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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이어간 대법과의 인연

글/ 허베이(河北) 대법제자

[밍후이왕] 1999년 이전의 중국 대륙의 많은 어린이 제자와 마찬가지로 나는 어렸을 때 수련을 하던 아름다운 날들과 박해가 시작된 후 수련을 포기하고 속인 속에서 길을 잃은 후회를 겪었다. 하지만 사부님 덕분에 나는 꿈에서 깨어나 드디어 다시 정법의 무대에서 자신의 큰 소원을 실현할 수 있는 기연을 갖게 되었다. 대법으로 돌아온 짧은 1년 여 동안의 수련에서 나는 사부님께서 항상 곁에 계심을 느낄 수 있었다.

대법과의 인연 다시 이어가

나는 2009년에 임신했는데 임신 반응이 아주 심했다. 어머니께서는 나에게 법 공부를 하라고 하셨다. 하지만 그 때 나는 법을 떠난 지 10여 년이나 되어 법 공부를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나는 억지로 몇 줄 읽고는 내려놓고 말았다. 그런데 그날 꿈에서 큰 부처가 아주 자비롭게 나를 보면서 미소를 지었다. 이어 나는 내 배 속의 아기가 태어난 것을 보았는데 연꽃 방석에 있었다. 그 꿈의 뜻을 정확하게 알지는 못해도 나는 그 아기가 내력이 있다는 것은 똑똑히 알았다.(지금 아이는 이미 대법제자가 되었다. 그는 법을 얻으러 온 것이다.)

하지만 그때 법 공부 후 나는 수련을 계속하지 않았는데 그렇게 놓아버린 것이 또 3년이나 지나갔다. 2012년, 시어머니가 암으로 세상을 떴다. 반년 사이에 시댁 식구 3명이 돌아갔고 나의 고모도 세상을 떴다. 나는 생명은 얼마나 취약하고 죽음 앞에서 사람은 얼마나 무능한지 보게 되었다. 그때 나는 대법과 사부님을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내가 대법을 배웠었고 나에게는 사부님이 계신 적이 있었으니 나는 아무 것도 두렵지 않다고 생각했다.

내가 두려움 앞에서 사부님을 생각한 때문인지 자비하신 사부님께서는 다시 한 번 나를 법연(法緣)과 이어지게 했다. 얼마 후 부모님 집에 법 공부 소조가 생겼다(나는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다). 나는 사부님의 자비로운 부르심으로 마침내 돌아왔다. 너무나 오랜 시간이었다. 나는 대법제자가 돌아오면 가장 기뻐하는 사람은 사부님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마치 오랫동안 집을 떠나 있었던 자식이 집에 돌아온 것처럼 말이다.

나의 정념을 확고히 하기 위해 사부님께서는 천목을 열어 많은 정경을 보게 했다. 처음 발정념할 때인데, 사부님 법신이 나의 맞은편에 앉아 나를 보호해 주는 것을 보았다. 결인하고 자신을 청리 할 때, 머리가 견딜 수 없을 정도로 괴로웠다. 10여 년 동안 속인 사회의 탁류에 몸을 맡겼던 나의 머리에는 더러운 것이 너무 많이 들어갔다. 사부님께서는 내가 견디기 어려워하자 나를 잠들게 하셨다. 나는 사부님께서 머릿속의 나쁜 영체를 청리해 주시는 것을 보았다. 청리를 마치고 사부님께서 내 눈에 대고 손을 흔들자 나는 깨어났다. 그 후 나의 머리는 홀가분해 졌다. 사부님께서는 매 한 대법제자를 모두 아버지가 자식을 대하듯이 가장 좋은 것을 주고자 하셨다. 이는 나의 가장 큰 느낌이었다.

생사의 고비를 겪다

다시 수련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 생사에 관련된 큰 난을 겪었다. 나와 남편은 매일 화물차로 베이징에 가서 물건을 가져왔다. 어느 날 저녁, 우리는 평소처럼 물건을 싣고 고속도로를 이용해 집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그런데 내리막길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무슨 소리냐고 남편에게 묻자 그는 타이어가 터진 것 같다고 말했다. 트럭을 세우고 보니 앞바퀴 타이어가 터졌다. 우리는 그 자리에서 교체한 다음 다시 달렸다.

