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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마음으로 수련을 대하면 수련하지 못한다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정법이 진행됨에 따라 사람 가운데서의 직관적 표현이 갈수록 뚜렷해지고 있다. 몇 가지 오래된 문제가 또 다시 새로운 내용으로 객관적으로 드러났는데 먼저 이 몇 가지 문제를 나의 현 층차에서의 조그마한 인식으로 수련생들과 교류하려 한다.

NTD 스타오 평론에 대한 집착

어떤 수련생은 스타오(石濤)의 평론에 아주 흥미를 느끼면서 수련생 가운데서 입만 열면 스타오가 어떻게 말했다고 한다. 어떤 수련생은 스타오 평론을 보지 못하면 마치 뭔가 모자라는 듯 여기며 또 서로 전한다. 스타오가 또 무엇을 말했다며 또 무슨 일이 생기려 한다는 등등으로 자신을 과시하면서 남을 교란한다. 그 마음은 온종일 속인사회 형세를 따라 파동친다.

내가 이해한 것으로는 NTD는 속인사회를 향한 것이지 대법제자에게 보여주려 하는 것이 아니며, 청중의 주체는 속인이고 진상을 알려 사람을 구하는데 쓰는 것이다. 그는 속인의 기초에 서서 속인을 도와 형세를 분석하고 현상을 분석해 주며, 중국사회 문제의 본질을 분명히 보아내도록 도와주고, 대법을 발양하고 진상을 전파하며, 중국공산당의 본질과 선량한 민중을 박해한 범죄를 폭로함으로써 민중을 인도해 중국공산당을 분명히 인식하게 하는 것으로, 스스로 구도하게 하려는 것이다. 대법제자 역시 볼 수 있고 본 것으로 진상을 알려 사람을 구하는데 쓸 수 있다. 하지만 수련인은 여기에다 마음을 쓰지 말아야 한다. 당신의 사상 속에 늘 이런 사람의 것을 궁리한다면 그것은 수련 중의 교란 아닌가? 엄중하게 말하면 그것은 사람을 연마하는 것이 아닌가?

스타오, 그들은 확실히 아주 잘 말한다. 문제를 봄에 관점이 선명하고 아주 심도가 있다. 하지만 그것은 모두 사람에게 말해주는 것이고 사람의 이치로 인류의 보편적인 가치로 사람의 양심과 선념을 인도하는 것이지 수련인을 인도하는 것이 아니다. 수련인은 우주 대법으로 지도하는데 어찌 사람의 고만한 것에 흥미를 느낄 수 있겠는가? 이건 사람마음을 내려놓지 못한 것이 아닌가? 사람 마음으로 수련을 대하면 수련 성취할 수 있겠는가?

또 있는데 당신이 수구(修口)하지 않고 수련생 가운데서 이렇게 보태고 저렇게 보태서 말하기 때문에 기타 수련생도 이것에 집착하게 만들어 수련생이 하고 있는 세 가지 일을 영향 주게 되는데 그 업은 작은 것이 아니니 그럼 당신의 수련에 얼마나 큰 난을 증가해줄 것인가. 수련은 엄숙한 것이며 수련 중에는 작은 일이 없다. 내가 그렇게 말했다고 해서 별 문제가 아니라고 여기지 말라, 구세력은 이렇게 보지 않는다. 그것들은 지금 엄격하게 대법으로 당신을 가늠하고 있다. 당신이 사람마음으로 문제를 보고 또 주위 수련생을 오염시키고 있는데 당신이 말해보라, 그것들이 당신에게 번거로움을 가져다주지 않겠는가? 수련생에게 성가심을 더하지 않겠는가? 위험하지 않은가?

2. 누구에게 집착하면 또 그를 잡아갈 준비를 한다

어떤 수련생은 마음을 속인사회의 형세 변화를 관심하는데 쏟고 있다. 정법 수련이 오늘에 이르러 인간세상의 매 한 걸음 변화마다 모두 신이 사람을 구하기 위해 구체적으로 안배한 것이다. 형세의 발전을 우리는 보았고 중생도 보았다. 우리에게 보게 한 것은 서두르고 또 서둘러 될수록 아무 때든 모두 갑자기 닥쳐올 종결 전에 몇 사람이라도 더 많이 탈퇴시키라고 독촉하는 것이지 우리에게 보게 된 사회 현상 자체에 집착하라는 것이 아니다. 중생에게 보여준 것은 객관적인 현실 변화에 따라 더욱 많은 사람이 반성하도록 인도하고 중생을 추동해 진상을 접수하게 함으로서 각성해 구원 받게 하는 것이다.

