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파룬따파의 법리는 초범적이고 타인을 위한 것으로 우리 인간세상에서 양성된 자신을 위하는 습관 인식과 상반된다. 오직 파룬따파만이 인간의 본성을 개변할 수 있다.
나는 원래 성격이 내성적이고, 괴팍하며, 냉담해서 한 번도 남을 배려할 줄 몰랐다.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 졸업 때까지 좋은 친구가 거의 없었다. 다만 고등학교 기간에 피동적으로 이성친구를 사귀었을 뿐이다.(현재의 남편)
우리집에는 두 오빠와 두 언니가 있다. 나는 막내라서 매일 어머니를 그림자처럼 따라다녔기에 자연히 부모님의 고생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학교 다닐 때 한 주 내내 온 가족들이 벗어놓은 많은 옷을 어머니는 하루 종일 혼자 세탁하셨다. 어머니의 노고를 덜기 위해 나는 오빠 언니들을 도와 빨래를 했다. 알게 모르게 강렬한 증오심이 생겨 그들이 이기적이라고 원망했는데 자기들만 학교에 다니고 집에 와서 숙제만 하면서 부모님의 고생을 알아주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맛있는 것이 생기면 부모님은 주말까지 전부 남겼다가 오빠 언니들이 학교에서 돌아오면 주셨다. 나는 부모님이 드시지 않는 것을 보고 차마 먹을 수 없었다. 어머니는 내가 먹지 않자 단독으로 나에게 좀 나누어주셨다. 나는 그들이 미워 심지어 그들이 없어지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때부터 거의 매년 몇 차례 감기몸살과 배탈이 났다. 20세 꽃다운 나이에 나는 부인병, 신경성 위장병에 걸려 하루도 약을 떠날 수 없었고 또 정상적인 일도 할 수 없었다. 당시 나는 광둥성 선전(深圳)에서 품팔이를 했다.
1백 위안 때문에 남자친구와 3달 동안 냉전 상태
1997년 4월, 나는 고향에 돌아가 치료 비방을 구해 광둥에 돌아오려 선전 직행 버스를 탔다. 역에 곧 도착하자 모두들 짐을 꾸리느라 바빴다. 그때 내 남자친구는 방금 자리를 떠난 언니 자리에서 1백 위안을 발견했다. 그는 주어서 잃어버린 주인을 바로 찾아주었지만 그 주인은 돈을 받고 감사하다는 말 한마디 없이 황급히 차에서 내렸다. 나중에 다른 사람이 우리수건을 가져간 것을 발견했다.
그 후 나는 남자친구에게 “훔친 것도 아닌데 왜 그에게 돈을 주었어? 집을 나서 돈을 주우면 길할 징조인데 좋고 나쁨도 알지 못하고 갖지도 않으니 우리 수건이 다 없어진걸 봐”라고 원망했다. 그러자 남자친구는 “남이 외출 시 준비한 차비인데 차를 갈아탈 때 돈이 부족하면 어떻게 해? 밖에서 가족이 없으면 누구한테 돈을 빌리겠어?”라고 말했다. 그가 내 소신대로 행동하지 않고 또 내 말을 순순히 따르지 않는다고 생각한 나는 극도로 실망한 나머지 화가 나서 곧장 내 직장으로 갔다. 나는 해관 안에서 근무하고 그는 해관 밖에서 근무한다. 하지만 증명서가 없으면 해관에 들어오지 못하기 때문에 그는 나를 볼 수 없었다. 이 일로 인해 나는 3개월 동안 그를 상대하지 않았다. 당시 나는 이렇게 고집이 세고 제멋대로였다.
다행히 대법을 만나다
그해 7월, 나는 질병에 시달리다 못해 할 수 없어 바로 직장 동료와 함께 파룬궁을 연마하기 시작했다. 파룬따파의 보서 ‘전법륜’을 읽은 후 잃지 않으면 얻지 못한다는 법리, 얻지 말아야 할 것을 얻으면 덕으로 교환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나서 비로소 남자친구의 행위를 이해하고 그와 화해했다.