이튿날 차고지에 가서 이야기했더니 경험 많은 기사들이 앞 타이어가 터졌다는 말을 듣고 모두 놀랐다. 차가 그렇게 무겁고(물건이 많았다) 내리막길인데 앞 타이어가 터졌으면 운전대를 아예 통제할 수 없어 보통 상황에서는 사람과 차가 다 잘못된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우리가 정말 운이 좋다면서 트럭과 사람과 물건이 모두 무사하니 정말 기적이라고 말했다. 그 말을 듣고 우리는 식은땀이 흘렀다! 그렇다! 그렇게 무거운 트럭이 그렇게 빠른 속도로, 게다가 내리막길에서 달리고 있었다. 오가는 차량도 그렇게 많았는데 만약 사부님의 보호가 없었더라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상상할 수 없다! 사부님의 자비로운 가호에 감사드립니다.

가정 고비 돌파

남편은 대법이 좋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사당의 고압적인 공포 환경에서 내가 박해 받으면 가정이 깨질까봐 집에서만 연공과 법 공부를 하게하고 밖에서 진상을 알리거나 대법 일을 하지 못하게 했으며 아이에게 대법을 가르치지 못하게 했다.

하루는 아들이 나와 함께 ‘홍음’을 외우자고 했는데 그 말을 남편이 듣고 나에게 한 바탕 욕설을 퍼부었다. 이튿날 화물차를 몰고 돌아와 아파트 복도에서 계단을 오르려고 할 때였다. 남편이 “아이 깜짝이야, 누가 갖다놨지?”하고 소리를 질렀다. 자세히 보니 불상이었는데 나는 개의치 않고 집에 돌아왔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법 공부와 발정념을 하고 있는데 남편이 갑자기 몸이 좋지 않다면서 나를 불렀다. 나는 남편에게 일찍 쉬라고 말했다. 그런데 발정념을 마치자 남편이 소리 지르기 시작했다. “그것 좀 하지 않으면 안 되나? 잘 살고 있다가 왜 그런 걸 하고 그래?” 들어보니 이건 그가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이건 제 권리이고 신앙이에요! 게다가 아무도 방해하지 않았어요!”라고 말했다. 남편은 화가 나서 “당신은 나를 방해했어, 매일 부처님처럼 집에서 가부좌하고 주문을 외워서 못살겠단 말이야!”라고 또 소리를 질렀다. 이 말도 그가 한 것이 아니었다. 나는 평소 시간이 날 때마다 발정념하여 아파트 전체 공간장을 청리했다. 때문에 들어올 때 계단에서 보았던 그 불상에 붙어 있는 물건이 남편을 통제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는 저녁 내내 소리를 질러댔다. 나는 발정념을 하여 남편을 재우려고 했다. 나중에 남편은 잠들었지만 그 물건은 여전히 그를 통제하고 있었다. 남편은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당신 계속 수련하면 우린 이혼이야.”라고 말했다. 나는 “전 이혼하지 않아요. 잘못한 것도 없으니까요.”라고 대답했다. 남편은 오후에 유치원에서 아이를 데려오고는 나와 이혼하자고 했다. 가련하게 울고 있는 아이를 보니 마음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나는 생각해 보겠다고 말했다. 그날 저녁 비둘기 한 무리가 하늘로 날아오르는 꿈을 꿨다. 나도 그 중에 있었는데 하늘 길이 아주 좁아 비행기 항로처럼 조금만 빗나가도 목적지에 갈 수 없었다. 그리하여 다른 비둘기들은 모두 떨어지고 3마리만 무사히 길을 따라 날고 있었다. 한 경지를 돌파했을 때, 그 3마리의 비둘기는 선학으로 변해 구름 속으로 들어가 아름다운 세계로 갔다. 나는 꿈속에서 내가 그 3마리 비둘기 중의 한 마리임을 분명하게 느꼈다. 나는 사부님께서 나를 격려해 주시는 것임을 알았다.

아침에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나서 나는 말했다. “저는 대법을 계속 배울 것이고 이혼도 하지 않을 거예요.” 남편은 반드시 이혼해야 하고 아이는 자기가 갖겠다고 잘라 말하고 부모님 집에 호적부를 가지러 차를 몰고 갔다. 나는 발정념으로 그것을 부정했다.

