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대륙 대법제자
[밍후이왕]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우리 여기에서는 여러분이 바른 길을 가도록 가르치는 동시에 법을 당신에게 투철히 말해 주어 당신 스스로 깨닫게 하는데, 배우고 안 배우고는 여전히 당신 자신의 문제다. 사부가 문으로 이끌어 들이나 수행은 자신에게 달렸다. 당신을 강박하고 핍박하여 수련하게 할 사람은 없으며, 수련하고 안 하고는 당신 자신의 문제다. 다시 말해서, 당신이 어느 길로 가려하고, 당신이 무엇을 가지려 하며, 당신이 무엇을 얻으려 하든지 누구도 당신을 간섭하지 않을 것이며, 단지 선(善)을 권할 뿐이다.”[1]
사부님의 이 단락 법에서 개인적으로 일에 봉착했을 때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하는 약간의 인식을 말하고자 한다.
수련 중에서, 실제 생활 속의 구체적인 수련 중에서 시시각각 각종 유형무형의 시련이 잇따른다. 당신이 해낼 수 있는지? 착실하게 수련할 수 있는지? 당신이 어느 길을 선택하고 당신이 선택한 이 시각 혹은 이 순간에 ‘무엇이’ 필요한지? 대법에 동화될 것인지 아니면 속인의 나쁜 것을 집어넣을 것인지, 마성인지, 부정적인 것인지? 시시각각 사사건건 수련인을 검증하고 있다. 우리가 제일 낮은 속인 생활 속에서 수련하기 때문이다. 바로 속인의 각종 유혹 속에서 수련하면서 자신이 도대체 할 수 있는지? 진짜 금인지? 마지막까지 견지할 수 있는지를 보는 것이다. 줄곧 수련이 끝날 때까지 이런 것은 정상적으로 모든 수련인을 고험하고 시험할 것이다.
지금 정법시기 수련에 또 사악한 구세력의 파괴적이고 부정적인 고험(사악한 박해가 나타났지만 우리는 단호하게 승인하지 말아야 하며 전면적으로 부정해야 한다)이 나타나 대법제자가 어떻게 수련하고 어떤 선택을 하고 어떻게 대할 것인지를 본다. 그럼 사부님께서 요구하신대로 더 엄숙하게 수련을 대해야 하며 잘 하도록 해야 한다. 사악한 박해 고험이 없어도 우린 착실하게 법의 표준 경계대로 수련해야 합격할 수 있다. 사악한 박해가 있기 때문에 이렇게 엄숙하게 대해야 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대법제자이기 때문에 신우주의 안위와 관계되기 때문에 반드시 무조건 합격된 표준에 도달해야 정확하게 착실하게 수련했다고 할 수 있다. 이 모든 것은 구세력과 아무 관계가 없는 것이다.
하지만 착실하게 수련하는 중에 각종 유혹 앞에서 나는 늘 미혹에 교란되어 때때로 속인의 ‘가상’을 추구하는 데 많은 시간을 소비했다.
어제 을 수련생의 집에 갔을 때 그가 열심히 자세하게 사당의 모 석간신문을 보는 것을 보았다. 자신을 대조해보니 바로 나에게 비춰준 거울이었다. 분명히 내 눈앞에서 나를 깨닫고 자신을 수련하고 자신을 찾으라고 보여준 것이다. 왜 내가 보게 됐는가? 난 어떻게 선택해야 옳은 것인가?
