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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업 가상에 대한 인식

글/ 헤이룽장성 대법제자 원즈밍(文智明)

[밍후이왕] 일부 수련생들은 병업가상 때문에 박해 받고 있는데 이는 마치 보편적으로 존재하는 것 같다. 이 현상에 대해 법리에서 자신의 이해와 인식을 얘기하고자 한다.

1. 수련인의 일사일념을 잘 붙잡아야

한 수련자가 걸어온 길은 각기 다른 층차에서 자신에 대한 요구를 깨닫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사람에게는 선천적으로 갖고 온 본능들이 아주 많지만 오랜 세월 속에서, 특히 속세에 빠져 아주 많은 관념과 잘못된 인식을 형성했다. 그래서 자신의 순진한 본성은 한 층 또 한 층 자신도 알아채지 못한 우주특성과 위배되는 세간의 이치에 뒤덮여 순진함과 선천적 본성을 덮어 버렸다. 그래서 인간의 가상을 인정하고 각성하지 못해 자신의 수련에 실수와 되돌릴 수 없는 손실을 가져다주었다.

수련 후 이런 좋지 못한 물질은 차츰 적어지거나 제거돼 선천적인 본능이 차츰 드러나고 작용을 발휘하게 된다. 그러므로 최후로 갈수록 수련자의 일사일념을 잘 붙잡는 것은 소홀히 해서는 안 될 문제다.

아래 내가 수련 중에서 부딪친 몇 가지 일을 얘기하고자 한다.

약 7, 8년 전, 나와 아내가 그녀 고향에 갔을 때 아내는 뒷마당(물고기 판매 전문 농가)에 물고기를 사러 갔다. 내가 가서 보니 물고기를 파는 집에 10 여 평방미터 되는 시멘트로 된 어항이 있었는데 안에 많은 물고기들이 헤엄치고 있었다. 이때 3,4마리가 배가 위로 뒤집혀 있고 입을 벌리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죽은 후 사가려고 나는 아직 죽지 않은 그 몇 마리를 줄곧 지켜보았다. 하지만 약 반 시간이 지난 후에도 죽지 않아 결국 사지 못하고 빈손으로 집에 왔다. 저녁 꿈에 나는 해변에 있었는데 밧줄을 우리 회사 사장 목에 걸고 그의 목을 졸라맨 후 그를 해변에서 바다로 끌고 가고 있었다. 돌아서 사장을 보니 배가 위로 하고 입을 벌리고 있었는데 거의 죽게 됐다. 깜짝 놀랐는데 이는 아주 확실한 개념, 바로 살생이었다. 나는 자신이 최근에 한 일을 돌이켜보았지만 살생한 일이 없었다. 갑자기 물고기를 사러 갔을 때 어항 앞에 쪼그리고 앉아 본 상황과 꿈에서 본 장면이 그렇게 비슷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물고기가 죽기를 기다려 사가려고 했는데 나의 일념은 그들이 죽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자신의 이 일념이 틀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7년 전, 딸이 임신해 해산할 때 나와 아내는 지난(濟南)에 가서 아이를 북방으로 데려왔다. 우리가 막 침대열차를 탔을 때 아내는 좋기는 밤중에 집에 도착하면 좋겠다고 두 번이나 말했다.(당시 박해 때문에 낮에 집에 가는 것이 좋지 않았다.) 우리가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서 국도 문이 닫혀 9시간 멈춰 있었다.(환경으로 볼 때 길을 봉쇄할 그 어떤 징조도 없었다.) 그 후 뒤편 오른쪽 타이어가 펑크가 나 운전사는 어쩔 수 없이 국도 격리 지대 다른 편에서 달리도록 다른 사람에게 부탁했다. 게다가 타이어를 바꾸면서 몇 시간을 지체하는 바람에 종점 도착 예정시간보다 15시간이나 지연돼 도착했는데 집에 들어서 시계를 보니 마침 밤 12시였다. 이건 우연한 일이 아니라 수련자가 무의식 상태에서의 일사일념이 다른 공간에서 작용을 일으킨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정말로 자신을 신(神)처럼 여기면서 모든 것을 전혀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가? 내가 오늘 밍후이왕의 보도를 보니, 한 수련생이 다리를 다쳐 분쇄성 골절이 되었지만, 또 깁스를 하지 않았다. 이 수련생은 자신이 불구가 된다고는 생각조차 하지 않고, 조금도 대수롭게 여기지 않고 매일 법 공부를 했다. 정념이 아주 충족하여 조금이라도 앉아 있을 수 있으면 연공을 했다. 의사는 그녀에게 분쇄성 골절에도 깁스를 하지 않은 것은, 감옥에 있는 병원에서나 하는 짓이라고 알려주었다. 하지만 그녀는 전혀 상관하지 않고, 나는 다리를 틀고 연공할 것이라고 했다. 아파서 안 되어도 여전히 견지했는데 나중에는 다리를 틀어도 아프지 않았고 결과적으로 좋아졌다. 지금은 또 뛸 수 있고 달릴 수도 있으며, 아무 일도 없이 정상인과 똑같다고 했다. (박수) 당신들 누가 이렇게 할 수 있다면 구세력은 절대로 감히 그를 움직이지 못한다. 누가 이렇게 할 수 있다면 관을 넘는 중에서 걸어 나온 것이다. 무엇을 정념이라고 하는가? 이것이 바로 정념이다.”[1]

