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대법제자(본인구술, 수련생정리)
[밍후이왕] 나는 우리 마을에서 가장 먼저 법을 얻었다. 1997년 법을 얻고 우리 집을 법 공부 장소로 만들어 우리 마을과 주변 마을 사람들이 모두 이곳에서 법을 얻었다. 1999년 이전에는 대법이 널리 전해졌으므로 사람들은 법을 얻어 병을 없애고 몸을 건강히 하는 대법의 신기한 효험을 볼 수 있었다. 그리하여 너도나도 모두 수련하기 시작했다. 우리 마을은 비교적 커서 많을 때는 50여 명이 수련했는데 우리 집에서 연공하면 방과 마당에 가득 찰 정도였다. 사부님의 설법 비디오도 3개월 연속 틀었는데 많을 때는 매일 27명이 비디오를 시청했다.
우리 집을 법 공부 장소로 만든 지 20년에 가까운데 내가 중국공산당(이하 중공)에 불법 납치되어 세뇌반에 감금된 보름 동안을 제외하고는 그동안 박해가 아무리 심하고 사악이 아무리 창궐해도 우리 집 법 공부는 거의 하루도 멈춘 적이 없었다. 최근에도 매일 10여 명의 수련생들이 와서 법 공부와 연공을 하고 있다. 시골은 농사일과 잡일이 많아서 법 공부와 연공 시간을 낸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다. 법 공부에 참여하고 있는 한 수련생은 “이렇게 사악한 환경에서 이렇게 각자 집안일이 많은데도 이렇게 오랫동안 지속할 수 있었던 것은 이 법 공부 장소가 있었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했다.
우리 법 공부 소조는 마을에서 이미 공개적으로 알려졌다. 마을 사람들은 법 공부를 하러가는 수련생들을 보면 “학교가세요?” 아니면 “출근합니까!”라고 농담을 걸기도 한다. 현지 공안국에서도 알고 있다. 1999년 박해가 시작된 후 현지 공안국, 610사무실, 진(鎭) 정부 등 기관의 관계자들은 수차례 찾아와서 소란을 피웠다. 우리 집은 4번이나 불법적인 가택 수색을 당해 5대의 녹음기를 수탈당하기도 했다. 특히 박해가 시작된 해 상황은 몹시 사악했다. 남편은 두려워하며 “마을 사람들이 우리 집으로 법 공부를 하러 오지 말라고 합시다.”라고 했다. 그러나 나는 듣지 않았으며 지금까지 한 번도 법 공부 소조를 해체할 생각을 가져본 적도, 법 공부를 멈춘 적도 없었다. 수련생들의 정념도 아주 강했다. 법 공부 소조가 여러 차례 사악으로부터 소란을 당했지만 모두 압력을 이겨내고 굳은 마음으로 지금까지 법 공부를 중단하지 않았다.
나는 평범한 70대 농촌 여성으로 1997년에 처음 대법 수련을 시작했다. 수련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돼서 내 몸의 고질병들이 모두 사라졌다. 나는 평생 학교를 다닌 적이 없고 문맹 퇴치반에 며칠 다니면서 쉬운 글자 몇 개만 알고 있을 뿐이다. 처음 수련을 시작할 때 며느리가 남편에게 “어머님에게 글을 가르쳐드리세요.”라고 하자 남편은 “가끔씩 모르는 글자가 있으면 가르칠 수 있지만, 몇 글자밖에 아는 게 없는데 어떻게 가르치겠어?”라며 대답했다.
우리 집이 법 공부 장소가 된 후, 다른 사람들이 책을 읽을 때 나는 듣기만 했다. 나중에 수련생이 읽을 때 나도 책을 들고 눈으로 따라가 보았다. 처음에는 어디까지 읽었는지 따라갈 수 없었지만 반년이 지난 후에는 수련생들이 어디까지 읽으면 내 눈도 어디까지 따라 갈 수 있었다. 그러나 묵독만 할뿐 소리 내어 읽지는 못했다. 그렇게 2년 정도 견지하다 보니 결국 전부 유창하게 읽을 수 있게 되어 수련생들과 함께 법 공부를 할 수 있었다. 나중에는 사부님의 설법 40여권을 모두 유창하게 읽을 수 있었다.