대법은 중국공산당의 손에서 명예 회복을 받지는 못할 것이다. 그것은 중국공산당 자체가 바로 주범이기 때문이다. 오로지 해체 소멸되는 가운데서 죄악을 갚아야 할 뿐이다. 대법을 박해한 원흉은 최종적으로 심판대에 오를 것이지만 중국공산당의 명의로 그것을 잡아다 심판대에 보내지는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법은 크고 사람은 보잘것없이 작은데 악당은 더구나 비할 바도 못되기에 전혀 그런 작용을 일으키지 못한다.

3. 왜 장쩌민 고소 후 아직도 박해를 당하는가?

한 수련생은 말하기를 사부님께서는 “구세력은 이미 존재하지 않는다.”[1] 이런 말씀을 하셨는데 왜 아직도 장쩌민 고소 후 박해를 당하는가? 구세력은 어디에 있는가? 이에 대해 어떤 수련생은 몹시 곤혹스러워 하면서 지금 아직도 수련생이 붙잡히고 더욱이는 장쩌민 고소에 참가한 수련생이 붙잡히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이는 사람의 표면 현상에 서서 문제를 보는 것이며 장쩌민 고소를 한 가지 일로 대하고 법에 서서 인식하지 못한 것이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것으로는 “비록 구세력은 이미 존재하지 않지만, 그것들이 삼계 내에 배치한 것들이 아직 작용을 발휘하고 있다. 그렇다면 다시 말해서, 비록 사악이 아주 적어졌고, 현재 전반 세인들도 모두 급속하게 각성하고 있지만, 사악은 여전히 단념하지 않고 있다. 그럼 이때 사악이 최후로 철저하게 제거되기 전에 그것은 여전히 작용을 일으킬 것이며, 그것들은 여전히 그렇게 사악한데, 다만 그것의 역량이 작아졌을 뿐이며 그것들이 악을 행할 수 있는 곳이 적어졌을 뿐이다.”[1] 내가 이해한 바로는 만약 자신이 수련을 잘하지 못하면 당신 공간장에는 여전히 구세력이 있는 것이고, 당신의 사유 방식, 집착심, 사람의 관념, 사상업이 바로 구세력이 배치한 것이며, 그들 배후에는 바로 구세력의 요소가 숨어있는 것이다. 당신의 그 집착심을 억누르지 못하면 그건 바로 그 배후의 구세력 요소가 작용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당신이 장기적으로 버리지 못한 그 집착, 문제, 더욱이는 각종 집착심(더욱이 색욕심, 쟁투심, 증오심, 자식 정, 이익에 대한 마음, 과시심)을 장시기 버리지 않거나 혹은 질질 끌거나 혹은 소도의 것에 집착하거나 착실히 수련하지 않으면서 또 다른 수련생을 교란하거나, 심지어 어떤 사람에게는 난법하는 문제, 불이법문 문제, 공능에 집착하는 문제 등등이 있는데 이런 사람마음은 모두 구세력이 멀고 먼 연대에 배치한 것을 오늘 당신을 이용해 발휘하고 있는 것이며, 그것은 모두 구세력의 일부분으로서 당신이 대법에 따라 확고부동하게 착실히 수련하여 그것들을 닦아버리지 않고, 알게 모르게 그것들을 방임한다면 그것이 바로 구세력의 배치에 따라 가는 것이 아닌가? 그것은 당연히 당신을 관할할 것이고 교란하고 박해할 것이다.

