简体 | 正體 | 대법서적

明慧법회| 나는 세인을 가족으로 여기면서 시시각각 사람을 구하려 한다

글/ 허난성 대법제자 구술, 수련생 정리

[밍후이왕] 자비롭고 위대하신 사부님 안녕하십니까! 대법 수련생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나는 올해 69세로 1997년 5월부터 파룬따파를 수련하기 시작한 노수련생이다. 하루도 학교에 다녀본 적이 없지만 1999년 말부터 2001년 정월까지, 13개월이라는 시간을 들여 ‘전법륜’을 읽을 수 있게 됐다.

파룬궁을 수련한 후 간염, 담결석, 위궤양, 안질, 산후조리 때 걸린 전신 부종 등 십 몇 가지 질병들이 약을 먹지 않고 나았다. 일년 내내 약을 달고 있던 ‘약탕기’에서 의사를 찾지 않으며 온 몸이 가볍고 건강한 사람이 됐다. 나는 마음속으로 사부님께 감사드리고 나의 목숨을 구해준 대법에 감사드린다.

오늘까지 수련하면서 나는 하루도 법학습과 연공을 멈춘 적이 없었다. 비록 학교에 다니지 못해 일자무식이지만 이 고덕대법을 확고히 믿었기 때문에 ‘전법륜’을 읽을 수 있게 됐고 백 프로 신사신법(信師信法)했기 때문에 수많은 고비와 재난을 뚫고 나가 확고하게 사부님께서 안배해주신 수련의 길을 걷고 사부님을 도와 세인을 구도할 수 있게 됐다.

1. 학교에 다니지 않았지만 ‘전법륜’을 읽을 수 있게 됐다

나는 하루도 학교에 다니지 못했기에 정말 일자무식인 눈뜬 소경이었다. 박해 전에 법 학습 소조에서 다른 사람이 책을 읽는 것을 듣거나 혹은 사부님의 설법 동영상을 보았는데 느낌이 꽤 좋았다. 이후에 법학습 환경이 파괴된 후 비록 사부님의 설법 녹음테이프를 매일 몇 개씩 들었지만 쉽게 잊어버리고 마음에 들어오지 않았으며 가끔은 들으면서 졸기도 했다. 사부님 신경문, 밍후이 자료를 모두 볼 수 없었다. 속으로 ‘글자를 알면 얼마나 좋을까. 보고 싶은 만큼 볼 수 있고 보고 싶으면 아무 때 볼 수 있으니 말이야’라고 생각했다.

아마 사부님께서 나에게 배치해주신 글자를 알 시간이 됐는지 몰라도 그때 속으로 늘 글자를 배우고 싶었다. 매일 ‘전법륜’을 받쳐 들고 위의 글자를 보면서 눈만 멀뚱멀뚱 뜨고 있었다. 사부님의 점화 하에 나는 사부님 설법 동영상을 보면서 ‘전법륜’과 대조해보았는데 어떤 부분은 정말 맞췄다. 하지만 단독으로 볼 때는 여전히 눈뜬 소경처럼 글자를 몰랐다.

나는 아랫사람에게 물어보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가족, 이웃, 동료, 초등학생, 사람을 만나기만 하면 가르침을 청했는데 낮에 새롭게 글자를 배우면 저녁에 설법 동영상과 대조하면서 익숙할 때까지 읽었고 읽지 못하면 자지 않았다. 1999년 말부터 2001년 보름까지, 나는 13개월이라는 시간을 들여 ‘전법륜’을 읽을 수 있게 됐다. 이후에는 ‘밍후이주간’ 및 진상자료들을 모두 볼 수 있게 됐는데 지금까지 사부님의 몇 십 권되는 경문을 몇 번이나 읽었고 어떤 것은 열 몇 번 읽었다. 세 권 ‘홍음’의 시도 적지 않게 외울 수 있었다.

글자를 배우는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날 잠을 이루지 못했고 슬픈 눈물을 많이 흘렸는지 모른다. 남편이 때리고 욕하며 놀리고 괴롭히는 등 구박을 여러 번 정념으로 제지했다. 또한 사부님께서 법신을 통해 글자를 알도록 도와주신 신기한 사례들도 많았는데 편폭이 제한돼 여기에서는 말하지 않겠다.

