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동진(同眞)
[밍후이왕] 수련한 지 몇 년이 되지만 집착심이 아직도 한가득인데 어찌 수련에서 누락이 없다고 말하겠는가?
사부님 신경문 ‘2015년 미국서부법회 설법’을 읽은 후 나는 갑자기 대법제자로서 수련에서 누락이 없어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깨달았다. 사부님께서는 이렇게 설법하셨다. “대법의 순정함, 대법의 위엄, 이 위덕, 이 역량, 구도 중에서 바른 일면의 펼쳐 보임[展現]은 그 신이 보아도 깜짝 놀라는 것이기 때문에 누구도 감히 부면 작용을 일으키지 못하지만, 그것들은 모두 정면적인 형식으로 출현하여 그 속에서 그것들이 얻고자 하는 것을 얻으려 하며, 심지어 매우 큰 범위로 하나의 어떤 물건을 형성하여 이렇게 한다. 이것이 바로 구세력이며 이것이 바로 교란이고 파괴이다.” [1], 구세력은 정면으로 나타났다(대법제자의 제고를 위하여, 대법제자를 시험한다는 핑계로), 실체는 그들은 그들이 원하는 것을 얻으려 한다. 이것이 바로 ‘사(私)’가 아닌가? 대법제자는 정법 중에서 구우주와 구법리 속에서 새롭게 태어난 생명이다. 그리하여 구요소의 모든 견제에 얽매이지 않으려면 반드시 ‘사(私)’에서 벗어나 ‘무사무아(無私無我)’에 도달해야지 빈틈이 없다.
대법제자로서 일사 일념, 심지어 정법과 중생 구도를 위하는 일이라고 해도 기점이 ‘사’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구세력의 배치를 따르게 된다. 이 면에서 나는 깊은 체험이 있었다.
불법 감금당했을 때 우리는 한동안 괜찮은 수련 환경을 유지했다. 나랑 같은 시기에 감금된 수련생은 당시 무려 30여 명이었고 우리는 두세 명씩 각기 다른 감방에 배정됐다. 우리의 환경은 각자 달랐다. 엄격하지 않은 감방이 있는가 하면 법공부도 못하게 하는 감방도 있었다. 교도소 내 수련생뿐만 아니라 외부 수련생들도 함께 힘쓴 결과 우리는 안에서 많은 진상자료를 받을 수 있었다. 내 수련환경은 그나마 법공부를 하든 연공을 하든 간섭을 받지 않았다. 그리하여 교도소로 들어오는 진상자료는 내가 보관하기로 했다. 나는 최대로 ‘전법륜’ 6권, ‘9평’ 두 권, ‘당문화 해체’ 두 권, 전자책 2개, MP3 1개, MP5 1개랑 ‘밍후이주간’ 등 진상자료 여러 개를 보관했다. 나와 다른 수련생이 함께 각자 가지고 있던 진상자료를 수련생들에게 전달했지만, 일부 수련생의 환경은 그것마저 허락되지 않아서 스스로 적은 자료를 보곤 했다. 환경이 좋은 수련생은 인쇄된 ‘전법륜’을 볼 수 있었다. 나는 진상자료를 전달할 때 조심하고 또 조심한다. 진상자료들이 내 손까지 들어오기는 매우 쉽지 않기에 나는 늘 수련생에게 전달했어도 빼앗길까 염려했고 나중에 다 보면 다시 돌려달라고 했다.