여기에서 병업가상으로 박해 받고 있는 수련생에게 묻고 싶다. 당신들은 모두 자신을 수련자라고 생각하고 있는가? 그렇게 대했는가? 수련 가운데서 당신의 일사일념이 다른 공간에서 일으킨 작용에 대해 당신은 생각해 본적이 있는가?

정법 초기, 노동교양소에 감금됐을 때 한번은 경문을 전했다는 이유로 그들은 내가 ‘규정을 어겼다’고 하면서 작은 감방(小號)에 가두어 넣겠다고 했다. 듣고 나서 속으로 마침 혼자서 연공할 수 있겠다고 생각하면서 살짝 기뻐했다. 당시 나는 관리과장이 손을 살짝 떠는 것을 보았는데 그는 나에게 “당신은 들어가 연공하려고 하는 거죠?”라고 물었다. 어떻게 알았냐고 묻자 그는 이상하다면서 작은 감방 열쇠를 가져다주는 사람에게 “열쇠를 가져올 필요 없어요. 그는 들어가 연공을 하려 하니 들어가게 해서는 안 돼요”라고 말했다. 이 일이 지난 후 나는 차츰 이치 하나를 깨닫게 됐다. 수련자가 어려움에 부딪쳤을 때 당신이 태연하게 대하면서 난을 아무렇지도 않게 여긴다면 사악은 물러갈 것이다. 왜냐하면 우주의 법리는 사악이 신의 길을 걷는 수련자를 박해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부님께서는 설법에서 여러 차례 고생하는 문제에 관해 말씀하셨다. 예를 들면 사부님께서는 해외 설법에서 “여러분에게 말하는데, 우리의 수련은 쉽지 않다. 여러분은 아주 많은 고생을 겪었다. 오로지 정교(正敎) 혹은 정법(正法)수련만이 고생을 겪는다. 만약 매우 순조롭고도 순조롭게 수련하고 어떠한 마난도 없다면 그것을 곧 수련이라 일컬을 수 없고 또 사람으로 하여금 원만에 이르게 할 수 없다. 이는 절대적인 진리이다.”[2]

수련생이 박해 받은 것은 수련생이 고난에 처했기 때문이다. 내가 본 현상으로 개인적인 인식을 교류하려 하는데 신체 박해를 받은 수련생을 볼 때 보통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이고 동작이 굼뜨며 목소리가 낮고 힘이 없다. 이 일체는 실제로 마음 상태의 진실한 표현이다. 여기에는 수련에서 고생을 겪는 문제에 대해 어떻게 이해하는가도 관련된다. 우리는 수련자로서 정말 마음속으로 고생을 겪을 때 태연자약하고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다면 가상은 소실될 것이다. 우리는 사악에게 좌우지 당하지 말아야 한다. 솔직히 말해 몇 십 킬로그램 되는 이 신체는 자신 마음대로 해야 하며 무엇을 하고 싶으면 그것을 해야 한다. 자고 싶으면 자고 연공하고 싶으면 연공하며 아픈 것도 상관하지 않고 어떤 외적인 제한을 받지 않는다면 사악은 스스로 물러갈 것이다. 차갑든 뻣뻣하든 아프든 무슨 물건이 자신을 누르든 외래정보가 무슨 말을 하든 반영된 자신 신체의 어떠한 상태에 대해 생각하지도, 감수하지도 말아야 한다.