2. 대법을 확고히 믿고 수련함에 흔들리지 않다

‘전법륜’ 이 책은 우주 법리로서 듣자마자 마음에 들어왔다. 처음에 나는 ‘진선인(眞善忍)’ 세 글자를 시시각각 기억하고 마음을 닦아 좋은 사람이 되려고 했다.

1997년 5월, 연공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 갑자가 온종일 고열이 났다. 열이 나 혼미해졌고 먹을 수도 없고 마실 수도 없었다. 이튿날 새벽, 열이 내리고 온 몸은 땀에 흠뻑 젖었는데 마치 물로 씻은 것 같았다. 신체의 모든 불편한 증상들이 전부 소실됐다. 이때부터 나는 약 한 알도 먹지 않았고 한 번도 의사에게 병을 보인 적이 없었는데 30여 년간 나를 괴롭히던 십 몇 가지 질병들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나는 격동해 사부님 법상 앞에서 기쁨과 감사의 눈물을 흘렸다. 울면서 사부님께 “사부님, 사부님께서는 저의 목숨을 구해주셨습니다. 제 생명의 은인으로서 이후 아무리 위험하고 하늘땅이 무너진다 해도 모두 대법을 끝까지 확고히 수련할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사부님의 법신은 시시각각 내 곁에서 나를 지켜주셨다.

1999년 ‘7.20’ 때, 사악한 당은 대법을 박해했는데 당시 우리 회사 열 몇 명 파룬궁수련생들이 모두 납치돼 세뇌반으로 갔지만 나는 가지 않았다. 회사 상사는 집으로 찾아와 ‘연공하지 않겠다는 보증서’를 쓰라고 했다. 나는 확고하게 “저는 글씨를 쓸 줄 모르고 더욱이 무슨 보증서를 쓰지 않을 겁니다. 연공하지 말라구요? 제 병이 발작하지 않는다고 보증할 수 있나요? 만약 제 병이 발작한다면 당신 집에 갈까요?”라고 물었다. 그때 회사에서는 모두 알고 있었는데 연공하기 전 나는 온몸에 병이었고 심할 때는 얼굴이 부어서 눈이 한 갈래 틈 밖에 없었으며 다리, 발이 부어서 물이 흘러내렸다. 그 공장장은 듣자마자 떠났다.

상사는 나와 말이 통하지 않자 남편을 찾아갔다. 남편은 기술부 공장장인데 내가 딸을 셋 낳고 아들을 낳지 못했기에 회사 사람들은 모두 그가 나를 업신여긴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회의에서 “우리 집 여자는 문맹으로 문을 나서면 화장실도 찾지 못해요. 뭘 배운단 말이에요? 그녀를 신경 쓰지 마세요”라고 말했다. 이때부터 누구도 나를 상관하지 않았다. 일이 지난 후, 나는 이것은 사부님께서 남편 입을 빌어 내가 교란 받지 않도록 보호해주신 것임을 깨달았다.

연공할 곳이 없게 되자 집에서 연공하고 단체 법 학습이 없어지자 나는 사부님 설법 녹음테이프와 CD를 3세트 청해 녹음 재생기, VCD 플레이어, MP3 기계를 샀다. 매일 집에서 듣고 사부님 설법 녹음테이프나 CD를 하루에 3~5강 보았다. 박해가 가장 심할 때 나는 겹겹의 어려움을 무릅쓰고 남편의 폭력 박해와 외부 교란을 견뎌냈는데 법 학습과 연공을 멈춘 적이 없었다.

3. 마음속에 법을 담으면 진상을 알릴 때 두려운 마음이 없다

2001년 4월, 그때 우리 이곳에는 자료점이 없었다. 진상을 알리려면 입으로 말할 수밖에 없었는데 나는 말주변이 없었다. 처음에는 대법을 수련해 병을 제거하고 신체가 건강해진 직접 겪은 신기한 경험들을 얘기했다. ‘밍후이 주간’ 교류 문장에서 정념으로 공간장을 청리하고 구세력이 다른 공간에서의 교란을 제거했다는 것을 보고 나는 차 혹은 삼륜차에 앉거나 길을 걸을 때 속으로 반복하여 발정념 구결과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 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眞善忍好: 진선인은 좋습니다)’를 외웠다. 며칠 했지만 효과가 좋지 않다는 것을 발견했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나보고 무엇을 하냐고 물으면 나는 답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때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이제 여러분들도 내가 왜 당신들에게 책을 많이 보라고 했는지 더 분명히 알게 되었다! 법은 일체 집착을 타파할 수 있고, 법은 일체 사악을 타파할 수 있으며, 법은 일체 거짓말을 타파해 버릴 수 있고, 법은 정념(正念)을 확고히 할 수 있다.”[1]는 것이 생각났다.