저녁에 나와 아이는 친정어머니 집에 묵었다. 아이가 진상 스티커 붙이기를 좋아하여 나는 데리고 나가서 붙였다. 길에서 나는 생각했다. 아이 할아버지가 아이를 본다면 주입하는 것은 죄다 사당의 것인데 그럼 아이를 망치는 것이 아닌가? (아이의 할아버지는 대법 진상을 모르며 사당 독해가 아주 심하다) 대법을 위해 온 아이를 보면서 나는 어떻게 해서든 그를 법에서 떠나게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나는 마음이 쓰라려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 내렸다. 하지만 나는 절대 수련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이혼하고 싶지 않았지만 두렵지도 않았다

사부님께서는 나의 확고함을 보시고 고비를 넘게 도와주셨다. 남편은 이혼한다고 호적부까지 가져 왔지만 결국 생각을 바꿨다. 기세등등하던 이번 풍파는 소리 없이 사라지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또 다시 평온을 회복했다. 나는 사부님의 가호로 3일 만에 이번 큰 난을 넘었다.

사부님께서 주시는 것은 모두 가장 좋은 것

얼마 전에 나는 갑자기 또 아이를 갖게 되었다. 수련을 방해하는 것 같아 아이를 갖고 싶지 않았다. 나는 막 수련으로 돌아왔기 때문에 대량의 시간으로 법 공부를 해야 하고 대법 일을 할 시간도 부족했다. 특히 첫 아이를 가졌을 때 임신 반응이 심해 고통스러웠는데 이번에도 그렇게 될까봐 두려웠다. 하지만 두려운 마음이 나쁜 물건을 구해 와 나는 또 끝없이 토하고 잠이 쏟아져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그 때 나는 정념이 없었고 마음에는 원망뿐이었다. 나는 ‘그 작은 생명은 오지 말아야 했다. 나는 많은 대법 일을 할 수 있었는데 모두 지체됐다’라고 생각했고 무슨 사람 마음이든 다 올라왔다. 남동생은 “한약을 좀 먹지 그래. 토를 멈추게 하는데 먹으면 즉시 나아.”라고 권했다. 그 후부터 매일 한 목소리가 나에게 말했다. “약을 먹어라. 먹으면 낫는다. 괴롭지 않게 된다. 참을 필요 없다!” 나는 그것이 마의 교란임을 알고 있었다. 나는 생각했다. ‘나는 모범 대법제자는 아니더라도 반드시 수련의 길에서 끝까지 걸어갈 것이다.’ 나는 그 한 가닥 정념을 품고 사부님의 가지 하에 그 시기를 겨우 버텨냈다.

사부님께서는 가장 나쁜 것도 가장 좋은 것으로 변하게 하실 수 있다. 그 전까지 나는 온가부좌를 할 수 없었는데 그마난을 겪은 후 할 수 있게 되었다!

자료점을 세우다

대법에 막 돌아왔을 때, 내가 날마다 생각한 것은 바로 그렇게 여러 해 동안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 너무 많이 뒤떨어졌다는 것이었다. 정법이 끝날 때 나의 세계가 텅텅 빌 것을 생각하면 마음이 조급해졌고 빨리 나가서 자료를 배포하고 사람들을 구하고 싶었다. 하지만 기점이 사심에 있고 강한 두려움까지 있어 나는 그 한 발자국을 내 디딜 수 없었다. 수련생들과 교류할 때 어떤 수련생은 “당연히 나가서 배포해야 합니다. 당신이 가려고만 하면 사부님께서 도와주실 겁니다.”라고 격려했다. 하지만 어떤 수련생은 “신수련생은 그렇게 위험한 일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라고 말렸다.

나는 자료를 배포하러 가야 한다는 마음도 강했지만 두려운 마음 또한 강했다. 이런 모순 속에서 나는 자신에게 말했다. ‘나는 대법제자이니 반드시 해야 한다.’ 나는 자료를 가지고 출발했다. 나의 머릿속에서는 그야말로 정사대전이 벌어졌다. 바른 것은 말했다. “가라, 나는 너를 보호할 것이다!” 사한 것은 말했다. “가면 붙잡힐 것이다. 신수련생은 집에서 법 공부만 하면 된다. 그렇게 큰일을 할 필요 없다.” 나는 울음이 터져 나올 것 같았다. 나는 대법제자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려고 할 뿐이었다. 그때 사부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입문한 선후는 가리지 않는바 모두 제자다.” [1] 나는 사부님 말씀을 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때 나는 자전거를 타고 있었는데 마침 한 아파트 단지에 도착했다. 나는 들어가서 자료를 배포했는데 아주 순조로웠다. 사부님의 가지 하에서 나는 끝내 사람을 구하는 첫 발자국을 내 디뎠다. 그 때로부터 나의 두려운 마음을 사부님께서 많이 제거해 주시어 다시 사람 구하는 일을 할 때면 훨씬 쉬웠다.

