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明慧법회| 자비를 수련해 선을 행하다

-80년 이후에 태어난 신세대의 수련 체험

글/ 허베이 대법제자

[밍후이왕]

자비로우신 사부님 안녕하십니까!

수련생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나는 1995년 7월부터 대법 수련을 시작했다. 그때 갓 초등학교를 졸업한 나는 부모님 뒤를 따라다니며 연공했는데 어느덧 20년이 지나갔다. 자비롭고 위대하신 사부님의 보살핌과 보호가 있었기에 나는 더듬거리며 끊임없이 성장할 수 있었다. 한 번 또 한 번의 곤두박질에도 사부님께서는 나를 일으켜 세우셨고 정진할 때 나를 격려해주셨으며 무감각할 때 나를 깨우쳐 주셨고 내가 제고되어야 할 때 점화해주셔서 나는 한 어린 제자에서 점점 성숙된 대법제자로 될 수 있었다. 다음은 수련 중의 작은 이야기를 사부님께 보고하고 수련생들과 교류하려 한다.

기억에 생생한 학창 시절

1999년 7월, 내가 고등학교 1학년 때 금방 여름 방학을 맞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사당(邪黨)은 파룬궁을 박해하기 시작했다. 7월 20일 나와 어머니 그리고 몇몇 수련생은 함께 베이징에 대법을 수호하러 갔다. 스자좡에 이르니 기차가 더 앞으로 가지 않았다. 우리는 8백 위안을 들여 베이징에 가는 택시를 잡았지만 고속도로도 봉쇄되어 길에서 각종 위험을 겪으면서 야밤에야 다싱에 도착했다. 기사는 우리를 길가에 내려놓고 상관하지 않았다. 밤에 못가의 시멘트 바닥에 누었는데 모기가 너무 많았으며 수시로 사이렌 소리가 들렸지만 나는 조금도 고달프지 않았고 두렵지 않았다.

23일 우리는 천안문에 가서 대법을 실증했다. 사악한 경찰은 나를 주먹으로 때리고 발로 찬 후 공공버스에 밀어 넣어 펑타이 체육관으로 싣고 갔다. 우리는 차에서 큰소리로 사부님의 시를 읊었다. “살아 바라는 것 없고 죽어 애석할 것 없네 허망한 생각 다 떨쳐버리면 부처 수련 어렵지 않도다”[1] 베이징 펑타이 운동장에는 베이징에 법을 수호하러 간 대법제자들로 꽉 찼다. 그날 날씨는 아주 더웠는데 우리는 광장에서 하루 동안 땡볕을 오래 쏘였다. 물이 없고 먹을 것도 없었지만 더운 줄도 모르고 배고프지도 않았다. 이후에 현지에 보내졌는데 공안국은 집을 수색했고 부모님은 각기 직장에서 데려간 후 구금되셨다.

나는 학교에서 데려갔는데 담임선생님의 얼굴색은 아주 흉했으며 악에 바쳐 나에게 물었다. “너 계속 수련할 거냐?” 그때 나는 그가 갑자기다른 사람으로 변한 것 같았으며 아주 큰 압력을 느꼈지만 물러서지 않고 선생님의 눈을 유심히 보면서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확고하게 큰소리로 “수련하겠습니다!”라고 말했다. 나는 내가 베이징에 가서 법을 수호한 것이 아주 자랑스러웠고 영광으로 생각했다. 담임선생님은 나의 이런 태도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버리셨다.

그때는 마침 문과 이과 반을 나누던 때였다. 나는 공부를 잘해 원래 담임선생님이 거느린, 비교적 교사의 수준이 높은 반으로 편입될 수 있었지만 베이징에서 돌아온 후 새로운 반에 규합됐다. 우리를 가르친 선생님은 새로 온 선생님이셨다. 사부님의 보호 하에 학교에서 나를 괴롭히는 사람은 없었다.