글을 알게 된 후 나는 매일 적어도 한두 강을 읽었고 게다가 사부님 신경문과 ‘밍후이 주간’ 등을 보았다. 낮에 보지 못하면 저녁에 보충했다. 나는 아주 착실하게 법학습을 했는데 절대 대충대충 해치우지 않았다. 매주 적어도 법 학습 소조에 세 번 참가했고 다른 사람이 읽을 때에도 묵묵히 따라했다. 매일 밥 한 끼를 놓치더라도 한 강을 적게 배우지 않았다. 오직 법 학습을 많이 해 ‘전법륜’ 중의 법리를 똑똑히 깨달아야만 세인들이 의문을 제출했을 때 술술 대답할 수 있었다. 누군가 “당신은 파룬궁이 좋다고 하지만 왜 공산당은 못하게 하나요?”라고 묻자 나는 그에게 파룬궁은 고덕대법(高德大法)으로서 사람으로 하여금 우주 특성 ‘진선인(眞善忍)’ 표준에 따라 마음을 닦고 선을 향하며 좋은 사람이 되도록 가르친다고 알려주었다. 동시에 장쩌민 건달집단이 파룬궁을 모함한 거짓말도 폭로했다.

10여 년 동안 진상을 알릴 때 나는 두려운 마음이 없었는데 아는 사람이든 모르는 사람이든 사람을 만나기만 하면 말했다. 가끔 심태가 좋지 않아 악의적으로 고발하는 사람을 만나기도 했지만 오직 마음속에 시시각각 대법을 품고 정념정행한다면 사부님께서는 모두 나를 도와 위험에서 벗어나게 해주셨다.

4. 원망심을 닦아버리고 자비심을 수련해내야만 사람을 구할 수 있다.

자비심은 입으로만 말할 것이 아니라 오로지 심성을 닦는 것을 통해 닦아야 한다. 자비심을 닦아내려면 우선 원망심을 닦아서 제거해야 한다.

수련하기 전, 나는 자비심이 적고 오로지 원망만 있었다. 부모님이 학교에 다니지 못하게 해 지식이 없는 것을 원망했고, 결혼생활이 불행해 시집을 잘못 간 것을 원망했으며, 시부모가 마음이 바르지 않고 남편이 나를 학대하는 것을 원망했고, 하늘이 불공평하여 아들을 낳지 못해 남편에게서 업신여김을 당하는 것을 원망했다. 전반생을 원망 속에서 지냈기에 잘 먹지 못하고 잘 자지 못했다. 늙기도 전에 신체에 온갖 병들이 있었고 원망의 눈물은 눈마저 멀게 해 40세도 되기 전에 바늘구멍을 똑똑히 보지 못했다.

대법을 배우자 사부님께서는 나에게 모든 일에는 다 인연관계가 있고 우연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었다. 좋은 남편을 만나지 못하거나 아들을 낳지 못한 것, 돈이 없는 것은 주어진 운명이고 남편, 시부모가 나를 잘 대해주지 않는 것은 전생에 그들에게 빚을 졌기 때문이다. 빚을 졌으면 갚아야 하는데 하늘의 이치는 공평한 것이다. 그래서 나는 과거의 나쁜 감정을 잊고 자발적으로 시부모님을 집으로 모셔와 맛있는 반찬을 해드렸다. 두 분은 감동해 여러 번 눈물을 흘리셨다.

시아버지가 세상 뜬 후 나는 혼자 생활하지 못하는 80여 세 시어머니를 데려다 모셨다. 그녀에게 목욕을 시켜주고 머리를 감겨주었으며 오줌을 닦아주고 씻겨드렸다. 시어머니는 내가 수련한 후 심신에 거대한 변화가 생긴 것을 보고 늘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를 외우셨는데 몇 십 년 폐결핵도 완쾌됐다. 치매도 크게 호전돼 90여 세 때 앓지도 않다가 세상을 떠나셨다. 남편의 형제자매 5명, 몇 십 명 친척들은 모두 당초 대법에 대해 인정하지 않던 데로부터 20여 명이 사악한 당의 공산당, 공청단, 소선대 조직에서 탈퇴했다.