나는 인간세상의 일체는 모두 인연 관계가 있다는 법리를 알고 나서 다시는 오빠, 언니들의 이기적이고 부모님의 고생을 알아주지 않는 것에 대해 원망하지 않았다. 오히려 오빠, 언니들을 도와 어려움을 해결하고 그들이 더욱 좋은 생활을 하기 바랐고 또 그들이 부모님에게 효도하기를 기대하지 않았다. 나는 자신의 일체 책임을 다하면서 부모님에게 나 하나만 있다고 생각하니 원망이 없었다.
나는 매일 두 손으로 보서를 받쳐 들고 읽으면서 법광 속에 빠져들었는데 무엇이 온몸에 병이 없이 홀가분하다는 것인가를 진정으로 체험했다.
99년 후 나는 참혹한 박해를 체험했다. 실업, 유랑, 노동교양, 체포, 지명수배, 벌금, 아버지가 인질로 감금되고 차별받으시는 등이었다. 사람이 일단 우주의 진리를 알면 어떤 방식으로도 대법에 대한 수련인의 확고한 신념을 움직일 수 없다는 것을 중국공산당은 설마 모르는가.
눈 깜짝할 사이에 십몇 년이 지나갔다. 3년 전 나는 모피 도시에서 가죽 의류를 팔기 시작했다. 접촉하는 주요대상은 공급업체와 고객, 직원이었다.
“내가 본 사람들은 당신이 진짜 좋은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현재 공장 납품은 모두 현금 거래다.거래 시간이 길어지자 어떤 공급 업체는 직접 물건을 나에게 발송하고 연말에 결재하기를 원했다.
작년 초 나는 장부를 검사하다 상대방이 잘못 계산한 것을 발견했다. 어느 한번 발송한 세 벌의 옷이 장부에 기록되지 않았다. 나는 자세히 검사한 후 즉시 상대에게 세 벌의 옷값 3천여 위안을 내가 적게 계산했다고 알려주었다. 상대방은 너무나 감동해 확실히 이 세 벌 옷값을 잊고 기록하지 않았다면서 이런 일은 처음이라고 말했다. 그는 다른 고객은 장부를 모두 계산하고도 또 돈을 깎아 적게 주는데 먼저 찾아와 돈을 주는 경우가 어디 있냐면서 거듭 감사를 표하고 이후에 나와 더욱 깊게 합작할 것이라고 말했다.
만약 파룬궁을 수련하지 않았다면 나는 자연히 이 3천 위안을 가졌을 것이다.
또 다른 한 공급 업체는 전화로 나에게 말했다. “당신 같은 고객은 처음입니다. 경제력이 좋지 않으면서도 오히려 값을 깎지 않으니 말이에요. 아주 먼 공장까지 와서 당신에게 식사를 대접해도 기뻐하지 않고 오히려 제가 돈을 많이 쓰지 않을까 걱정해주시다니요. 하지만 제 크고 작은 그런 고객들은 모시기 어렵습니다. 낮은 출고가로 드려도 또 너무 값을 깎아 한 푼도 못 벌게 만드는데 심지어 손해를 보며 발송해 주어야 그들은 기뻐합니다. 제가 본 사람들은 당신이 진짜 좋은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사부님께서는 무슨 일이든 다른 사람을 고려해야 한다고 우리를 가르치셨다. 공장을 개업하면 사소한 일이 아주 많아 몹시 바쁘고 힘들다. 옷 한 벌에 돈을 얼마 벌지 못하면서도 또 재고가 쌓여 모험을 해야 한다. 다른 사람도 생존해야 하기 때문에 나는 늘 상대방을 위해 고려했다. 출고가는 모두 표준이 있기 때문에 바가지를 씌우지 않는다. 판매상은 단지 중간 과정이므로 바친 노력이 상대적으로 그들에 비해 적다. 만약 공장에서 잘 만들지 못하면 가게는 무슨 물건이 있어 팔 것인가? 어느 집 물건을 선택하든지 나는 모두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고객은 왕이라는 틀을 차리지 않았다.
