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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착심을 내려놔야 비로소 법을 배울 수 있다

– 수련 중의 깨달음

글/ 대륙대법제자

[밍후이왕] [편집자 주: 끊임없이 집착심을 내려놔야 비로소 끊임없이 법을 얻을 수 있다. 그리하여 이 문장의 원 제목 ‘안을 향해 수련한 깨달음’을 ‘집착심을 내려놔야 비로소 법을배울 수 있다’로 고쳤다. 더 많은 수련생이 이 문장을 보고 법을 스승으로 삼고 사람 마음을 내려놓고 진정으로 법속에서 수련해 올라가기 바란다.]

어느 날 《전법륜》 첫 페이지를 보는데 갑자기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지금까지 본 것과는 완전히 달랐기 때문이다. 문자의 표면적인 부분의 뜻에서는 모두 말하기를, 각종 집착심을 안고 대법을 배우면 안 되고 대법을 배우려면 집착심을 내려놓아야 한다고 했다. 다시 말해서 당신이 먼저 집착심을 내려놔야 비로소 대법 수련의 문에 들어설 수 있음이다!

사유가 점차 열리면서 많은 것이 명백해졌다. 중국 고대에 도가 법문에서 사부는 한 무리 도제를 거느리고 있지만, 진정으로 진수를 받는 이는 항상 한 명이다. 불가 법문에서 중생을 널리 제도하기에 누가 수련하면 누가 얻고 결국에 얻는 이는 겨우 개별적이었다. 아울러 고험을 겪어야 진수를 받도록 확정되는 것이다. 사부는 비로소 당신에게 수련해 올라갈 수 있는 수많은 기제 혹은 종자를 심어준다.

예를 들어 여동빈, 역사 전설에서 한중리는 여동빈을 열 번 시험했고 이 10회 고험 중에서 이익의 마음, 색심의 고험, 명과 정의 고험이 있었고 생사를 내려놓는지의 고험, 도를 구하려는 마음이 단호한지의 고험 등등이었다. 여동빈은 끊임없이 마음을 닦고 도를 구하는 중에 이 10회의 고험에 합격한 후 한중리는 비로소 진정으로 그를 제자로 받아들였다. 도가 이 한 문에서 수련하여 돌아갈 수 있는 기제와 종자를 그의 몸에 심어주었고 그의 도가 그 일문의 진법과 신통 술류를 전수했다. 그다음 여동빈은 다시 산속에서 100~200년 수련하고 득도한 후 비로소 사부가 배치한 대로 하산해서 중생을 구도했다.

중국 고대에 유사한 예가 아주 많고도 많은데 세간에 모두 유전되고 있다. 이는 바로 고대의 수련은, 다시 말해서 낡은 수련형식 속에서는 진전(眞傳) 제자에 대한 요구가 상당히 엄격했다는 것을 설명한다.

우리 이번의 대법 수련은 오히려 이렇지 않다. 반에 들어오거나 혹은 책을 보고 수련을 시작하려고 생각하면 사부님께서는 모든 수련생을 모두 진전제자로 대하신다. 허다한 기제와 종자를 심어주시는데 여기에는 수많은 원인이 있다. 그러나 가장 주요한 것은 사부님의 홍대한 자비이시고 대법의 위덕이 거대하심이다. 사부님께서는 이 짧은 7년이란 시간에 모든 대법제자를 최고위로 밀어주셨고 가서 중생을 구도하고 서약을 이행하도록 하셨다.

오늘 수많은 대법수련생은 여동빈 등 고대 수련자처럼 그렇게 진정으로 열심히 수련하여 자신을 제고시키지 못하고 있다. 과거 소법수련에서 반드시 입문 전에 제거해야 할 각종 집착심마저 제거하지 못한다. 다시 말해서 구우주의 수련자에 대한 요구에도 미치지 못하므로 구세력은 줄곧 강제로 끊임없이 그들을 고험하고 있다.

