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산둥 대법제자
[밍후이왕]
존경하는 사부님 안녕하십니까!
수련생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2015년 제12회 중국대륙 대법제자 수련심득교류회 원고모집은 중국 대륙 대법제자에 대한 편애라고 할 만큼 감사한 일이다. 나는 위대하신 사부님이 계시기에 운이 좋은 사람이다. 사부님께서는 안으로 찾는 법보(法寶)를 주셨으므로 대법의 법리로 스스로를 철저히 개변시켰다. 사부님께 보고를 드리고 수련생과 교류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1. 사람 마음을 제거하고 수련생 가족에게 진상을 알리다
나는 1998년 법을 얻은 59세 수련생이다. 17년 동안 곤두박질을 치기도 했지만 자비롭고 위대하신 사부님의 가호 덕분에걸어올 수 있었는데 사람마음의 집착과 관념으로 많은 교란과 시련을 겪었다.
2014년 우리 시에서 수련생 6명이 잇따라 중국공산당에 불법적인 납치를 당했다. 처음 세 명이 납치됐을 때 수련생을 구출하는 문제를 결정하지 못한 상태였는데, 두 번째로 또 수련생 두 명이 납치됐고 그런 상태에서 또 수련생 한 명이 세 번째로 납치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 후 첫 번째로 납치된 수련생의 가족들이 변호사를 선임한다는 소식을 듣고 우리가 어느 변호사를 선임해서 이들을 어떻게 구출할 것인지 상의했지만 수련생들의 인식은 각자 달랐다. 그러나 나는 태도를 표명하지 않았다. 그러나 수련생 구출문제에 관심을 보이는 수련생이 소수에 불과해서 흐지부지 중단되고 말았다.
그런 상태에서 수련생 집을 나올 때 내 마음은 매우 무거웠다. 그런 기분은 그날 밤 계속 됐다. 억울하고 불편한 마음이 답답해서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러나 이튿날 일어나서 ‘어떻게 해서든지 수련생을 구출해야한다’는 생각을 했다. 납치된 수련생 6명의 집이 모두 120리 길에 각각 분산돼 있었으므로 시간을 아끼기 위해 택시를 이용해 찾아다니며 사실을 확인했다. 박해를 폭로하는 기사를 밍후이왕에 전송해야 했고 수련생 가족들에게도 진상을 알려야 했기 때문이다.
처음 W수련생 집을 찾아가서 딸에게 사람을 구하러 가자고 하자 딸은 화난 표정으로 나를 반기지 않았다. 하지만쫓아내지는 않았다. 딸은 “파룬궁이 좋으면 집에서 하지 왜 밖에 나가 그 짓을 해요?또 잡혀서 노동교양 처분을 당하려고? 이젠 정말 지겨워!”라고 불만을 터트렸고 “데리러 가봐야 아무 소용없어요. 이젠 어디 말할 곳도 없어요!”라며 내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수련생 가족의 이지적이지 못한 그런 태도를 보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나는 자신의 일언일행을 자세히 돌아보았다. 그 속에서 불평하는 마음을 찾았고 법에서 자비심을 수련해 내지 못했음을 알게 됐다. 또 자신의 부족한 점을 인정하지 않았고 상대방을 인정하지 않는 점을 찾았다. 두 번째로 그 수련생의 집을 방문했다. 이제는 마땅히 자신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았다.
나는 수련생의 딸에게 성실하게 말했다. “당신도 엄마 때문에 참으로 고생이 많았어요. 그런데 옆에서 엄마를 지켜봐서 잘 알겠지만 엄마는 전에는 건강이 상당히 좋지 않았는데 파룬궁을 수련하고 나서 건강해졌고 또 좋은 사람으로 되지 않았나요? 그런데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장쩌민의 일방적인 거짓말에 중독돼 진상을 모르고 있어요. 우리가 사람들에게 진상을 알리는 것은 세인들이 그것들과 연루되지 않도록 하려는 거예요”라고 자세하게 일부 진상을 알려줬다. 딸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수련생의 딸을 세 번째 만나서 “함께 공검법(공안, 검찰, 법원)과 정부기관에 고소장를 접수시키러 가요”라고 했다. 비록 다른 공간의 교란이 있었지만 수련생들이 그것들을 청리했으므로 수련생의 딸 부부는 걸어 나왔다. 결국 그들 부부는 적극적으로 우리에게 협조함으로써 목적한 대로 구출 행동을 할 수 있었다. 그 딸 부부는 처음 우리의 제의를 완강하게 반대했지만그들에게 진상을 알리자 자발적으로 나섰던 것이다. 그것은 사람을 구하는 한 과정이었다. 우리 수련생들은 각자 사악에게 당한 박해 사실을 들려주며 수련생 사위에게 남자다운 선량한 일면을 불러일으키게 했으므로 그는 사람을 구하는 데 적극적이었으며 이후 장모를 원망하지 않았다.
