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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신수련생, 한 걸음씩 내디디며 정체 속으로 걸어온 작은 체득

글/ 한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존경하는 사부님 안녕하십니까?

수련생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1. 쉽지 않은 득법

저는 경북 영주에서 문화해설사로 일하고 있는데 2009년 저희 지역에 새로 들어온 후배 해설사 16명 중에 파룬궁수련생이 한 명 있었습니다. 그 후배는 열정적으로 주변 선배와 동료들에게 열심히 파룬궁을 알리고 있었으나 유독 저에게는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2012년 5월경 퇴근하는 길에 후배는 차에서 내리면서 저에게 파란색 책자 한 권을 전해 주었습니다. ‘전법륜’이었습니다.

저는 집에 와서 읽기 시작했지만, 10쪽도 다 읽지 못하고 바로 책장을 덮었습니다. 읽어도 도대체 내용을 알 수 없었고 계속해서 읽기도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음날 차를 같이 타게 된 후배에게 물어보았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이 책을 어떻게 읽었다고 하더냐? 무슨 책이 5장을 못 넘기겠다. 도무지 무슨 말인지……,”

후배는 말이 없었습니다. 퇴근 후 집에 와서 다시 전법륜을 읽으려고 했지만 어제와 같은 상황은 반복되고 결국 저는 후배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읽어 보려고 해도 안 된다.”

제 전화를 받은 후배는 그날 저녁에 ‘정진요지’를 들고 늦은 밤에 저희 집에 찾아왔습니다.

“언니, 그럼 이 ‘정진요지’ 책을 한번 읽어 보세요.”

후배가 가고 난 뒤 저는 ‘정진요지’를 읽기 시작했습니다.

한 장 한 장 읽어나가는 동안 이해되는 부분과 이해되지 않는 부분들이 반복되는 가운데 새벽 1시가 넘어서야 정진요지를 끝까지 다 읽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 후에 누워서 생각을 해보니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은 살아오면서 한 번도 내 잘못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어떤 문제든지 나는 잘했고 상대방이 다 잘못했다는 그런 생각으로 여태껏 살아온 저 자신을 보게 됐습니다.

다음날 후배에게 전화해서 어떻게 하면 ‘전법륜’ 책을 다 읽을 수 있는지 물었으며, 후배가 가르쳐 준 것은 9일 강의를 MP3에 담아 우선 들어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제 법공부는 9일 강의를 들으면서 시작됐고 한 달이 훨씬 더 지나서야 비로소 ‘전법륜’을 한번 다 읽고 어렵게 수련의 길로 접어들게 됐습니다.

2. 모순을 안에서 찾아 해결하다

제 아들은 또래보다 영특하지도 못하고 말수도 적은 탓에 저는 아들에게 늘 야단과 잔소리로 일관했으며 그렇게 키워 온 아들은 언제나 저에게 마음의 고통을 안겨주었습니다.

저는 그런 고통이 어디서부터 온 것인지 법공부를 하면서 저 자신에게서 문제를 찾아보게 됐는데 결국 고통은 제가 아들을 키우면서 제 욕심 때문에 했던 좋지 못한 행동과 말들이 업력이 되어 저와 아들을 힘들게 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습니다. 모든 것이 제 안에 있었습니다. 깨닫고 나자 부족하게만 느꼈던 아들이 어려운 시험에 하나하나 합격하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연공인은 반드시 참아야 한다. 어떤 사람은 자녀를 단속하는 데도 화를 내며 그야말로 떠들썩한데, 당신이 자녀를 단속한다 해도 그럴 필요가 없으며, 당신 자신은 진정 화를 내지 말아야 한다. 당신은 좀 이지적으로 자녀를 교육해야만 비로소 진정으로 자녀를 잘 교육할 수 있다. 작은 일마저 넘기지 못하고 화를 내면서도 공을 자라게 하려고 생각하는가.”(전법륜)

