룬따파의해’ 등 예전에 보지 못했던 경문을 본 후에야 사부님께서 아주 일찍부터 법을 외우는데 관한 경문을 발표하셨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수련생이 법을 외운데 관한 교류문장을 전부 다운받았고 법을 외우는 중요성에 관해서도 더욱 깊이 알게 됐다.
그래서 결심하고 법을 외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정말 힘들었는데 가끔은 하루에 한 단락, 심지어 이틀에 한 단락을 외우기도 했다. 법을 외울 때 어떤 때는 귀찮아 누군가를 때리고 싶었고 아주 괴로웠다. 끝내 1년이라는 시간을 들여 ‘전법륜’을 한 번 외웠고 올해는 이미 세 번째다. 이렇게 하니 법학습할 때 잡생각을 하지 않게 되었고 발정념할 때도 머리가 고요했다. 법학습하기를 싫어하는 수련생에게 여기에서 일깨워주고 싶은 것은 절대 사악의 속임수에 빠지지 말기를 바라는데 매 한 차례 법학습은 모두 사악과의 한 차례 전쟁이다. 예를 들면 처음에는 법학습하기 싫고 외우고도 싶지 않았는데 다른 일을 하고 싶거나 졸렸다. 가장 좋은 방법은 자신이 반드시 법학습을 해야 할 시간을 정하는 것이다. 누구나 법학습을 하려 하면 모두 교란이 있을 것인데 이러한 교란은 우리가 볼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 자신의 주의식은 반드시 강해야 하는데 견지해 나가기만 하면 갈수록 배우고 싶을 것이다. 나에게는 배우지 못하게 하면 반드시 배우고 말겠다는 성격이 있다. 가끔 일을 한 후 피곤해 기운이 없거나 마음이 초조해 안정되지 않으면 결가부좌를 하고 법을 베낀다. 이러면 마음이 고요해질 수 있다. 개인적인 이해인데 법학습에는 참을 ‘인(忍)’의 내포도 있다고 생각한다. 사부님께서는 “특히 ‘인(忍)’할 수 있음을 강조하는데, 오직 ‘인(忍)’해야만 비로소 대덕지사(大德之士)로 수련할 수 있다. ‘인(忍)’은 아주 강한 것으로서 ‘진(眞)’과 ‘선(善)’을 넘어선 것이다. 수련의 전 과정에서 당신에게 ‘인(忍)’하라고 하며, 心性(씬씽)을 지키고 함부로 행동하지 말도록 한다.”[1]고 말씀하셨다.
자신이 현재 개인 층차에서의 이해로는 만약 당신이 처음부터 하루에 한 강씩 학습했을 때 지금도 여전히 매일 한 강씩 읽는다면 당신은 반드시 자신을 개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마음을 고요히 하고 한 강을 읽는 것을 제외) 내가 알기로는 많은 수련생들이 노수련생인데 많은 사람들이 하루에 순서대로 한 강씩 읽고 법학습 품질을 담보하지 못한다. 만약 바쁠 때는 한 강마저 담보하지 못하기에 갈수록 자신이 수련에서 정진하지 못한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법을 외우는 과정 역시 자신의 현재 수련상태를 점검하는 과정이다. 예를 들면 얼마 전 ‘왜 연공(煉功)해도 공(功)이 자라지 않는가’ 이 단락을 외웠는데 며칠 동안에 한 페이지도 외우지 못했고 늘 틀린 곳이 있었다. 이후에 자신의 집착심을 찾아내고 공간장을 잘 청리한 후 비로소 외울 수 있었다.
두 번째는 발정념에 관한 문제다. 발정념으로 자신의 현재 수련 상태를 잘 점검해 볼 수 있다. 만약 법학습을 잘하지 못했다면 머리는 전혀 고요한 상태에 도달할 수 없는데 집착이 너무 많으면 전혀 고요해질 수 없다. 만약 앞의 5분마저 고요해지지 못한다면 더욱 노력해야 한다. 왜냐하면 앞에서 고요히 자신을 잘 청리하지 못했다면 뒤에서 전혀 사악을 청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늘 이렇게 자신의 수련상태를 분석한다.