2001년 10월 나는 대학에 입학해 집을 떠났다. 2002년 10월 23일 나는 갑자기 부모님과 연락이 이뤄지지 않았다. 집에는 전화 받는 사람이 없었으며 그들을 찾을 수 없었다. 큰 이모, 큰 외삼촌에게 전화했는데 그들도 아무 일도 없다는 말만 하고 나에게 알려주지 않았다. 나는 일이 생겼다는 것을 알고 마음이 초조했다. 부모님에게 위험이 닥칠까 우려했으며 심리적인 압력이 아주 컸지만 외지에서 학교를 다니는 나는 갑자기 돌아갈 수 없었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친척이나 친한 친구가 고통을 겪을 때 당신이 마음을 움직이는가 움직이지 않는가, 당신이 어떻게 가늠하는가 하는 것인데, 한 연공인(煉功人)으로서는 바로 이처럼 어렵다!”[2]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부모님은 모두 사부님의 진수제자이고 가장 좋은 사람이며 한 일이 틀리지 않았으니 나는 모든 것을 사부님께 맡기고 진정으로 신사신법(信師信法) 하겠다.’

이후에 안 일인데 공안국 국가보안대대가 부모님을 직장에서 공안국 초대소로 납치해 갔던 것이다. 한 달이 넘은 후 아버지는 돌아오셨고 어머니는 구치소에 보내져 불법 감금되셨다. 그들은 어머니에게 노동교양 3년을 시킨다고 떠들었지만 한달 후 어머니는 사부님의 자비로운 보호 하에 정념으로 구치소에서 나오셨다.

그 나날을 돌이켜 보면 확실히 아주 간고했지만 법광(法光)에 젖어 고달픈 줄 몰랐다. 부모님의 수입이 괜찮아 이전에 나는 돈 때문에 걱정한 적이 없었다. 어머니가 유랑하시게 된 후 집은 아버지 한 사람 월급으로 생활했다. 안전을 위해 부모님은 밖에서 집을 세 맡고 살면서 설 명절에도 집에 돌아오실 수 없었다. 대학 다닐 때 나는 예술계 본과를 다녀 학비가 많이 들었다. 부모님은 나에게 충분한 생활비를 주셨지만 그 몇 해 동안 나는 아주 절약했다. 나는 이미 컸다고 생각했다. 아직 가족을 위해 돈을 벌지 못했지만 가급적 돈을 절약했다. 베이징에서 공부할 때 식당에서 점심밥을 먹는 데 1.5위안을 썼으며 한 달 생활비를 최대 300위안으로 정했다. 몇 달은 150위안밖에 쓰지 않았고 옷은 몇 십 위안 되는 옷만 사면서 돈을 아껴 모았다. 방학에 집에 돌아가면 어머니께서돈을 주셨는데 나는 어머니에게 한 학기에 받은 돈을 다 쓰지 않아 남았다고 말씀드렸다. 방학이면 부모님은 나를 데리고 함께 연공하고 법공부하셨고 우리는 서로 격려했다. 나는 부모님을 자랑으로 여긴다고 말씀드렸다.

직장에서 마음을 닦고 제고하다

대학 졸업 1년 후 나는 고향에 돌아가 일했다. 직장에서도 나의 심성을 제고할 수 있는 많은 고비를 겪었다. 한 동료는 나보다 한 살 많았는데 나보다 2년 먼저 입사했다. 상사가 그에게 임무를 주면 그는 나에게 안배했으며 내가 다 하면 그는 상사에게 가져갔다. 이렇게 그는 나의 성과를 빼앗았다. 잘한 일은 그가 한 것이고 그다지 잘하지 못한 것은 나에게 떠밀었다.

한 번은 직장에서 대형 친목 행사를 열었는데 회의장 배경 디자인을 하라고 했다. 내가 디자인을 다 한 후 그는 광고회사와 연락해 실사로 출력했다. 이 패널 배경은 활동 중에 우리 상급 기관 지도자들의 찬사를 받았다. 아주 경사스러우면서도 속되지 않게 디자인했다면서 시정부 귀빈 지도자들도 아주 좋다고 했다. 그런데 상사는 모두 그가 한 것으로 여겼다. 이후에 다른 동료들이 눈꼴사나워 암암리에 나에게 상사들은 모두 그가 한 줄로 알고 있다고 알려주었다. 나는 마음이 아주 괴로웠지만 수련인이기 때문에 속인과 같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가 나의 것을 빼앗으면 그가 덕을 잃고 업을 짓는 것이다. 나는 참고 말하지 않았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그러나 흔히 모순이 생길 때, 사람의 심령(心靈)을 자극하지 않으면 소용없고 쓸모없으며 제고하지 못한다.”[2]