어떤 사람은 장쩌민 고소 후 박해당한 것으로 표현되는데 실은 그렇지 않다. 그것은 그의 장시기 버리지 않은 그 사람마음 및 하는 일이 법에 있지 않아 구세력에게 꼬리를 잡혀 박해 당한 것인데, 다만 구세력은 장쩌민 고소를 빌미로 했을 뿐이다. 진수(眞修), 실수(實修)하는 그런 사람, 사부님 요구대로 세 가지 일을 잘하고, 날마다 사람을 구하고 있는 수련생을 누가 감히 건드리는가? 대법에 따라 자신을 착실히 수련하고 중생을 위해 확고하게 장쩌민을 고소한 수련생을 누가 감히 건드리는가?

장쩌민을 고소할 수 있는 것은 아주 대단한 일이다. 이 문제에서 당신은 사부님 말씀을 들은 것이다. 하지만 기타 방면에서도 모두 사람과 결렬했다는 것을 대표하지는 않는다. 구세력이 당신을 교란 파괴할 때는 당신이 어느 방면을 잘했는지 상관하지 않고 그것은 당신이 아직도 어느 방면에서 그것에게 부합하는지 전문 본다. 그것의 배치에 부합되고 당신에게서 그것에게 부합되는 곳, 그것이 인정하는 곳을 찾아내면 그것들은 곧 손을 쓴다.

우리 여기에 이런 수련생이 있는데, 표현상에서는 장쩌민을 고소한 후 구세력에게 박해 당해 어떤 사람은 인피가 끌려갔고, 어떤 사람은 박해를 당해 병원에 입원했으며, 어떤 수련생은 사악한 경찰에 납치되고 가택 수색을 당했다. 그들 중 어떤 수련생은 대법의 것이 아닌 것을 전했고 집착이 있는 자신의 고만한 공능을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보여 주며, 작은 공능이 있는 사람을 우상으로 받들고 수련생의 수련을 교란하는 행위를 응원한다. 어떤 사람은 자신이 착실히 수련하지 않으면서 오히려 각 법공부 장을 다니면서 각종 소식을 퍼뜨리고 자신이 아는 것이 많고 아는 것이 높다고 과시하며, 또 어떤 이는 쟁투심, 증오심, 색욕심, 이익심을 장기적으로 버리지 못한 등등이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물론 우리 모든 대법제자가 모두 말하기를 우리는 구세력의 배치를 인정하지 않는다고 하는데, 그것은 입으로만 말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대법(大法)·정법(正法)의 요구에 따라 하는 것이며, 당신의 역사상에서 배치된 그 일체를 부정하는 것인바, 나는 너 구세력 자체를 포함해 모두 인정하지 않는다. 정념(正念)이 아주 충족하면 그것을 배척할 수 있으며, 그것의 배치를 부정할 수 있다.”[2]

그러므로 정법 수련의 길을 바르게 걸으려면 반드시 일사일념, 일언일행 중에서 대법에 비추어 자신을 엄격하게 수련해 마음을 세 가지 일을 잘 하는데 써야만 비로소 구세력을 전면 부정할 수 있고, 비로소 사람마음으로부터 걸어나올 수 있으며, 구세력의 배치로부터 걸어나올 수 있고, 비로소 승화할 수 있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당신들은 혹독한 시련을 거쳐 걸어온 것으로 절대 마음이 바람만 불면 따라서 흔들리는 부평(浮萍)처럼 되지 말아야 한다.” [3] “수련은 엄숙한 것으로, 격차가 벌어지는 것이 갈수록 크다. 수련 중에 사람의 어떠한 것을 섞든지 모두 극히 위험하다. [4]

우리 사부님 설법에 따라 시시각각 각성을 높여 자신을 실수, 진수하자.

개인의 조그마한 인식으로서 타당하지 못한 곳은 수련생께서 자비로 지적해주시기 바란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각지 설법4-2004년 시카고법회 설법’

[2] 리훙쯔 사부님 저작: ‘각지 설법2-2002년 미국필라델피아 설법’

[3] 리훙쯔 사부님 저작: ‘정진요지3-소설 창우겁에 관하여’

[4] 리훙쯔 사부님 저작: ‘정진요지-뿌리를 캐다’

문장발표: 2016년 2월 7일
문장분류: 수련마당>정법수련마당>이성인식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6/2/7/323583.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