나는 한 수련생과 함께 설 전에 새해 선물을 갖고 수련생 딸의 집을 방문해 “꼭 견지해야 해요”라고 격려하며 “이것은 시간의 문제예요. 악은 정의를 이길 수 없어요”라고 안심시켰다. 그들의 불안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진상을 알려준 것이다. 그들은 대법제자의 선량함을 느꼈다. 우리를 다시 만난 수련생 딸은 나를 끌어안고 울면서 말했다. “당신들이 우리 엄마처럼 우리를 돌봐줘요.” 우리도 함께 눈물을 흘렸다. 납치됐던 수련생은 설 명절 4일 전에 집으로 돌아왔다. 수련생 가족은 파룬따파(法輪大法)의 신기한 힘과 대법제자의 남을 위하는 정신을 실감할 수 있었다.
L수련생이 박해를 당했을 때 그녀 남편은 협조를 잘한 편이었다. 가족 중에 몇 명의 대법수련자가 있었으므로 진상을 알고 있었다. 납치된 수련생의 80세 고령의 친정어머니와 시어머니가 추운 날씨에 공안국을 찾아다니며 석방을 요구하다가 구타를 당했다. 이런 사실을 알게 된 우리는 즉시 다른 가족들에게 사실을 알려줬다. 수련생 가족들은 노인이 구타당했다는 사실을 전해 듣고 분노했으며 몇몇 가족들은 노인을 구타한 경찰관을 직접 찾아가 항의하며 분위기를 잡아갔고, 구타당한 두 노인은 고소장이 쓰인 옷을 입고 각 부서를 찾아다니며 수련생의 석방을 요구했다. 이에 다른 가족과 친척들도 가세하여 지지하고 협조했다.
사건의 실마리가 진전됨에 따라 조율이 필요했다. 전화를 통한 협의는 한계가 있었으므로 직접 집으로 찾아가서 상의했으며 동시에 몇 개 지역 수련생들에게 협조를 당부해 그들로 하여금 관련부서를 찾아가 석방을 요구하게 했고 또 우리와 함께 공검법 각급 기관에 진상편지와 고소장을 발송하게 했다. 그러나 이렇게 다방면으로 일을 추진하는 과정은 매우 고생스러웠다. 나는 다섯 식구를 돌봐야 하는 처지였다. 매일 시간이 긴박하게 돌아가는 관계로 가정 일은 아예 돌보지 못할 때가 많았다. 그러다보니 가족들로부터 오해를 사게도 되고 불평을 듣게 되는 등 정말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렇지만 매번 집을 나설 때는 사부님의 가지(加持) 속에서 대법제자의 책임감을 느낄 수 있었기에 일은 순조로웠다. 그래도 불평하는 마음이 늘 올라왔는데 그럴 때마다 사부님의 지도와 법리에 따라 걸었다.
수련생 가족들과 계속 소통하면서 모두 진상을 알렸다. 그러므로 대부분 가족은 우리와 함께 각 부서에 고소장을 전달했다. 가족들이 그렇게 선행을 할 수 있도록 개변된 것은 전부 사부님의 크나큰 자비의 체현이다. 비록 납치된 수련생을 모두 구출하지는 못했지만 그 과정에서 중생을 구도했고 중국공산당에 해독을 입은 세인을 구도했을 뿐만 아니라 특히 박해 받은 수련생 가족들을 구도한 것이 큰 의의라고 할 수 있다.