친목 활동이 끝난 후 직장에서 축하 연회를 열었는데 몇몇 상사는 술을 들고 우리 테이블에 와서 내 앞에서 동료의 어깨를 치면서 말했다. “이번 패널 배경 디자인을 잘 했네. 상급 지도자가 표창하라고 각별히 제기했어. 잘 했어,” 동료는 “과찬이십니다. 과찬이십니다”라고 말하면서 내가 디자인했다는 말을 입 밖에 내지도 않았다. 그때 우리가 함께 노력한 결과라고만 말해도 내 마음은 그나마 괜찮았을 것인데 이번에는 정말 마음을 자극했다. 당시 나는 단번에 화가 났지만 우려 때문에 그래도 이를 악물고 참았다. ‘뒤에서 당신이 상사 앞에서 어떻게 시비를 전도하든 괜찮지만 내 앞에서까지 이렇게 하다니? 이후에 무슨 일이 있으면 나는 당신에게 해주지 않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그러나 집에 돌아온 후 난 냉정하게 사부님의 설법을 생각했다. “여러분이 알다시피 우리 이 한 법문은 속인사회를 피하지 않고 수련한다. 모순을 피하거나 모순에서 도망치지도 않으며; 속인의 이 복잡한 환경 중에서 당신은 또렷한 정신으로 이익 문제에서 명명백백하게 손해를 보고, 다른 사람에게 이익을 절취당할 때에 당신은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다투고 싸우지 않으며; 각종 心性(씬씽)의 교란 중에서 당신은 손해를 보며; 당신은 이런 간고한 환경 중에서 당신의 의지를 연마(魔煉)하고, 당신의 心性(씬씽)을 제고하여, 속인의 각종 좋지 않은 사상의 영향하에서도 당신은 초탈해 나올 수 있다.”[2]

이는 나를 두고 말씀하신 것이 아닌가? 나는 마땅히 제고해 올라와야 했다. 인간 세상의 허명을 마음에 두어서 뭘 하는가? 게다가 ‘인(忍)’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우려하는 마음에서 억지로 참은 것이지 마음을 움직이지 않는 탄연한 인을 해내지 못했다. 차츰 일할 때 나는 대법의 요구에 따라 의식적으로 명을 구하려는 마음과 스스로 불공평하다고 여기는 질투심을 제거해 마음의 매듭을 풀고 동료를 싫어하는 마음을 갖지 않았다. 우리는 대립하지 않았으며 일하는 분위기가 완화됐다. 이후에 상사는 나에게 다른 업무를 겸직하게 해 우리 두 사람의 일은 각자 치중점이 있게 됐다. 내가 진정으로 마음을 내려놓고 제고해 올라오자 이 고비를 넘긴 것 같았다.

아파트 절반 사람이 대법에 들어오다

나와 부모님은 하나의 작은 정체다. 우리 집에도 작은 꽃을 피워 차례로 기계 몇 대를 샀다. 진상 전단지, 소책자, 스티커, ‘9평공산당’ 책, 션윈 CD, ‘9평공산당’ CD, 진상 화폐, 무엇이 필요하면 배워서 했다. 우리 세 사람은 일을 나누어 합작했다. 매주 많은 자료를 만들어 주위에 자료를 만들 조건이 안 되는 수련생에게 공급했다. 특히 션윈 CD는 거의 매주 100, 200개를 만들었는데 줄곧 양력 새해까지 만들었고 또 새해 션윈이 오기를 기다렸다.

션윈을 하지 않는 신정에서 중국의 설날이 오기 전까지 ‘9평공산당’ CD를 굽고 아름다운 겉표지, 바닥 표지와 소개용 속지, 새해 축하 카드로 만들었고 또 자신의 장점을 이용해 여러 양식의 ‘9평’ 축하카드를 디자인해 비닐 봉투에 넣어 잘 봉한 후 직접 많은 속인들에게 배포했다. 사람들은 행운이 오길 바라는 마음에서 일반적으로 모두 받았다.

