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세 식구의 이야기
글/ 대륙 대법제자
[밍후이왕] 1991년 전 남편은 집안의 돈이 되는 물건과 현금을 모두 가져갔고 남은 것은 목재가구와 몇 개월 후면 만기가 될 셋집만 남겨두고 나를 떠나갔다.
1995년 다른 사람의 소개로 지금의 남편을 알게 되었다. 그는 사람 됨됨이가 괜찮고 성실하며 일도 잘했다. 그러나 그에게는 8살 되는 아들이 있었다. 당시 나의 친척, 친구는 내가 이 아이와 사는 것을 반대했다. 또한 그의 부모도 농촌에 있는 본인들이 키워준다고 하셨다. 그때 나는 애 아버지가 도시에서 잘 살고 있는데 아이를 농촌에 남겨둘 수 없다고 했다. 할머니의 건강도 나쁘고 아이의 친엄마는 이혼 후 한 번도 오지 않았다. 나는 ‘내 아이처럼 바른 마음으로 양심껏 키우면 어려울 게 뭐가 있을까?’라고 생각했다. 이리하여 우리는 결혼 후 아이를 데리고 왔다.
대법은 나와 의붓아들의 원한을 풀어주었다그러나 아이 때문에 근심걱정이 생길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학교에서는 그 아이를 건드리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고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담배를 피우고 늘 나쁜 사람들과 만났다. 친구에게 좋은 물건이 있으면 도둑질하거나 협박하여 빼앗았다. 만약 주지 않거나 선생님에게 알리면 그 아이를 어떻게 괴롭힐까 연구했다. 중학교를 2개월쯤 다니자 학교를 그만두었다. 나와 아이 아빠는 많은 사람을 찾아다니고 고민을 하며 각종 방법을 다 써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날부터 아이는 더 이상 학교에 다니지 않았다.
우리 집은 장사를 하기에 매일 돈이 들어오고 5, 6일에 한번씩 물건을 들여와야 한다. 때문에 집에는 늘 현금이 있었다. 아이는 늘 집안에 있는 돈을 몰래 가져갔다. 적을 때는 30위안, 50위안이고 많을 때는 500위안, 600위안이다. 일단 돈이 그의 손에 들어가기만 하면 돌려받을 수 없었다. 우리는 돈을 놓는 장소를 자주 바꾸었다. 그에게 발견되면 또 장소를 바꾸어 놓았다. 나와아이 아빠는 머리를 쥐어짰다. 21평되는 방에 비교적 안전하다고 생각되는 곳에 놓았지만 어느 곳도 아이의 눈을 벗어나지 못했다. 어느 날 돈을 숨길 곳이 없어 생각하고 생각하다가 침대 아래 마루를 철거해 그 안에 돈을 숨기자고 했다. 나의 남편은 내가 말한 대로 했다. 허나 작업을 마치고 보니 마루를 새로 깐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막무가내로 우리는 또 집안 전체에 쿠션매트를 깔았다. 그러나 우리는 완벽하다 여겼지만 7일 후 물건을 구매하려는데 또 650위안이 적어질 줄이야.
솔직히 말하면 이 아이 때문에 죽으려고 여러 번 생각한 적이 있었다. 나는 성격이 비교적 강한 사람이다. 한 번 이혼하였기에 또 이혼한다면 사람들의 비웃음이 두려웠다. 그러나 이혼하지 않으면 정말로 살 수가 없었다. 계모이기 때문에 나는 되도록 잘해주려고 했다. 생활에 불편함이 없도록 더 관심을 갖고 먹고 쓰는 것도 충족시켜주었다. 많은 이치와 도리를 말했지만 어떻게 해도 그 아이를 감동시키지 못하고 갈수록 더 심해졌다.