모피의 도시를 책임지다
내 한 고객은 허베이(河北)성 바오딩(保定)에서 사업하는데 고향은 허난(河南)이다. 그는 내 가게에서 전에 옷 한 벌을 샀는데 크기가 맞지 않아 바꾸러 왔다. 이번에 그는 아내와 함께 온 김에 돌아보다가 다른 가게에서 1800위안짜리 가죽옷을 보고 마음이 들어 사려 했는데 당시 은행카드를 갖고 오지 않았고 현금도 모자랐다. 퇴근 시간이 가까워오자 그는 나를 생각하고 찾아와서 의논했다. 바꾼 그 옷을 담보로 1천 위안을 주면 그가 돌아간 다음 1천 위안을 내 계좌로 이체해주고 내가 다시 그 옷을 택배로 그에게 보내주고 택배비는 그가 지불한다고 했다.
나는 듣고 나서 바로 그에게 1천 위안을 주면서 말했다. “옷은 먼저 가져가세요. 옷을 사고도 입어보지 못하고 택배로 보내면 또 돈이 드는데 이렇게 복잡하게 할 필요가 없어요.” 그러자 고객은 “당신은 안심할 수 있어요?”라고 물었다. 나는 “당신은 형수님 옷 때문에 자신의 옷까지 담보하는데 이런 책임감 있는 좋은 사람에게 어찌 안심이 들지 않겠어요?”라고 말했다. 그 고객은 감동해 “사장님, 감사합니다. 당신은 참 좋습니다!”라고 말하면서 그의 핸드폰 번호를 남겨놓았다.
퇴근해 집에 돌아와서 남편에게 이 일을 말하자 생각밖에 그는 버럭 화를 내면서 말했다. “그는 바오딩에서 임시 사업해. 만약 계좌로 이체하지 않으면 당신은 어디 가서 그를 찾을 거야? 이렇게 하는 것은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야!” 그래서 나는 말했다. “그가 옷을 담보로 맡긴 것은 그가 성의가 있다는 것을 설명해요. 택배도 2~3일 걸려야 도착하고 또 돈을 더 써야 하는데 그럴 필요가 있나요?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문제에 봉착하면 먼저 다른 사람을 생각하라고 가르치셨어요. 내가 상대를 대신해 생각하는 것은 이미 일종 습관이 되었죠. 나는 그가 반드시 신용을 지킬 거라고 믿어요. 그해 당신이 다른 사람의 돈을 주워서 찾아줄 때 나는 당신보다 경지가 높지 않았는데 지금 왜 나와 이렇게 격차가 커요?” 그러자 그는 침묵했다.
이튿날 오후, 그 고객은 나에게 돈을 이체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신뢰가 있으면 많은 번거로운 일이 적어질 것이다. 대법은 나를 개변했고 또 다른 사람이 이익을 얻게 했다.
모피 도시에는 수많은 상가가 있지만 내 가게만 고객에 대해 개방형 생수기를 제공했다. 지나가는 고객이 모두 마음대로 내 가게에서 종이컵으로 물을 마시고 어떤 사람은 주전자에 물을 채워가지고 가져가기도 한다. 나는 고객을 위해 무조건 서비스를 제공했었는데 많은 고객이 관광버스를 타고 먼 곳에서 왔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음료수를 제공한 것은 마치내 책임이 된 것 같았고 관광객을 위해 배려하는 것은 이미 나의 일종 습관이 됐다.
어느 집에서 산 가죽옷이든지 가죽이 흠집이 생겨 내 가게로 오면 나는 모두 그들에게 무료로 손봐주었다. 내 가게는 전면적으로 섬세하고도 따듯한 배려를 해서 도시의 신뢰도와 인지도를 높였고 도시를 위해 한 기둥을 책임졌다.
문장발표: 2016년 5월 16일
문장분류: 수련마당>정법수련마당>수련체험>언행으로 대법을 실증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6/5/16/327724.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