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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막 속에서의 견지

글/ 승은(承恩)

[밍후이왕] 시간이 지체되어 감에 따라 형식적으로는 정진해 보이지만 많은 수련인의 표현이 갈수록 좋지 못하다. 처음 시작할 때의 용맹정진이 점차 해이해지고 표면형식은 사람의 각종 각양의 잡다한 일에 휘말리는데 일부는 사업상 바쁘고 일부는 아들 손자에 바쁘고 일부는 또 사람들 속에서 한바탕 분투해보려고 하는바 사실 이는 모두 표면 현상이다. 진정한 원인은 모두 수련인의 사람 마음을 내려놓지 못해서 초래한 것이다.

사람 마음이 제거되지 않으면 번거로움이 많아지고 일도 많아지는데 아무튼 당신에게 법공부할 시간을 빼앗고 진상을 알려 중생을 구도할 시간이 없게 만든다. 마치 고독 역시 수련인의 의지를 소모케 하고 정진할 수 없는 정황에서 갈수록 속인의 일에 이끌리게 되고 심지어 사람 속에 빠지게 되는데 이는 마침 구세력이 배치한 길로 간 것이다.

사람 마음을 제거하지 못 하는 데는 많은 원인이 있는데 아래 몇 가지 정황을 나는 보았다.

1. 수련에 대해 아직도 형식적으로 일하는 것에 머물러 있거나 사람 눈으로 볼 수 있는 표면적인 물건에 멈춰 있고 진정으로 수련하는 실질을 파악하지 못해 큰 방향에서 이탈되었는데도 법으로 자신을 대조하지 않고 안을 향해 찾지 않는다. 이렇게 하면 진정으로 마음을 닦을 수 없어 수련이 따라가지 못한다. 그렇다면 형식적인 수련은 바로 사람의 방법으로 억지로 버티는 것인데 이렇게 하면 점차 수련에서 멀어지고 마비된다.

2. 또 한 가지 정황은 바로 수련하는 사람이 자신에게 한 가지 혹은 몇 가지 완고한 집착이 있다는 것을 뻔히 알지만, 진정으로 결심을 내려 개변하지 않는다. 법 공부할 때 자신이 잘못한 것을 알지만, 매번 일에 부딪히면 여전히 저지르고 진정으로 수련을 생활 속에 접목하지 못했다. 사실 우리의 수련형식이 바로 생활 속, 일 속에 녹아 있는 것이고 일부 사람은 여전히 법 공부할 때는 수련이고 일하고 생활할 때는 수련으로 여기지 않는다. 내 생각에 이는 아마도 과거 그러한 수련형식의 영향을 받은 것일 것이다. 이는 진정으로 대도무형을 이해하지 못함이다. 사실 우리가 부딪힌 모든 일에는 모두 수련 제고의 요소가 속에 포함되어 있다. 이러한 것은 최소한 이 문제에서 자신을 개변하지 않으려는 것이고 시간이 지나가면서 습관이 되어 어떻게 돌파해야 할지 생각하지도 않게 된다.

3. 일부 사람은 사람을 보고 법으로 가늠하지 않고 늘 보이는 표면적인 수련상태를 보고 수련의 좋고 나쁨을 가늠한 결과 진정으로 번거로움, 모순에 부딪혔을 때 자신의 주견이 없어져 어떻게 대해야 할지를 모르며 그에게 어떻게 하라고 알려주는 사람이 없으면 어찌할 바를 모른다. 수련을 이렇게 오랫동안 했지만, 진정으로 법에서 문제를 볼 수 없고, 진정으로 법으로 좋고 나쁨을 가늠하지 못하고, 법으로 옳고 그름을 판단하지 못하고, 법으로 진짜와 가짜를 분별하지 못한다.

4. 일부 수련생은 장기간 진정으로 실질적인 수련을 하지 않은 결과 누적된 문제가 갈수록 많아져 넘어가기 어렵고 상태가 갈수록 좋지 않아 사람의 일면도 갈수록 소극적이고 심지어 수련에 대해 아주 큰 의혹이 산생되었다. 표면에서는 아주 단호하게 표현하지만 내심 깊은 곳의 집착은 오히려 아주 깊이 은폐되어 있다.