그리고 법을 얻기 전에 저는 저를 힘들게 한 부모님, 남편, 자식이 늘 원망스러웠고, 그리고 동료 몇 명과도 늘 불편했었는데 법을 얻은 후에는 그 모든 것들은 저의 업력 때문에 생긴 고통이라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그 고통의 원인을 알게 된 저는 그곳에서 벗어나려고 거의 1년 동안은 울면서 법을 틀어쥐고 끊임없이 법공부를 하면서 심성수련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후배는 끊임없이 저에게 단체 법학습이 중요하다고 말을 해주었지만 저는 그때 단체 법공부에 참여할 정신적 여력이 없었습니다. 다만 문제를 제 안에서 찾아가면서 후배수련생과 함께 끊임없는 교류를 하면서 크고 작은 것들을 점차 수련해낸 후에야 차츰 지역 단체법공부에 참가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어렵사리 참가하기 시작한 단체 법공부는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딸이 쌍둥이를 낳아서 손주들을 돌봐주느라 한동안 정진하지 못하다가 2014년 봄부터 다시 법을 틀어쥐고 법공부를 열심히 견지하게 됐습니다. 그러나 후배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연공과 법공부는 집에서만 하겠다고 고집했습니다.

3. 대만 법회 참가 후 점차 정진하고 가족이 잇달아 수련에 들어서다

후배는 2014년 대만 법회에 함께 참가하자고 저에게 권했습니다. 저도 가고 싶은 마음에 남편에게 말한 후 후배와 함께 대만법회에 참가하려고 마음을 먹은 후 생각해보니 모든 것이 생소했으며, 저 자신이 아직은 너무나 수련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어 혼자 중얼거렸습니다. ‘연공동작도 이제 겨우 할 줄 알고, 설법집은 아직 한 번도 다 읽어보지 못한 내가 법회에 참가한다는 것은 과욕 아닌가?’ 스스로에게 자신의 부족함을 수도 없이 자책하면서 주저하고 있는 저에게 후배가 말했습니다. “한걸음 내디딤이 곧 수련이니 언니도 한걸음 내딛는 것이라 생각하고 함께 가요.” 저는 후배의 말에 격려와 용기를 얻고 그렇게 대만 법회에 참가해 난생처음 인각에도 참여하게 됐고, 수련생들이 발표하는 심득교류 문장도 듣게 됐습니다. 그리고 3박4일 일정을 모두 마치고 돌아오는 마지막 날, 전체 교류회에서 대만법회에 참가한 첫 소감을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이제 겨우 잡고 설 수 있는 신수련생이기 때문에, 사부님의 법을 배우기 위해서라면 죽어도 그 끈을 놓지 않을 것이며, 게으름을 피우지 않고 더욱 정진하는 수련생이 되겠습니다.”

수련생들에게 한 공개 약속처럼 성실한 수련생이 되기 위해 제가 집에 도착한 후 첫 번째로 행한 일은 야외 연공장에 나가는 것이었습니다. 줄곧 집에서 혼자 연공하고 있던 저 자신에게 반드시 연공장에 나가야 한다고 마치 야단치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고 괴로움에 울면서 중얼거렸습니다. ‘왜 집에서 하면 안 되나요?’ ‘정진하는 수련생이 되겠다고 약속을 했으니 정진하려면 나가야 하는 거라고!’ 그래도 안 나가고 싶다고 울었고 그러면 제 마음에서 또 야단을 쳤습니다. 그때 저는 정작 나가기 싫어하는 마음이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게 됐습니다. 그것은 제가 아직 법에 대한 믿음이 부족해 사람들의 눈에 띌까 두려워하는 바로 저의 자존심이었습니다. 대만 법회를 다녀와서 3일째 되던 날, 그 마음을 제거한 후에야 비로소 혼자서 차를 몰고 연공장으로 나갈 수가 있었습니다. 해질녘 추운 날씨에 제가 연공장에 나가는 모습을 보고 남편이 저를 말렸습니다. 저는 남편에게 말했습니다. “당신과 살아오는 동안 나는 모두 잘했고 잘못은 모두 당신 때문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내가 지은 업 때문에 당신을 너무 힘들게 했고 아들도 힘들게 했어요. 하나하나가 모두 내가 바르지 못해 생긴 일들인데 이제는 이렇게 잘못한 것들을 반성하고 잘해 보고 싶어요. 그동안 당신에게 너무 많은 잘못을 했으니 날 용서해줘요.”

