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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려도 오지 않는 종결’을 읽은 소감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밍후이주간’ 715기 교류 문장 ‘기다려도 오지 않는 종결’을 읽고서 감수가 아주 컸다. 왜냐하면, 문장에서 표현되는 문제가 나에게도 존재하기 때문인데 단지 자신이 평소에 주의하지 않았거나 그렇게 하고 싶었을 뿐이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그렇다, 법 속에서 나는 알게 됐는데 정법 종결은 기다려서 오는 것이 아니다. 정법은 현재 종결될 수 없는데 주요 원인은 사부님께서 일찍이 우리에게 말씀해 주셨다. “최후 시각이 오기 전 구도해야 할 중생의 숫자에 아직 도달하지 못했고, 대법제자 일부분이 아직 따라오지 못했는데, 이것이 바로 아직 최후의 이 일을 완성할 수 없는 주된 원인이다.” [1] 사부님께서는 아주 명백히 말씀하셨고 나도 정법이 종결될 수 없는 원인을 알게 됐다. 구도한 인원이 모자라고 만약 중국인 절반을 구도한다고 해도 현재 삼퇴 인원수는 겨우 2억이 넘을 뿐이다. 중국인의 절반이 7억5천만이고 여기의 절반인 2억5천만 명이 사당(邪黨)의 어떠한 조직에 가입하지 않았더라도 삼퇴 인원은 5억에 달해야 하는데 현재 겨우 2억1천만 명이 넘었다. 그렇다면 대법제자 중 아직 얼마나 많은 사람이 따라오지 못했는가? 장쩌민 고소가 이미 5개월이 넘었고 겨우 18만 명에 달하는 대법제자가 고소에 참여했다. 현재 7천만 대법제자에 박해 이후에 절반가량 떨어져도 3천5백만이다. 그러나 겨우 18만 명이 참여했는데 이는 어떠한 비례인가?

그래도 자신을 보도록 하자. 나도 종결을 기다리지 않는가? 사실 역시 기다리고 있는데 단지 늘 기다리지 않을 뿐이고 게으름 속에서 기다리고 있다. 이 몇 해 동안 잘하고 있는 수련생들에 비해적게했지만지친다고 느끼고 있으며 이제는 충분히 했다는 생각을한다. 그러나 감히 세 가지 일을 행하지 않을 수 없는데 행하지 않으면 떨어지는 것이 두려워 미적미적 행하고 있다. 특히 사람을 구하는 데서 몇 년 전과 비하면 많이 뒤떨어져 진상을 알림에입을 열기 어렵다. 가끔은 장쩌민 고소를 마쳤고 또 행할 것도 행해 최후에 이르러서 자신에게 더 공력을 들여 닦아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사실상 자신의 원만을 위해 생각하는 것이다.

또 한 점은 바로 형세가 긴장하기만 하면 대법제자가 박해를 받는다는 생각을 한다. ‘사부님 빨리 종결해주세요. 대법제자가 너무나 많은 대가를 치르고 있습니다.’ 그렇게 많은 중생이 아직 구도되지 못했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한다. 이렇게 오랜 시간 수련하고 아직도 구 우주 생명의 이기적인 속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 이기적인 기점에 서게 되면 정법 종결 시간에 집착하게 되며 정법이 하루빨리 종결되기를 기다리게 된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아직 구도 되지 못했는데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가? 자비심은 어디로 갔는가? 자신이 법선에 올라간 것만 다행이라 여기고 아직도 물속에 있는 중생은 상관하지 않는가? 그것이 미래 대각자의 행위라고 할 수 있는가?

정법이 언제 종결될지는 물론 사부님께서 결정하신다. 그러나 구도한 사람이 모자라고 대법제자 중 아직도 그렇게 많은 사람이 걸어 나오지 못했으며 원만의 표준에 도달하지 못했다. 사부님께서 어떻게 종결하시겠는가? 사람을 구도하는 일은 그래도 대법제자가 가서 행해야 하는데 사부님께서 진상을 알리시게 할 수 있는가? 물론 사부님께서는 또 다른 형식이 있을 것인데 예를 들면 션윈으로, 단원을 통해 실현해야 하고 우리는 정법시기 대법제자다. 바로 마땅히 조사 정법하고 중생 구도를 해야 한다. 이치는 모두 알고 있는데 왜 정진하지 못하는가? 만약 진짜로 몸과 마음을 다했다면 아마도 자신의 그만한 감당 능력일 것이지만 사실상 나는 조금 해이한데 이는 시간에 대한 집착으로 인해 조성된 것으로 정법 시기 대법제자의 책임이자 주인공의 작용을 희석시킨 것이다. 가끔은 또 현재 책임자가 어떠어떠하기를 바란다.

하루빨리 종결되기를 희망하는 것도 좋은데 어느 기점에 서 있는지 봐야 한다. 지금 정법이 아직 종결되지 않음은 사부님께서 중생을 구도하기 위해 연장하신 것으로 다시 말해 중생의 생명은 모두 사부님께서 연장시켜서 온 것이다. 그렇다면 한 생명을 구도하려면 사부님께서 얼마나 많이 감당하셔야 하는지 나는 상상할 길이 없다. 만약 우리 대법제자들이 정말로 사부님께서 중생의 죄업을 덜 감당하시게 하려면 오로지 우리가 중생을 더 구도해야 하고 사부님께서 구도하려는 그 숫자에 도달해 사부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원용해야 한다. 그래야비로소 하루빨리 종결될 수 있다. 여기까지 말하면서 내가 밖으로 본다고 치자. 장쩌민 고소를 아직 행하지 않은 수련생에 대해 사부님께서는 고소 조건을 더욱 느슨히 해주셨으니 재빨리 고소에 참여하자. 왜냐하면, 장쩌민 고소는 중생을 구도하는 한 가지 중요한 기연이고 또한 우리 자신이 사람으로 걸어 나오는 중요한 한 걸음이기 때문이다.

정법은 시간이 있고 무기한 지체될 수 없다. 그러나 사람을 구도한 수량이 모자라면 많은 대법제자도 아직 표준에 도달하지 못한 것이다. 그러면 사부님께서 또 종결을 차마 하지 못하시고 종결하지 못하면 사부님께서 더 많이 감당하셔야 하는데 우리가 차마 이렇게 행할 수 있는가? 우리는 사부님의 자비로운 구도에 면목이 있어야 하지 않는가? 한 점의 감수로 적절치 못한 곳은 자비롭게 시정해주시기 바란다.

주)[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저작: ‘각지 설법10-더 정진하자’

문장발표: 2015년 10월 7일
문장분류: 수련마당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5/10/7/317123.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