생각해 보면 당신이 매일 사당 신문 혹은 뉴스를 30분 본다고 하자. 실제로 볼 때마다 소비하는 시간이 30분만이 아니다. 이 방면에서 지금까지 바른 길을 선택하지 않은 수련생들도 자신을 보아야 한다. 이렇게 하는 것이 시간을 낭비하는 것이 아닌지? 이것이 제일 보편적이고 제일 쉽게 볼 수 있는 시험 문제이다. 답은 대법 책 ‘전법륜’에서 사부님께서 분명하게 말씀하셨다. 사실 집에 각종 사당 신문뉴스를 두기 좋아하는 것이 그 속의 글자 뒤에 모두 ‘공산 악령 부체’라는 것을 아는가? 게다가 직접 대법과 대법제자를 박해하는 제일 패괴된 저층의 나쁜 것들이다. 수련하는 당신이 그것을 선택하여 읽는다는 것은 그것을 접수하고 그것을 승인하고 선택하고 추구한 것이 아닌가? 당신이 이런 보이지 않는 공산 악령에게 조종되고 싶은 것이 아닌가? 이러면 늘 3가지 일을 잘 하지 못하게 되고 신체에도 일부 병업 가상이 나타나고 생활 중에도 때때로 있지 말아야 할 번거로움이 나타날 것이 아닌가? 일부 고난이 장기간 존재할 때 방임하고도 모르고 있는 것이 아닌가? 모두 가능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실제 수련 중에 구체적인 선택의 문제이다. 당신이 뭘 생각하고 뭘 가지려 하고 어떻게 할 것인지는 모두 당신 자신이 선택하여 결정할 것이지 아무도 당신을 간섭할 수 없다. 기껏해야 어떤 수련생이 보고 호의적으로 당신에게 귀띔할 뿐, 결국은 당신 자신이 어느 길을 갈 것인지를 선택해야 한다. 정법 수련의 길을 갈 것인지 아니면 저층 속인의 길을 갈 것인지, 사당의 훼멸의 길로 갈 것인지는 모두 자신의 선택에 달렸다. 당신의 행위를 다른 수련생이 보아내지 못할 수 있지만 하늘의 모든 신은 다 보고 구세력도 보고 있다.
수련하지 않는 사람도 선택하고 있다. 예를 들면 지금 ‘장쩌민 고소’가 나타난 후 일부 공무원과 경찰은 자신의 생명과 가족을 책임지기 위해 장쩌민을 고소한 대법제자 박해에 참여하지 않거나 소란을 피우지 않지만 일부 공무원과 경찰은 자신의 양심을 위배하는 길을 택해 자신의 생명과 미래를 판돈으로 걸고 죄악의 원흉인 장쩌민과 중공의 희생양이 되고 있다. 그들은 전력을 다해 장쩌민을 고소한 대법제자에게 소란을 피우고 납치해 자신의 생명과 미래를 망치고 있다. 식견이 있는 사람은 모두 보았다. 장쩌민 고소를 지지한 사람은 복을 받지만 장쩌민 고소를 방해하는 자는 악보를 받는다는 것을. 장 악마와 중공 사교 편에 선 사람은 절대로 좋은 결과를 보지 못한다. 사실 장쩌민 고소를 방해하고 구실을 대어 파룬궁수련생을 박해한 그런 사람은 악보만 받는 것이 아니라 생명의 위험이 수시로 닥칠 것이며 수시로 각종 돌연 재해로 목숨을 잃고 소각되어 도태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중국대륙 공무원과 경찰의 선택이 서로 다른 결과이다. 길은 자신이 걷고 있으며 선택도 자신이 한다. 일부 중공 공무원과 경찰은 박해 중지를 선택한 후 참회하고 속죄하려고 박해 증거를 수집하여 자신에게 퇴로를 남기고 있다. 수련하는 사람의 일념의 선택은 더욱 엄숙한 것이다. 이상 예를 들어 서로 다른 선택을 한 엄숙함을 말했다.
물론 어떤 수련생은 유혹에 못 이겨 나를 포함하여 늘 사이트에서 형형색색의 소설, 선정적인 사진과 음란한 문장, 폭력 투쟁, 정신 자극을 추구하는 간행물 등을 훑어본다. 이런 것에도 마찬가지로 그 글자 뒤에는 얼마나 많은 색정적인 썩은 마귀와 각종 난잡한 귀신 부체가 있겠는가? 누가 보면 그가 재수 없는 것이다. 왜 자신이 늘 뜻대로 되지 못하는가? 이런 것을 방임한 것과 아주 큰 관계가 있는 것이 아닌가? 틀림없이 그런 것이다. 때문에 나는 이런 몹쓸 것을 철저하게 끊어버리겠다는 선택을 했다.