나 자신을 놓고 볼 때 가끔 교란에 부딪칠 때 거의 모두 정념으로 부정했다. 예를 들면 그것이 “너는 늙었어”라고 말하면 나는 대법은 반본귀진하는 것으로서 사람은 갈수록 젊어질 것이라고 말한다. 가끔은 일념이 나를 좌우지하려 할 때 사부님께서 나를 지켜주고 계시고 너는 나를 관계할 자격이 없다고 하면 그런 일념은 제거된다. 가끔 신체에 어떤 반응이 오면 나는 수련자에게는 병이 없고 모두 좋은 일이라고 하면서 더 이상 연상하지 않으면 증상은 금방 소실됐다. 나에게 병업가상이 나타났을 때 거의 모두 아주 빨리 지나갔는데 보통 반 날, 몇 시간, 빠를 때에는 몇 분이면 지나갔다. 가장 큰 체득이라면 마음을 써 법학습을 많이 하고(형식에 치우치지 않음) 자신이 어디에 문제가 있는지 보았다. 또한 행위에서 부정하는 것인데 즉 침대에 누워 다른 사람이 나를 도와 어떤 일도 하지 않게 했다. 나는 한 번도 수련생이 나를 도와 발정념을 해달라고 한 적이 없는데(자신의 깨달음으로서 모방하면 안 된다.) 나 스스로 해결할 수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또 하나는 수련인의 근본적인 문제인 신사신법(信師信法)이다

17년 박해 가운데서 나는 한 번도 사부님과 법을 의심한 적이 없다.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모두 마음속으로 사부님을 생각했고 사부님께 제자를 도와달라고 빌었다(마음속으로 생각한 것인데 기점은 반드시 타인을 위한 것이지 이기적인 것이 아니었음) 일체는 모두 사부님께서 하신 것으로 나에게는 다만 소원만 있을 뿐이다. 설사 성공하고 해냈더라도 마음이 움직이지 않았는데 왜냐하면 우리를 성공하게 한 것은 사부님이시지 우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대법 속에서 잘했을 때에는 사부님과 법의 위력이고 잘하지 못했을 때에는 자신에게 문제가 있고 어느 부분이 법에 부합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수련 속에서 바르게 깨달아야 할 법리로서 홀시해서는 안 된다. 어떤 수련생은 박해 가운데서 많고 적게 ‘믿음’에 문제가 생겼는데 ‘내가 해낼 수 있을까?’ ‘사부님께서는 나를 지켜주고 계실까’하고 생각한다.

2. 수련은 본질적으로 자신을 개변해야

수련 속에서 우리가 도중(道中)에 있을 때 사부님의 법신이 지켜주고 계시기에 어떤 생명도 함부로 도를 닦는 수련자를 박해하지 못한다. 그건 우주의 특성이 결정한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수련자는 일에 부딪히면 우선 자신의 문제, 즉 안으로 찾아보아야 한다.

하지만 흔히 박해 받은 수련생들은 대부분 정체를 이탈하고 일만 하며 마음을 닦지 않으며 자신을 견지한다. 비교적 두드러진 것은 가정에서 관을 넘기지 못하는 것으로 즉 밖에서는 표현이 아주 좋지만 집에만 오면 그가 아니고 제멋대로 행동하는 것이 남김없이 드러난다. 가정에는 모두 늘 함께 지내던 익숙한 얼굴들이어서 어투가 강하고 마음 상태가 좋고 나쁜 것은 관계없다고 생각한다. 또한 어르신과 자녀와의 관계 등도 있는데 구세력의 요소는 모두 당신 가족이고 익숙해서 상관없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은 장부에 적고 있고 언젠가 당신과 계산하고 만다. 신체에 반응이 있을 때에야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는 것을 깨닫고 어디에 문제가 있는지 찾는다. 숱한 것을 찾은 후 박해 중에서 나는 자신을 닦지 않았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여기에는 능동적으로 닦는 것과 수동적으로 닦는 문제가 존재한다.