그때는 이런 것이 대법제자가 지녀야 할 책임감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중에 내 집착이 숨겨져 있다는 것을 나도 느꼈다. 나의 솔직한 생각은 첫째, 자료들이 내 손에 있어야 내가 법공부를 하든 무엇을 하든 편하다고 생각했다. 법공부를 하기 위해서지만 깊은 사심이 숨겨져 있었다. 둘째, 다른 수련생을 충분히 믿지 못했다. 수련생에게 전해진 진상자료가 빼앗기면서 나까지 연루될까 두렵기도 했다. 두려움의 근원도 사심이다. 셋째, 자비심이 부족했다. 정념으로 수련생들을 도와서 환경을 개창하는 것이 아니라 늘 자료들이 빼앗길까 걱정만 했다. 객관적으로 내 걱정은 도움은커녕 검은 물질을 더 해서 사악한 환경을 조성했을지도 모른다. 이 세 가지 원인의 근본은 ‘사(私)’였다. 나의 사심 때문에 결론적으로 내 손에서 ‘전법륜’ 한 권을 경찰에게 빼앗겼다. 수련에서는 작은 일이란 없다! 작디작은 일도 확대해보면 수련생인가 아니면 속인인가의 시험이 걸린 문제가 된다. 사부님께서 ‘집착을 하나도 빠짐없이 수련해야만’ [2], 이라고 말씀하셨다. 수련하면서 나타나는 모든 작은 일도 홀시해서는 안 된다. 사부님께서 또 말씀하셨다. “무엇을 누락이 없다[無漏]고 하는가? 작은 일은 없다.” “우리 일부 수련생은 병업관을 넘기지 못하고 있다. 당신은 큰 부분에서 생각하지 마라. 당신은 나는 그렇게 큰 잘못이 없으며, 법에 대해 매우 확고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당신은 그런 작은 일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지 마라. 사악이 틈을 탈 것인데, 많은 수련생은 작은 일 때문에 심지어 가버렸다. 정말로 아주 작은 일 때문이었다. 왜냐하면, 수련은 엄숙하고 누락이 없어야 하는데, 당신이 그런 일에서 장기적으로 모두 잘 수련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비록 작지만, 당신이 장기적으로 중시하지 않았기에 곧 문제가 되어 많은 사람이 이 때문에 갔다.” [1]
수련은 엄숙하다. 빈틈이 없이 우리 마음속에 깊이 숨어있던 물질을 폭로해야 한다. 조금 전에 장쩌민 고소를 비롯해서 말하자면 5개월이 지났지만, 아직도 19만 명을 돌파하지 못했다. 그렇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런 관건적인 수련생들, 큰 작용을 일으킬 수 있는 수련생들은 노출되지 말라고 주장한다.’ [1], 우리는 자문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정녕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관건적인 수련생’ 혹은 ‘큰 작용을 일으킬 수 있는 수련생’인가? 자신의 집착을 숨기려고 법의 근거를 찾지 말고 고소장을 쓰지 못하는 원인을 깊이 찾아보자! ‘두려움’인가? 아니면 ‘사’인가? 그 어떤 집착심도 우리의 수련에서 누락이 없다고 말할 수 없다.
사부님의 설법은 그 어느 때보다 엄숙하게 느껴졌고 정법이 우리에게 주는 시간도 많지 않다. 우리는 하루빨리 깊숙이 숨겨진 집착심을 버려서 사심과 자아가 없는 경지에 도달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사부님의 설법으로 수련생 여러분과 힘을 내려 한다. “나는 또 당신들에게 알려주겠다. 사실 당신들 이전의 본성(本性)은 위아위사(爲我爲私)의 기초 위에 세워진 것이다. 당신들이 앞으로 일함에 먼저 남을 생각해야 하고 무사무아(無私無我), 선타후아(先他後我)의 정각(正覺)으로 수련 성취해야 한다. 그러므로 당신들이 앞으로 어떠한 일을 하든지, 어떤 말을 하든지, 역시 남을 위하고 후세 사람을 위하는 데 이르기까지 고려해야 한다! 대법(大法)의 영세불변(永世不變)을 위해 고려해야 한다!” [3]
부족한 점에 대해서는 수련생 여러분의 자비로운 시정을 바란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경문: ‘2015년 미국서부법회 설법’
[2] 리훙쯔 사부님 저작: ‘정진요지-수련은 정치가 아니다’
[3] 리훙쯔 사부님 저작: ‘정진요지-불성무루’
문장발표: 2015년 10월 27일
문장분류: 수련마당>정법수련마당>이성인식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5/10/27/318183.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