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허베이 대법제자
[밍후이왕] ‘걱정’은 탕산(唐山) 방언으로 ‘마음이 좁다’는 뜻이다. 그 뜻은 마음이 답답하고 괴롭다는 뜻이다. 어려서 나는 ‘마음이 좁다’는 말을 늘 들었다. 사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부정적 요소를 강화했다. 성장 후 각종 원인으로 인해 성격이 비교적 우울하고 ‘걱정’이 많았으며 까다로운 문제에 봉착하면 먼저 ‘걱정’하고 때로는 걱정이 돼 어찌할 바를 몰랐는데 이불 덮고 한참 자고 나면 좋아지곤 했다. 대법을 수련한 후 이런 부정적인 요소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사라졌다.
대략 2010년 직장이 갑자기 바뀌면서 체력이나 심리적 면에서 모두 감당하기 어려웠다. 아침에 깨어나면 가슴이 답답하고 ‘걱정’이 됐다. 생활 중에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절망했는데 이런 느낌은 몇 분 지나면 좋아졌다. 후에 일자리가 좋아졌지만 이런 ‘걱정’의 요소는 사라지지 않았다. 매일 일찍 일어나도 그런 느낌이었는데, 이런 느낌의 지속 시간이 (비교적) 짧았기에 그것을 수련해 없애버리겠다고 생각하지 못했다.
일자리가 막 호전됐을 때 하루는 비몽사몽간에 나의 오른쪽에서 이런 소리가 들렸다. “정신상에서 당신을 박해한다.” 이 말을 나는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지금 생각하니 이것은 구세력이 ‘걱정’이라는 요소로 나를 박해하는 일종 은밀한 수단이었다. 처음엔 그것이 격렬하게 표현되지 않고 단지 잠깐 마음이 답답하고 불안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것을 파악하지 못하자 서서히 더욱 강렬하게 표현됐다.
작년 상반기 ‘걱정’이라는 이런 부정적 정서가 나에게 큰 교란을 조성했다. 게다가 그 한동안 수련을 느슨하게 했고 일 때문에 정신이 없었으며 수련생 사이의 간격도 있어서 매일 우울했다. 기뻐할 수 없었고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는데 밥도 먹고 싶지 않았고 법을 실증하는 일마저도 질질 끌면서 자발적으로 하려고 하지 않았다. 가족과 수련생은 나의 이런 상태를 이해하지 못했다. 먹는 것도 입는 것도 부족하지 않은데 왜 걱정하느냐고 물었다.
나는 왜 ‘걱정’하는가? 생각해보면 직장의 돌변으로 자신에게 너무 집착했다. ‘나’는 아주 힘들다. ‘나’는 이런 일을 하고 싶지 않다. ‘나’의 감수를 너무 중하게 봐 자신이 알고 있는 일면을 제약했고 심지어 법도 생각나지 않았다. 매번 관을 넘길 때 이런 모양이었고 자신이 감당하기 어려운 관에 봉착하면 먼저 무너지고 소침해졌다. ‘걱정’이란 부정적 정서에 빠진 채 심성 관은 지나갔지만 자신의 심성은 제고되지 못했고 법에서 승화하지 못했다.
그 외 ‘이것저것 두려운 마음’이 ‘걱정’을 초래했고 까다로운 일에 봉착하면 우선 두려워하고 다음은 ‘걱정’한다. 만약 자신이 해결할 수 있으면 두려워하지 않고 ‘걱정’도 되지 않는다. 어려운 관을 두려워하고 번거로운 일을 만날까 봐 두려워하고 편안하게 수련하려 했는데 근본적으로 관념이 바뀌지 않았다. 온종일 번거로운 일을 만나지 않으면 마음이 편안하고 좋다고 생각했다. 이것이 수련인가?
사실, ‘걱정’도 수련에서 자신이 없는 것이다. 법에 대한 바른 믿음이 부족하기에 법을 굳게 믿는 위력이 없으며 자신을 법의 한 입자로 보지 않았다. 하여 어려운 관을 만나면 걱정되고 어찌할 바를 모르며 마음속에 법이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렇게 나약하게 표현된다.
나는 깨달았다. ‘걱정’을 조성한 근본 원인은 주의식이 약한 것이고 관을 만나면 진정한 자신이 자신을 주재하지 못하기 때문에 ‘걱정’이라는 이런 부정적 정서가 좌우지하게 되는 것이다. 이 점에서 자신의 주의식을 강화하지 못했다. 사실 ‘걱정’이라고 하는 이런 일념이 반영되어 나올 때 자신이 아니라는 것을 분간해야 하며 안으로 찾아야 하고 왜 나의 공간장에서 나타나는가를 찾아야 한다. 어떤 마음이 초래한 것인가? 혹시 구세력이 어떤 마음을 이용해 배치했는가? 법리에서 똑똑히 알고 발정념을 해 그것을 해체했다.
이런 것을 의식하고 이 글을 쓰게 됐다. 장기간 여러번 정념을 발하여 ‘걱정’이란 이런 부정적 요소를 제거해 이런 ‘걱정’의 느낌은 곧 사라졌다.
문장발표: 2016년 3월 21일
문장분류: 수련마당>정법수련마당>수련체험>심성제고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6/3/21/325628.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