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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립된 시골의 한 노인 수련생에 대한 이야기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우리 이곳 시골 마을에는 88살 된 노인 수련생이 있는데 수련생들 모두 그를 친근감 있게 할아버지라고 부른다. 18년 동안, 할아버지 주변에는 수련생이 한 명도 없었다. 도시에서 오는 수련생도 거의 없었지만, 할아버지는 그저 사부님에 대한 믿음으로 오늘까지 걸어왔다.

며칠 전, 나는 이 할아버지를 만난 인연으로 그의 소소한 이야기를 기록하게 되었다.

할아버지는 1996년 뇌 혈전에 걸려 후유증을 앓고 있었다. 1997년 할아버지가 사는 마을에 몇 명의 파룬궁 수련생이 홍법하러 왔다. 대번에 마을이 들썩였고, 누군가 할아버지에게도 이 소식을 전했을 때 할아버지는 물었다. “파룬궁이 뭐야?” 파룬궁 수련생은 홍법 장소를 대대 당서기 집으로 정하고 매일 당서기 집에서 사부님 설법 강의 비디오를 방영했다.

할아버지는 그 당시 70세였고 반신불수라 걸음이 불편했지만, 9일 강의를 하루도 빠짐없이 들었다. 매번 비디오를 방영할 때마다 할아버지는 잠을 잤다. 파룬궁 수련생은 할아버지에게 “틀림없이 할아버지 머리에 병이 있어서 우리 사부님께서 조정해 드리고 있어요,”라고 알려 주었다.

며칠 후 할아버지는 혼자 힘으로 자전거를 밀고 걸을 수 있었는데, 자리에 누운 지 반년만이었다. 그는 이 공법은 병을 치료할 뿐만 아니라, 좋은 사람으로 되라고 가르치니 아주 좋다면서 자신도 파룬궁을 연마하겠다고 했다.

홍법하러 온 파룬궁 수련생에게서 할아버지는 진지하게 연공 동작을 배웠다. 그렇게 연공을 배운 지 십여 일 후 할아버지의 병은 완쾌되어 길을 걸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자전거도 마음대로 탈 수 있었다.

지금도 90세에 가까운 할아버지는 날씨가 좋고 길이 미끄럽지 않을 땐 자전거를 탄다.

할아버지는 글은 몰랐지만 ‘전법륜’을 모셨는데, 그 책을 보배라고 여겼다. 그는 또 사부님 법상을 모시고 날마다 정성스럽게 향을 피워 올린다.

99년도 이전에 마을에서는 30여 명이 대법을 연마했는데 기회만 되면 함께 모여서 법 공부를 했고 도시 수련생도 가끔 들리곤 했다. 그 때문에 할아버지는 몇 글자 알지 못했지만 다른 수련생이 법을 읽는 걸 들을 수 있었다. 99년 박해가 시작된 후, 상급의 압력으로 법을 얻었던 마을 사람들은 대법 책을 속속 바쳤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바치지 않고 책과 사부님 법상을 감추었다. 외부 환경이 변하고 압력이 커지자 마을에서 연마하는 사람이 없었지만, 할아버지는 밤이 되면 연공을 했다.

시간이 길어지자 마을 사람들은 할아버지가 여전히 연마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18년간 할아버지 스스로 잘 짜놓은 시간표가 있었다.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 5장 공법을 연공했는데, 여태껏 게으름을 피우지 않았다. 그런 다음 앉아서 사부님 설법을 1시간 남짓 들었다. 그는 연공과 설법 모두 아주 진지하게 들으면서 잠시도 정신을 딴 데 팔지 않았다.

18년간 할아버지는 수련생을 만나지 못했다. 그와 연락이 닿았던 수련생은 대법이 박해당한 후 잡히지 않으면 떠돌이 생활을 하는 바람에 할아버지와 다시 만나기까지 몇 년이란 시간이 걸렸다. 수련생이 올 때 사부님의 새 설법을 가져가 드리면 할아버지는 몹시 기뻐했다. 몇 글자 알지 못해도 그는 그래도 보려고 했고, 사부님 설법을 받쳐 들고 몇 글자 알면 몇 글자를 보았다. 비록 구절이 이어지지 않아도 그래도 보려고 했다. 그는 이것은 사부님께서 주신 보배임을 알기에 알아보지 못한다 해도 역시 보배로 여기고 감추어 두었다.

매번 수련생이 총총히 왔다가 총총히 갔으므로 할아버지의 연공 모습을 보지 못했다. 이번에 온 우리는 날이 너무 저물어 묵게 되었다. 아침에 일어나 함께 연공하면서 우리는 할아버지의 연공 동작이 모두 표준이 아님을 발견했다. 할아버지의 동작을 바로잡아 주려고 한 번 또 한 번 불렀으나 대답도 하지 않고 눈도 뜨지 않아 손으로 만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할아버지는 눈을 뜨고 진지하게 말하는 것이었다. “사부님께서는 연공은 눈을 감고 하라고 하셨네.” 진지하게 말하는 할아버지의 태도가 천진한 아이 같아서 우리는 모두 웃었다. 우리가 동작을 하나하나 바로잡아 줄 때 할아버지는 기뻐하면서 말했다. “음, 기억했네. 이번엔 옳게 하게 됐네.”