나의 부친은 1991년에 세상을 떠났다. 그가 나에게 유일하게 남긴 것은 현금 52위안 (예전에 발행된 1위안, 2위안, 또 50전짜리 새 돈)이었다. 대략 2001년도에 그 돈은 가격이 올라 1위안짜리 지폐 몇 장이면 30위안을 바꿀 수 있었지만 나는 아까워 교환하지 않았다. 이것은 아버지가 남긴 것이기에 기념으로 남기자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 돈도 그 아이가 다 썼을 줄이야. 쓴 돈 중에는 내가 여러 해 모으고 매번 발행된 각양각색의 50전짜리 동전도 있었다. 또 일부 각 판본의 1위안, 2위안, 5위안, 10위안 등의 새 지폐가 있었다. (모두 4, 500위안이 된다.) 그때 나는 정말 미칠 듯이 화가 나 그 아이의 뺨을 두 번 때렸다. 그러자 다니는 곳곳마다 총을 얻어 나를 죽이겠다!’고 떠들고 다녔다. 나는 막다른 지경에 몰렸다. 차라리 죽으면 만사가 다 끝난다! 깔끔하게 기차에 치어죽자.
한 밤중에 나는 기차 길에서 천천히 거닐었다. 걷다가 힘들면 주춧돌에 누워있었다. 울어도 하늘땅은 대답이 없었다. 아마 죽지 말아야 할 생명인지, 신과 부처가 보호하였는지, 그곳에서 2, 3시간 있었지만 뜻밖에 기차는 한 대도 지나가지 않았다. 후에 남편이 부르는 소리를 들었다. 그는 한 무리 사람들을 거느리고 나를 찾아왔다. 남편은 필사적으로 달려와 단숨에 나를 안았다. 칠 척되는 사나이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흐느끼기만 하였다.
나는 비록 목숨을 부지했지만 그 해 마음고생으로 신체가 말이 아니었다. 엄중한 내분비 장애로 160m 키에 체중이 120kg~125kg가 되었다. 혈압은 220~160이 되었다. 의사는 반드시 침대에 누워 안정을 취해야 하며 그렇게 하지 않으면 뇌출혈이 생길 위험이 있다고 말했다. (나의 모친은 68세 때 혈압이 놓아 뇌출혈로 돌아가셨다.) 또 심장과 뇌에 혈액 공급이 부족하고 편두통 (발병할 때 얼굴 절반과 눈언저리, 눈동자가 아파 참기 어려웠다.), 유선증식, 이가 늘 아파 밤새 잠들지 못했다. 그때 나는 절대로 조급하거나 성이 나면 안 되며 밤을 새면 안 되었다. 몇 차례 발병이 심할 때는 가슴이 두근두근 거리고 입이 마비되면서 머리 아래로 피가 전부 없고 곧 죽을 것 같은 느낌이었다. 총체적으로 말하자면 사는 것이 죽는 것 보다 못하였다.
1993년부터 사람들은 끝임 없이 나에게 파룬궁을 언급했다. 나는 이전에 X공을 연마하고 적지 않은 돈을 쓰면서 먼 곳까지 갔다. 처음에 신체에 좀 느낌이 있는 것 같았지만 후에 병을 치료하지 못하고 또 부체를 초래해 놀란이후에는 더는 기공을 연마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처음에 파룬궁을 들었을 때 나는 보통 기공과 같다고 생각되어 누가 나에게 말해도 마음을 움직이지 않았다. 나는 또 부체를 초래할까 봐 두려웠다.
고혈압이 발작해 병원에 입원한지 21일이 되었다. 여러 가지 약을 바꿔도 혈압이 내려가지 않고 저혈압은 정상인의 고혈압보다 더 높았다. 의사는 나의 피 농도는 정상인의 10여 배를 초과한다고 말했다. 또 수시로 뇌출혈 위험이 있고 일단 뇌출혈이 생기면 수술 외에 치료할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왜냐하면 나의 몸은 이미 약에 대해 내성이 생겼기 때문이다.
