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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시심을 닦아버린 심득체험

글/ 해외 대법제자

줄곧 자신에게 과시심이 있고, 어떤 땐 좀 의식할 수 있었음에도 많은 때에는 자연히 습관이 되어 전혀 느끼지 못하였다. 최근 들어 늘 수련생의 칭찬을 듣게 되면서 과시심은 갈수록 부풀어 올랐다. 사부님께서는 내가 깨닫지 못하는 것을 보시고는 여러 번 꿈에 점화하셨는데 더욱이 최근의 꿈 장면에 나는 놀랐다.

4년 전, 내가 RTC 플랫폼에 막 올랐을 때, 나의 과시심을 일게 하는 몇 차례의 고험이 발생했다. 한 수련생이 슬그머니 말했다. “당신은 방송을 했나요? 목소리가 아주 좋은데요,” 나는 대답을 하지는 않았지만 속으로는 흐뭇했다. 중국 중생에게 진상 전화를 걸 때면 내 목소리가 듣기 좋다고 칭찬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수련생과 인터넷으로 통화할 때면 수련생의 남편마저도 목소리가 듣기 좋다고 칭찬했고, 후에는 사부님께 보내는 새해 축사를 녹음할 때도 수련생의 딸은 나의 목소리가 아나운서 같다고 했다.

매번 이런 칭찬을 들을 때 사부님의 말씀, ”한 수련자로서 속인 중에서 만나는 일체 고뇌는 다 고비를 넘는 것이고, 만나는 일체 찬양(讚揚)은 다 고험이다.” [1], 를 생각하긴 했지만 속으로는 그래도 아주 기분이 좋았다. 충분한 중시를 일지 못했기 때문에 마가 나의 과시심을 확대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나를 칭찬하니 나의 목소리는 확실히 아주 듣기 좋은가 보다, 속으로는 생각할수록 흐뭇했다. 후에 한동안 이 과시심의 작용으로 해서 플랫폼에서 단체 법 공부를 할 때면 나는 법을 읽는데 유달리 주의했고 발음이 정확하고 목소리를 예쁘게 내면서 주의력을 어음 어조에 올인하고 법의 내포를 깨닫는 것은 홀시했다. 아주 오래 지나서야 서서히 이 심각한 문제를 인식하게 되었다.

나의 과시심은 사실 기타 방면에서도 아주 심각하게 나타났지만 전 몇 년 동안은 의식하지 못했다. 그래서 사부님께서는 늘 꿈에 점화해 주셨다. 최근 이 몇 년, 나는 늘 비슷한 꿈을 꿨다. 약 4, 5년 전, 꿈속에서 나는 지면에서 2, 30cm 높은 풀밭에서 날고 있었는데 꿈속에서의 나는 늘 남이 나를 봤으면 하고 생각했다. 후에 꿈속의 나는 좀 더 높이 날 수 있었는데 2m는 날 수 있었다. 그때도 늘 내가 나는 걸 사람들이 봤으면 했다. 또 더 후에 나는 나무를 날아 넘을 수 있었다. 내가 날 때, 나는 땅 위의 사람을 볼 수 있었다. 속으로, ‘어서 나를 보세요, 나는 날고 있어요,’ 하고 생각하면서 그들의 부러워하는 눈길을 바라고, 그들이 칭찬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기를 바랐다. 하지만 그들은 좀처럼 머리를 들고 나를 바라보려 하지 않았다. 꿈속의 나는 몹시 실망했다.

매번 꿈을 꾸고 나서는 그저 나에게 과시심이 있다는 생각만 했을 뿐, 일사 일념에서 찾아보지 않았다. 일 년 전, 나는 또 꿈을 꿨는데 이 꿈은 오늘까지도 아주 선명하다. 꿈에, 나와 거의 아무런 연락도 없는 수련생이 나에게 말했다. “당신이 한 매 한 가지 일, 말하는 매 한마디 말에는 모두 과시심이 있어요.” 그리고 또 다른 수련생이 말했다. “난 당신이 싫어요!”