나는 현재 매일 ‘전법륜(轉法輪)’을 읽고 있는데 법 공부를 많이 했을 때는 마음이 텅 비어 있는듯하고 좋지 않는 것들이 단번에 사라지는 느낌이 들었다. 또 법 공부상태가 좋을 때는 사부님께서 내 곁에 앉아 계신 것 같은 느낌이 선명하게 들기도 했다. 법 공부할 때 모르는 글자가 있으면 머릿속에서 자동으로 어떻게 읽는지 떠올랐는데 나중에 수련생들에게 물어보면 아주 정확했다. 2011년부터 나는 선녀가 눈앞에서 날아다니는 모습을 보게 되었는데 육안으로도 볼 수 있었고 저녁이면 더욱 선명했으며, 심성이 좋을 때는 더 잘 보였다.
수련을 한 후 나의 신기한 변화를 보고 많은 친지와 친구들이 대법수련으로 들어왔다. 우리 집 5남매는 모두 나를 통해 법을 얻었다. 10년 전 남편이 갑자기 세상을떠나자 형편이 비교적 좋은 아들이 나를 모시겠다며 한사코 자기 집에 가서 함께 살자고 했다. 내가 가지 않겠다고 하자 아들은 눈물을 흘리면서 애원했고 주변 사람들을 동원해 나를 설득하기도 했다. 그러나 나는 아들의 의사에 따르지 않았다. 내가 이곳을 떠나면 이곳의 법 공부 소조가 해체될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단체 법 공부는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남겨주신 수련 형식이므로 절대 법 공부 소조가 해체되게 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나는 결국 떠나지 않고 남아 있었다.
진상 자료를 제작하다
우리 집은 법 공부 장소일 뿐만 아니라 자료점이기도 했다. 글도 잘 모르는 농촌 할머니인 나는 평생 컴퓨터 같은 현대화된 기기를 만져본 적이 없지만 역사적인 배치인지 1999년 대법에 대한 박해가 시작된 후 나는 우리 지역의 진상자료 제작에 참여했다. 처음에는 제본을 도와주거나 소모품을 운반하고 진상자료를 전달하는 등의 단순한 일만 했다. 나는 최대 100kg에 이르는 종이를 날랐는데 작은 삼륜차에 싣고 길이 아무리 멀고 비바람이 불어쳐도 제때에 가져 왔다. 때로는 눈보라가 치거나 미끄러운 비탈길을 만나면 할 수 없이 힘겹게 밀거나 천천히 끌고 갈 수밖에 없었다. 당시 나는 이미 60대였지만 힘들다고 생각해 본적 없이 수 년 동안 그렇게 했다.
그 일을 시작했을 때는 박해가 아주 심하고 환경도 매우 사악했지만 나는 두려움이 없었다. 그리하여 소모품을 운반하거나 진상자료를 전달할 때 어떤 착오도 없었고 교란을 받은 적도 없이 아주 순조로웠다. 그 과정에서 나도 프린터, CD굽기, 호신부 제작 등 기술을 배웠으며 혼자서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 설비들을 다뤄본 적은 없지만 사부님께서 지혜를 열어주셔서 수련생들이 두 번 정도 가르치니 바로 할 줄 알게 되었다. 그리하여 2,000여 개의 연꽃 장신구와 2,000여개의 탁상용 달력을 혼자 제작했다. 금년에는 실크스크린 인쇄술도 배워 현수막을 제작했는데 이것은 새로운 항목이었다. 그동안 내가 대법을 실증하기 위해 만든 물건은 매우 많았는데 대법에 필요한 것이라면 다 만들어 보았다.
2005년 우리 지역 협조인과 몇몇 중요한 위치에 있는 수련생들이 중공에 납치돼 판결을 받거나 노동교양소에 들어가는 바람에 자료점이 파괴되는 큰 손실이 빚어졌다. 대부분 큰 자료점이 수색과 수탈당해 우리 지역 진상 자료 제작과 배포는 마비되다시피 했다. 외지 수련생들의 도움으로 새로운 자료점이 생겼지만 2개월 만에 사복경찰의 추적을 받고 급히 옮겨야만 했다. 심한 박해로 모두들 두려운 마음이 강했기 때문에 아무도 그 자료점을 인계받으려고 하지 않았다. 나중에 한 수련생이 나를 찾아와 부탁하자 나는 즉시 자료점을 우리 집으로 옮겨왔다.
