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대륙대법제자
[밍후이왕] 수련을 최후까지 한다는 것은 의의가 아주 큰 문제이므로, 나는 단지 개인의 층차에서 얕은 인식을 말해보려고 한다.
최근 법을 외우면서 ‘전법륜(轉法輪)’ 제6강까지 외웠을 때, ‘자심생마’이 단락 중에 이런 대목이 있었다 “남들도 나에게 말한다: 당신은 그들이 너무나도 쉽게 수련하도록 해주셨습니다. 사람에게는 자신의 고만한 난뿐이며, 사람과 사람 사이의 고만한 일뿐인데, 아직도 많은 마음을 여전히 제거하지 못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 중 마지막 구절이 나에게 큰 촉동이 되었다. “아직도 많은 마음을 여전히 제거하지 못하고 있지 않습니까!” 이전에 나는 그저 자신의 집착심은 버리기 매우 어려워 수련하기 어렵다고만 간단하게 이해했었다. 그러나 정법수련과정 중에서 많은 일을 겪으면서 나는 그렇게 간단한 것이 아님을 느끼게 됐다. 정법수련 중의 모든 일은 사부님께서 결정하신다. 대법제자의 수련을 사부님께서 결정하시는데밖의 생명이 어찌 “아직도 많은 마음을 여전히 제거하지 못하고 있지 않습니까!”하고 말할 수 있겠는가? 집착심을 버렸는가의 여부와 어떻게 집착심을 버렸는가 하는 것은 사부님께서 결정하시는 것이 아닌가? 밖의 생명이 어찌 “많은 마음을 여전히 제거하지 못했다”고 말할 수 있는가? 그건 밖의 생명이 대법제자의 수련에 끼어든 것이 아닌가?
나는 이전에는 이 방면에서 감히 법을 생각하지 못했다. 사부님께서는 설법에서 이미 아주명확하게 말씀하셨다. 이 구세력에게는 정말 그들 한 세트의 완벽한 배치가 있는 것이다. 나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매 대법제자마다 어느 때 출생하여 어느 나이에 법을 얻는 등 법을 얻는 정확한 시간과 법을 얻은 후 어떤 것을 만나는가, 그리고 그의 가정상황, 그의 인생경력은 어떠한가, 그는 그런 인생경력 가운데서 어떤 집착이 생길 수 있는가, 그는 어느 방면에서 집착이 몹시 강한가, 그가 법을 얻는 데에 장애는 무엇인가, 누가 법을 얻을 수 있는가, 누구에게 기연이 있어 대법에 접근할 수 있는가? 그리고 부동한 사람의 저애력의 크기에 대해서도 그들 구세력은 모두 아주 세밀한 배치를 했다고 본다. 매 한 사람이 법을 얻을 수 있는 것에서부터, 대법제자가 출생한 것까지 모두 우연한 일이란 없다고 본다. 일체는 모두 주도면밀한 배치로 이루어진 것이다. 구세력은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일체를 배치한 것이다. 그렇다면 이 구세력이 대법제자의 전체 인생과정을 상세하게 배치한 것이 아무렇게나 마음대로 한 것인가? 나는 그렇지 않다고 본다. 왜냐하면 낡은 구 우주의 법도 그들이 마음대로아무렇게나 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대법제자가 층층이 아래로 걸어오는 과정에서 부동한 층차의 생명에게 빚을 졌고 또 대법제자의 생생세세의 전생과정에서 쌓은 업력, 더욱 중요한 것은 쌓여지고 변이된 관념과 변이된 사상, 잘못한 일로 생겨난 패괴한 물질, 끊임없이 쌓여진 좋지 못한 사상업력, 그런 것은 모두 대법제자에게 그것들이 배치한 것이다. 그러므로 생명과정에서 법을 얻지 못해 필연적으로 착오를 범할 것이다. 또 더욱 더 완고한 관념과 집착이 있는데 모두 구세력에 의해 끊임없이 확대되고 강화되어 법을 얻는 난이도를 증가시키고 있다. 그러므로 그것들은 사부님께서 제자를 구도하시는 난이도를 증가시켰고, 정법 중의 대법제자가 사람에서 걸어 나와법을 실증하는 난이도를 더욱 증가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대법제자가 사전서약을 실현하고 조사정법 하는 난이도를 증가시킨 것이다. 그런 것은 모두 구세력이 처음부터 끝까지 정법의 교란을 조성한 그 한 부분인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은 왜 반드시 그렇게 해야만 하는가? 부동한 층차의 구세력의 생각도 서로다르고, 각 층차의 구세력도 각자 자신의 가장 좋은 방법으로 정법을 돕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들은 근본적인 문제를 소홀히 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이 법을 어떤 위치에 놓았으며, 그들이 사부님의 생각을 어떻게 대했는가? 그들은 자신의 생각을 너무 중하게 보았으므로, 불러온 결과는 모두 그들 자신이 감당해야 할 것이다.
대법제자의 수련과정은 천체 고층구도에 대응한다. 이런 배치는 몹시 복잡한 것으로 우리 사람은 전혀 상상할 수 없다, 하지만 이 모두는 우리의 집착심을 버리는 것과 관계가 있다. 어떤 때는 집착심 버리기가 아주 어렵고, 어떤 땐 집착심을 아무리 깨끗이 제거하려고 해도 어려움을 느끼는데, 그것은 모두 구세력과 관계가 있는 것이다. 이는 정법의 중생 구도와도 관계가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낙심하지 말고 확고한 정념으로 시종일관 집착심을닦아버려야 한다.
나는 자주‘나는 이렇게 오래 수련했는데 왜, 아직도 이렇게 많은 나쁜 사상이 있는가? 왜 이렇게 오래 수련했는데 아직도 이렇게 많은 집착심이 있는가?’하는 생각을 하면서 고민에 빠지기도 한다. 하지만 스스로에게 경고한다. ‘어떻든지 막론하고 그저 사부님말씀대로 세 가지 일을 잘하면서 정진하기에 힘을 다할 것이다.’
내가 개인적으로 깨달은 것은, 최후까지 수련할 수 있다면 의의가 아주 큰 것이다. 그건 정말 대원만이다. 이 과정에서 매 한 걸음이 모두 대단히 중요하다. 조금의 태만도 있어서는 안 된다. 설령 사람을 구하는 아주 많은 일을 했다고 할지라도 자신의 수련을 늦추어서는 안 된다. 구세력은 눈을 똑바로 뜨고 대법제자를 보고 있으므로 조금이라도 누락이 있으면 모두 위험하다. 자신의 일사일념을 모두 놓치지 않고, 최고의 표준에 따라 자신을 요구하며, 겸손한 마음을 유지하고, 용맹정진하여, 어떤 사람의 마음도 일어나지 않게 하며, 줄곧 최후까지 수련해야한다. 그렇다면 그 중요성은 가늠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한다.
문장발표 : 2016년 4월 10일
문장분류 : 수련마당
원문위치 :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6/4/10/326428.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