2. 장쩌민 고소, 정체협력과 정체제고로 많은 사람을 구하다
나는 전 인민이 장쩌민을 고소하는 것을 감안해서 우선 중국공산당의 잘못된 이른바 ‘형법 제300조’와 ‘장쩌민의 파룬궁박해를 국제기구에서 청산’이란 공고 자료를 인연 있는 사람에게 발송했다. 또한 장쩌민 고소와 관련된 각종 정보를 인쇄해 시 전체 수련생들에게 배포해 ‘장쩌민을 어떻게 고소해야 하는지’ 알려줬다.
그렇지만 수련생들은 각자 마음이 다르고 또 사람 마음, 특히 실명이나 주소지와 연락처를 밝히는 문제에 대해서는 두려운 마음이 올라와 장쩌민 고소에 장애가 됐다. “쓸 줄 몰라요.”, “박해 받지 않았어요” 등등의 각종 구실을 대며 고소장을 쓰려 하지 않았다. 그래서 몇몇 수련생과 함께 법공부를 하고 토론을 해서 밍후이왕에 보도된 수련생 교류문장과 장쩌민 고소 소식을 알려주고, 고소장 양식을 인쇄해서 수련생들에게 전해주었지만 일부 수련생들은 자신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듯이 눈치를 살피면서 기다리기만 했다.
나는 그런 문제를 겨냥해 시골지역 수련생과 교류해 장쩌민을 왜 고소해야 하는지에 대해 뚜렷한 인식이 들게 했다. 수련생에게 밍후이왕의 장쩌민고소 관련 문장을 거듭 보여주며 정념을 자극했다. 또 수련생에게 인터넷에 접속해 수련생 교류문장을 읽도록 격려해 주었다. 그렇게 하자 도시지역 수련생들이 잇따라 고소장을 써서 발송했으며 고소장 접수를 확인받기 시작했다. 다른 수련생들도 뒤따라 하게 되어 하나의 장이 형성됐다. 그러므로 도시 수련생들이 시골 수련생을 찾아가서 고소장을 작성해주고 정리해주며 우체국에서 고소장 발송을 도와줬다. 그러므로 점차 각종 사람마음, 두려운 마음 등등의 좋지 못한 관념에서 걸어 나온 수련생들의 인식이 제고되기 시작했으므로 각 방면에서 큰 변화가 일어났다.
한 시골에 A라는 80대 가까운 수련생이 있었는데 수련생의 협조를 받아 고소장을 쓴 후 “어떻게 발송하죠?”라고 물었다. 그러면서 외지로 출근하는 아들에게 부탁해서 발송하겠다고 했다. 노인은 “도시에서 살아본 적도 없고, 가본 지도 10년이 넘었으며, 거리도 멀고, 우체국도 혼자서는 찾을 수도 없어요”라고 했다. 나는 노인과 대화를 통해 법으로 두려운 마음을 제거하게 해 관념을 개변하도록 도와줬다. 그러자 노인은 스스로 우체국에 가서 발송하기로 했다. 그는 오토바이를 타고 우체국을 찾아가다가 한 곳에서 멈춰 서서 누구에게 물어보려고 머리를 들었는데 바로 그곳이 우체국 정문 앞이었다. 그때 마침 미화원이 “비가 오는데 뭣 때문에 왔어요?”라고 물었다. 노인이 우편물을 발송하러 왔다고 하자 그는 노인을 우체국 담당직원에게 안내해 주어 고소장 발송을 도와줬다. 담당직원 역시 친절하게 발송을 해주었다. 노인은 우편발송을 마친 후 수련생 집을 찾아와서 격동하고 아주 기뻐하며 합장하면서 그간의 경위를 설명했다. “사실 사부님께서 이미 우리에게 배치해주셨어요. 단지 우리가 한 걸음을 내딛기만을 기다리신 것이지요.”