세 딸, 사위와 외손녀, 외손자 모두 사악한 당의 일체 조직에서 탈퇴했다. 그 중 사위 하나는 경찰인데 나는 늘 그에게 진상자료를 보여주었다. 진상을 명백히 알게 된 후 그는 더 이상 대법제자를 박해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암암리에 수련하는 사람을 보호해주었다. 그의 선행은 복을 받게 됐는데 부모님이 모두 70여 세인데 신체가 건강하고 아들딸도 똑똑하고 귀여웠다. 그는 이름 없던 작은 경찰에서 모 파출소 소장으로 승진됐다.

나는 원래 시골 여자로서 조상들은 모두 농사를 지었다. 남편은 젊을 때 잘 생기고 똑똑했는데 70년 대 초, 일꾼을 모집할 때 도시로 들어왔고 이후에는 기술 공장장이 됐다. 남편이 바람을 피워집을 상관하지 않자 80년대 나는 도시에 가서 그를 ‘감독’했다. 얼마 되지 않아 회사가 문을 닫자 그는 자기가 도급을 맡았고 이후에는 큰 도시에 가서 회사를 운영했다. 사업이 성공해 돈 주머니가 두꺼워지자 옆의 여자들도 많아졌다. 그의 내연녀들과 여비서들은 항상 나를 무시했는데 조금만 마음에 들지 않아도 나와 난투극을 벌였다. 남편이 밖에서 회사를 운영했기에 원래 집에 있던 오래된 ‘여비서’들을 데리고 갈 수 없어 오로지 명절 때만 ‘방문’했다. 그녀들은 집에서 남편을 대신해 나를 감시했는데 내가 밖에 나가 진상을 알리기만 하면 그날 저녁 남편은 전화에서 한 바탕 욕을 퍼부었고 집에 돌아와 내연녀의 고자질을 듣게 되면 날 때리거나 욕했다.

법을 배운 후 이건 그와의 악연으로서 수련자는 정욕을 담담히 보고 차츰 욕망을 끊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속인들은 정욕을 위해, 금전을 위해 싸우고 다투어 온몸이 업보로 가득하고 고생스럽기 그지없는데 모두 그들 생생세세의 업력이 조성한 것이다. 나는 더 이상 미워하지 않았고 오히려 불쌍하다는 마음이 들었다.

처음에 나는 사람을 골라가며 진상을 알렸는데 이런 사람들은 구하고 싶지 않았고 늘 혐오하는 마음이 생겼다. 이후에 경문에서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당신이 당신의 적을 사랑할 수 없다면 당신은 원만(圓滿)을 이룰 수 없다.’[2]는 것을 보게 됐다. 그래서 원망하는 마음을 내려놓고 늘 자신이 심은 채소를 그녀들에게 먹으라고 갖다주었고 누구 집에 어려움이 있으면 가서 도와주었으며 누가 급히 돈이 필요하면 돈을 빌려주었다. 나는 기회를 찾아 그녀들에게 파룬궁이 억울함을 당한 진상을 알려주었는데 그녀들은 진상을 알게 됐을 뿐만 아니라 모두 삼퇴(중국 공산당, 공청단, 소선대에서 탈퇴)했으며 더 이상 남편에게 몰래 소식을 알려주지 않았다. 한 내연녀는 감동해 눈물을 흘리면서 “언니, 언니가 한 말을 저는 믿어요. 저를 대하는 태도에서 파룬궁은 정말로 좋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어요”라고 말했다.

내가 진상을 알려도 남편은 줄곧 듣지 않았다. 한 번은 질병의 고통을 참기 어려워 마지못해 자신의 이름을 써서 탈당했지만 이후에는 또 승인하지 않았다. 그가 도시에 세운 공장은 금방 문을 닫게 됐고 그 본인도 온 몸이 병으로 가득했는데 고혈압, 관상동맥 질환, 성병까지 걸렸다. 도시에 있는 두 딸이 출근 때문에 그를 돌볼 수 없게 되자 나는 그의 과거를 따지지 않고 그를 우리 현 병원에 입원해 치료하게 했다. 매일 5,6번 왕복하면서 그에게 밥을 갖다 주었고 정성 들여 간호해주었다. 병원은 우리 집에서 4리나 떨어져있는데 진상을 알리고 사람을 구하기 위해 비 오는 날 외에 나는 거의 매일 걸어 다녔다. 그가 한 달 넘게 병원에 입원하는 동안 나는 병원 및 부근에서 백여 명을 탈퇴시켰다.