이때 의학을 배우는 한 파룬궁 수련생이 나를 보러 왔다. 이 사람은 예전부터 여러 차례 파룬궁 진상을 말하고 오직 파룬궁만 나의 생명을 구할 수 있다. 파룬궁은 돈 한 푼 받지 않으며 병 치료에 신기한 효과가 있다. 뿐만 아니라 진정으로 높은 층차로 사람을 이끈다! 당신이 책을 보기만 하면 보증하건대 좋은 점이 있다고 말했다.
생활과 질병의 시달림에 막다른 골목에 이른 나는 2003년 8월에 ‘전법륜(轉法輪)’을 손에 들었다. ‘전법륜(轉法輪)’을 세 번 보자 나는 마치 모든 것이 명백해 진 듯했다. 나는 나와 남편 및 아이가 한 집 식구가 된 것은 인연이며 그 전에 받은 고통과 번뇌는 업력 때문이라는 것을 알았다. 인생의 철리를 알고 사람이 되는 진리를 알았다. 심신에 원래 없었던 홀가분함을 느꼈다! 매일 목마른 사람처럼 사부님의 모든 설법을 읽었다. 자신의 오성이 차하고 법을 얻은 것이 너무 늦었다고 후회해 되도록 손실된 것을 보충하려고 생각했다.
수련을 한 지 4개월이 지난 어느 날 하루, 외지에서 남편이 전화를 걸어왔다. 모모모가 (그의 한 친구) 당신의 유선증식이 무슨 약을 먹고 나았는지 물어 보았어요. 남편이 물어보자 나는 그때야 조금도 아프지 않다는 것이 생각났다. 나는 다시 자세히 체험했다. 어머! 몇 달 동안 내 머리는 아픈 적이 없었다. 조금도 어지럽지 않다. 이도 아프지 않다. 이전에는 길을 나서기만 하면 택시를 탔고 제일 두려운 것은 계단을 오르는 것이다. 다리가 천근만근 무거웠는데 지금은 무엇이나 다 좋아졌다! 정말 병이 없고 온몸이 가벼웠다! 대법은 나에게 새로운 생명을 주었다!
포악한 아들이 선량하고 어진 청년으로 변하다
나는 사부님과 대법에 어떻게 감사를 드려야 할지 모르겠다. 대법이 나에게 두 번째 생명을 주었고 곧 깨어질 가정을 구했다! 나는 매일 대법에서 깨달은 법리로 아이와 교류를 하고 또 기회를 찾아 그들 부자와 함께 사부님 설법 녹화를 보았다. 나는 아이가 조금씩, 조금씩 변하는 것을 보았다. 차츰 차츰 집으로 들어오고 더는 사회상의 단정치 않은 사람과 만나지 않았다. 차츰차츰 돈이 사라지지 않고 아들은 사리를 분별할 줄 알았다
2009년 아들은 여자 친구를 사귀었다. 한 동안 시간이 지난 후 두 사람의 감정이 갈수록 좋고 밀접한 것을 발견했다. 나는 대법제자로서 신변의 사람이 길을 바르게 걷고 우주의 특성 ‘진선인(眞善忍)’에 동화하게 할 책임이 있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해야 장래에 좋은 결말이 있다. 나는 늘 아이에게 우리는 여자를 책임져야 하며 미혼 동거는 신 앞에 죄를 짓는 것이라 일깨워 주었다.
어느 날, 나는 또 아들에게 이 일을 언급했다. 아이는 눈물을 머금고 나에게 “어머니, 아들이 잘못 할까 봐 걱정하지 마세요. 아들은 그 능력이 없어요.”라고 말했다. 아들의 말에 나는 멍해졌다. 나는 아들에게 자세히 물어 보았다. 원래 아이는 생식기관에 병이 있고 신체는 매우 허약해 힘이 조금도 없고 허리도 아팠다. 나는 정상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저녁에 나는 20여년 의사경력이 있는 동창에게 전화를 걸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물었다. 그녀는 이 일은 작은 일이 아니며 현지 병원에 가지 말고 선양의 의과대학에 연락해줄테니 즉시 그 곳에 가서정밀 검사를 하라고 말했다.
