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유럽 대법제자
[밍후이왕]
존경하는 사부님 안녕하십니까!
수련생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저는 1998년부터 파룬따파를 수련했지만 언론매체 항목에서 전업으로 일하지는 않았습니다. 가끔 요청받았을 때 참여했을 뿐입니다. 원래 저는 사업상 바빴으므로 매체에서 전업으로 일할 시간적인 여유가 없다고 생각했으며, 뿐만 아니라 우리 매체가 사부님께서 기대하시는 만큼의 성공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회의적인 생각을 갖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단지 그렇게 부정적인 면만 보였던 것입니다. 저는 그렇게 불가능하다고 여겼는데도 제 옆에서 일하는 수련생들이 밤낮없이 일하고, 묵묵히 자신들을 희생하며, 사부님의 소망을 채웠나갔습니다. 그런데도 저는 당시 사람의 관념으로 가득 차 있어서 그것을 명확히 보지 못했습니다.
저는 지난 여름에 우리 유럽 매체 사장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은 그를 만났을 때 그가 한 말을 듣고 나서였습니다. “한 유럽국가의 수련생들이 ‘우리 매체를 전문기업처럼 꾸려 나가려면 매체 종사자들이 전업으로 해야 하는데 어떻게 하면 그렇게 할 수 있을까를 생각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 말을 듣고 나서 지금까지 회의적이었던 제 생각이 사라진 것입니다. 그를 만나기 전까지는 ‘우리나라에서 그런 매체를 꾸린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보였었는데, 이젠 가능해보였고 해볼 만하다고 보였습니다. 이렇게 저를 깨우쳐 주신 사부님께 감사드립니다. 순간적으로 마음이 그렇게 바뀐 것은 정말로 신기한 체험이었습니다.
저는 박해 전의 중국과 같은 수련환경을 만들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여깁니다. 그것은 매일 단체연공과 단체 법 학습을 하는 환경이 필요합니다. 매체의 성공은 우리가 수련 중에서 심성제고와 집착을 내려놓는 것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저는 주로 작은 도시에서 생활하기 때문에 매일 단체연공과 단체 법 학습을 할 수 있는 환경을 접하기가 어려웠었습니다. 몇 주 전에 저와 5명의 수련생은 새로 사무실을 마련한 후 전업으로 일하게 되면서부터 수련환경을 만드는 일을 최우선에 두기로 했습니다. 7:30 발정념을 시작으로 1시간 법학습을 했고, 중국인 관광객들이 몰려오는 관광지의 진상활동에도 참가했는데, 그곳에서 우리는 함께 2시간씩 단체연공을 했습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 사람이 국외에 왔는데, 그가 국내에서 진상을 들을 수 없다면, 이것은 그에게 국외에 가서 진상을 듣게 한 것이 아니겠는가? 당신들은 이런 사람들을 내버려둬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우리 각 지역에서 진상을 알리는 관광지 거점은 여전히 잘해야 한다.” [1]
신성한 정체를 이루어 중생을 구도하는 분위기로 충만했습니다. 수련생들이 함께 협력하면서 자신을 내려놓고 중생구도를 최우선으로 했습니다. 중국 수련생들은 진상자료를 나눠주며 삼퇴를 권했고 서양수련생들은 연공을 했습니다.
우리의 관광지 진상활동은 결과가 매우 좋았습니다. 그들 중국관광객들은 강한 대법의 장에 동화됐는데, 어느 관광객은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하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내 생각에 어떤 중국인들은 예전에 대법을 수련했던 수련생처럼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이런 기회를 최대한 잘 활용했습니다. 관광시즌이 끝나게 되면 우리는 오전 6시에 단체 발정념을 시작으로 법학습을 했습니다.
계속되는 이 환경에서 우리의 층차 제고는 매우 빨랐습니다. 저는 처음으로 일상생활에서 층차가 제고됨을 직접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층차제고는 수련생들과 함께 일하면서 제 집착심이 노출됐을 때 즉시 안으로 찾아 그것을 버릴 때 나타납니다. 우리가 만든 이 환경은 쾌속으로 수련의 층차를 제고하는 하나의 핵심인 것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만나 일하기 시작하면서 2개월이 지났습니다. 비록 우리가 아직 매체 항목의 핵심 내용으로 되는 일에 착수하지 않았으나 이미 마케팅을 펼쳐 매우 좋은 성과를 얻었습니다. 모든 것이 빨리 진척돼 갔습니다. 각 분야별로 난관도 있었지만 그것의 돌파는 집착심을 내려놓은 후에야 비로소 심성 층차의 돌파를 얻게 됨이 분명하게 보였습니다.
예를 들면, 판매를 위한 영업부에 속해 있는 동료 수련생과 연공 후 사무실로 오면서 환희심에 대한 교류를 했는데 ‘우리는 정말로 내려놔야겠다’를 절실하게 느꼈습니다. 바로 그 직후 대형구매를 하겠다는 첫 번째 전화를 받았던 것입니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나는 ‘사부님께서 이미 다른 공간에 모든 걸 다 배치해 놓으셨기 때문에 결과에 대한 집착심을 가질 필요가 없다’는 것을 명확히 알기 때문에 결과를 중시하거나 결과에 집착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다만 매일 하는 일에 집중하고 안으로 찾는 것에 집중하기만 합니다. 그러면 사부님께서 우리를 위해 잘 배치한 일체는 반드시 실현됩니다.