또 어떤 수련생은 늘 후회한다. 사실 한 번 잘하지 못하면 아주 정상적인 것이고 두 번 잘 하지 못해도 문제가 없지만 세 번 잘 하지 못하면 문제가 있는 것이다. 만약 당신이 수련할 때 후회하는 것이 지극히 평범한 일로 된다면 당신은 수련할 줄 모르거나 자신을 닦지 않는 문제다. 그러므로 신체가 박해 받은 것은 이러한 요소와 모두 관계가 있다. 그러므로 수련은 본질적으로 자신을 개변해야 하고 진정으로 자신 이 마음을 닦아야 한다. 가끔은 인간 세상의 옳고 그른 이치에 빠져서 그곳에서 뛰쳐나와 자신이 진선인(眞善忍)과 어긋나지 않는지 보지 못한다. 비꼬인 것을 풀고 자신을 내려놓으면 된다.

한 수련자가 가정 속에서, 모순 속에서, 마음에 거슬릴 때 자신을 개변하지 않고 속인을 개변하려 하며 속인이 수련하는 사람에게 양보해준다면 이것이 닦는 것인가? 어떤 수련생은 신체가 무기력해졌는데 가족들은 대법을 이해하지 못하고 심지어 대법을 거부함으로서 세간 사람들에게 아주 좋지 못한 영향을 조성했다.

예를 하나 들자면 만약 당신의 수련은 하루에 옷 세 벌을 씻어 백일까지 씻으면 원만한다고 하자. 당신이 오늘 씻지 않으면 내일에는 여섯 벌을 씻어야 하고 내일 또 씻지 않는다면 모레는 아홉 벌을 씻어야 한다. 이후에 한 가득 쌓이게 되고 옷이 많아지면 당신은 씻을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겉으로는 모두 닦고 있지만 당신은 진정으로 수련하고 있는가. 어느 수련생은 수련은 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배와 같아 나아가지 않으면 물러서게 된다고 말했다. 당신이 원래 상태를 유지해도 물러서게 되는데 하물며 당신은 마음을 써 닦지도 않았다.

3. 수련의 길을 바르게 걷다

교류 중에서 여러 번 수련생이 “나는 애 일 때문에 점쟁이를 찾은 적이 있어요”, “활어를 샀는데 가족이 죽였어요”, “나는 몰래 약을 먹었는데 만약 사부님이 관계하시지 않는다면 약도 어느 정도 작용을 일으킬 것입니다”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 또한 수련 중에 불이법문 문제 등도 있었는데 대법 중에서 일은 많이 했지만 자신의 마음은 적게 닦았다. 또한 박해 받은 여 수련생들은 대부분 가정에서 여장부로서 집의 속인들이 끽소리도 못하고 당신 눈치를 보며 행동한다. 오히려 집안 속인들이 수련자에게 양보함으로서 모순을 완화시켰다.

정법은 이미 오늘까지 왔다. 나는 수련생들이 너무 많은 고생을 겪는 것을 보았는데 큰 고생도 우리는 모두 넘어왔다. 하지만 일부 작은 문제, 예를 들면 가정모순, 수련생 사이 협력, 매일 견지해야 할 세 가지 일에 있어 어떤 사람은 잘 견지하지 못한다. 한 사람이 세간에서 한 가지 일을 해내기는 아주 쉽지만 오랫동안 견지해 잘한다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간단하고 제일 쉬운 일이라 하더라도 완강하고 변함없이 꾸준한 마음과 의지력이 없다면 끝까지 견지하지 못한다. 최후 성공까지 가려면 꾸준하게 견지하는 것이 소중한 것이다. 수련은 더욱 이러한 것으로 끝까지 견지한 사람만이 원만으로 갈 수 있다.

자신의 일부 체득과 인식으로서 법에 부합되지 않는 부분은 수련생 여러분께서 지적해주시기 바란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2005년 샌프란시스코법회 설법’

[2] 리훙쯔 사부님 저작: ‘북미 제1기 법회설법’

문장발표: 2016년 2월 29일
문장분류: 수련마당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6/2/29/324637.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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