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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원망과 쟁투심을 버린 체험

글/ 영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최근 시진핑의 영국 방문 기간, 매체 기자인 나는 줄곧 영국 수련생을 따라 다니며 함께 평화 청원을 하며 동시에 보도에 참가하여 세인들이 다시 한 번 대법제자의 상화(祥和)롭고 자비로운 모습을 볼 기회를 가지게 했다. 나 역시 활동에 참여하는 가운데 수련상의 일부 깨달음이 있어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자 한다.

‘원망’을 버리다

10월 23일 아침, 우리가 맨체스터로 가는 버스에 올랐을 때 나는 도리 하나를 의식하게 됐다. 그건 바로 더는 사람의 사유, 더욱이 사람의 나쁜 사유 논리 속으로 들어가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자신에게 말했다. 더는 원망하지 말자, 원망이란 곧바로 남에 대한 불만과 밖으로 찾는 것이며 이는 수련의 이치와는 정반대이고, 수련인이 아닌소행이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무엇이 마음이 바르지 않은 것인가? 바로 그가 늘 자신을 연공인(煉功人)으로 여기지 않는 것이다.” [1]

예를 하나 들겠다. 이전에 남이 나를 잘 대하지 않는 현상을 보이면 아마 이 일이 아니면 저 일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정말로 찾지 못하면 이건 아마 업력윤보이므로 마땅히 감당해야 할 것으로 자신을 위안했다. 그러나 지금은 이런 사유에 따라 생각하지 말아야 하고, 또한 이 사유 속으로 들어가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사람의 눈으로 본 것은 대부분 모두 가상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사람이 사심 혹은 자아보호로부터 나오면 보게 되는 것은 거의 모두 가상인데 이런 사유에 들어가기만 하면 기공 연마는 모두 기의 층차에 있는 것 같아 뒤엉키고 분명하지 못해 가상에 미혹된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논어’를 묵묵히 외웠다. “진정한 선과 악ㆍ좋고 나쁨을 분별해내며 인류의 층차를 벗어남과 동시에, 비로소 진실한 우주 및 부동한 층차, 부동한 공간의 생명을 볼 수 있고 접촉할 수 있다.” [2]

정말로 사람의 ‘지레짐작과 연상’이란 이런 사유에 들어가지 않으면 마음속은 아주 조용하다. 남이 당신에게 어떠하든 남이 어떤 표현을 하든 자신은 아예 개의치 않을 것인즉, 그것은 한 개의 계통에 있는 것이 아니고 또한 한 개의 사유도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은 강요한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해낸 것이다. 될수록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해내야 한다. “진정한 자비는 그 어떤 사심도 그 속에 없으며 누구를 대하든, 중생을 대하든 모두 정념으로 문제를 보는데 모두 자애(慈愛)한 것이다. [2]

쟁투심을 버리다

평소에 집에 앉아서 매체 일을 함으로 자신은 많은 마음이 모두 담담하고, 남과 그 무슨 ‘쟁투’가 없다고 여겼다. 그러나 실천 가운데서 버리지 못한 사람 마음이 또 뛰쳐나오는데 어떤 때는 심지어 만회할 수 없는 손해를 조성해 중생 구원에 영향이 미쳤다.

이를테면 맨체스터에 있을 때, 한 중국 여성이 경찰과 몰래 소곤소곤 의논하는 것이었다. 그의 옷차림새와 행동을 보고 나는 그녀가 사악의 편에 선 사람으로 ‘단정’하고 경찰을 쫓아가서 ‘진상을 알렸는데’ 이 사람을 압도하겠다는 쟁투심이 숨어 있었다. 그 여성이 내게 뭘 하는 사람이냐고 물어서, 나는아주 퉁명스럽게 “당신은 뭘 하는 사람인가?”라고 물었다. 그녀는 나에게 맨체스터 경찰이라고 알려 주었다.

또 한 번은, 내가 한창 한 중국 수련생의 매체 인터뷰를 돕고 있는데 한 중국 사람이 건들거리며 우리 대오 속으로 걸어왔다. 내가 보기에는 ‘트집’을 잡으러 온 것 같아서 ‘경계심’을 가지고 속인 매체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보세요. 중국 사람은 이렇게 세뇌당했어요. 어서 그를 녹화하세요.” 이후 그는 우리 수련생에게 진상을 듣고 몹시 감탄하며 나중에는 “공산당이 없어야 새 중국이 있다”며 아주 적극적으로 우리를 지지했다. 나는 이를 알게 된 후 수련생의 자비에 몹시 감탄했고 자신의 옹졸한 사유를 알게 됐다. 사실 사람을 단정해서 보지 말아야 하며 모두 우리가 제도해야 할 중생이다. 자신의 사심과 두려운 마음 때문에 그들을 판단한 것이며, 아마 이 일념 때문에 그들이 구원되지 못할 수 있다.

여기까지 쓰고 나니, 우리 주위에도 이런 수련생이 있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사람의 방면에서 속인과 ‘이치를 따지’면서 이를 ‘정념’이라 여긴다. 사실 어떤 때 쟁투심이 아주 강한데, 진정한 제고는 버리는 것이지 다투는 것이 아니다. 부당한 대우를 당했을 때, 우리는 선의로 해석할 것이 아니라 쟁투심을 버려야 한다.

용감히 자신의 모든 사람 마음에 직면하는 것은, 피하는 것이 아니고 또한 어떠한 구실도 찾지 말며 진정으로 그것들을 인식해야만 그것들을 버릴 수 있다. 이는 우리가 해내야 할 것이다. 정말로 ‘선악을 분명히 가리는 것’을 내 것으로 만들려면 오직 사람 마음을 버리는 것뿐이며, 그래야만 비로소 ‘선악을 분명히 가릴 수 있는 것’이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전법륜’

[2] 리훙쯔 사부님 저작:‘각지설법11-무엇이 대법제자인가’

문장발표 : 2015년 10월 31일
문장분류 : 수련마당
원문위치 : http://big5.minghui.org/mh/articles/2015/10/31/-318297.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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