나는 원래 어둠을 특별히 두려워했다. 하지만 낮에는 시간이 없어 밤에만 자료 배포를 할 수 있었다. 어떤 마을은 가로등이 없는데다 길도 좋지 않아 어떤 골목은 들어섰다가도 어떻게 빠져 나가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래도 나는 두렵지 않았다. 나는 내가 하는 일이 우주에서 가장 바른 일이라 생각하고 한 집 한 집 돌아다니며 꼼꼼히 배포했다. 다 배포하면 막힌 골목에서 빠져 나올 수 있었다. 사부님께서는 우리 매 한 사람을 보고 계시며 항상 우리를 보호해 주신다. 나는 자료 배포를 시작할 때에는 자신을 위해 했고 자신이 떨어질 까봐 했다. 하지만 끊임없는 법 공부를 통해 정말 사람을 구하고 있음을 인식했다. 내가 배포한 자료 하나와 붙인 스티커 한 장이 한 사람은 구했을 수도 있다.

2015년 설 이후 수련생의 도움으로 나는 자료점을 세워 비디오를 굽고 자료를 프린터하기 시작했는데 필요한 진상 자료를 거의 다 만들 수 있었다. 그리하여 2곳 법 공부 소조 수련생들에게 필요한 진상 자료를 책임지게 되었다. 우리 2곳 수련생들은 이 지역에서 진상 자료 배포양이 가장 많았으므로 매 주 만들어야 하는 진상 자료가 매우 많았다.

자료점을 막 설립했을 때에도 고험이 있었다. 나에게는 고자질하는 나쁜 습관이 있었는데 특히 남동생에게 심했다. 남동생은 그렇게 많은 물건을 집에 놓아둔 것을 보고 걱정 되어 자료점을 언제 그만 둘 것이냐고 물었다.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그대로 아버지에게 일러바쳤다. 아버지는 동생을 한 바탕 꾸짖었다. 그러나 이튿날 동생이 또 다시 묻자 나는 경계했다. 이건 나에게 마음을 버리라는 것이 아닌가? 내 몸에는 사당 문화의 ‘선동’이라는 독소가 있어 남을 선동해 다투게 한 것이다! 그리하여 아버지에게 일러바치지 않았다. 그랬더니 동생도 더는 묻지 않았고 자료점도 정상적으로 운영됐다.

나중에 남동생은 “왜 좀 더 일찍 누나에게 이런 재간이 있다는 걸 발견하지 못했을까! 핸드폰을 켜고 끌줄도 모르던 사람이 이런 것을 다 하다니!”라고 감탄했다. 그렇다, 사부님과 대법이 없었다면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우리 법 공부 소조의 한 노 수련생은 “당신 사명이 그것일 수 있어요. 션윈CD는 아무나 만들 수 없어요. 이 CD굽는 기계가 다른 사람한테 가서는 한가했는데 이곳에 와서는 계속 일을 하고 그렇게 많이 만들어 내잖아요.”라고 말했다. 이는 사부님께서 나에게 무상의 영예를 준 것이다.

진상 자료를 만드는 동시에 얼마 전 우리 자료점에서는 또 실크스크린 프린트 항목을 추가했다. 협조인이 우리 집에 찾아와서 아버지에게 그 항목을 할 생각이 있는지 알아보려 했는데 아버지는 마침 집에 계시지 않았고 핸드폰도 갖고 가지 않아 우리도 어디 있는지 몰랐다. 나는 나가서 찾아보겠다고 말했다. 길에서 나는 속으로 “사부님, 만약 저의 아버지가 그 일을 할 수 있고 우리 집의 조건도 부합된다면 아버지를 만나게 해주세요. 아버지가 어디 있는지 정말 모르겠어요!”라고 말했다. 그렇게 한창 걷고 있다가 누가 부르는 소리가 들리기에 뒤돌아보니 아버지가 아이를 데리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그 때 나는 마음이 정말 격동되었다. 우리가 무엇을 생각하는지 사부님께서는 다 알고 계신다! 나는 두 손을 허스하고 사부님께 감사드렸다.

주﹕

[1] 리훙쯔사부님저작:《전법륜》

문장발표 : 2016년 3월 4일
문장분류 : 수련마당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6/3/4/324916.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