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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려도 오지 않는 종결’을 논하다

글/ 동진(同眞)

[밍후이왕] 밍후이왕의 ‘기다려도 오지 않는 종결’에 관한 문장을 보니 공감이 가는 부분이 있었다. 박해 초기 많은 수련생이 대법을 실증하는 열정이 아주 높았다. 박해가 절대 오래 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대법을 실증하는 열정이 아주 높았다. 그러나 사람의 열정은 결코 오래가지 않는다. 박해가 16년 동안 지속되면서 종결을 기다려도 오지 않자 원래 열정은 점점 약해졌다.

나는 수련생의 의견에 동의한다. “정법의 종결은 기다려서 오는 것이 아니며 기다려 온 것은 사람들이 바라던 결과가 아닐 것이다. 기다려 온 종결은 우리에게 많은 후회만 남길 것이고 후회막급하게 할 것이다.” 우선 우린 정법 수련에 기본 인식이 있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우리가 어느 정도까지 수련해야 하고 정법에서 해야 할 일이 어느 정도에 도달해야 끝날 수 있을까?

정법 수련은 과거 고대 개인 수련과 다르다. 과거 수련은 외부 모든 일은 본인과 관계없으며 자신을 제고하기만 하면 된다. 정법 수련에서 99년 ‘7.20’ 이전에는 주로 개인의 제고가 주였지만 99년 ‘7.20’ 이후엔 개인 수련이 표준에 도달해야함과 동시에 정열을 다해 세인을 구해야 했다. 다시 말하면 이 두 가지가 모두 표준에 도달해야 정법이 자연스럽게 끝나는 것이다.

“후과는 자신이 서약 중에서 정한 대로 된다.”[1]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우리 이 자리에 있는 일부 수련생은, 나는 알고 있는데, 정진하지 않는다. 일부는 심지어 아주 정진하지 않는다. 그러나 사부는 생각하고 있는데, 당신을 어찌하겠는가? 당신은 어찌하여 정념이 없는가? 사부는 당신을 구하러 오지 않았는가, 이 법이 당신들을 구하러 오지 않았는가? 게다가 당신은 다른 사람을 구해야 하는 직책을 몸에 겸하고 있는데, 자신마저도 잘하지 못하니, 어떻게 해야 하겠는가? 자신이 신(神)에 대한 서약을 실현하지 못하면, 후과는 자신이 서약 중에서 정한 대로 된다.”[1]

돌아와 우리 수련을 보자. 개인의 모든 집착을 다 닦아버렸는가? 정말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집착을 남김없이 수련”[2]했는가? 구도한 사람이 사부님께서 요구하신 숫자에 도달했는가? 사부님께선 우리에게 중국인의 절반 혹은 70-80퍼센트를 구하라고 하셨다. 중국대륙에는 15억 인구가 있는데 지금까지 ‘삼퇴’한 숫자는 2억 1천만이 넘을 뿐이다. 사부님의 요구와는 거리가 너무 멀다.

장쩌민 고소를 말해보자. ‘장쩌민 고소에 관한 통지’가 나온 후 사부님께서는 장쩌민 고소에서 신분이 노출되지 않은 수련생에게 가장 편리한 문을 열어주셨다. 익명으로 고발할 수 있는데 장쩌민 고소가 시작돼서부터 이미 4개월이 넘었지만 고소에 참여한 인원은 18만이 넘을 뿐이다. 장쩌민 고소는 정법의 유일한 항목은 아니지만 지금 한 시기 수련생이 가장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할 항목이다. 여기에서 질책하려는 뜻이 없다. 그저 수련생에게 묻고 싶을 뿐이다. 우리가 그때 걸어 나와 대법을 실증하던 그런 정신이 어디로 갔는가? 장쩌민 고소가 그때 천안문에 가서 대법을 실증한 것보다 더 어려운가?