제가 처음 연공장을 다녀온 그 날 밤, 우리 부부는 밤새도록 오랜 세월 다 하지 못한 대화를 하면서 함께 울면서 쌓아둔 마음의 매듭을 다 풀게 됐습니다. 그런 후 다음날 제가 법공부를 하려고 책을 폈을 때 남편은 책을 들고 와서 같이 읽어주었으며 이런 책을 왜 읽어야 하냐고 반문하던 아들도 같이 책을 읽게 됐습니다. 제 잘못을 깨닫고 나니 한 걸음 한 걸음 우리 가족은 법 속으로 걸어 들어올 수 있었고 시집간 딸아이도 대법에 대해 바르지 못한 관념이 조금 있었지만 제 권유로 9일 강의를 함께 듣는 동안 사부님의 은혜로 그 관념들이 사라지면서 법속으로 함께 걸어 들어오게 됐습니다.

4. 과시심을 닦다

법을 조금씩 알고 수련해 나가는 중에 저는 저에게 법을 전해준 후배수련생이 우리가 살고 있는 지역을 위해 애쓰는 것보다 전국으로 교류를 하러 다니는 부분들이 마음에 들지 않았고, 또한 그 후배의 모든 행동이 다 제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제 마음도 편치는 않았습니다. 저는 그것이 좋지 않은 마음이라는 것을 알고 닦아 없애려고 노력은 했지만 닦아낸다는 것이 말처럼 그렇게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더욱 열심히 법공부를 하면서 이런저런 고통스러운 마음을 안으로 삭이던 중에 해설사 교육을 받아야 하는 날이 됐습니다. 저는 그런 후배와 함께 교육을 받기 싫어서 그녀와 같은 날짜에 가지 않으려고 날짜를 바꾸었습니다. 그러나 사부님께서는 그것을 허락하지 않으셨으며 후배는 또 다른 사람과 어떤 이유로 일정이 변동되어 저와 같은 날 함께 교육을 가게 됐습니다. 그리고 교육장에서는 제 마음과 상관없이 숙소 배정도 한 방에 배치가 되어 꼼짝없이 후배와 함께 숙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안으로 꾸역꾸역 넣어두었던 제 편치 않던 감정들이 더는 누를 수 없이 제 이성을 뚫고 위로 하나 둘 표출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그날 밤 후배와 함께 밤을 하얗게 새우며 교류하는 중에 그것이 제 과시심이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지독스럽던 고통은 과시심이 제거되는 과정 중에 겪은 것이라는 것도 알게 됐습니다. 그러나 후배는 저의 이런저런 편치 않은 말들 때문에 마음을 다치거나 상했을 법도 했지만 노수련생다운 면모로 저를 격려해 주면서 함께 더욱 정진하자는 말을 잊지 않았습니다.

5. 딸이 살고 있는 지역에서 심성을 수련하다

저는 저희 두 아이들 자격증 시험 준비 때문에 잠시 딸아이 집이 있는 안양에서 머물게 됐으며 한국에 2015년 션윈공연이 왔을 때는 우리 지역에서 션윈을 알리기 위해 애쓰는 후배가 생각나서 영주에 내려가서 같이 포스터를 붙이고 션윈 홍보를 열심히 했습니다.