며칠 후 나는 아들을 데리고 의과대학에 갔다. 생식기과와 혈액과의 검사를 거쳐 마지막에 만성 전열선염이라 진단을 내렸다. 의사는 만성병은 치료하기 어렵다. 그러나 조급해하지 말라. 불치병이 아니니 천천히 치료하자고 말했다. 우리는 한 달 먹을 약을 갖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아들은 약을 먹어도 낫지 않을 뿐만 아니라 도리어 갈수록 심해졌다. 후에 나는 또 한 동창의 남동생에게서 이 병을 치료한다는 제일 좋은 약을 가져왔다. (동창의 남동생은 여러 해 동안 몇몇 큰 공장의 약을 대행했다.) 그 사이 또 ‘우셴지(无限极)’가 이 병 치료에 좋다는 말을 듣고 사왔다. 그러나 몇 달 복용해도 여전히 효험이 없었다. 어느 날, 퇴근 전에 아이가 집으로 돌아왔다. 아이는 울면서 “어머니, 저는 출근하고 싶지 않아요. 나는 서 있을 수도 없어요. (아이는 선반공이다.) 몸이 두근두근 거리고 힘이 조금도 없고 허리도 아파요.” 라고 말했다. 나는 생각해보지도 않고 “괜찮아, 출근하고 싶지 않으면 안하면 돼. 우리 집은 네가 돈을 벌어 밥을 먹을 정도가 아니야. 집에서 많이 쉬고 휴양이나 하자구나.” 라고 말했다.아이에게 병이 있는 것을 발견한 후 나는 ‘아이가 대법을 배우게 해야지’라고 생각했다. 오직 대법만이 그의 병을 철저히 고칠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가 아이와 말하자 그는 반신반의했다. 나는 돈이 아까워 치료하기 싫어한다고 아이가 오해하면 안된다고 생각했다. 그들 부자가 유감을 느끼면 안 된다. 지금 나는 되도록 먹을 수 있는 것, 사용할 수 있는 것을 다 해봤다. 나는 아이에게 말했다. 이전에 어머니의 신체가 어땠는지 너는 보았다. 지금 나의 건강이 어떤지? 네가 보고 있다. 어머니는 지금 네가 철이 들어 매우 만족한다! 어머니가 너를 속이지 않는다는 것을 알 것이다. 네가 어머니 말을 믿는다면 집에서 휴식하는 동안 모든 대법서적을 잘 봐라. 너한테 좋을 것이다.
이렇게 아이는 책을 보기 시작했고 3, 4일 후 그는 스스로 연공을 배우기 시작했다. 대략 10일이 지나자 그는 모든 약을 조용히 버렸다. 20여 일후 아이는 흥분하면서 어머니! 전 좋아졌어요! 전부 좋아졌어요! 20여일 법공부하고 연공을 한 후 ‘환골탈태’란 단어로 아이의 변화를 형용해도 조금도 과하지 않다! 그는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했다!
현재 아들은 이미 결혼해 아들을 보았다. 우리 집 손자는 3살 반이다. 이전에 우리 아들을 보면 사람마다 눈빛이 포악하고 살기가 있다고 말했지만 지금은 누구나 어린 나이에 선량하고 어질다고 칭찬한다.