Z수련생 역시 노인 수련자인데 ‘당연히 장쩌민을 고소해야 한다’는 인식을 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각종 사람마음, 특히 두려움이란 관념에 가로막혀 좀처럼 움직이지 못했다. 여러 차례 대화를 통해 격려하고 다른 수련생의 협조로 고소장을 작성하고 정리해 발송하도록 했지만 여의치 않았다. 그녀는 나를 찾아와 모든 걸 나에게 맡기겠다며 발송을 부탁했다. 나는 “이 일은 대법제자라면 누구나 진정으로 자신이 걸어가야 하는 엄숙한 길입니다. 이 일을 다른 사람이 대신하는 것은 합당하지 않습니다”라고 말해줬다. 그러자 그녀는 “이런 작은 일도 도와주지 않나요!”라며 화를 냈다. 사실 나는 그녀의 두려워하는 마음을 보았다. “무슨 마음이 있는지 찾아보세요. 왜 자신이 정정당당하게 그 일을 잘할 수 없는 지 찾아보세요!”라고 했다. 수련생은 서서히 ‘자신의 두려워하는 마음을 제거하는 좋은 기회’라는 것을 인식하게 됐다. 결국 그녀는 고소장을 작성했고 그녀가 동행을 원하지는 않았지만 나는 우체국까지 같이 가서 고소장을 발송했다. 이후에 접수확인 메시지까지 받았다. 그녀는 기뻐하며 나에게 말했다. “나는 작은 일을 했을 뿐인데 사부님께서는 더욱 많은 것을 주셨어요. 장쩌민을 고소한 후 많은 것을 제거한 것 같아요. 온몸이 가벼워요. 특히 두려운 마음이 단번에 사라진 것 같아요.” 그녀는 마음속으로 사부님께 어떻게 감사를 드려야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심성이 제고되자 그녀도 어떻게 해야 할지를 알았다. 그녀는 더운 날씨인데도 2세 된 손자를 데리고 고소장을 쓰지 않는 수련생을 찾아가 자신이 직접 체험한 내용을 말해주며 고소장을 쓰라고 격려했다. 그녀의 격려를 받고 걸어 나온 수련생이 몇 명이 되는데 그 과정에서 사부님의 가지, 보호, 격려를 느꼈다고 했다.
H수련생은올해 60세인데 납치되어 박해를 당하다가 가족의 도움으로 보석 형식으로 석방됐지만 경찰의 계속되는 감시와 행패를 견지지 못해 집에 돌아가지 못하는 수련생이었다. 그가 장쩌민을 고소하는 문제에서 두려운 마음이 올라온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른다. 그는 당연히 장쩌민을 고소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다시 납치돼 박해당할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고소하지 못했다. 특히 밍후이왕에 발표된, 일부 지역 수련생들이 장쩌민을 고소했다가 납치당한 사실을 보고 더욱 불안해했다. 그러나 여러 차례 대화를 통해 고소장을 작성하게 하여 몇 번의 수정을 거치면서 점차 나쁜 물질을 제거했다. 그녀는 고소장 작성이 완료된 후 내게 고소장 발송을 부탁했다. 나는 이치를 말해줬다. “이것은 엄숙한 일이므로 제가 대신할 수 없는 일입니다. 직접 본인이 발송해야 합니다.” 그녀도 화를 내며 말했다. “당신은 다른 사람은 도와주면서 왜 유독 나만은 도와주지 않지요? 지금 나는 밖으로 나가기가 어려운 상태예요. 그러니 당신이 발송해주면 되지 않나요?” 다음 날 보슬비가 내렸다. 나는 그녀를 찾아가 함께 우체국에 가자고 했다. 그녀는 마지못해 따라 나섰다. 우체국에서 고소장을 발송하고 나온 그녀는 “이렇게 간단하다니!”라고 했다. 길에 나와서 또 말했다. “그동안 나는 당신을 얼마나 미워했는지 몰라요. 당신이 일부러 나를 난처하게 만든다고 생각했어요. 내가 밖으로 나가기 어려운 형편인데도 나가라고 했으니까요. 솔직히 말해서 당시 당신이 그렇게 하는 것은 나를 위한 것이고 나에게 책임지라는 것임을 알고는 있었지만 두려운 마음 때문에 그랬던 거예요. 모두 속인 마음으로 당신을 생각했던 거죠.” 다음날 그녀는 또 말했다. “사부님께서는 참으로 자비로우셔요. 몸에 큰 변화가 일어났어요. 오늘 가부좌를 할 때 원형 같은 물건이 머리에서 발목까지 내려와 좀 아프다가 얼마 지나서 통증이 사라졌어요.” 사부님께서 그 제자에게 주신 것은 영원히 가장 좋은 것이다.
