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껍질을 깨다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매미가 껍질을 벗고 번데기가 나비가 되는 변태 과정은 고통스럽다. 변태의 결과는 즐거운 일이다. 간고하게 기어 다니다가 날아다니게 되는데 그것은 생존방식의 승화다.

수련에서도 변태를 해야 한다. 물론 이 사람의 껍질에서 가장 주요한 것은 사람마음 집착을 내려놓고 사람의 사유방식마저 내려놓는 것이다. 현재 수련의 단계에서 내가 느끼기엔 정말로 사람의 모든 것을 철저히 내려놓고 사람에서 걸어나와야 비로소 수련의 목적인 원만에 도달할 수 있다고 본다.

시간이 흘러가고 수련이 깊어지면서 많은 것들을 담담히 볼 수 있게 됐다. 그러나 일부 무척 완고한 집착도 폭로되어 나왔고 반복적으로 제거하고 또 반복적으로 나타나는데 정말로 나를 고통스럽게 한다.

사람의 집착, 욕망에 대해서 당신이 약간이라도 버리기 아쉽다고 했을 때 당신의 공간장에는 여전히 한 오리 틈새가 남겨져 있음을 나는 발견했는데 어느 한 시기에 이 틈새는 확대되어 관을 넘지 못하게 만든다.

다시 말해서 이 집착심이 당신에게 원래의 억분의 1정도만 있다고 해도 여전히 1로 확대될 수 있음이다. 정말로 없어져야 바로 0이다. 그렇다면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내려놓음이고 비로소 미혹되지도 이끌리지도 않게 된다. 왜냐하면 0은 어떻게 확대시켜도 여전히 0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진정으로 수련하는 사람을 놓고 말하면 모든 사람의 집착에 대해서 그것은 반드시 철저히 내려놓아야 한다. 비록 행위상에서 잠시 완전히 도달할 수 없어도 반드시 이러한 결심과 인식이 있어야 한다. 수련 성공하려면 용맹정진해야 하고 사람의 모든 일체를 철저히 내려놓아야 하는데 사람의 사유방식을 포함한다.

많은 시기 자신이 관을 넘을 때 지지부진한 것도 자신에게 한 가지 명확한 인식이 없어서였다. 내심 깊은 곳에는 적게 많게는 여전히 다소 보류하는 마음이 있었는데 무엇을 보류했는가? 바로 수련하는 동시에 자신의 어느 흥미, 자신의 모종의 욕망을 보류하려 했다. 비록 사상상에서는 이렇게 명확하지 않았지만 자신이 자세히 깊이 파보면 확실히 내심 깊은 곳에 숨어있는 것이 이러한 생각이다. 자신이 진정으로 내심 깊은 곳에서 진실한 생각을 발견했을 때(물론 이 생각은 진정한 자신이 아님) 비로소 문제의 엄중성을 인식하게 된다.

이는 마치 섭공(葉公)이 용을 좋아하는 것에 비길 수 있다. 말로는 용에 대한 사랑을 표현했지만 진짜 용이 왔을 때 섭공은 오히려 감히 마주하지 못하고 놀라서 숨어버렸다. 자신을 놓고 말하면 법을 얻어서 수련인 심지어 대법제자로 자신을 간주하지만 대법수련에서 정말로 당신에게 수련인의 표준에 도달하라고 했을 때 자신은 오히려 물러섰고 사람의 것을 버리려 하지 않았다.

만약 누가 자신을 수련인이 아니라고 말하거나 혹은 자신이 수련하려고 하지 않는다고 말하면 자신은 무척 격동되어 상대방과 따질 것이다. 그러나 실제 수련에서 사람의 집착을 내려놓으라고 할 때 자신은 오히려 다소 보류하고 사람의 것을 내려놓으려고 하지 않는다면 무슨 수련인인가? 사실상 자신의 행위는 수련인의 행위가 아니다.

수련은 엄숙하고 조금이라도 부족하면 안 된다. 자신의 요행심이 자신을 해치지만 약간의 사람의 것을 보류하는 것이 아무 상관이 없다고 여긴다.때문에 사람 마음으로 수련을 대하는 것이다. 예전에 많은 고생을 한 것을 수련으로 여기고 자신이 아주 많은 일을 한 것을 수련으로 친다. 이는 자신이 무엇이 진정한 수련인지 모르고 수련의 엄숙성을 모르기 때문이다.

여기까지 쓰고 나서 나는 한 가지 이야기가 생각났다. 한 아버지가 아들 세 명에게 꿈을 물었다. 큰 아들은 부자가 되어 허리에 10만관을 두르고 싶다고 했고, 둘째는 신선이 되어 학을 타고 양주(楊州)에 가고 싶다고 했으며, 셋째는 두 가지를 다 갖고 싶어했다. 허리에 10만관을 두르고 싶고 학을 타고 양주로 가고 싶다고 했다. 그것은 사람의 좋은 점을 내려놓고 싶지 않는 동시에 신선이 되어 득도하고 싶어 하는 것이다. 나는 자신의 예전 인식이 바로 이 탐욕스러운 셋째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글을 쓰는 과정에서 자신의 탐욕과 가소로움을 보았고 수련의 엄숙성과 신성함을 더욱 알게 되었다. 수련은 바로 사람의 것을 철저히 내려놓아야 비로소 사람 표면의 이 한 층의 껍데기에서 벗어날 수 있고 비로소 원만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을 더욱 명확히 했다.

문장발표: 2016년 2월 14일
문장분류: 수련마당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6/2/14/324077.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