그날 홍보를 마치고 후배가 말했습니다. “션윈 교류회가 대구에서 있는데 함께 가서 교류회 참석을 하고 딸의 집으로 가면 어때요?”하고 제안했습니다. 저는 후배의 제안이 좋았고 그렇게 해서 처음으로 후배와 함께 단체 법학습이 있는 대구교류회에 참여하게 됐습니다. 저는 그날 처음으로 사부님의 법상을 뵙고 앞으로 더욱 정진하겠다는 다짐을 했습니다. 그리고 교류회에 참가해 많은 수련생들이 정체적으로 마음을 다해 션윈 홍보를 위해 노력하는 것을 보면서 많은 것을 배우고 느낀 점도 많았습니다.

대구 교류회를 마치고 저는 다시 안양으로 올라오려고 했을 때 후배는 저에게 딸의 집에 있는 동안도 열심히 법공부, 연공을 하고 반드시 단체 법공부에 참가해 정체적으로 함께 수련해야만 수련의 길에서 도태되지 않는다고 거듭거듭 진심 어린 마음으로 말해 주어 저는 후배의 말을 기억하면서 안양으로 오게 됐습니다. 다른 수련생들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것이 저는 그렇게 어려웠습니다.

저는 매일 그곳 연공장에서 연공하는 동안도 심성이 많이 고달팠습니다. 새벽에 일찍 일어나는 것이 힘든 것이 아니라 제 관념에 자신을 속인의 이방인처럼 여기는 불편함 때문이었습니다. 수련생들의 말 한마디, 눈길 하나에서도 저는 많이 힘들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저를 수련시키는 것이라고는 생각해 보지 못했습니다. 어떤 분은 제 그런 경직된 모습을 보시고 “연공을 전투식으로 하네요”라고까지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더욱 연공장에 나가는 것이 힘들었지만 수련이라 여기면서 열심히 나가서 연공했습니다. 그래도 단체 법공부에 참가했을 때에는 제가 중국어는 잘 모르지만 교포수련생들이 원서로 법을 읽는 것이 듣기 좋아서 제 마음이 기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정체로 법을 읽을 때는 어떠한 마음으로 읽어야 하며 교류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등을 지적해 주는 노수련생의 말이 전혀 자비롭지 못하다고 여기면서 혼자서 불평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한두 달이 지난 후에야 그 모든 것들이 제가 하는 말과 행동에도 있었다는 것을 보게 됐습니다. 평소 제 모습이 반영됐다는 것을 깨닫게 됐을 때 미안한 마음과 함께 그 불편함은 차츰 사라지게 됐으며, 그리고 저는 그곳 수련생들과 함께 정체에 참여해 진상도 알릴 수 있게 됐습니다.

6. 장쩌민 고발서명운동에 참여하고 진상을 알리는 중에서 끊임없이 안으로 찾고 수련의 길을 바르게 걷다

저는 안양에서 딸과 함께 전 세계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장쩌민 고발서명운동을 돕기 위해 안양역에서 하는 서명운동에 동참하면서 한걸음 또 내딛게 됐습니다. 저는 안양역은 사람들이 바쁘게 지나가기 때문에 우리가 말하는 진상을 제대로 듣는 사람들이 많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서 지하상가에 내려가 매장을 한 집 한 집 방문해서 진상을 알리고 서명을 받았으며, 딸아이는 버스를 타기 위해 줄을 서 있는 사람들에게 서명을 받았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적지 않은 서명을 받을 수 있었고 나름대로 노정에 참여하는 보람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아침 일찍부터 늦은 저녁까지 그렇게 홍법과 서명운동을 했습니다.

저는 또한 주말이면 고향인 영주에 내려가 제 기억 속에 있는 모든 인연들을 놓치지 않고, 한 사람 한 사람 찾아다니며 진상을 알리면서 서명을 받고 법을 알렸습니다. 그런 제 모습을 지켜보던 딸이 말했습니다. “엄마 안 창피해?” 저는 딸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창피해야 할 이유가 어디 있니? 이렇게 좋은 법을 창피하다고 생각하고 사람들에게 말하지 못하는 너의 그 마음이 엄마는 더 창피하다”고 일러주었습니다.

