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후난 청년대법제자
[밍후이왕] 나와 아내, 그리고 나와 쌍둥이인 남동생 부부, 우리 네 사람은 일반적인 신세대 가족이지만, 이 시대의 평범하지 않은 일가족이기도 하다. 우리에게는 ’80년대 생’, ‘90년대 생’의 쾌락과 번뇌가 있다. 또, 수많은 젊은이에게는 없는 초연함과 꿈을 가지고 있는데, 이는 우리가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법보인 파룬따파를 소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술가의 꿈을 가진 쌍둥이 형제
나는 1980년 이후에 태어난 신세대이다. 어려서부터 예술가의 꿈을 꾸었다. 일반적으로 어릴 때의 꿈은 성장하면서 변화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다행이랄까, 예술가의 길을 걷고자 하는 나의 꿈을, 나와 쌍둥이인 동생 또한 같은 꿈을 가져서 큰 어려움을 느끼지 않았다. 그림과 함께 성장하면서 당시 우리 마을에서도 약간의 명성이 있었는데, 우리는 꼬마 친구들 마음속 어린 화가였다. 기회와 인연이 닿아 유명한 예술가를 만나 동생과 함께 스승으로 모시고 그림을 배웠다. 내가 배운 것은 서양화, 소묘, 유화였고, 동생이 배운 것은 국화, 서화였다. 우리는 또 함께 조각도 배웠다.
그런데 나는 어려서부터 몸이 약하고 잔병이 많아 온종일 골골 힘이 없었다. 열 몇 살인가 병원에서 반달이나 링거를 맞아도 의사는 무슨 병인지 알아내지 못했다. 돈이 없어 퇴원할 때는 걷지를 못해 부모님의 등에 업혀서 병원을 나왔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심리적인 압박이 심해져 쉽게 잠들 수 없었는데 심지어 밤을 꼬박 지새우기도 했다. 20대에는 장작개비처럼 몸이 말랐고 얼굴은 누렇고 검었다. 결혼할 나이가 되자 30번가량 맞선에 실패하면서 나에 대해 신심을 잃었고 심지어 자살할 생각마저 했다.
‘병원을 옮겨 다니다 퇴원하게 된 신기함’
그때는 2008년, 그림을 배울 때였다. 그림 선생님이 허리디스크로 병원에 입원해서 동생과 함께 선생님을 간호했다. 7일 후, 병세가 심해진 선생님은 걸을 수 없어 누워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날 오후 전담 의사가 말했다. “당신의 상황은 수술해도 반드시 회복한다고 말하기 어렵다. 아마 후반생은 휠체어에 의지해 살아야 할 것 같습니다.”라고 했다. 우리는 할 수 없이 뒷날 일찍 선생님을 시립병원으로 모셔 갈 준비를 했다.
바로 그 날 오후, 병실로 선생님의 친구 두 사람이 찾아와 이야기했다.그들은 파룬궁을 연마하는 사람들이었는데우리에게 파룬궁의 진상을 알려 주었다. 파룬궁은 장쩌민 집단에게 박해당하고 있으며, ‘톈안먼 분신자살’도 왜곡 날조된 것이고, 병이 낫고 신체 건강해지는 효과도 거짓이 아니라고 했다. 그들의 말을 여러 사람이 당장 증명하지 않았다면 나는 아직 감히 믿지 못했을 것이다.
그 두 분은 우리 선생님에게 성심껏 ‘파룬따파 하오, 쩐싼런 하오’를 염하면 반드시 병이 나을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뒤이어 발생한 일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창백했던 선생님의 얼굴에 붉은빛이 돌았고, 몇 분 후에는 스스로 앉을 수 있었다. 그전에 선생님은 화장실도 부축을 받아야만 갔고 또, 작은 의자를 갖고 가야 했다. 하지만 십몇 분 사이에 선생님이 화장실에 가겠다며 스스로 침대에서 내려와 허리를 두 손으로 짚고 천천히 화장실에 갔다. 우리는 그를 둘러싸고 화장실에 따라가 앉았다 일어섰다 몇 번을 중복하는 것을 보았다. 그러더니 웃음을 띠면서 허리를 만지며 흥분해서 말했다. “허리가 아프지 않다, 정말 신기해!”