일부 사람은 스스로 모두 신사신법 한다고 여기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만약 진정으로 신사신법 한다면 그럼 왜 진정으로 대법의 요구에 따라서 행하지 않는가? 문제는 우리가 갓 수련을 시작할 때처럼 많은 부분에 대해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는 것이 아니다. 지금은 많은 일을 어떻게 해야 할지, 마땅히 어떻게 해야 할지를 알지만, 가서 행하지 않고 심지어 자신을 개변하려고 하지 않는데 이것이 진정한 수련인가?

무엇이 수련인가? 무엇을 닦고 어떻게 닦는가? 무엇을 제1위에 놓아야 하고 어떻게 해야 비로소 세 가지 일을 잘할 수 있을지 왜 안을 향해 찾아야 하고 어떻게 해야 자아를 내려놓을 수 있는가. 이런 가장 기본적인 문제를 일부 사람은 현재 아직도 모른다. 아무튼, 바로 표면의 형식을 따라서 걸어가고 진정으로 자신이 독립적으로 사고하지 않고 진정으로 자신의 길을 걸어나가지 않는다. 나는 이것은 수련이 아니라 습관적인 종교의 형식 행위라고 여긴다. 세 가지 일을 만약 열심히 가서 행하지 않으면 그것은 바로 형식에 그치는 것이고 표면에서는 매일 행하지만, 법 공부할 때 마음에 들어가는지 들어가지 않는지, 진정으로 결심해 자신이 집착을 내려놓았는지, 내심에서 방법을 다하여 가서 진상을 알리고 사람을 구도하려고 했는지? 만약 진정으로 열심히 가서 행하지 않았다면 그것은 대충 하는 것이고 표면적인 형식으로 가는 것이 아닌가?

동서고금을 통하여도 수련은 적막하다. 그러나 대법제자의 억만년의 기다림을 생각해보면 이 짧디짧은 몇십 년은 바로 한순간에 불과하다. 아울러 우리가 역사상에서 한 고생들은 모두 오늘날을 위한 것이고 오늘날 이 위대한 시각이 도래했다. 수련을 시작하여 겨우 20여 년의 시간인데 일부 사람은 느슨해졌고 심지어 마비되었는바, 정말로 아쉽다.

우리는 깊은 산 속으로 들어가지 않았고 산굴 속에 들어가지 않았다. 과거 그 수련인의 그 적막은 말할 사람을 찾으려고 해도 사람이 없었다. 오늘날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끊임없이 설법해 주시고 우리는 또 법회가 있고 또 법학습소조가 있는데 정진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사람들 속에서 수련하고 세속을 이탈하지 않았지만 우리는 세속의 어떠한 것을 위해 온 것이 아니다. 우리의 염원과 사명은 바로 자신을 잘 수련하고 대법을 실증하고 중생을 구도하는 것이다.

한가득 이야기했는데 많은 수련생이 모두 느슨해진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일부 수련생은 늘 어느 한 층차에 머물러서 올라가려고 하지 않는 것을 보고 마음속으로 아주 괴로웠다(이렇게 큰 법을 우리는 오히려 이렇게 차하게 수련하고 세인들에게 대법의 신성함과 아름다움, 무량한 지혜와 위엄을 보여주지 못했다). 아울러 나 자신도 수련의 적막감을 느꼈었다. 그러나 적막 중에서 우리는 반드시 견지해야 하고 세 가지 일을 잘해야 하고 귀중한 시간과 얻기 힘든 기연을 낭비하지 말아야 한다. 사람 속의 어떠한 일에 의해 미혹되지 말아야 하고 대법을 제1위에 놓아야 한다.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신 세 가지 일을 제1위에 놓아야 한다. 그러나 재차 용맹정진하여, 더는 소극적으로 기다리고 어찌할 바를 몰라 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대법 속에서 수련해낸 정법정각으로 우주를 밝게 비춰야 한다! 대법의 복음을 온 세계에 전파해야 하고 대법의 자비를 매 고귀한 세인들에게 전파해 주어야 하고 서약을 실천하고 사명을 완성해야 한다.

문장발표: 2016년 4월 2일
문장분류: 수련마당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6/4/2/326133.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