할아버지는 가진 돈은 별로 없지만, 사부님께 향을 올리는 데 대해서는 아침에 한 번, 저녁에 한 번 하루도 빠지지 않고 청성하게 했다.

몇 년 전 한 수련생이 할아버지를 만나러 와서 텔레비전을 보면 오염되니 보지 말라고 알려 주었다. 그때부터 그는 더는 TV를 보지 않았고, 일기예보를 보고 싶으면 그것만 보고는 꺼버렸다. 할아버지 머릿속에는 아홉 개 글자, ‘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진선인은 좋습니다(法輪大法好、真善忍好)가 가득 차 있어 밤중의 잠꼬대도 모두 이 아홉 글자인 것을 우리는 아주 똑똑히 들었다. 그리고는 몸을 돌려 눕고는 깊이 잠드는 것이었다.

최근 2년간 도시 수련생이 할아버지에게 진상 자료를 보내 드리면 할아버지는 몹시 소중히 여겼다. 수련생이 간 후 할아버지는 날마다 진상자료를 지니고 마을에 나가 깨끗한 곳에 한 부를 놓고는 주변에서 맴돌다 누가 가져가는 것을 보고서야 자리를 뜨곤 했다.

할아버지는 아들딸이 있지만, 좀처럼 그들을 연루시키지 않았고 자식들 집에 가서 먹고 자지 않았으며, 누가 청해도 가지 않았다. 아들과 같은 뜰 안에 살지만 무슨 일이든 스스로 했고, 땔나무마저도 아들네 것은 사용하지 않고 날마다 직접 나가서 주었다. 며느리는 남들이 자기를 효성이 없다고 비웃을까 봐 어떤 땐 할아버지가 너무 인정이 없다고 원망하기도 했다.

할아버지의 생활은 아주 간단했고 고기도 드시지 않는다. 누가 만나러 가도 물건을 사 들고 다니지 못하게 했다. 얼마 전에 한 수련생이 그를 보러 갔을 때 여비라면서 40위안을 억지로 밀어주었다. 할아버지는 또 아주 깔끔해서 집 안팎을 깨끗이 정리하고 살았다. 마을에 살던 세 과부가 할아버지와 함께 살고 싶어 했는데, 한 할머니는 그의 방에 앉아서 나와 함께 살지 않겠느냐고 물었을 때 그는 말했다. “나는 이렇게 나이가 많은데, 내가 죽으면 고생할 것 아닌가?” 18년간 할아버지는 동반자를 찾을 생각을 더는 하지 않았다, 그의 마음속에는 사부님께서 계시고 법이 있기에 그는 고독을 느끼지 않았다.

2006년 할아버지 몸에 병업 상태가 나타났다. 기침을 계속하고 온몸이 무기력해져 아들은 걱정하면서 병원에 가자고 성화를 부렸지만, 할아버지는 뭐라고 해도 꿈적하지 않았다. 할아버지가 말했다. “죽으면 죽는 거지” 할아버지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자기가 죽는다 해도 사부님께서 책임진다는 것을 알고 있었는데, 결과적으로 얼마 후 그는 아무 일도 없었다.

2014년 할아버지에게 또 병업 상태가 나타나 7~8일간 물 한 방울 쌀 한 알 입에 대지 못했고 계속 설사를 했다. 할아버지는 또, 무엇을 박해를 반대하는 것이라고 하는지 몰랐지만, 수련인은 병이 없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는 자리에 눕지 않고 할 일은 다 하자 식구들은 놀라서 야단이었다. 이렇게 많은 연세에 7~8일간 식사도 못 하고 그냥 설사만 한다면 누가 두려워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할아버지는 말했다. “사부님께서 나에게 소업해 주신다.” 결과, 할아버지는 또 한 번 병업 관을 넘었다.

18년이 지난 후인 오늘 할아버지와 교류하면서 아주 감동했다.당년 얼마나 많은 수련생이 단체 법 공부 환경을 잃은 후 수련을 포기했던가. 그러나 할아버지는 혼자서, 게다가 글도 모르면서 고립된 시골에서 18년간 혼자 수련하면서도 의심한 적도, 태만한 적도 없이 지금까지 계속 사부님 말씀을 들으려 하면서 생활을 원망하지 않고 세간의 그 어떤 조금의 안일과 향수도 탐내지 않고 있었다.

문장발표 : 2016년 1월 6일
문장분류 : 수련마당> 정념수련원지>수련체험

원문위치 :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6/1/6/32187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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