내가 추측하는데 이런 대법제자들이 아주 많다고 본다. 비록 이런 대법제자들이 끊임없이 세 가지 일을 하고 있지만, 사람이 배우고 있고 사람이 닦고 있고 사람이 행하고 있는바 부합되는 것은 단지 표면형식에 불과하다. 우주 중 가장 위대한 ‘정법시기 대법제자’라는 칭호는 장엄하고 신성한 내포가 있는데 세 가지 일을 할 때 이러한 칭호에 부합하여 행하는 것이 아니다.

중국 대륙에서 박해를 엄중하게 받는 이는 항상 모두 이런 수련생들이다. 사부님께서는 이런 박해를 인정하지 않고 여전히 모든 수련생을 제자로 거느리고 계신다. 그러나 대법제자 자신이 수련을 모르고 진정으로 법에서 법을 인식하지 못하여 구세력이 강제로 가로막고 있는 것을 부정하지 못해 오늘날 세간의 형세를 매우 복잡하게 만들었다.

사실 진정으로 집착을 제거하고 법에서 수련하는 대법제자가 어찌 그렇게 쉽게 엄중한 박해를 당할 수 있겠는가? 직설적으로 말해서, 내가 접촉한 바로는 일부 고층 구세력이 이런 대법제자들에 대해 모두 아주 탄복하고 영웅들끼리 서로 아껴주는 느낌이 조금 있는데 박해하려고 손을 쓰고 싶어 하지 않거나 심지어는 봐준다.

장기간 대법 표준에 도달하지 못한 수련생들은 옛적 수련 형식에서도얕잡아 보는 수련자들로 그것들은절대적으로 혹독하게 박해하고 추호의 여지도 없으며 전혀 당신이 수련 성취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그것들은 이렇게 좋은 한 부의 고덕 대법을, 우주의 천지개벽에도 있어 본 적 없는 정법기회라고 여기는데 인간 세상의 대법제자들이 감히 소중히 여기지 않고 법의 요구에 따라 안을 향해 닦지 않고 심성을 제고하여 생명의 층차를 향상하지 않고 있으니 당신을 박해하지 않으면 누구를 박해하겠는가? 이다.

10여 년 수련 중에서 걸어온 길을 돌이켜보면, 우리가 대법에 들어와서 수련 초기에 인간 세상에서 병업, 번거로움, 곤란 혹은 모순에 부딪혔을 때 당신이 오로지 자신이 수련인임을 깨닫고 안을 향해 닦으면서 자신의 어디에 문제가 있는지를 찾기 시작하고 어떤 집착심이 있는지 등을 찾기 시작하면 아주 빨리 문제가 해결되는 것을 발견했다.

속인을 놓고 말하면 우리가 알기로는 모두 밖을 향해 민다. 예를 들어 회사에 두 사람이 모순이 발생하면 서로 간에 첨예하게 대립하고 다혈질인 젊은이는 심지어 주먹질 발길질을 한다. 앞에서 서로 싸우지 않더라도 배후에서 모함한다. 수련인으로서 이 시기에 안을 향해 자신을 수련해야 함을 생각할 수 있다면 내가 깨닫기엔 이는 생명이 본질에서 개변이 발생한 것이다. 왜 고대에는 수련자를 반신(半神)으로 여겼겠는가. 왜 우리를 신의 길을 걷는 대법제자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가능하게 모종의 각도에서 말하면 이 사람의 생명 본질에 변화가 발생했고 사유 방식에 개변이 발생했다. 밖으로 보고 밖으로 미는 데서 안을 향해 닦고 안을 향해 찾는 것으로 바뀌었고 생명의 도덕 품질이 제고하기 시작했기 때문에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몇 년을 수련하다 보면 층차가 제고됨에 따라 자신에 대한 요구가 높아진다. 수련 초기 때의 안을 향해 닦는 표준으로는 안 된다. 수련자를 놓고 말하면 그것은 너무나 옅고 표면적인 것에 불과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그 시기에 한차례 마난에 부딪혔는데 온 얼굴에 여드름(여드름이 필 나이가 일찍이 지나감)이 났고 여드름 위에 또 여드름이 나 피가 흘러서 농이 생겼다. 멀리서 보면 검은 기가 온 얼굴에 가득한 것이 매우 보기 싫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남들이 보면 마음이 섬뜩했지만 나는 아무 느낌이 없었고 아프지도 가렵지도 않았다.