5. 정념이 족해야만 사람을 많이 구할 수 있다

사부님께서 전 세계 4개 정각에 발정념을 하라고 요구하신 후 나는 매일 모두 열 몇 번 발정념을 했고 가장 적을 때에도 8, 9번은 했으며 4개 정각을 한 번도 빠뜨린 적이 없었다. 가장 쉽게 놓칠 수 있는 한 밤중 12시 정각 때, 매일 10시 55분에 5장 공법을 한 후 발정념을 하고는 잠자리에 들었다. 매번 발정념할 때 많으면 한 시간, 적어도 15분은 했다. 가끔은 낮에 정각 때마다 발정념을 했는데 십여 년을 하루와 같이 해서 이미 습관이 되어 버렸다. 집안일을 하거나 채소를 심거나 길을 걸을 때 모두 발정념을 했다. 매일 나가 사람을 구하기 전에 모두 집에서 15분에서 반시간 발정념을 했다. 가끔은 정념이 부족해 잡념이 많으면 탈퇴효과가 좋지 않았다. 진정으로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대법제자의 정념(正念)은 위력이 있다’[3]를 깨닫게 됐다.

매일 아침 침대에서 일어나 연공을 마친 후, 첫 번째 생각은 ‘오늘 사람을 많이 구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친구와 친척, 동료, 이웃들에게는 2008년 전에 모두 한 번 말했고 어떤 사람에게는 여러 번 말했다. 우리 회사 정, 부 공장장, 회계, 출납 등 열 몇 명은(회사에서 살지 않는 두 명 제외) 모두 탈퇴했다. 그 중 한 부공장장은 대법이 박해를 받은 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그의 주소를 알아내 집에 찾아가 탈퇴를 권하려고 할 때 그가 암에 걸려 죽었다는 것을 듣게 됐는데 사망 당시 40여세 밖에 되지 않았다고 했다. 나는 정말 그를 위해 안타깝고 송구스러웠다. 그래서 더욱 시간을 소중히 여기고 다그쳐 사람을 구하려 했다.

하나하나 조사해 본 결과 회사에는 또 50여세 되는 리 공장장이 있었는데 그에게 여러 번 말한 적이 있었지만 탈퇴하지 않았고 자료를 주어도 감히 받지 못했다. 그 며칠 나는 늘 그를 위해 발정념을 해서 그의 몸에 있는 사악한 영체를 제거하고 그를 내 곁으로 오게 해 달라고 사부님께 가지를 청했다. 이튿날 점심, 회사 문 앞에서 정말 그를 만나게 됐다. 웃으며 그에게 인사를 하면서 “리 공장장님, 안녕하세요”라고 하자 그도 기뻐하면서 “좋아요. 보아하니 당신은 갈수록 건강해지네요”라고 말했다. 내가 “그래요. 당신의 상서로운 말과 대법의 복을 받아 비로소 저의 오늘이 있는 것이지요”라고 하자 그는 “알아요. 법이 좋으면 집에서 잘 연마하세요. 나가서 말하지 말구요”라고 했다.

그가 진상을 똑똑히 알지 못하고 두려운 마음이 있는 것을 보고 나는 그에게 파룬따파는 불법으로서 대법제자는 ‘진선인’ 표준에 따라 마음을 닦고 선을 향하며 좋은 사람이 되려한다고 알려주었다. 헌법을 어기지 않고 법을 위반하지 않았지만 파룬궁을 무슨 교라고 정했고 ‘톈안먼 분신자살사건’은 민중들이 파룬궁을 증오하도록 장쩌민이 박해하고 모함한 것이라고 알려주었다. 이 10여 년 간 대법에 대한 박해는 엄청나게 억울한 사건으로서 지금 파룬궁을 박해한 주요 우두머리인 보시라이, 왕리쥔은 이미 판결을 받았고 그들의 배후 세력인 장쩌민, 저우융캉도 곧 법정에 고소될 것이라고 알려주자 그는 아주 열심히 들었다.