한 기관 내 아파트 이웃들은 우리 가족이 파룬따파를 수련하는 것을 다 안다. 많은 이웃이 진상을 몰라 사당의 거짓말에 속았다. 부모님은 기회만 있으면 그녀들에게 진상을 알렸는데 어떤 때 마주치게 되면 난 한쪽에서 발정념을 하든지 옆에서 곁들어 말하곤 했다.

한 번은 위층 이웃 집 컴퓨터가 문제가 생겨 나를 찾아와 봐달라고 했다. 나는 어머니를 불러 함께 그녀 집에 갔다. 난 그녀를 도와 컴퓨터를 수리했고 어머니는 그녀에게 진상을 알렸다. 내가 프로그램을 다시 설치할 때 어머니와 협조해 그녀에게 진상을 알리고 대법의 아름다움을 알리며 우리가 수련한 후의 심신에 입은 수혜를 말했으며 사당이 파룬궁을 모함해 천안문 분신자살 가짜 안건을 날조한 사실 등을 알렸다.

그 한 시기 그녀 집 컴퓨터는 자주 문제가 생겼다. 아마 그녀의 기연이 닿아 사부님께서 자비롭게 배치하신 것 같다. 나는 늘 그녀를 도와 컴퓨터를 수리했고 어머니는 나와 함께 그녀 집에 가셨다. 차츰 그녀는 수련에 점점 흥미를 가졌으며 결국 대법 수련에 들어섰다.

잇따라 우리 아파트 단지 이웃 많은 사람이 진상을 알고 사당을 탈당했으며 대법의 아름다움을 알고 자신에게 밝은 미래를 열었다. 그 중 네 가족이 차례로 대법 수련에 들어섰다. 전체 아파트 단지 절반 사람이 모두 연공인이 됐다. 그녀들은 또 가족, 친척, 친구를 이끌었으며 더 많은 사람이 진상을 알도록 했다. 이후에 어머니와 나는 또 그녀들에게 진상 음성전화를 거는 방법을 알려주어 그녀들이 차츰 정법 형세에 따라가 그녀들의 중생을 구하게 했다.

어느 날 저녁 발정념을 할 때 내 눈앞엔 아름다운 우주가 펼쳐졌다. 순간 우주는 황금색 빛을 뿌리는 파룬으로 변한 다음 돌고 있는 파룬은 또 파란 우주로 변했고 네 번 순환했다. 동시에 머리에는 “이 파룬이 바로 하나의 우주다”라고 알려주는 소리가 들렸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이 法輪(파룬) 도형은 우주의 축소판으로서, 그는 기타 각개 공간에도 그가 존재하는 형식과 연화과정이 있다. 그러므로 나는 하나의 세계라고 말한다.”[2] 이는 사부님께서 나를 격려해주신 것이다.

결혼의 포위를 뚫고 신의 길로 가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나의 결혼 문제는 친구, 동료, 심지어 상사들이 관심하는 문제가 됐다. 많은 사람이 나에게 소개팅을 제안했으며 부모님도 차츰 이 방면에 신경을 기울였다. 나 본인도 아름다운 나날을 보낼 동경이 생겼다. 수련인을 찾아 함께 정진해 사부님을 따라 각자의 천국으로 돌아갈 생각으로 나와 부모님은 모두 속인을 찾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생각은 좋았지만 배후에 정에 대한 집착을 감추지 못했다. 얼마 되지 않아 수련생이 남자 수련생을 소개해주었다. 그의 부친이 세상을 뜬지 6개월 후 그의 어머니가 갑자기 납치됐다. 그 기간 우리 가족과 다른 수련생들은 함께 구출에 참여했는데도 결국 그의 어머니는 불법적으로 노동교양 1년 3개월을 받았다.

그 후 나날은 수련생이 어려움에 처한 데 대한 동정심 때문에 우리의 왕래는 점차 잦았고 감정도 깊어졌다. 이후에 우리는 그의 어머니 의견을 받고 결혼증을 발급하고 그의 어머니가 돌아오면 식을 올리기로 했다. 그런데 뜻밖에 그의 어머니는 돌아온 후 줄곧 트집을 잡았으며 심지어 결혼식에서 우리 친척들 앞에서 아들의 뺨을 때렸다.