나는 아무 말도 못했고 사람들은 놀랐다. 이렇게 반시간 만에 선생님은 건강을 회복했다. 원래 그 뒷날 병원을 옮겨서 치료하려 했던 게 퇴원하게 된 것이다.
비록 전 과정을 다 보고 있었는데도 무신론 사상이 뿌리 깊었던 나는 믿기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들이 ‘미신’ 한다고 조소했다.
그일이 있고 난 뒤 동생은 기회만 있으면 대법 창시자이신 리훙쯔 선생의 저작 ‘전법륜’을 읽었다. 동생의 세계관과 인생관이 철저하게 달라졌고, 인생의 의의와 가치를 알게 되면서 서화와 국화 수준도 아주 크게 향상했다. 날마다 바쁘게 보내도 충실했고, 대담하게 일하면서도 책임을 다했고, 더는 물속의 부평초처럼 물결 따라 움직이지 않았으며, 더는 젊은 사람의 고뇌 속에서 맴돌지 않았다. 지금 남동생은 모든 면에서 우수하다고 할 수 있다.
인생의 관념이 변하다
동생의 변화를 보고 나 자신의 과거를 돌이켜 보니 예전의 인생 기점이 모두 틀렸음을 알 수 있었다. 너무 많은 번뇌와 마음의 상처를 받았을 뿐만 아니라사회에 대해, 타인에 대해 무슨 좋은 점이 없다는 걸 더알게 되었다. 어릴 때 화가가 되려고 했던 꿈은 그래도 순수하다고 할 수 있지만, 성장함에 따라 이기심이 갈수록 많아졌고, 게다가 사회의 불량한 영향으로 배금주의, 물욕주의, 황색 쓰레기, 영화, 인터넷, 게임 등 나 역시 이런 더러운 환경의 영향으로 나쁘게 변했다. 그러므로 화가가 되는 것은 자신이 나쁘게 변함을 실현하려는 각종 이유가 되었고, 그런데도 자아 감각이 아주 좋다고 여겼다.
나도 동생처럼 인생관을변화하고 싶었다. 2010년, 나는 대법의모든 서적과 인터넷 정보를 보았고, 또 ‘장자석’과 ‘파룬따파 전 세계 홍전’은 나에게 장쩌민 집단의 거짓말과 파룬궁 수련자에 대한 박해를 알게 했다. 그때부터 나의 몸은 서서히 호전하기 시작했다. 바람도이기지 못하던 사람이지금의 튼튼한 청년으로 변했다.
관념의 개변과 심성, 도덕 품성의 제고는 나의 불면증을 흔적없이사라지게 했고, 심각한 두통, 비염 등 질환이 다 치유되었다. 이전의 과묵한 성격은결혼상대에게 도리어장애가 되어매 번 맞선실패로적지 않은 타격을 입었다. 그러나 파룬따파는 나에게 인생의 즐거움을 찾아주었고, 진정으로 인생의 귀착점을 알게 했다. 그래서 사람의 사상, 심정은 모두 넓어지고 혼인 문제도 저절로 해결되어 가정을 이루었고 집도 있고 차도 가지게 되었다.
아내 ‘금산도 다 싫은’ 느낌을 가지다
나의 아내는 90년대 생이다. 대법을 배우기 전 아내는 90년대에 태어난 여성들에게 볼 수 있는 많은 결함을 갖고 있었다. 온종일 술집에서 술을 마시고, 어쩌다 빈랑을 조금 먹기도 했고, 가사 일을 하지 않았고, 할 줄도 몰랐으며 놀음에 탐했다. 또, 휴대폰이 손에서 떠나지 않았으며, TV를 보고, 점심 무렵에야 자리에서 일어났으며, 뚱뚱하고 얼굴에는 주근깨가 많이 났다. 20살도 안 돼 온몸이 병이었고, 가장 엄중한 것은 난소 증후군이었다. 공부하는 기간에는 2만여 위안(약 360만 원)을 들여 병 치료를 했고, 직업을 가진 후부터 모든 월급은 다 약을 사는 데 써 버렸으며, 그것도 모자라 집에서 돈을 가져갔다.