일요일에도 서명을 받으려고 영주 시내에 나갔는데 주말 탓인지 쉬는 가게가 많았으며 길거리에도 사람들이 얼마 없었습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서명 받는 것을 그만두고 집으로 돌아가야지 하는데 갑자기 비가 내리기 시작해 어떤 상가에 들어가 비를 피했는데 돌아가려고 하면 비가 다시 내렸습니다. 신기하게도 몇 번이나 그렇게 반복하는 바람에 결국에는 꼼짝없이 그 상가를 다 돌며 빠짐없이 서명을 받은 후에야 비가 멈춰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정말로 신기했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짧은 일정동안 더 많은 사람들에게 서명을 받아야겠다는 생각 때문에 다시 도서관으로 갔는데 마침 찜통 같은 더위 속에서 약 3시간 동안 계속된 소낙비로 바깥 공기가 맑고 시원했던 때문인지 많은 사람들이 나와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습니다. 영주에서 짧은 일정 동안 힘들고 지치지 않게 열심히 활동할 수 있게 해달라는 나의 소원을 사부님께서 들으셨는지,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는 것을 보고 그들을 밖으로 보내 주신 듯했습니다. 그 날 딸아이와 저는 너무도 수월하게 도서관 사람들에게 많은 서명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날 우리는 더욱 많은 사람들에게 파룬궁이 무엇인지를 설명하며 박해와 고문, 장기적출 진상을 말하면서 반드시 인류의 범죄자 장쩌민을 고발해서 이 박해를 중지시키는데 함께 동참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려주자 많은 그곳에 있던 많은 학생들도 기꺼이 서명에 동참해 주었습니다. 그렇게 두 번에 걸쳐 주말에 영주에서 받은 서명이 912명이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 후에도 계속해서 주말이면 안양역에 나가 최선을 다해 서명을 받고 있습니다. 진상을 열심히 알렸지만 서명하지 않고 차를 타고 훌쩍 가버리는 그들을 보면서 저는 마음이 무척 아팠습니다. 그리고 저 자신을 돌아보았습니다. ‘아직은 내 안의 정념이 부족해 저 많은 중생들을 그냥 다 보내버린 것은 아닌가?’ ‘진상을 말할 때 반드시 파룬궁을 알리고 진선인이 어떤 수련이라는 것을 그들이 제대로 알아듣게 했는가?’ ‘참 좋은 심신수련법이라는 것을 바르게 이야기했는가?’ ‘장쩌민이 파룬궁을 박해한 사건들을 제대로 인식시켰는가?’ ‘서명을 더 많이 받으려고 숫자에 집착하면서 진상과 홍법에 내실 없는 설명은 하지 않았는가?’ 등등….

저는 서명을 받는 동안에 제 부족함을 살피고 안으로 찾으면서 마음을 바로 세우고 정념을 갖고 진상을 알렸을 때 더욱 많은 분들이 서명해주신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또한 파룬궁 진상을 제대로 알지 못해 파룬궁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더욱 친절하게 다가가 전단지와 책자를 권하면서 그들의 옳지 않은 생각을 일깨워 주어 그들이 전단지를 읽고 파룬궁을 바르게 인식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정성을 다해 진상을 알리고 홍법하면서 아직은 부족한 제 수련의 길을 걸어가고 있습니다.

7. 맺는 말

법을 얻고 나름대로 열심히 법공부를 하면서 걸어온 과정들이 결코 쉽지 않은 수련의 길이라는 것을 깨닫고, 한 걸음씩 내디디며 법공부, 발정념, 진상 알리기를 견지하는 가운데 제 주변이 모두 수련환경이라는 것을 조금씩 알아가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사부님께서 배치해 주신 수련의 길에서 더욱 정진해 진정한 진수제자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부족한 부분이 있으면 자비롭게 지적해 주시기 바랍니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수련생 여러분 감사합니다.

(2015년 한국 파룬따파 수련심득 교류회 발언고)

문장발표: 2015년 10월 8일
문장분류: 수련마당>해외법회 발언고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5/10/8/31724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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