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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하는 의지를 느슨히 하지 말자

글/ 대륙대법제자

[밍후이왕] 한동안 수련생들과 교류하는 중에 우리는 부동한 정도에서 느슨해지는 상태가 나타난 것을 발견했다. 일부는 심지어 사업이나, 남녀지정 속에 빠져서 헤어 나오지 못했다. 나는 마음속으로 무척 고통스러워 사부님의 점화를 바랐다. 이는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 소침한 상태에 처한 수련생을 도와주려는 생각 때문이었다.

사부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왜냐하면 인류사회는 바로 고난(苦難)과 이익의 향수(享受)가 병행하는 세계이며, 당신이 아무리 돈이 많고, 어떠한 사회계층에 있든지 간에 인생은 바로 많은 고난이 있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고통은 사람으로 하여금 고달프게 하기 때문에, 그리하여 사람은 자각적이든 비자각적이든 고난에 대항하는데, 목적은 좀 행복하게 살려는 데 있다. 그러므로 행복을 추구하는 중에서 사람은 어떻게 하면 자신이 피해(傷害)를 받지 않고 어떻게 잘 살며 어떻게 해야만 비로소 사회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공명을 성취하며 어떻게 더 많은 것을 얻고 어떻게 강자가 되겠는가 하는 등등이 형성될 수 있다. 이 때문에 이런 경험이 있는 동시에 또한 인생의 관념이 형성되었고 경험은 또 실천 중에서 관념으로 하여금 완고(頑固)하게 변하도록 하였다.”[1] 십여 년간의 박해는 수련생으로 하여금 너무나 많은 고통을 감당하게 했다. 고난에 대항하는 관념은 소침해하는 원인 중의 한가지이다.

사부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사실 인류사회의 이치는 우주의 이치와 반대이다. 사람이 난(難)이 있고 고통이 있는 것은 사람에게 업을 갚게 하여 행복한 미래가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그렇다면 수련하는 사람은 바른 이치(正理)에 따라 수련해야 한다. 고생을 겪고 난을 당하는 것은 업력을 제거하고 죄를 없애 버리며 인체를 정화(淨化)하고 사상경지를 제고하며 층차를 승화시키는 아주 좋은 기회로서, 이는 대단히 좋은 일이며 이것이 바른 법리(正法理)이다.”[1] 사부님의 법리에서 이렇게 투철하게 말씀하셨는데 왜 고난에 대항하는 관념이 여전히 이렇게 완고한가? 나는 기점이라고 깨달았다. 사부님께서는 구우주의 기점이 위사위아 라고 하셨다. 그러나 우리가 성취해야 할 것은 무사무아 선타후아의 정각(正覺)이다. 위사의 기점은 우리로 하여금 법리를 들었어도 자신이 얻고자 하는 것은 포기하지 않으려고 한다.

사부님의 점화 하에서 나는 사상의 본원에서 시작하여 기점을 전변시켰더니 일체가 달라지는 것을 발견했다. 모든 일체는 본질적 변화가 발생했다. 마음속에서는 더는 고통스러운 감당과 오랫동안의 피로감이 있는 것이 아니라 자비와 희열로 충만 되었다. 예전엔 질투, 안일함을 구하는 것, 원한, 명리에 대한 집착 등이 나를 곤혹스럽게 했지만 곧바로 생존하려는 기초적인 생각을 버린 후 미시적인 데에서 해체되었다. 집착의 표면적인 표현도 구름처럼 사라졌다. 내가 또 세 가지 일을 하려고 할 때 연공하는 것과 같이 완전히 기제에 따라 행하는 것이 되었고 전부는 법속에서 용해되고 신성하고 자비한 것이었다.

내가《전법륜》을 다시 펼쳤을 때 마치 참신하고 아름다운 우주 세계로 들어간 것 같았다. 법 공부 중에서 참신한 법리가 끊임없이 펼쳐져 나왔고 예전에 법공부할 때 깨달은 법리가 거의 전부 변했다. 사부님의 점화 하에서 나는 신우주로 연화된 운행기제를 보았고 사부님께서는 신우주가 더 이상 멸(滅)이 없다고 하셨다. 왜 이런가? 나는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버려야 한다고 알려주셨고 우리에게 안을 향해 찾아야 한다고 알려주셨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일체 이기적인 염두를 포기할 수 있어야 비로소 돌아갈 수 있고 비로소 멸(滅)로 나아가지 않는다. 만약 구 우주의 위사위아의 기점에서는 절대적으로 이 한 점을 해낼 수 없다. 오로지 무사무아, 선타후아의 정각에서야 만이 비로소 진정으로 안을 향해 찾는 중에서 일체 불순함을 제거하고 생명으로 회귀해야만 도달할 수 있으며 영원한 불멸불파에 도달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의 수련은 절대로 개인의 원만 혹은 자신이 소재하고 있는 천체 생명의 구도에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진정으로 법을 실증하고 신우주의 원용불파의 기제를 실천해야 한다.

나의 수련상태는 늘 좋다가도 나쁘고 사부님의 신경문을 보거나 혹은 특별히 정진하는 수련생을 보면 한동안 좋아졌다가 며칠 견지하지 못한다. 또 느슨해지고 뼈를 깎는 고통으로 안을 향해 찾는 것을 겪고 나는 자신의 사상 깊은 곳의 구하고자 하는 마음을 보았다. 원만을 구하고, 해탈을 구했다. 개인의 깨달음은,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이 한 갈래 신성한 정법수련의 길을 배치하셨고 100미터 달리기가 아니고 진선인 대법의 이끌림 하에서 자연스럽게 운행하는 것 일체를 원용시켜야 하는 것이다. 개인해탈을 목적으로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사부님께서 요구하는 세 가지 일을 잘 하는 것이다.

자비하시고 위대하신 사부님께 감사드리고 제가 이 글을 써낼 수 있도록 점화해주시고 가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제자는 부끄러운 이 한 점의 작은 심득을 써내어 여러 수련생들과 함께 공유하고자 합니다. 허스

주:

[1] 리훙쯔사부님 저작:《정진요지3》〈최후일수록 더욱 정진해야 한다.〉

문장발표: 2016년 1월 14일
문장분류: 수련마당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6/1/14/322200.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