이후에 그는 회의하러 간다면서 손을 흔들며 “이후에 또 얘기합시다”라고 말했다. 나는 중도에 그만두지 않고 끝까지 노력했는데 명절 때마다 선물을 들고 그의 집에 설 문안 하러 가서 ‘9평공산당’ 등 진상자료를 갖다주었고 만나면 얘기를 했다. 2014년 가을, 그의 아들이 장가를 갈 때 나는 축의금을 갖다주었다. 이번에 그들 부부 2명, 아들과 딸 한 가족 네 명은 모두 ‘삼퇴’를 했다. 계산해 보면 이 리 공장장에게 나는 열 번 넘게 얘기했고 발정념은 더욱 많이 했다.

2014년 말까지, 나는 친정과 시댁 식구들, 친척과 친구, 동료, 이웃들을 대부분 모두 탈퇴시켰다.(어떤 경우는 다른 수련생과 협조해 말했다.) 얼마나 많이 탈퇴시켰는지는 나도 똑똑히 기억하지 못하는데 많게는 하루에 2,30명, 적을 때에는 두세 명 탈퇴시켰다. 많이 탈퇴시켜도 환희심이 나오지 않았고 적게 탈퇴시켰을 때에는 안으로 원인을 찾았다.

진상을 알려 사람을 구하기 시작한 후 시간과 다투기 위해 나는 인력 삼륜차, 전동차, 삼륜 전기차를 모두 탔는데 5마오(毛)든 5위안(元)이든 모두 탔다. 얼마 요구하면 그만큼 주었는데 명백히 설명하고 탈퇴시키는 것을 위주로 했다. 한 번은 차에 오르자마자 몇 분 동안에 탈퇴시켜 차에서 내린 후 또 인연 있는 사람을 찾아다녔다. 가끔 하루에 차비만 몇 십 위안이 들었다. 친척이나 친구에게 진상을 알릴 때 이익을 따지는 속인의 마음을 맞추려고 한 번도 빈손으로 간 적이 없었다. 고기 한 덩어리, 계란 한 묶음, 빵이나 음료수 등을 들고 다녔는데 그때 매달 퇴직 월급이 100여 위안 밖에 되지 않아 며칠이면 다 썼다. 가끔은 생활비도 없었지만 내심 아주 편안했다. 돈을 써서 세인들의 재난을 없애주고 목숨을 구해주니 가치가 있었다.

2013년부터 나는 집에서 10리 떨어진 도시에 가서 진상을 알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교통버스, 삼륜차를 타다가 지금은 걸어서 다닌다. 왜냐하면 걸어서 가다보면 인연 있는 사람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얘기한 적이 없고 그도 진상을 명백히 모른다면 모두 인연 있는 사람들이다. 알고 있던 사람이든 모르는 사람이든 나는 모두 구했다.

그 2년 동안, 초등학생, 중학생, 고등학생은 내가 진상을 알리고 삼퇴를 권한 중점대상이 됐다. 젊은 생명이 소중하다고 여겼기에 금요일 오후 5시와 월요일 아침 7시 전에 중학교 문 앞에 서서 농촌에서 수업하러 온 학생들을 기다렸다. 여기는 평소 경비원이 있어 들어가기가 힘들었다. 가끔 오후 2시와 5시 전에 몇몇 초등학교 문 앞에 가서 등교하거나 하교하는 학생들을 기다려 진상을 알렸는데 그들은 들은 후 일반적으로 모두 동의했다. 내가 글자를 쓰지 못하고 더욱이 가명을 지어주는 것도 모르기에 모두 학생들 스스로 내 공책에 써 주었다. 몇 년 동안 나는 약 3,40개 공책과(손바닥만한 것) 열 몇 개 펜을 샀다. 처음에는 한 두 날에 한 번씩 명단을 제출했는데 지금은 매주 ‘밍후이 주간’ 등 자료를 가지러 갈 때 자료점에 삼퇴 명단을 제출한다. 많을 때에는 매주 30여명 이며, 적을 때에는 5명에서 7명이 된다. 한 번도 빈손으로 자료를 가지러 간 적이 없었다.

대필자 소감

이 수련생 언니는 우리 현지에서 바쁘기로 유명한 사람이다. 매일 법학습 소조에 오지 않으면 나가서 진상을 알리고 사람을 구한다. 한 번도 그녀가 어디에 가서 15분 이상 앉아있거나 수련생과 잡담을 하거나 일상적인 얘기를 하는 것을 본 적이 없었고 속인과 수다는 더욱 하지 않는다. 하루 동안 한가히 있을 때가 없는데 바람처럼 왔다 바람처럼 사라진다.