그밖에 일부 대법수련생은 일반 속인 생활의 철학적인 것, 자신을 고무하는 것, 선행을 권하는 문장을 보기 좋아한다. 나도 많이 보았다. 일반 속인이 이런 유형의 것을 보면 수혜를 볼 수 있다. 이는 상대적으로 속인 경계를 놓고 말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문자 뒤에는 현대 작가 본인이 명리, 재물 등을 추구하는 요소가 있다. 표면적으로 보아낼 수 없지만 수련하는 사람이 늘 보면 해로움이 상당히 크다. 때문에 역시 단절을 선택해야 한다.
정법시기 대법제자로서 왜 이런 대법 경문 이외의 것을 선택해 보아야 하는가? (업무적인 수요로 찾아보는 것은 제외) 전일해야 온전하게 수련할 수 있다. 저층의 것, 사람의 것, 부정적인 것을 많이 보면 볼수록 혼란하게 되며 수련의 길이 많은 갈림길로 변할 수 있고 쉽게 빗나가게 되고 삿되게 되며 수련이 더 어려워지고 쉽게 떨어질 수 있다. 나는 이 방면에서 상당히 큰 손해를 보았다. 제일 엄숙한 교훈 중의 하나이다.
무엇을 보고, 무엇을 들으며 무엇을 먹고 무엇을 생각하는 등이 바로 무엇을 담아두는 것이다. 자신이 온갖 마음, 온 머리, 온 공간에 모두 이런 패괴된 것, 잡것들을 담아둔다면 당신은 어떻게 밖으로 쏟아낼 것인가? 생생세세 아래로 내려오는 과정 중에 좋지 않은 위사위아의 관념과 정보를 얼마나 많이 담았을까? 이런 것을 밖으로 쏟아내는 것은 모두 아주 완고한 산인데 지금 당신은 여전히 자신 공간 장에 계속 제일 패괴된 것을 담고 있으니 어찌 수련할 수 있겠는가? 쏟아내도 안 될 판국에 오히려 계속 더러운 것을 담아두는 것은 자신에 대해 책임지지 않는 것이다.
무엇을 선택하는 가는 역시 자신이 결정할 몫이다! 자신이 한 모든 일은 신이 모두 기록하고 있다.
예를 들면, 수련한 노수련생이 담배 피우는 이 작은 집착을 철저하게 놓지 않아도 중도에서 그만두게 될 것이고 심지어 생명을 잃게 된다. 다른 방면에서 괜찮게 수련한 수련생이지만 늘 음흉한 눈길로 이성을 보는 색에 대한 마음을 놓지 못하면 하루아침에 무너질 것이다. 사당의 신문 뉴스, 사이트의 패괴된 문장을 보면 담배 피우고 음흉한 눈길로 보는 문제보다 더 엄중하며 독해가 더 크지만 그 속에 빠졌을 때 의식하지 못할 뿐이다. 지금 일부 수련생이 휴대폰에서 한담하길 좋아하는 것을 발견했다. 이것도 일종 유혹이고 검증이 아닌가? 어떻게 대해야할지 자신이 선택해야 한다.
이상의 관련 문제는 사실 모두 나 자신을 말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자신이 걸은 굽은 길이며 교훈이기 때문이다. 최근 일부 수련생이 이런 굽은 길 혹은 이런 함정에 빠진 것을 발견했기 때문에 유사한 문제가 있는 수련생에게 경고하려고 이 문장을 썼다. 나의 교훈을 받아들여 정념으로 자신의 수련을 대하길 바란다.
이상은 개인적인 체험이니 바르지 않은 점이 있으면 자비롭게 바로잡아주시기 바란다.
주:
[1] 리훙즈(李洪志) 사부님의 저작: ‘전법륜’
문장 발표: 2015년 12월 3일
문장 분류: 수련마당>정법수련마당>수련체험>심성제고
원문 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5/12/3/319974.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