3. 가족은 진상을 알 필요가 있다
나는 최고검찰원과 최고법원에 고소장을 발송한 후 내 고소장 사본을 다시 수정해 중앙 도시와 각급 지방에 있는 친척친구에게 일일이 발송했다. 그런데 8월 11일 오후 아들에게서 전화를 받았는데 시 정법위(政法委) 간부가 우리 집을 찾아갈 것이니 피신하라고 했다. 아들은 그들에게 우리 집 주소를 알려주지 않았다고 했다. 아들은 박해 초기에 잔혹한 박해로 큰 고통을 받았으므로 지금도 여전히 걱정이 많다. 아들은 나에게 크게 화를 냈는데 그건 바로 장쩌민 고소에 대한 교란이다. 고소장에 우리 온 가족은 모두 서명했다. 정법위에서 다시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상황을 파악하려 했지만 남편 역시 우리 집 주소를 알려주지 않았다. 두 사람 모두 사실대로 말해주지 않고 거짓말을 했다.
내가 안을 향해 찾아보니 내게 거짓말을 하는 집착심이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장쩌민 집단에게 놀란 나머지 집 주소를 잘 모른다고 둘러댄 것이다. 나는 즉시 남편 핸드폰에서 발신자 전화번호를 확인한 후 전화를 걸었다. 한 여자가 전화를 받았는데 “당신이 발송한 우편물이 이곳에 있어요”라고 했다. 나는 말했다. “그 우편물은 장쩌민 고소장이니 잘 보세요. 내가 최고검찰원에 고소장을 발송했는데 그들이 접수확인 메시지를 보냈어요.” 그녀는 “그날 내가 당신네 집을 찾으려고 했지만 찾지 못했어요. 도대체 어디에 살아요?”라고 물었다. 나는 “먼저 장쩌민 고소장을 한번 보세요. 그 고소장에 주소와 전화번호가 있는데 그걸 보고 나를 찾으면 돼요.” 그러자 상대방은 연속해 좋다고 했다.
곧 이어서 여동생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왜, 우리 지역 부서 기관에 고소장을 발송했어? 날 해치려고?” 당시 내가 납치될 때 여동생은 호텔에서 일했는데 장쩌민이 현지에 오는 바람에 나를 납치하면서 여동생까지 연루되어 호텔도 폐업됐다. 여동생은 결국 그 사건으로 1백만 위안의 손실을 입은 적이 있다. 여동생은 불평하며 말했다. “몇 년간 내가 잘 살고 있는 걸 보더니 또 나를 해치려고? 이제 우리 관계를 끊자. 당신은 내 언니가 아니고 나도 당신의 동생이 아니야.” 그 말을 듣고 참으로 괴로웠다. 장쩌민은 그렇게 모든 세상 사람들을 해친 것이다.
나는 여동생이 49세 생일을 맞을 때 가족을 꼭 구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온 가족은 모두 두려워하며 참가를 반대했다. 나는 마땅히 일체를 직면해야 하고 더는 끌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먼저 오빠, 큰 언니, 셋째 여동생에게 고소장을 보여주었고 그들은 여동생에게 전화를 걸어서 여동생과 가족의 태도를 바꾸려 했다. 이후 내가 여동생에게 자료를 주자 기쁘게 받았으며 여동생에게 잘 보라고 당부했다.