가족들은 나에게 약을 사서 바르라고 했지만 내가 따르지 않자 약을 사서 나에게 가져다주었다. 내가 그래도 바르지 않자 가족들이 많이 걱정하면서 병원에 연락해 나를 억지로 끌고 갔다. 과정 중에 여러 차례 안을 향해 찾아도 해결되지 않았다. 매번 조금 나아지는 것 같다가 또 더욱 엄중해졌다.

나를 억지로 병원에 데려가자 비로소 신중하게 정면으로 이 문제를 마주했다. 어느 일요일 오전 9~10시부터 방에 조용히 앉아서 진지하게 안을 향해 자신을 찾고 닦기 시작했다.

어떻게 닦았는가? 조용히 돌이켜보니, 아침에 깨어나 의식이 있기 시작해서 자신의 일사일념 일언일행이 법에 부합되지 않는 곳이 있는지를 찾았다. 무릇 법에 부합되지 않으면 억제하고 청리했고 동시에 마음속으로 묵묵히 사부님께 잘못을 인정했다. 생명으로 하여금 법속에서 바로 잡히게 했다.

오늘 것을 찾고 또 어제 것을 찾아서 이렇게 행했다. 어제 아침에 깨어나서 의식이 시작되는 매 일사일념부터 시작했다. 아침 출근하여 동료와 고객 등과 접촉할 때의 매 일언일행이 법에 부합되지 않는 곳을 찾아보았다. 무릇 법에 부합되지 않은 것은 억제하고 청리했으며 동시에 사부님께 묵묵히 잘못을 인정하고 생명으로 하여금 법속에서 바로 잡히게 했다.

어제 것을 찾고 또 그제 것을 찾았고 바로 이렇게 하루하루 밀고 나갔다. 5일, 10일, 15일, 두 달이 될 때 사람 전체가 이미 일종의 상태로 진입했는데 기타 아무 생각도 없어졌고 자신의 마난 문제를 해결하고 세간 모순을 해결하겠다는 생각도 없어졌다. 그 당시 안을 향해 자신을 닦으면서 일종 일념이 만념을 대체하는 상태에 진입했다. 오로지 자신의 일념을 순정하게 하자 기타 아무것도 없었다.바로 이렇게 순정하고 조용히 안을 향해 자신을 닦았다. 대략 오후 4, 5시에 가능하게 사부님께서는 내가 요구에 도달하고 표준에 부합한 것을 보신 듯했다. 갑자기 머릿속에서 한 가지 정황이 떠올랐는데 대략 2년 전에 가장 간고하고 고통스럽고 압력이 아주 클 때 우연히 일념을 움직였다. “이후에 환경이 느슨해지고 좋아지면 여행도 하자”이 생각도 몇 초의 시간으로 짧게 지나갔다. 그러나 이 일념은 구세력에게 틈을 타게 되었고 내가 그 당시 그 홀시 할 수 없는 마난을 조성했다. 나는 끝내 깨닫게 되었는데 정법시기 대법제자로서 우주 중생이 주목하는 초점으로서 이렇게 관건적 시각에 비할 바 없이 진귀한 한순간에 심신을 전부 조사정법행과 중생 구도에 투입하지 않고 반대로 안일한 염두를 움직이면 구세력은 자연히 가만두지 않는다.

이 모든 것이 명백해질 때 “쿵” 하더니 전신이 전율하고 탁 트여 마음속에서 문제가 해결되었음을 아주 명백히 알게 되었다.

과연 얼마 안 가서 대략 3일째 아침에 일어나서 샤워할 때 무의식 간에 거울을 보자 이상하게도 여드름이 사라지고 얼굴은 매끈했다. 주위 속인들은 모두 아주 신기하다고 여겼다. 왜냐하면, 사람의 경험과 관념에서 비록 약으로 치료하더라도 짤막한 며칠 동안 철저히 회복되기는 어렵다.