사부님께서 연장한 시간은 우리 대법제자의 구도와 중생 구도를 위한 것

어떤 때 기나긴 고생 속에서 우린 정념이 없어지고 심지어 박해 받을 때 정법이 빨리 끝나길 바란다. 그러나 우리가 법에서 이런 생각은 우리 생명의 가장 본질적인 생각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알려주셨다. “이전에 내가 말했었는데, 나는 중공사당이 10년을 버틸 수 있을까를 말한 적이 있다. 사실 이뿐이겠는가? 그것으로 하여금 5년도 버티지 못하게 해도 된다. 그러나 당신들은 아는가? 얼마나 많은 세인이 구도될 수 없고 사악에 덮어 가려지고, 얼마나 많은 대법제자가 박해 속에서 소침해지고 걸어 나오지 못하겠는가. 결속하면 무슨 소용이 있는가? 정법은 사람을 구하기 위한 것이 아닌가? 나 한 사람만 가버리면 창세(創世)해서 뭘 하겠는가? 사전에 배치한 일체는 모두 헛되게 한 것이 된다. 시간을 연장하는 것은 당신들을 위한 것이고, 중생을 위한 것이다.”[1]

한 고등학생이 매일 공부를 잘하지 않고 늘 대학 입시를 기다리면서 본인이 대학에 갈 수 있길 꿈꾸는 것과 같다. 하지만 대학 입시가 오면 본인은 떨어지고 말 것이다. 결과는 본인이 벌써 정한 것이다. 그때가 되면 자신이 감당할 수 있겠는가?

사회의 유혹과 사람마음의 집착으로 우리는 어디까지 떨어졌는가?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일하는 태도에서 어떻게 해야 사람을 구할 수 있는지 이 문제에서 당신은 진지하게 사고하지 않는데, 이는 수련의 문제이다.”[3] 사부님께서는 지시하셨다. “사회가 천태만상이고, 인류사회 또한 이처럼 번잡하다. 더욱이 오늘날 사회는 역사상의, 장래의, 현재의 전부가 다 여기에 놓여 있는데, 당신이 무엇을 선택하는지를 본다. 또한, 이 사회로 하여금 여태껏 있어 본 적이 없게 이처럼 시끌벅적하게 하여, 사람의 집착심을 아주 쉽게 불러일으킨다. 수련인에 대해서는 교란인 것으로, 수련과 사람을 구하는 일에 어려움을 크게 했다. 이러한 환경에서 수련한다는 것은 정말로 매우 어렵다. 당신들의 사상이 어떻게 움직였는지, 행위를 어떻게 했는지를, 그것들은 모두 볼 수 있으며, 모두 보고 있다. 어떤 것이든 다 사람의 집착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하지만 대법제자로 말하면, 당신들이 만약 법을 떠나면, 당신의 정념이 또 부족하면, 그럼 정말로 아주 멀리 빗나가게 될 것이며, 심지어 단번에 아주 멀리 미끄러질 것이다.”[3]

정법이 오늘까지 지속될 수 있은 것은 사부님께서 대법제자와 모든 우주 중생에게 은혜를 하사하신 것이다. 우린 기회를 다잡아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해야 정법에 따라갈 수 있으며 진정하게 대법제자의 역사적 사명을 완성할 수 있다.

종결되기를 기대하는 것은 무엇인가? 근본적으로 말하면 여전히 법에 대한 믿음이 부족한 것이다. 밀레르빠의 당시 수련을 생각해보자. 그의 사부님이 그에게 집을 지으라고 하면 그는 집을 지었고 사부님이 그에게 집을 헐라고 하면 그는 집을 헐었다. 그에게 집을 헐고 다시 지으라고 하면 그는 헐고 다시 지으면서 사부님을 전혀 의심하지 않았다. 그는 사부님께서 반드시 그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신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배치하신 것도 가장 좋은 것이다. 우리는 모든 사람마음, 정을 다 제거하고 진정하게 이성적으로 대법과 정법수련을 인식해야 더 잘할 수 있다.

부족한 점이 있으면 수련생 여러분께서 자비롭게 바로잡아주기 바란다.

주)[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경문: ‘2013년 미국서부국제법회 설법’[2] 리훙쯔 사부님의 경문: ‘홍음-미혹 속의 수련’[3] 리훙쯔 사부님의 경문: ‘2015년 뉴욕법회설법’

문장발표: 2015년 9월 29일
문장분류: 수련마당>정법수련마당>이성인식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5/9/29/316800.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