우리 집은 4층이고 6층에는 80여세의 과부 할머니가 살고 있다. 몇 년 전 겨울, 할머니는 난방비를 아끼느라 돈을 내지 않아 수도관이 얼었다. 노인은 작은 물통을 들고 우리 집에 와 물을 길었다. 우리 집 식구는 누가 있든지 막론하고 모두 물통을 6층까지 들어다 주었다. 후에 아들은 할머니에게 “할머니, 다시는 아래층에 내려오지 마세요. 제가 매일 저녁 퇴근하면 물을 길어다 드릴게요.” 라고 말했다. 할머니는 기뻐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녀는 나를 보기만 하면 아들을 칭찬했다. “당신의 아들은 정말 변했어요! 매일 우리 집에 물을 길어다 줘요. 내가 물건을 들고 가는 것을 보기만 하면 무조건 집까지 갖다 줘요!” 나는 할머니에게 “모두 대법이 나의 아들을 변하게 했어요! 우리 아들이 이전에 어떻게 했는지 다 보셨잖아요! 대법이 없었다면 오늘날 우리 집이 어떻게 됐겠어요!” 라고 말했다. 우리가 사는 아파트는 건물관리인이 없다. 내가 법을 얻은 지 11년 동안 복도를 청소하는 것은 우리 집의 ‘특허’가 되었다. 하수도가 막히거나 쓰레기를 버리는 통로가 막히면 전부 우리 세 식구가 도맡았다. 재작년 우리는 새 아파트로 이사가게 되었다. 이웃들은 모두 내가 가는 것을 아쉬워하였다. 5층에 사는 젊은이는 “이모, 가지 마세요. 당신과 같은 이웃이 있어 얼마나 행복 했다구요! 이모가 가면 우리는 어떻게 해요?” 라고 말했다. 나는 “괜찮아요. 우리 아들이 여기에 계속 살기 때문에 자주 보러 올게요.” 라고 말했다. 지금도 간혹 가서 복도를 청소하면 이웃들이 보고 그들은 모두 “정말 미안해요. 이사 가도 와서 청소를 하니…….”라고 말한다.
남편의 허리가 기적처럼 좋아졌다
나의 남편에 대해 말해보자. 내가 법을 얻기 6년 전, 남편은 무슨 영문인지 생리능력을 잃어버렸다. 초기에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갈수록 허리가 시큼하고 다리가 아프고 사지가 무력했다. 잠에서 깨어나면 요가 축축하고 심할때면 소변을 볼 때 피가 섞여 나온다. 초음파, CT, 피, 오줌 검사를 해도 아무런 병도 없었다. 중의를 찾아가니 말하는 것이 다 달랐다. 이 의사는 신양허(肾阳虚)라 말하고 저 의사는 신음허(肾阴虛)라 말한다. 중약, 서약, 건강 기능 식품, 주술사, 무당……동분서주하며 4년 동안 들볶아도 크게 호전되지 않았다. 마지막에 그는 치료를 하지 않겠다. 당신 마음대로 하라고 말했다!
내가 법을 얻은 지 6개월이 된 어느 날 새벽 내가 침대에서 일어나 밥을 하려고 하는데 그는 나에게 말했다. 여보, 내 병이 다 나았어! 나는 멍하니 그를 바라보았다. 이어 그는 병이 정말 나았어요! 어제 저녁 사부님이 치료해 주셨어요! 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밤에 꾼 꿈을 이야기 했다.
그는 많은 사람과 함께 사부님의 설법 동영상을 보았다. 그는 갑자기 허리 뒤가 싸늘한 것을 느꼈다. 마치 허리에서 바람이 나가는 것 같았다. 좀 지나자 허리 부위가 따뜻한 것을 느꼈다. 후에 전신이 뜨끈뜨끈한 것이 매우 좋았다! 그는 어찌된 일인지 뒤돌아보았다. 그는 사부님께서 이전에 농촌에서 사용하던 흰색에 파란 테두리가 있는 공기를 든 것을 보았다. 안에는 허리에서 흘러나온 고름이 가득 차 있는 것을 보았다. 사부님께서는 그것을 마시려고 하셨다. 그는 당시 이것은 얼마나 더러운가! 사부님이 마시게 해서는 안 된다! 고 생각했다. 그는 사부님께 제가 마실게요! 라고 말했다. 사부님은 자비롭게 남편을 향해 머리를 가로 젓더니 한 번에 마셔버렸다. 그 후부터 몇 년 동안 치료를 못하던 허리 병이 기적같이 나아졌다.