또 몇 년 지나서 나는 한 가지 일을 겪었는데 그 시기의 요구와는 또 달랐다. 주변에 한 수련생이 있었는데 안전에 주의하지 않았다. 어느 날 저녁 내 차를 몰고서 일을 하더니 결국 국안에게 발견되었다. 다음 날 아침부터 두 명의 사복경찰들이 암암리에 조사했다. 이 일을 나는 알아차렸다. 그는 관련 수련생과 자료점에 알려서 이전을 시켰다. 그들이 안전하게 이전한 후 그는 비로소 나에게 자세한 정황을 알려주었고 나더러 빨리 떠나라고 했다. 이 일은 또 나와 상관없으니 무고하게 박해당하지 말라고 했다.

그때 점심으로 기억된다. 거리에서 한 시간 넘게 돌아다니면서 갈 것인가 가지 않을 것인가를 선택했다. 만약 가지 않으면 국안은 관련인원들이 전부 사라진 것을 알고 승용차란 이 단서에서 시작하여 조사할 것이고 박해는 바로 다가온다. 가는 것을 선택한다면 바로 이렇게 떠돌아다녀야 하는데 정말 내키지 않는다. 1999년 7월 이후 환경이 크게 변했다. 주위에서 수련하지 않는 친척, 동료, 동창생과 친구들은 기본상 우리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고 우리가 이렇게 견지하는 것이 멍청하고 미래가 없어지고 명리 지위도 없어졌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심지어 가끔은 불쌍한 눈빛으로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주 큰 힘을 들여서 이런 부분들을 조금 조금씩 바로 잡아나갔고 세인들에게 대법 진상을 알게 했다. 만약 이렇게 집을 떠나 떠돌아다니면 이런 노력은 헛된 것이 아닌가. 세인들로 하여금 정면에서 대법을 인식하게 하고 구도 되게 해야 하는데 이런 시간과 기연이 또 얼마나 있을까? 바로 머뭇거리고 있을 때 머릿속에는 대법제자에게 우연히 발생하는 일이 없다는 것이 생각났다. 무슨 일이 발생해도 안을 향해 자신을 찾아야 한다. 반드시 자신의 문제 혹은 제고해야 할 원인이 이 속에 있는 것이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평온한 상태로 앉아서 조용히 안을 향해 찾았다. 대략 11시쯤 먼저 집착심을 찾았다. 명리심, 과시심, 색욕심, 자아, 의심, 질투심…… 등등 20~30개 집착심이었다. 하나하나씩 찾아내어 자신한테 대조했고 내심에서부터 외부 표현까지 이런 문제를 한 시간 넘게 찾았다. 최근 수련상태가 아주 좋아서 약간의 옥같이 맑은 느낌을 발견했는데 이런 집착심이 없는 듯했었다.

이때 마음에 약간 번거로움이 났다. 박해를 생각하기만 하면 바로 집을 떠나 떠돌아다닐 길을 생각하면서 또 마음속으로는 내켜 하지 않았다. 마음을 굳게 먹고 진정하면서 계속 신사신법을 선택하고 또 앉아서 계속 안을 향해 찾았다. 당문화의 관념, 변이관념이 있는지를 찾았다. 또 한 시간 넘게 찾았지만, 여전히 발견하지 못했다.

마음속으로 또 번거로움이 올라왔고 박해 위험이 더 한걸음 가까이 다가왔음을 생각하니 앉아있지 못하고 가버리려고 했다. 그러나 다시 생각을 돌렸다. 사부님께서는 법에서 매우 명백하게 말씀하셨는데 당신이 해낼 수 있는지 없는지를 본다. 당신이 진짜로 신사신법 하는지를 본다. 하여 강제로 마음을 진정하고 또 계속 앉아서 안을 향해 찾았다.

집착심과 관념을 모두 찾아도 무엇을 발견하지 못했다. 각도를 바꿔서 사고했다. 수련생의 안전 문제가 가져온 겁난으로 동일한 문제에 나도 연루되어 들어갔다. 그것은 나 역시 안전에 대한 문제가 있음을 의미하지 않는가? 수련생이 안전에 주의하지 않았다면 나는 과도하게 안전에 주의한 것이 아닌가?