장모님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의술이 상당히 좋은 산부인과 원로 의사가 있었는데 그녀는 대법제자였다. 70여 세였지만 보기에는 50살도 안 된 것 같았다. 아내가 먼저 그녀에게 병세를 이야기하니 의사는 꼭 나을 수 있다면서 아내에게 ‘파룬다파 하오, 쩐싼런 하오’를 염하라고 알려 주었다. 의사는 아내를 위해 많은 심혈을 기울였지만, 비용은 받지 않았다. 그러나 아내는 약이라고는 먹으려 하지 않았다. 정말 두려웠다. 더는 어떤 약이든 한 알도 먹고 싶지 않다고 했다. 의사는 그런 아내를 보고는 웨양으로 데리고 갔다.
웨양으로 가던 도중 아내는 40대의 큰아버지뻘 되는 사람을 만났다.그는 아내에게 말했다. “아가씨, 아가씨는 표면적으로 대법을 이해했어요. 만약 아가씨가 오성이 높으면 한동안 배운 후, 아가씨에게 금산을 하나 준다 해도 아가씬 가지려 하지 않을 거고, 보려고조차 하지 않을 거라는 걸 나는 믿어요.” 그때 아내는 몹시 놀랐다. 금산마저도 싫어한다고? 지금의 사람은 바로 명과 이익을 바라지 않는가? 아내는 일각을 지체할세라 그들이 말하는 대법을 알고 싶어 했다.
뒤이어, 원로 의사는 아내를 한 대법제자의 집으로 데리고 갔다. 그 대법제자가 아내에게 준 첫인상은 친절하고 상화하여 마치 예전부터 알고 있는 듯했다. 그들은 아내에게 파룬궁에 대해 말해 주었고, 그들이 직접 겪은 경력과 체득을 이야기했다. 파룬궁을 배우는 사람이 저마다 모두 이렇게 선량하고 진심으로 이렇게 사람을 대하는 것을 보고 아내는 파룬궁을 배우기로 했다.
돌아오는 길에 노의사는 리훙쯔 사부님의 ‘홍음’ 중의 시 ‘사람 되기’를 아내에게 읊어 주었다.
사람 되기
명예를 위하는 자 평생 화내고 원망하며
이익을 위하는 자 육친마저 몰라보고
정을 위하는 자 스스로 번뇌를 부르나니
고달픈 다툼에 일생토록 업을 빚는구나
명예를 구하지 않으니 유유자득이요
이익을 중히 여기지 않으니 인의지사요
정을 움직이지 않으니 청심과욕이라
참답게 수신(修身)하며 일생토록 덕을 쌓네
그때 아내는 큰아버지뻘 되는 사람이 말했던 ‘금산을 주어도 다 싫다고 할 것’이란 의미를 조금 알 것 같았다.
2014년 5월 13일부터 아내는 ‘전법륜’을 읽고 연공을 통해 사람이 되는 도리를 알게 되었다. 아내는 또, 인생의 진정한 의의를 깨달았으며, 사람이 병을 얻게 되는 근본 원인과 사람과 사람 사이의 모순이 왜 발생하는지 더욱 알게 되었다. 이때 아내의 세계관이 변했고, 인생의 진정한 의의를 분명히 알았으며, 대법의 아름다움을 보았다.
수련한 지 20일도 되지 않아 고질적이던 아내의 부인과 병이 신기하게 나았고, 서서히 살이 빠지기 시작했으며 얼굴의 주근깨도 적어지기 시작했다. 돈 한 푼 들이지 않았고, 약 한 알, 화장품 하나쓰지 않았다. 아내는 나쁜 습관을 서서히 버리고 가사일도 하고, 어떤 때는 십여 명의 식사도 능히 해냈으며, 현숙해졌고, 명리를 추구하는 마음도 이전처럼 그렇게 강렬하지 않았다.
아내와 마찬가지로 제수씨도 역시 90년대에 출생했다. 처음에는 고부 관계가 약간 좋지 않아 쉽게 화를 냈으며, 지지 않으려 기세를 부리기도 했다. 하지만 대법을 배운 후, 역시 파룬따파의 표준으로 자신을 요구하여 지금은 담담하고 가볍게 볼 수 있게 되었다. 남동생 부부에게는 또 귀여운 아기도 태어났다. 귀염둥이가 우리 집에 오면 기쁨을 더 해 주었고, 가정에도 많은 따스함을 가져다주었다.
문장발표: 2016년 5월 21일
문장분류: 수련마당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6/5/21/327543.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