그녀는 매일 4시간 이상 자지 않고 가끔 졸기만 하면 된다고 말한다. 평소 그녀는 말이 별로 없지만 입버릇이라면 “시간은 바로 생명입니다. 저는 가서 생명을 구해야 합니다”라는 것이다.

이번에 펜을 들어 언니 수련생을 도와 심득교류를 쓰려고 그녀에서 집에 와서 과정을 얘기하라고 하자 그녀는 늘 하듯 “법학습을 하고 사람을 구해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그렇다. 무슨 일이 세 가지 일을 하는 것보다 중요하겠는가? 나는 직접 그녀 집에 찾아갔지만 오전에 그녀는 마침 나가서 진상을 알렸다. 어쩔 수 없이 언니 수련생 집에서 기다렸는데 오후 2시가 넘자 그녀는 급히 왔다. 집에 오자마자 법학습을 해야 한다고 해서 나는 따라했다.

수차례에 걸쳐 언니의 일부 수련체득을 알게 됐고 마지막에 나는 두날 밤을 이용해 초고를 완성해 그녀가 문장을 수정하기를 기다렸다.

그녀는 대법이 사람을 구할 때 필요한 돈에 대해 늘 아끼지 않았다. 친척, 친구 집에 가서 진상을 알리고 삼퇴를 권했는데 그중에는 자신의 친척, 고향친구, 동료가 있었고 일반 노동자, 서기(공산당·청년단 등 각급 조직의 책임자), 국장, 현 조직 부문에서 일하는 노 간부도 있었다. 누구 집에 가든 모두 작은 선물을 사들고 다녔는데 남들은 그녀가 매달 월급을 다 쓰고 저금이 하나도 없어 어리석다고 비웃었다. 하지만 그녀는 늘 “수련자가 돈을 저금해서는 뭘 하나요? 생명을 구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어느 해, 그녀 큰 딸은 그녀에게 500위안 되는 외투를 사주었지만 그녀는 아까워 입지 않았다. 몸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가격을 내려 친구에게 팔고는 돈을 전부 자료점에 주어 진상달력을 만들게 했다. 2006년 전, 현지에 자료점이 없었기에 매번 대도시에 있는 딸에게 갈 때마다 자료를 한 가방 가득 들고 왔다. 매번 자료를 가지러 갈 때마다 300위안에서 500위안 돈을 냈는데 그 해 딸이 냉장고를 사라고 준 돈 2000위안을 모두 대도시 자료점에 주었다. 이후에 대도시 수련생은 농촌의 어려움을 동정하여 이 돈을 현지 자료점을 세우는데 전달해 주었다. 아주 빨리 우리 지역에 첫 번째 자료점이 세워졌다.

언니 수련생은 생활이 아주 소박한데 그녀가 혼자 집에 있을 때면 늘 하루에 두 끼니만 먹고 가끔은 한 번 요리를 해서 이틀 먹었다. 그녀는 시간과 힘을 절약한다고 말했다. 그녀는 이미 몇 해동안 고기, 물고기, 계란 같은 육식을 먹지 않았다. 수련생은 그녀가 늘 두부, 콩나물 같은 야채를 사는 것을 보고 그녀에게 법리에 대조해 억지로 하지 말라고 말했다. 그녀는 “저는 일부러 이러는 것이 아닙니다. 처음에는 비린내가 나 겨우 먹었는데 토하지 않으면 설사했습니다. 그래서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집착심이 없다면 무엇으로 배를 불려도 된다.’[4]를 기억했어요”라고 말했다.

언니는 비록 생활이 소박하지만 대법제자로서 외모에 아주 신경을 썼다. 나가서 진상을 알릴 때 늘 옷차림을 깨끗이 하고 깔끔하게 차려 입었다. 18년 동안 수련생 집에 가서 법학습을 하거나 속인에게 진상을 알릴 때 한 번도 다른 사람 집에서 밥을 먹거나 물을 마시지 않았으며 화장실에 가지 않았다.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은 그녀가 ‘괴팍’하다고 말하지만 그녀는 “수련자는 다른 사람에게 번거로움을 가져다주지 않습니다. 진상을 알리다 아무리 배고파도 집에 돌아가 밥을 먹고 한 번도 밖에서 먹거나 마시지 않습니다”라고 말했다.