세 번째는 습관적인 사유와 고집스러운 관념이다. 먼저 나에게서 발생한 두 가지 일을 얘기하고자 한다. 어느 날 자료를 만들 때 기술 수련생도 마침 있어 내가 다른 일을 하기에 그에게 쪽 번호를 입력해달라고 했다. 첫 페이지 겉표지는 아트지로 인쇄해야 하기에 두 번째 페이지부터 인쇄했다. 홀수 페이지는 이미 다 인쇄해 짝수 페이지를 인쇄해야 하는데 즉 제4페이지부터 시작한다. 그는 나에게 몇 페이지부터 시작하냐고 물었고 나는 짝수를 인쇄한다고 답했다. 이후에 시름이 놓이지 않아 다시 한 번 보았는데 수련생이 입력한 숫자는 제3페이지부터 시작했다. 나는 생각하지도 않고 그에게 4페이지로 고치라고 하면서 잘못했다고 그를 원망했다. 수련생은 웃으면서 “3 다음 짝수는 몇이에요?”라고 물으며 해석했다. 하지만 나는 그의 말을 아랑곳하지 않고 여전히 자신을 고집했다. 이후에 수련생은 웃으면서 몇 번이나 해석했지만 당시 나는 고집을 부리면서 그가 하는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수련생은 어쩔 수 없어 하며 웃으면서 머리를 저었다. 이튿날에 돼서야 전날 발생한 일이 생각났다. 나는 갑자기 ‘픽’하고 웃었다. 당시 왜 그렇게 자신이 옳다고 고집했는지 모르겠다. 자아를 고집하는 관념이 그토록 강했는데 이렇게 간단한 문제는 초등학교 1, 2학년 아이들도알고 있는 것이 아닌가. 당시 나는 왜 몰랐을까? 안으로 찾아보니 자아가 너무 강했던 것이다. 늘 자신이 옳다고 생각했는데 왜냐하면 줄곧 이렇게 인쇄했기 때문이다. 즉 한 가지 습관적인 사유가 형성돼 수련생의 말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일이 발생한지 얼마 되지 않아 사부님께서는 또 한 번 나를 점화해주셨다. 그날 마침 온 도시가 정전됐는데 그때까지 나는 저녁을 먹지 못했다. 또 이 수련생이었다. 그의 짐을 옮겨주고 마침 떠나려 할 때 그는 나보고 차에 타라고 하면서 밥을 먹으러 가자고 했다. 원래는 오른쪽에서 바로 차를 탈 수 있었지만 나는 하필 차를 앞으로 한 바퀴 돌아 탔다. 수련생은 “당신은 반응이 느리네요. 분명히 뒤에서 타면 되는데 왜 하필 한 바퀴 돌아 앞으로 오나요?”라고 말했다. 수련생의 비난에 마음이 조금 불편했지만 즉시 여전히 습관 문제라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웃으면서 “죄송합니다. 습관이 됐어요. 예전에 남편 차를 타면 모두 앞에 앉았어요. 보아하니 양성된 습관은 정말 고치기 힘드네요”라고 말했다.
사부님께서 배치해주신 이 두 가지 일에서 나는 자신이 장기간 발견하지 못했거나 심지어 버리려 하지 않았던습관과 좋지 않은 관념을 발견했다. 예를 들면 흔한 문제, 잠자는 문제에서 늘 수면이 부족하면 발정념할 때 졸릴까 봐 걱정했는데 늘 이렇게 좋지 않은 것들을 고집했다. 마치 앞에서 언급한 어떤 수련생들이 습관에 따라 매일 순서대로 한 강씩 읽는 것처럼 우리가 속인 속에서 형성된 습관과 고집스러운 관념은 어떨 때 정말 발견하기 아주 어렵다. 이 두 가지 일을 통해 나는 자신이 늘 이러한 것에 가로막혀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런 것들은 모두 수련제고를 가로막는 중요한 요소로서 막바지로 갈수록 이렇게 좋지 않는 것들이 정말로 완고하다는 것을 알았다. 돌파하는 외에 다른 길이 없다. 사부님께서도 “만약 이 한 마음을 굳게 먹으면 어떤 곤란도 가로막지 못할 것인즉, 그러면 문제없다고 나는 말한다.”[2]라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이 한 마음을 굳게 먹고 어려움을 돌파해 마지막 수련의 길을 잘 걷자.
개인 층차에 제한이 있기에 법에 있지 않는 부분은 수련생 여러분께서 자비롭게 지적해주시기 바란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파룬궁’
[2]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전법륜’
문장발표: 2016년 6월 1일
문장분류: 수련마당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6/6/1/32926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