그때 난 화가 났지만 시어머니와 따지지 않고 안으로 자신을 찾았다. 나의 명을 구하려는 마음 때문에 일어난 것일까? 아니면 내가 정말 시어머니 입장에 서서 이해해주지 못했을까? 우린 모두 수련인이니 함께 법공부를 많이 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고 시어머니에게 단체 법공부 소조에 가게 했다. 시어머니는 한 번 가고 가지 않겠다고 했다. 나는 애써 시어머니를 잘 대하려고 했는데 오리려 시어머니는 점점 안 좋은 상태가 심해졌다.

나는 시어머니에게 아들에 대한 변이적인 감정과 의존심을 발견했다. 그녀 배후의 사악이 우리의 선량한 틈을 탄 것이다. 나는 마땅히 시어머니의 바르지 않은 상태를 바로잡아야 했지만 시어머니와 아무리 소통해도 통하지 않았다. 나도 사람마음이 있는데다 남편은 아무것도 잘 처리하지 않으면서 나에게만 양보하고 또 양보하라고만 했다. 그러나 내가 한 걸음 물러서면 시어머니는 더 심해졌다. 나는 출로가 어딘지 찾지 못해 ‘마음을 움직이지 않던 데’에서 차츰 쌓이고 쌓여 가슴이 답답했으며 더는 참지 못할 지경이었다. 결혼한 후 7개월이 지났는데 난 정말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했으며 압력이 너무 컸다. 어머니는 내가 다른 사람으로 변한 것 같다면서 성격이 조급하고 쉽게 화를 낸다고 말씀하셨다. 젊은 나이에 벌써 양측 귀밑머리에 많은 흰머리가 생겼다. 고비를 넘지 못할 때 내 마음은 아주 괴로웠으며 억울하고 불평스럽고 속상하고 원망했다. 정말 괴로움을 형용할 수 없었다. 이후에 나와 남편 관계는 그의 어머니의 이간질로 위태롭게 됐다. 그 한 시기 나는 교란을 받아 정말 법공부하고 연공할 생각이 없었으며 심지어 우리 부모님도 교란을 받았다.

이후에 나는 도대체 왜 그런지 끊임없이 사고했다. 사람 표면 이 층에서 볼 때 시어머니가 트집을 잡는 것은 표면적인 것이고 사실은 변이적인 의존심과 감정이었다. 아들이 결혼하는 것을 바라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들이 자신을 지켜주고 돌봐주길 바란 것이다. 시어머니 눈에 나는 그녀 아들을 빼앗은 사람이었다. 수련의 각도에서 볼 때 시어머니는 노동교양소에서 나와 배후에 좋지 않은 것이 그녀를 교란해 변이된 모자의 정으로 아들을 끌어내려 훼멸시키고 내가 남편에 대한 정이 있는 것을 이용해 나도 끌어내리고 심지어 우리 부모님의 나에 대한 정을 이용해 그들까지 끌어내리려는 것이었다. 전체적으로 볼 때 모두 정에 집착해 일어난 것이다. 육친 정, 애정, 심지어 최초 우리 가족이 수련생이라는 말만 들어도 자연히 친절한 느낌과 정이 생기는 점을 이용한 것이었다.

그 시기 나는 자신이 마땅히 정욕을 내려놓고 원망과 억울한 마음을 내려놓아야 한다는 것을 알았지만 때때로 속이 불타는 것처럼 괴로웠다. 나는 내려놓아야 한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사무치도록 버리기 어려웠다. 나는 자신에게 사람의 것을 내려놓아야 신의 것이 있다고 깨우쳐주었고 자신에게 이는 사람과 결별하고 신의 길을 선택할 때라고 알려주었다. 나와 부모님은 함께 법공부를 많이 했다. 나는 대법만이 모든 것을 개변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차츰 그들을 원망하지 않았고 나의 자비심이 나와 그들 모자가 아주 불쌍하게 보였다. 내가 진정하게 내려놓자 마치 큰 보따리를 내려놓은 것 같았고 사람의 정욕에서 걸어 나와 환골탈태한 것처럼 온몸이 홀가분했다.