당시 그 자료점은 우리 지역의 유일한 자료점으로 현지는 물론 외지의 진상 자료까지 책임을 지게 되었다. 마침 ‘9평공산당’이 발표되어 대량 인쇄가 필요했는데 한번에 2,000권씩 만들었기 때문에 매번 수십 박스에 이르는 인쇄용지를 자동차로 실어 날랐다. 그 때 우리 집은 각종 용품과 찍어낸 자료들로 가득 찼다. 그래도 나는 조금도 두렵지 않았다. 점차 곳곳에서 자료점이 꽃피게 되어서야 우리 이곳 자료점에서 자료를 대량 제작하지 않아도 되었다. 하지만 현재까지 평온하게 운영되고 있다.
어느 날 한창 진상 자료를 제작하고 있을 때 갑자기 남편이 세상을 떠났다(자신의 누락으로사악이 빈틈을 탔을 것이다). 그 갑작스러운 변고에 나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나중에 수련생들과 교류하는 과정에서 그것은 남편 개인에 대한 박해일 뿐만 아니라 사악이 법 공부 소조와 자료점을 겨냥한 것임을 알게 되었다. 나는 내가 절대로 넘어지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내가 쓰러지면 법 공부 소조도 자료점도 해체되기 때문이었다. 나는 사부님의 가지와 수련생들의 도움으로 아주 빨리 심태를 조절하고 다시 정법 수련에 매진했다.
한번은 한 수련생이 불량품 스티커를 사오는 바람에 글자를 찍어내지 못했다. 나는 대법자원이 낭비되지 않도록 직접 스티커 형판을 만들고 거기에 잉크를 칠한 다음 스티커에 찍어내려고 했다. 하지만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나는 글자를 쓸 줄 모르기 때문에 종이를 대고 밑 글씨에 맞춰 그림 그리듯이 그렸다. 그렇게 반복했는데 글자를 잘못 쓰거나 글자가 반듯하지 못하면 다시 해야 했다. 비슷하게 될 때까지 반복한 다음 가위로 잘라 딱딱한 종이에 붙였다. 그 다음 딱딱한 종이를 여러 겹 잘라 붙였다. 한 글자 한 글자 그렇게 하는 과정에 들인 시간과 노력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나중에 완성된 형판을 보고 며느리도 깜작 놀라했다. 내가 그렇게 글을 잘 쓸 줄은 상상도 못했다. 나는 그 형판으로 수없이 많은 스티커를 만들었는데 한번에 500장을 찍어낼 때도 있었다. 나는 그렇게 스스로 진상 스티커를 만들어서 붙였다.
생활에서 대법제자의 품격을 보여주다
대법제자는 생활에서 항상 자신의 언행에 주의해야 하고 어디서든 좋은 사람이 되어야만 법을 더욱 잘 실증할 수 있다. 수련 후 나는 몸이 건강하여 무슨 일이든지 해낼 수 있었다. 남편이 사망한 후에는 채소를 심어 직접 팔면서 이미 4년간 생계를 스스로 해결했다. 또 수련 후 의료비에 단 1전도 쓰지 않았다. 병원에 입원하거나 약을 먹지 않았으므로 자식들에게 아무런 부담도 주지 않았다. 그리하여 자녀들은 나의 대법수련을 적극 지지했다.
채소를 팔 때도 법을 실증할 수 있었다. 나는 채소를 키울 때 농약이나 화학비료를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진정한 유기농 채소였다. 그래도 시장가격보다 싸게 팔고 또 더 많이 주면서 따지지 않았다. 때문에 그동안 나에게서 채소를 산 사람들은 모두 야채도 좋고 사람도 좋다고 입을 모았다. 그들은 내가 대법을 수련한다는 것을 모두 알고 있다. 어떤 사람은 “이 할머니는 100살까지 살 수 있을 거예요. 착한 사람은 평생 평안무사하다고 하잖아요. 연세 많은 분이 멀리까지 와서 이렇게 싸게 팔다니!”라고 말했다. 사람들은 모두 나를 좋아했는데 한 할머니는 내가 먼 길에 배고플까봐 먹을 것을 사주면서 다 먹고 가게 하기도 했다.