환희심은 사실 매우 이기적인 일종 표현입니다. 내가 자신에게 지나치게 집착할 때, 내가 인정한 일에 집착할 때, 자신의 방법에 따라 일하려 집착할 때 그것은 나타났습니다. 이런 집착심 속에는 두려워하는 마음이 숨겨졌고, 잘하지 못할까 두려워하는 마음과 체면을 잃을까 두려워하는 마음, 이익을 잃을까 두려워하는 마음, 실패를 두려워하는 마음 등이 있습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만약 당신들이 수련인으로서 정확하게 대하지 못하고, 안으로 찾지 않는다면, 정말 수련할 방법이 없다.”[2]
사실 우리가 만든 이런 수련환경은 우리의 두려워하는 마음과 이기적인 마음을 제거하는데 관건적인 작용을 했습니다. 저는 자신을 매일 이 수련 환경 속에 놓아두면 자신의 집착심을 내려놓을 수 있음을 체험했습니다. 왜냐하면 이런 환경은 제가 문제에 봉착했을 때 혹은 자신의 마음이 법에서 어긋났을 때 진정으로 자신의 안으로 찾을 수 있게 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제가 수련환경이 관건이라는 입장을 견지하는 이유이며, 또한 이는 시시각각 제게 안으로 찾도록 합니다.
저는 사업가였기 때문에 제 성취를 위해 사람들을 조종하는 것에 익숙해져 있었습니다. 여러분은 이런 습관을 수련생과 함께 수련하는 환경에 지니고 들어오면 절대 통하지 않음을 잘 아실 것입니다. 최근 수련생들이 제 이 주요 집착심을 지적해준 후 제 이 집착심이 점차 담담해지고 제거되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한 수련생은 제가 어떤 일이 잘 되지 않을 때 심한 스트레스를 받는 것을 보고, “어쩌면 두려움이 먼저 앞장서서 나아가고 있는지 모르겠네요”라고 지적을 해줬습니다. 처음엔 믿지 않았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그 수련생의 지적이 맞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리하여 저는 이 집착심을 내려놓았습니다.
저는 이런 환경을 만나기 전에는 일상생활에서 자주 심성고험을 넘지 못했습니다. 앞의 예처럼 그저 피해야 할 문젯거리라고만 여겼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심성을 제고할 절호의 기회란 것을 알고 있으므로 그것들을 감사하게 받아들이며 안으로 찾습니다.
저는 요즘 들어 다른 사람의 단점을 지적하는 대신 저 자신의 부족함을 찾습니다. 그렇게 천천히 수련생들의 장점을 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수련생의 단점이 보일 때는 저 자신의 단점을 보고 있는 것이라는 것을 이해하게 됐습니다. 그리하여 수련생의 장점에 집중할 때는 정말로 보아냈습니다. 그러므로 주변 수련생에 대해 예전에 비해 더욱 감사한 마음을 갖게 됐습니다. 그리고 다른 수련생이 틀렸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제가 법을 표준으로 옳고 그름을 가늠하지 않고 자신을 기준으로 삼기 때문이라는 것도 알게 됐습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당신이 본 부족한 점을 당신이 묵묵히 잘 완성해 나가고, 묵묵히 당신이 마땅히 해야 할 것을 잘 하며, 당신이 그 한 가지 일 중 완전하지 못한 부분을 스스로 묵묵히 잘 한다면, 뭇 신들은 크게 탄복할 것이며, 이 사람은 너무나 대단하다! 라고 말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대법제자가 해야 하는 것이다”[3]
저는 자신의 제고된 모습을 보면서 우리의 매체는 중생구도 뿐만 아니라 우리의 수련 층차를 제고하기 위해 창조된 수련환경임을 절실하게 느꼈습니다. 성공적으로 매체를 경영함은 기타 항목의 기반으로 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우리가 매체를 전업으로 경영할 때 더욱 몰입할 수 있고 더욱 전문성을 띠고 션윈 마케팅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어떤 부분이 필요한 것을 알았을 때 묵묵히 보충하고 해야 하는 것을 인식했습니다. 전에는 하찮은 작은 문제라고 여겼으나 작은 징조에 큰 변화가 숨겨져 있어 작은 일에 정말 공력을 들여야 했습니다. 그리고 ‘나는 오래 전부터 매체에 참여했었어야 했다’는 후회스러운 생각을 합니다. 저는 과거에 늘 어느 어느 대법 수련생이 이것 혹은 그것이 문제라는 생각과 왜 매체 일에 참여하지 않는지 등을 생각했습니다. 지금은 제가 바로 그 중의 한 사람임을 알았습니다. 아마 예전에 매체에 들어올 수 없음은 시기가 성숙되지 않았을 수 있습니다. 다른 수련생이 묵묵히 들어갈 때 저는 오히려 수수방관했습니다. 지금은 자신의 이 같은 변화에 매우 놀랍고 기쁩니다. 동시에 제가 예전에 해왔던 일에서 종래로 즐거움을 느끼지 못했으나 지금의 이런 느낌은 완전히 다른 것입니다. 저는 매우 즐겁고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여태껏 삶이 이토록 멋질 줄은 몰랐습니다.
사부님께 대단히 감사합니다!
수련생 여러분 감사합니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저작: ‘2013년 미국서부국제법회 설법’
[2]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2014년 샌프란시스코법회 설법’
[3]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각 지역 설법 10-더 정진하자’
(2015년 미국 서부 법회 발언고)
문장발표: 2015년 10월 23일
문장분류: 수련마당>해외법회 발언고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5/10/23/317967.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