사부님께서 꿈에 나를 깨우쳐주셨다. 난 한 포위된 한 도시에 있었는데 도시에는 먹을 것, 마실 것, 놀 곳이 있었다. 나는 도처에서 문을 찾아 나가려 했지만 아무리 애써도 찾지 못했다. 이후에 난 지붕에 올라갔는데 지붕에는 뱀이 한 무리가 있는 산이 있었다. 나는 꿈속에서도 생각했다. 뱀을 밟으면 안 되는데, 그런데 뱀 한 마리가 나에게 달려들려 했다. 나는 한 발로 뛰면서 피했는데 이어서 또 흰 털이 난 괴물이 나에게 덮쳐들었다. 나는 또 피했다. 먼 곳에 길이 있는 것을 보았는데 이때 내 등 뒤에 작은 천사 날개가 자라나 나는 날아갔다.

나는 마침내 결혼의 포위망에서 벗어났다. 내려놓지 못한 것, 괴로운 것은 진정한 자아가 아니라 바로 마땅히 버려야 할 집착이며 자신의 후천 관념이라는 것을 나는 알았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비록 수련의 일을 말할지라도 마음속의 고집을 버려야 하느니라 잘라버리는 것은 자신이 아니요 모두가 미혹 속의 어리석음이로다”[3].

무엇이 진정한 선인가? 대만에서 션윈을 본 소감

올해 나와 부모님은 전전하며 대만에 가서 현장에서 션윈 공연을 보았다. 현장의 에너지는 아주 강했다. 나는 보면서 눈물을 흘렸다. 특히 ‘선의 힘’이라는 프로그램이 나에게 준 감동은 정말 아주 컸다. 대법제자의 순정하고 자비로운 선량함은 경찰의 적의를 녹여버렸다. 그는 대법제자의 선을 느껴 대법제자를 더 이상 때릴 수 없었다.

나는 나에게 물었다. 나는 그렇게 순정하게 선할 수 있는가? 자아가 조금도 없이 남을 위하고 자비로울 수 있는가? 나는 평소 다른 사람을 잘 대하지만 자세히 뿌리를 파보면 나의 선은 그렇게 순수하지 않았다. 늘 조금이라도 보답을 받으려는 마음이 있었고 내가 다른 사람에게 잘해주는 것은 다른 사람이 나에게 잘해 줄 것을 바란 것이지 아무 마음도 없이 완전히 다른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그 불순물이 바로 자아라고 나는 생각한다. 완전히 자아를 버리지 않았기 때문에 사심이 있는 것이고 그런 순정함에 도달할 수 없는 것이다.

이런 것을 깨닫고 집으로 돌아간 후 나는 항상 자신을 닦고 자아를 버리려고 애썼다. 그 몇 달 동안 나는 아주 평온했다. 누가 뭐라고 해도 웃었고 조금도 조급하지 않았다. 그때 정말 자신이 또 한 덩이 나쁜 물건을 제거하고 한 걸음 진보한 것 같았다.

이렇게 오랫동안 사부님께서는 자비롭게 나를 보호해주셨다. 내가 사람마음을 내려놓지 못하고 해이해 정진하지 못할 때 사부님께서는 매번 나를 부축해 일으키셨다. 나는 정말 사부님의 무량한 자비를 느꼈다. 사부님께서는 나 자신보다 나를 더 소중히 여기셨다. 나는 사부님 말씀대로 세 가지 일을 잘 해 원만하여 사부님을 따라 돌아갈 것이다.

부족한 점은 수련생 여러분께서 자비롭게 바로잡아주시기 바란다. 허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시: ‘홍음-무존(無存)’

[2]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전법륜’

[3] 리훙쯔 사부님의 시: ‘홍음2-고집을 버려라’

(밍후이왕 제12회 중국대륙 대법제자 수련심득교류회)

문장발표: 2015년 11월 7일
문장분류: 수련마당>정법수련마당>밍후이대륙법회>제12회(2015년)
원문 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5/11/7/318653.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