이를 생각하자마자 “쿵” 하고 자신 신의 신체가 끊임없이 팽창하고 커지고 높아지는 것을 보았다. 층차가 자연히 제고되었고 한 바퀴 한 바퀴 황금색 빛발이 파문처럼 밖으로 발산되었다. 주위에서 몰려오는 검은 색 사악한 생명이 황금색 빛발에 쓰러져 나갔고 순식간에 소훼되고 제거되었다.

마음은 비할 바 없이 차분하고 비할 바 없이 당당했으며 이번 겁난이 사라지고 아무 일도 발생하지 않을 것을 알았다. 나는 집에 돌아가서 출근했다. 과연 이 며칠 동안 국안의 사복경찰은 더는 나타나지 않았고 모든 조사가 영문도 모르게 멈췄다. 이 일은 발생하지 않은 듯했다. 한동안 지나서 일체는 아무 일 없는 것처럼 평온했다. 집을 떠나 떠돌아다니는 수련생들도 전부 집에 돌아왔고 일체는 정상으로 돌아왔다.

나는 명백해졌다. 수련생은 안전에 주의하지 않아서 겁난을 불러왔고 나는 세간의 안전에 주의해서 무고하게 연루되었다. 정법시기 대법제자의 표준에 부합되었고 이런 정황에서 안을 향해 자신을 찾고 관건 문제를 인식했기 때문에 고층차로 승화한 것이다. 세간에서 안전에 주의해야 한다는 의식은 맞다. 그러나 더욱 고층차 고경지를 놓고 말하면 사상 역시 물질인바 심하게 생각하면 생명의 물질이 과부하가 되는 것이며 층차의 제고와 승화에도 제한을 주게 된다.

무고하게 연루되었을 때 밖으로 밀고 원망하고 질책하지 말아야 하고 또 수련생 안전을 엄호하는 동시에 안을 향해 자신을 닦아야 한다. 가장 관건적인 것은 박해받고 위험이 있는 번거로움 속에서 사상을 법에 고정하고 마음을 법에 고정하고 반드시 일정한 정도로 고정해놔야 한다!

또 몇 년이 지나고 수련은 또 새로운 한 단계에 진입했다. 그 당시 일부 수련생들과 협조하여 어느 방면으로 추진하고 있었는데 사부님을 도와 세간 행을 하는 작용을 일으켰다. 수련이 성숙되지 않고 지혜가 없어서 전반 일이 구세력에 의해 심하게 교란받았다. 수련생 사이에 격렬한 파동이 일어났고 모순이 아주 크고 간격이 매우 심했다.

과정 중에서 심성을 지키자 사태가 점차 완화되었다. 아마도 격려일 수 있었는데 그 시기 한 가지 정경을 보았다. 다른 공간에서 나의 ‘마음’은 활활 타오르는 불에 태워졌다. 수련생 사이의 소문, 거짓말, 질책, 조소, 부당한 의논 등은 검은 물질을 형성하여 사면팔방으로 날아와서 연소되는 연료가 되었다. 전반 과정 중에 심성을 지키고 마음을 움직이지 않아서 그 ‘마음’은 활활 타오르는 큰불에 태워져 갈수록 밝아졌다. 갈수록 금빛 찬란해졌다. 나에게 이는 ‘홍진연심(红尘炼心)’이라고 알려주었다.

더욱이 정체를 위해 생각해야 하고 이해하지 못하는 상대방 수련생을 포함해서 생각해야 한다. 이와 동시에 다른 한 정경이 펼쳐지면서 나를 격려해주었다. 그 당시 원추형 법보가 나의 가슴 앞에 놓여 있었고 뾰족한 끝은 가슴을 향했는데 다시 말해서 ‘마음’ 그곳이었다. 이 법보가 바로 ‘안을 향해 닦음’이었다. 내가 진정으로 마음을 입정하고 안을 향해 찾을 때 주의식은 즉시 강대해졌고 아울러 한 가닥 의식을 나눠서 법보의 동그란 그 끝에 들어갔다. 원추형 법보를 통제하여 신체 내 바로 ‘마음’을 향해 힘껏 뚫었다. 그 장면은 마치 광석을 캐는 광부가 전동기를 들고 동굴 벽을 힘껏 뚫는 것과 같았다. 나의 가슴 앞(마음 앞)의 한층 한 층 단단한 물질들이 막고 있었는데 이 원추형 법보는 끊임없이 뚫어버리고 소훼시키고 산산조각을 냈다. 모든 단단한 물질을 꿰뚫었을 때가 바로 ‘마음’의 가장 깊은 곳에 다달았고 그곳은 온통 밝고 지극히 아름다운 공간이었다.