그날 밤 셋째 여동생의 임신한 딸이 우리 지역 병원에 입원해서 다음날 여아를 출산했다. 그런데 아이는 태어나자마자 고열이 나타났으며 좀처럼 열이 내리지 않았다. 의사는 시내 큰 병원으로 가야한다고 했다. 큰 병원으로 가야 할 기이한 병이라면서 간다고 해도 완치는 보장할 수 없다고 했다. 5천 위안의 치료비를 지불한 후 집에 돌아가 소식을 기다리라고 했다. 상황이 급박해지자 모녀는 각자 다른 지역에 있으면서 서로 걱정만 했다. 그러니 가족들은 더욱 애가 탔다. 나는 소식을 듣고 급히 병원에 찾아가 “대법만이 아이를 구할 수 있어”라고 했다. 온 가족에게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眞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를 함께 염하라고 했다. 그리고 가족에게 왜 장쩌민을 고소해야하는지 그 이유를 설명했다. 16년간 대법제자의 박해를 장쩌민이 직접 지시하고 통제하며, 생체 장기적출로 폭리를 취했고, 톈안먼 분신자살 사건을 조작해 파룬궁을 모욕한 것임을 알려주며 절대로 그것들에게 속으면 안 된다고 했다. 가족들에게 많은 진상을 알려주어 당, 단, 대 조직에서 모두 탈퇴시켰다. 그들은 진상을 알고 모두 감동해 눈물을 흘렸다. 이튿날 병원에서 아기가 젖을 잘 먹고 열도 내렸다는 전화 연락이 왔다. 작은 생명이 구도된 것이다.
장쩌민 고소를 통해 구도될 생명들이 또 내 눈앞까지 밀려왔다. 어느 날 며느리가 “친정부모가 걱정이 돼서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해요”라고 말했다. 나와 며느리가 장쩌민을 고소한 후 상부에서 당서기직에 있는 며느리의 친정 삼촌에게 전화가 간 것이다. 공산당은 연좌제로 사건을 다루기 때문에 사람들은 두려워한다. 삼촌은 자신에게 화가 미칠지 모른다는 생각에 사돈에게 전화를 했다. “조카딸이 장쩌민을 고소했네요. 담이 꽤 크네요. 상부에서 내게 연락이 왔어요. 내게 무슨 일이 생기면 모두 당신들 책임이에요.” 그러니 사돈댁도 두려워하고 또 화가 났던 것이다. 그래서 딸에게 당장 이혼하라고 위협하면서 딸에게 친정집에는 오지도 말라고 윽박질렀다. 진상을 알리는 기회가 온 것이다. 나는 반드시 사돈댁을 만나서 말해야한다고 생각했다. 사돈댁을 방문하니 사돈은 굳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마침 점심식사 중이었다. 사돈은 굳은 표정으로 내게 죽 한 그릇을 떠주며 못마땅한 듯이 말했다. “딸의 호구부(호적)에서 떼어가려고 오셨나요?” 나는 “왜 호구부에서 떼어가야 하나요?” 사돈은 “딸년을 호구부에서 빨리 떼어가세요. 당신들 대단하군요. 감히 장쩌민을 고소하다니! 사돈은 나이가 많으니 어떻게 된들 상관없겠죠. 하지만 당신 손자를 생각한 적이 있습니까? 당신이 그렇게 하면 손자가 학교에 갈 수 있겠어요?손자를 망치는 겁니다.장사해서 돈을 얼마나 모았어요?(그 말은 우리가 가난하다는 뜻)” 안사돈은 나에게 말했다. “우리 셋째 딸만 구순하게 잘 지내고 있는데 당신들이 장쩌민을 고소해 사단을 만들고 있으니 그건 배부른 짓 아닌가요?”
사돈은 이전에 파룬궁을 하는 한 손님이 삼퇴를 권하자 그건 반당(反黨)이라고 했다고 했다. 나는 정중하게 알려줬다. “파룬궁은 박해를 당한 것입니다. 파룬따파(法輪大法)는 정법으로 진선인(眞善忍)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지요. 파룬궁은 전 세계 100여 개 나라에 전해졌는데 중국에서만 박해하고 있어요. 파룬궁은 국가와 백성에게 좋아요. 백가지 이로움은 있어도 한 가지 해로운 점도 없어요. 파룬궁은 병을 치유하고 신체를 건강히 하는 데 탁월한 효능이 있어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수련하고 있어요. 하지만 장쩌민은 질투심으로 손안에 있는 권력을 이용해 전례 없는 박해를 발동했어요. 더욱 잔혹한 것은 파룬궁수련생의 생체에서 장기를 적출해 판매하여 폭리를 도모했어요. 지금 파룬궁을 박해한 고위관리와 장쩌민 집단을 뒤쫓는 자는 이미 보응을 받았어요. 중국 고위관리들의 낙마는 파룬궁 박해와 관련이 있어요. 사람이 다스리지 않으면 하늘이 다스리지요. 장쩌민은 집단학살죄 및 반인류죄를 범해 많은 나라에서 고소·고발하여 심판대에 올려놨어요. 이것은 하늘의 뜻이지요. 장쩌민이 파룬궁을 박해했으므로 나는 파룬궁을 수련하면서 여러 번 납치되어 감금됐어요. 내가 이 집을 망친 것이 아니라 장쩌민이 우리 집을 망쳤어요. 그러니 마땅히 그를 고소해야하지 않겠어요?” 사돈도 더는 할 말이 없다는 듯했다.