이 꿈은 나의 깊은 사색을 불러일으켰고 또한 나를 깨어나게 하기도 했다. 이렇게 여러 해 동안, 자신은 과시심, 이 문제에서 수련을 잘하지 못하여 말 마디마디 모두 수련생들에게 과시심으로 들리게 하는 데로 발전했다. 하여 나는 자신의 일사 일념을 진지하게 대하면서 자신을 귀정하기 시작했다. 나 지금의 인식으로 내가 의식하건대, 내가 가장 쉽게 과시심이 나올 때의 주요 표현으로는 조그마한 좋은 일을 하고는 늘 자랑하고 과시하는 것이다.

예를 든다면: 진상 장소에서 서명할 때, 나는 영문이 괜찮아 어떤 땐 좀 많이 서명받는다. 한번은 나의 과시심이 치밀었다. “보세요, 서명을 아주 많이 받았어요.” 틀렸다는 것을 의식하고는 이 과시심을 억지로 눌러 버렸다. 즉각, 나는 다른 두 수련생의 과시심을 현장에서 보게 되었다. 한 남자수련생이 자기 상사가 “생체 장기 적출 서명지에 서명하자 그는 흥분해서 수련생 앞에서 말했다. “ 나는 나의 상사를 서명시켰다. 나의 상사가 방금 서명했다.” 잠시 후 또 여자수련생이 다른 수련생 앞에서 자랑했다. 얼마 전에 옷을 샀는데 어떠어떠하게 예쁘다고 하고는 또 나에게 말했다. “자기 지금 입은 옷보다 더 예뻐!”

나는 그녀가 자기를 자랑하는 그 눈길을 보면서 자신을 생각해 보았다. 비록 이 두 수련생처럼 그렇게 노골적이진 않았지만 내심에 표현됐다. 나타났든 나타나지 않았든 모두 과시이다.

한동안 나는 임시로 양성반에 가서 초보자 양성을 하면서 시범으로 전화 한 통을 걸었다. 먼저 자신을 파룬궁 수련생이라고 말한 후 이어서 대법진상을 말했다. 그 초보자 수련생(그녀는 국외에 갓 왔고, 국내에서는 줄곧 진상을 했다)은 나에게 지적했다. 당신들은 국외에 있으니 국내 사람의 상황을 모른다. 파룬궁이란 말을 먼저 하지 말아야 한다. 만약 시작하자마자 자신은 파룬궁이라 하면 국내인은 겁이 나서 듣지 않는다, 마땅히 먼저 3퇴를 말하고 탈퇴한 다음 다시 말해야 한다.

나는 수련생이 자신의 관념을 가지고 말한다는 것을 알았지만 반박하지 않고 그녀에게 감사를 표시했다. 하지만 마음은 괴로웠다. 후에 생각해 보았다. 왜 오늘 초보 수련생에게 이렇게 가르침을 받았는가? 나에게 과시심이 있었고 마치 남보다 한 층 높은 것 같았다. 당신들은 나의 시범 전화를 들으러 왔고 나는 경험이 풍부하다는 것이다.

또 한 번은 플랫폼에서 한 아주머니가 진상을 아주 잘 말하는 것을 발견했다. 그러나 공개 장소에서 그녀는 아주 자신 없어 했다. 나는 그녀와 교류했는데 아주머니는 자신의 사람 마음을 돌파해야 할 필요를 의식했다. 며칠 후, 나는 아주머니가 전화할 때 뚜렷하게 힘 있고 신심이 강해진 것을 발견했다. 나는 그녀에게 보낼 메시지를 준비했다. “아주머니 당신은 이날 하시는 말씀이 힘 있었다는 것을 발견하셨어요?” 막 보내려 하다가 나는 나의 과시심을 의식했다. 왜냐하면, 아주머니는 나와 교류한 후 개변됐기 때문에 여전히 나의 공로였다. 하여 나는 메시지를 꺼 버렸다.

이밖에, 나는 또 나의 과시심이 기타 방면에서도 표현되고 있음을 발견했다. 말을 빼앗아 하고, 남의 말을 잘 끊어버리며, 개인 견해를 발표하기 좋아했다.

이상은 최근의 과시심에 대한 조금의 깨달음을 수련생과 교류하였다.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경문:‘정진요지-수련자는 그중에 있다’

문장발표 : 2016년 1월 8일
문장분류 : 수련마당>정법수련원지>수련체득
원문위치 :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6/1/8/32190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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