나는 즉시 명백해졌다. 그 한층 한 층 가슴 앞(마음 앞)을 가로막고 있던 단단한 물질, 사실은 바로 집착심이 다른 공간에서의 표현이다. 한 개 한 개의 집착심은 바로 한층 한 층의 단단한 물질이고 동시에 하나의 집착심은 바로 매우 많고 매우 많은 층으로 형성되어 있었고 이런 부동한 층의 부동한 집착심들은 각각 교차되고 중첩되어서 가슴 앞(마음 앞)을 가로막고 있었으며 강대하고 견고한 병풍을 형성하고 있었다.

이 강대하고 견고한 병풍은 얼마나 두꺼운가? 이전에 도가는 늘 인체를 하나의 소우주라고 보았다. 만약 인체가 정말로 하나의 소우주라면 이 병풍은 아마도 10만8천 리도 더 될 것이다.

‘안을 향해 닦음’은 한 가지 법보인데 변화할 수 있었다. 그 시기에는 원추형이었고 사실 또 기타 형상으로 변할 수 있고 아울러 그 본신도 하나의 생명인데 아주 순진하고 놀기를 좋아한다. 대법제자가 정진하여 안을 향해 닦을 때 나는 그가 그렇게 흥분해서 힘을 쓰는 것을 발견했다. 마치 가득 충전한 것처럼 앞으로 회전했고 특히 어느 한 층의 단단한 물질을 통과하여 가장 깊은 곳의 그 아름다운 공간에 다다랐을 때 에너지는 사방으로 흘러넘쳐서 나는 듯이 회전했다. 그러나 대법제자가 안을 향해 찾지 않고 표면에 그치고 마음을 먹고 진정으로 안을 향해 자신을 닦지 않으면 그가 게으름을 피우고 빈둥빈둥하는 것을 발견했다. 뜻은 당신마저도 힘을 주지 않는데 나는 당신을 대신해 일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안을 향해 닦는’ 이 법보는 평소에 당신 가슴 앞(마음 앞)에 바로 놓여 있고 움직이지 않는데 그는 수련자의 의식에 따라 움직인다. 수련자가 모순 혹은 마난에 부딪혀서 만약 즉시 안을 향해 자신의 사상의식을 닦는다면 그것은 수련자 주의식이 청성해지고 강대해짐을 설명한다. 그 한 가닥 의식은 안을 향해 닦는 이 법보를 통제하고 이 법보의 주체 의식이 된다. 안을 향해서 집착으로 형성된 단단한 물질을 뚫는다. 수련자에게 얼마나 큰 의식 에너지가 있으면 안을 향해 닦는 이 법보의 동력은 얼마나 강하고 얼마나 깊이 뚫거나 심지어 완전히 그 한 층의 단단한 물질을 뚫어버린다. 내가 사부님 경문 ‘감개’ 중 ‘진념(眞念)이 온 하늘을 용해하여 맑구나!’ 이 한마디를 배울 때 또 유사한 그러한 상태를 느낄 수 있었다.

법속에서 우리는 사부님께서 대법제자를 위해 매우 많은 것을 하셨음을 알고 있다. 대법제자 신체 속에 아주 많은 종자, 기능과 기제를 심어주셨다. 나는 안을 향해 닦는 것 역시 그 중의 일종 기제임을 깨달았다.

정법시기의 대법제자를 놓고 말하면 사부님의 각도에 서서, 대법의 각도로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깨달았다. 정체를 위해 생각해야 비로소 ‘무사무아, 선타후아’의 상태에 도달할 수 있다.

문장발표: 2016년 2월 8일
문장분류: 수련마당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6/2/8/3235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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