저녁에 사돈댁에서 집으로 돌아와 며느리와 대화하면서 이번 진상 알림을 통해 평소 법의 표준에 따라 자신을 요구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특히 경제적인 문제를 말할 때 수련인의 표준에 도달하지 못했던 것이다. 우리는 모든 것을 대조하면서 이전의 부족했던 점을 보충했다. 이 일체는 우리가 잘하지 못해서 생긴 일이다. 반드시 안을 향해 찾고 자신을 잘 수련하며 밖을 보지 말아야 한다.
다음 날 며느리는 친정에 가서 친정부모에게 진상을 알리겠다고 했다. 나는 적극 지지했다. 며느리는 어려서부터 친정아버지를 두려워했다. 친정아버지는 집에 온 딸을 보고는 화가 나서 나가버렸다. 딸은 엄마에게 파룬궁 수련 후의 변화를 자세히 설명하고 사부님과 대법이 자신을 바로 잡아주었다고 말했다. 그녀는 다시 여동생 집에 갔다. 여동생도 언니에게 화를 냈다. 그녀는 이상하다고 생각하고 안을 향해 찾았다. 불평하는 마음이 나왔다. 안을 향해 찾는데 친정아버지가 집으로 오라는 전화가 왔다.
친정아버지는 집에 도착한 딸에게 말했다. “대법이 좋으면 집에서 연마하고 건강이 좋아졌으면 됐지, 왜 장쩌민을 고소해?” 딸은 정정당당하게 말했다. “장쩌민은 대법과 대법제자를 박해했으므로 우리는 그를 고발할 권리가 있어요. 세상 사람들도 피해자예요.” 이때 친정엄마가 울면서 남편에게 말했다. “당신과 이혼할래요. 당신에게 시집와서 하루도 잘 지낸 적이 없어요. 일을 많이 했는데도 나를 괴롭혔어요. 큰 딸만 당신 딸이고 작은 딸은 당신 딸이 아니에요? 딸이 장쩌민을 고소하겠다면 하게 둬요.왜 딸을 괴롭혀요?” 친정엄마는 계속 울고 있었다. 그러자 친정아버지는 아주 재빨리 말했다. “이번 한번 뿐이다. 두 번은 없다.” 그러자 딸은 친정아버지에게 말했다. “두 번은 없어요. 한 번에 장쩌민을 심판대에 올릴 수 있어요.”
며느리는 집에 돌아와 말했다. “세인은 사당의 괴롭힘을 두려워해요. 전에 바삐 일만 하다가 가족에게 진상을 똑바로 알리지 못했어요. 장쩌민 고소를 통해 가족은 철저하게 진상을 알게 됐어요. 이젠 가족도 공산당의 흉악한 면목을 똑똑히 알게 됐어요.” 대법제자는 중요한 시기에는 세인의 표현을 보지 말고 오직 진상을 알려 사람을 많이 구하고 사부님의 말씀을 잘 듣고 자신을 잘 수련해 사람을 많이 구해야 한다.
간난신고 10여년, 수련의 걸음마다 사부님의 심혈이 스며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후의 길을 잘 걸어 사부님께 걱정을 덜 끼쳐드려야 한다. 사부님의 자비로운 고도(苦度)에 감사드리며 수련생 여러분의 도움에 감사를 표한다!
(밍후이왕 제12회 중국대륙 대법제자 수련심득교류회)
문장발표: 2015년 11월 5일
문장분류: 수련마당>정법수련마당>밍후이대륙법회>제12회(2015년)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5/11/5/318474.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