언니는 학교 교육을 받은 적이 없고 말재주도 없어 많은 일들은 말하려고 하지 않았다. 진상을 알리고 삼퇴를 권하는 중에서 사부님께서는 여러 차례 그녀를 도와 위험에서 벗어나게 해주셨는데 그런 구체적인 사례를 그녀는 똑똑히 말하지 못했다. 오로지 오래 동안 그녀와의 교제와 그녀와 함께 진상을 알리러 간 몇몇 수련생이 소개한 상황에 따라 쓸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위험에서 벗어났냐고 물었을 때 그녀는 늘 웃으면서 정념정행한다면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세 가지 일을 하는 중에서 특히 삼퇴를 권해 사람을 구할 때 그녀는 정말 하루도 가만히 있은 적이 없었다. 수련생들은 모두 우리 지역 삼퇴 명단 중 절반 혹은 절반 넘게는 언니가 한 것이라고 인정한다. 이런 칭찬의 소리를 들었을 때 그녀는 쑥스러워하면서 “너무 과장됐어요. 사실 이것은 모두 사부님께서 사람을 구하는 길을 펴 주셨기 때문입니다. 사부님께서 주신 지혜와 능력이 없었더라면 나 같은 말재주가 없는 농촌 여자가 뭘 할 수 있겠어요?”라고 말한다.

그녀는 매년마다 모두 4,5개 공책과 몇 개 펜을 샀다. 게다가 이름은 모두 ‘삼퇴’한 사람 자신이 쓴 것이다. 삼퇴에 동의하지만 글을 쓸 줄 모르는 사람을 만나면 언니는 속으로 빨리 인근 수련생 집에 가거나 길에서 만나는 학생보고 써달라고 해야겠다고 생각한다. 가끔은 수련생 집에 도착하자마자 “빨리 장OO가 공산당에서 탈당하고 이OO가 공청단에서 탈단했다고 써주세요”라고 소리친다. 상대방이 조금 머뭇거리면 그녀는 급해하면서 “만약 내가 이 이름을 잊어버려 그가 생명을 잃는다면 어떡해요?”라고 말한다.

한번은 전기자동차를 모는 한 노 당원을 탈퇴시켰는데 차에서 내린 후 특수 상황에 부딪쳤다. 우리 집에 도착한 후 그녀는 어떻게 해도 이 사람의 이름이 생각나지 않았다. 그녀가 급해 땀범벅이 된 것을 보고 나는 그녀보고 급해하지 말고 조용히 원인을 찾아보라고 했다. 그녀는 아마 자신이 그에게 진상을 명백히 알리지 못했기에 이렇게 됐을 거라고 즉시 깨달았다. 당장 그 사람이 있는 방향을 향해 ‘사부님 가지해주십시오. 그분이 진상을 명백히 아는 것을 교란하는 사악한 요소를 제거해 그가 하루 빨리 대법제자를 만나 진상을 명백히 알고 사악한 조직에서 탈퇴해 사악한 짐승의 흔적을 제거함으로서 무사하기를 바랍니다’라고 발정념을 했다.

이것이 바로 과거에 일자무식이고 온 몸이 병으로 가득한, 시부모와 남편의 업신여김을 당하던 농촌 여성이다. 대법 이 용광로 속에서 단련하여 오늘날 글자를 알고 이치를 따지며 병이 없이 몸이 홀가분하고 무사무아한 부처님 마음씨를 가진 사람으로 됐다. 사람을 많이 구하고 다투어 구하기 위해 언니는 매일 여전히 사부님께서 안배하신 수련의 길에서 바삐 보내고 있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정진요지-교란을 배제하자(排除幹擾)’

[2] 리훙쯔 사부님 저작: ‘오스트레일리아법회 설법’

[3] 리훙쯔 사부님 저작: ‘정진요지2-대법제자의 정념(正念)은 위력이 있다’

[4] 리훙쯔 사부님 저작: ‘전법륜’

(밍후이왕 제12기 중국대륙대법제자 수련심득교류회)

문장발표: 2015년 11월 2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정법수련마당> 밍후이 대륙법회> 제12기(2015년)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5/11/2/318483.html

ⓒ 2024 명혜망.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