자비로운 사부님께서 제자가 집으로 돌아오게 보호하셨다.
2013년, 미행을 당한 파룬궁 수련생이 우리 집에 왔다. 그가 간지 얼마 되지 않아 16, 17명 경찰이 우리 집에 뛰어들었고 나는 납치당했다. 당시 10여명이 나를 끌고 가려 했지만 반나절이 걸려도 데려가지 못했다. 방법이 없어 그들은 ‘120’에 전화를 걸어 구급차를 불러와 들것에 나를 실어갔다.
길에서 나는 남편이 나를 납치한 두목에게 “안 돼요. 할머니가 계속 혼미한 상태라 생명위험이 있어요!” 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 그러나 당시 나는 정신이 매우 똑똑했고 그들이 말하는 것을 모두 들었다. 나는 또 어떤 사람이 나의 인중혈을 누르는 것도 알았지만 아픈 느낌이 없었다. 그 두목은 연속 전화를 걸어 지시를 받다가 말했다. 공안 분국에 갑시다. 공안 분국에 도착하자 그 두목은 “빨리 그녀의 혈압을 재보세요.” 라고 말했다. 혈압을 잰 후 의사는 혈압이 정상입니다. 80-120입니다. 라고 말했다. 이때 나는 그 두목이 하는 말을 들었다. 너무 신기하다! 할머니 이 연세에, 그리고 이렇게 큰 체격에 혈압이 이렇게 좋은가?! 여기까지 듣고 나는 흥분되었다. (나는 30년 동안 고혈압이 있었다. 수련을 한 후 종래로 병원에 간 적이 없고 혈압을 잰 적이 없다)! 나는 단번에 들것에서 일어나 “이것이 바로 파룬궁의 신기함이에요! 나는 고혈압 때문에 파룬궁을 수련했어요.”라고 말했다.
이어 나는 그들에게 나와 나의 가족이 대법 중에서 이로움을 받은 과정을 말했다. 그들은 저마다 진지하게 들었다.
그날 저녁, 시 공안국의 악한 경찰이 오랫동안 계획한, 한 차례의 통일행동 명단에 있는 파룬궁 수련생 5명과 내가 동시에 납치를 당했다. 그날 새벽 2시 넘어 나는 간수소에 보내졌다. 나는 마음속으로 줄곧 사부님께 나를 구해달라고 빌었다.
간수소에 갓 도착하였을 때 혈압이 정상이었다. 그들은 소장이 도착한 후 수속을 밟고 혈압을 다시 재려할 때 나의 혈압은 100-170으로 변했다. 후에 그들은 나를 기어코 간수소에 넣겠다고 반복적으로 시도했다. 간수소는 받지 않겠다고 했다. 1시간 넘게 여러 차례 혈압을 쟀다. 매번 수치는 같지 않았다. 후에 간수소 의사는 짜증이 나 “모모(우리 지역)는 사람을 붙잡는데 미쳤다. 이 할머니는 비만이고 혈압이 불안하여 수시로 생명 위험이 있다. 이 사람을 절대로 받지 않겠다. 누가 받고 싶으면 받아라!”라고 말했다. 이렇게 사부님의 자비로운 보호 하에 이튿날 오전 나는 안전하게 집으로 돌아왔다! 신체는 모두 정상으로 회복되었다!
대법 중에서 이로움을 받은 나는 진심으로 충고한다. 악당의 거짓말에 속은 세상 사람들이 빨리 깨어나기를 바란다! 절대로 이 만고의 기연을 놓치지 말기를 바란다! 오직 진심으로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眞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 이 9자 진언을 기억하면 대법은 당신에게 복을 하사할 것이다!
문장발표: 2015년 10월 23일
문장분류: 수련마당>신수련생마당>병을 제거하고 신체를 건강하게 한 이야기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5/10/23/317885.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