내 옆에는 꽃을 파는 할머니가 있었는데 그는 한 수련생을 알고 있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 수련생이 할머니에게 진상CD 등 자료를 주었지만 보지 않아 아직 진상을 알지 못했다. 수련생은 나에게 그 할머니와 이야기를 나눠보라고 했다. 말 뜻은 진상을 알리라는 것이었다. 내가 파룬궁을 수련한다고 하자 그 할머니는 “그동안 왠지 느낌이 좋았어요. 저도 식사를 잘하게 되고 잠도 잘 자고 숨도 막히지 않아요!”라고 말했다. 할머니가 집에 돌아가서 아들에게 그런 이야기를 하자 아들은 나와 함께 법 공부를 하라고 권했다. 마침 할머니의 아들에게 ‘전법륜’이 있어 그 할머니는 배울 수 있었다.
그동안 나를 아는 주변 사람들은 모두 나의 인품이 정말 좋다고 말했다. 그래서 나는 우리 지역에서 소문이 났다. 한번은 마을 편의점에서 계란을 사다가 실수로 떨어뜨렸다. 내가 얼른 장바구니에 넣으면서 내가 사겠다고 했지만 편의점 주인은 “할머니는 너무 마음씨가 좋으세요. 어제는 한 할머니가 두 개나 깨뜨렸는데 아무 말 없었어요.”라고 말했다. 그러자 옆의 한 할머니가 “이 사람은 여기서 소문나게 착한 사람이야!”라고 말했다.
한번은 이불을 손질하려고 뜯었는데 안에 헌옷가지와 석회찌꺼기가 가득 들어 있었다. 이불 가게 주인이 무게를 늘리기 위해 넣은 것이었다. 원래 그 이불은 5kg 정도에 불과한데 그런 것들을 집어넣어 13kg나 무게가 나가 가격도 비싸졌다. 나는 이불 만드는 젊은 부부를 찾아가서 말했지만 그들은 모르는 척 했다. 그래서 내가 말했다. “내가 만약 그걸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면 당신들은 장사를 그만두어야 할 거예요. 내가 찾아온 건 반품해달라는 게 아니에요. 사람에게는 반드시 인과응보가 있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서예요. 지금 당신들이 고생하는 것을 봐요, 이렇게 작고 낡은 집을 세 얻어 살고 있는데 하루건너 감기도 걸리고 아이도 없는데다 노부모를 모시고 있잖아요. 내가 이 도리를 알려주지 않으면 당신들은 또 덕을 잃는 나쁜 일을 하여 다음 생에는 더욱 고생할 거예요!” 나중에 그 부부는 잘못을 인정하며 돈을 돌려주려고 했지만 나는 받지 않았다. 나는 “정말 당신들을 위해서 한 말이니 다음부터는 그러지 마세요.”라고 타일렀다. 부부는 거듭 고맙다고 인사했다. 그들에게 내가 파룬궁을 수련한다고 하자 그들도 “파룬궁을 수련하는 사람은 모두 좋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동안 그런 비슷한 일들은 너무 많아서 일일이 말할 수 없을 정도이다.
나는 한평생 학교 대문 앞에도 가보지 못했지만 운 좋게 대법을 만나 글자를 알게 되고 책을 읽을 수 있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또 정교한 진상 자료제작, CD굽기, 호신부 만들기 등도 할 수 있게 되었다.이는 과거에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일이다. 나를 우주에서 첫째가는 호칭인 ‘정법시기 대법제자’가 되게 해주신 사부님께 감사드립니다. 또 사부님의 보호 하에 우주 정법의 무대에서 사전의 큰 소원을 실현할 수 있게 해주신 것에 감사드립니다.
문장발표 : 2016년 3월 20일
문장분류 : 수련마당>정법수련마당>수련체험>진상을 알려 세인을 구도
원문위치 :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6/3/20/32558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