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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닦는 데는 작은 일이 없다

글/ 네이멍구 대법제자 신롄(心蓮)

[밍후이왕] 수련 중에서 우리는 흔히 마음을 건드리는 큰일에 신경을 쓰면서 이건 넘어야 할 관이라고, 이 관을 잘 넘어야 심성을 승화하고 제고할 수 있다고 스스로 일깨워준다. 하지만 흔히 일거수일투족의 작은 일을 소홀히 하고 작은 관은 마음에 두지 않는다. 심지어 이런 작은 일들을 중요하지 않다고 여기는데 쌓이다 보니 넘기 어려운 큰 관과 난이 돼버렸다. 사실 작은 일도 수련자의 심성에 관련되는데 뭇 세인들은 이런 작은 일을 통해 수련자가 어떤지, 파룬따파가 어떤지 가늠한다. 이렇게 보면 이런 작은 일들은 더욱 세인의 구도효과에 관계되고 대법제자가 사람을 구도하려는 서약과 신성한 사명을 완성할 수 있는지에 관계된다.

1. 작은 일은 심성의 높낮이에 관계된다

사실 사부님께서는 일찍이 우리에게 명확히 가르쳐 주셨다. “이 환경에서 형성된 대법제자의 높은 경지의 행위는, 일언일행(一言一行)이 사람들에게 자신의 부족함을 인식하게 하고 사람들에게 차이를 찾을 수 있게 하며, 사람을 감동하게 할 수 있고 사람들의 행위를 용련(熔煉)시킬 수 있으며, 사람들을 더욱 빨리 제고하게 할 수 있다.” [1], 법 속에서 나는 수련인의 일사일념, 일언일행은 자신의 제고에 대해 지극히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사부님께서는 또 “한 사람이 법에서 수련하면서 진정으로 법을 인식하지 못해서는 안 된다. 오로지 진정으로 법을 장악하기만 하면 비로소 길을 바르게 갈 수 있으며 비로소 이 생명은 보증이 있게 되는 것이다.” [2], 라고 말씀하셨다. 그럼 어떻게 법 속에서 수련할 것인가? 간단한 예를 들어보자. 갑 수련생은 5층에 살고 있는데 어느 한번은 창문을 열고 쓸모없는 비닐봉지를 버리려 했다. 그것을 바람에 따라 날아가게 하려고 손을 내밀어 버리려 할 때 갑자기 사부님의 한마디 말씀이 생각났다. “사실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표준에 도달하지 못하면 안 된다.” [3], 온몸이 흠칫하면서 즉시 자신이 잘못했다는 것을 깨닫고는 쓰레기통에 넣었다. 일이 지난 후 그녀는 생각했다. ‘나는 왜 밖으로 버리려 하는가? 편해지려는 것이 아닌가. 아래까지 내려가 버리기 싫어서인데 이는 위사위아(爲私爲我)의 표현 아닌가? 만약 밖에 버리면 거리를 청소하는 사람이 일을 더 많이 하지 않겠는가? 만약 모든 도시 사람들이 모두 이렇게 밖에 버린다면 도시환경은 엉망이 될 것이다. 나의 이런 바르지 못한 행위는 속인과 무슨 구별이 있는가? 정말 속인 중의 좋은 사람보다도 못하구나.’ 여기까지 생각하자 그녀는 온 하늘에 모두 눈이고 온 하늘의 신불(神佛)들이 그녀를 바라보고 있고 비웃고 있는 것 같았다. 갑자기 사부님의 한 단락 법리가 생각났다. “나는 또 당신들에게 알려주겠다. 사실 당신들 이전의 본성(本性)은 위아위사(爲我爲私)의 기초 위에 세워진 것이다. 당신들이 앞으로 일함에 먼저 남을 생각해야 하고 무사무아(無私無我), 선타후아(先他後我)의 정각(正覺)으로 수련 성취해야 한다. 그러므로 당신들이 앞으로 어떠한 일을 하든지, 어떤 말을 하든지, 역시 남을 위하고 후세 사람을 위하는 데 이르기까지 고려해야 한다! 대법(大法)의 영세불변(永世不變)을 위해 고려해야 한다!” [4]

대법제자의 일사 일념, 일언 일행은 반드시 모두 속인을 초월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속인과 무슨 구별이 있겠는가. 비록 작은 일이지만 반영된 문제는 아주 크다. 만약 수련자가 사람의 행위관념을 개변하지 않는다면 어찌 수련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그의 수련 결과 역시 물속의 달을 건지듯 수포로 되고 말 것이다.

2. 작은 일은 사람을 구하는 큰일에 관계된다

오늘 사부님 경문 ‘대법제자는 반드시 법공부를 해야 한다’를 배웠다. 사부님께서는 “대법제자로 말하면, 당신들의 수련이 제일위이다. 왜냐하면, 만약 당신이 수련을 잘하지 못하면, 당신이 마땅히 해야 하는 일을 완성하지 못하며, 만약 당신이 수련을 잘하지 못하면, 사람을 구도하는 힘도 그다지 강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만약 수련한 것이 더욱 부족하다면, 그럼 문제를 보고 문제를 생각하는 방식마저도 모두 속인의 사상, 속인의 생각일 텐데, 그럼 더욱 나빠진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절대 느슨히 해서는 안 되고,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5], 고 말씀하셨다. 대법의 법리는 나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다. 정법시기 대법제자로서 조사정법, 중생 구도의 신성한 사명을 짊어지고 있다. 만약 우리가 잘 수련하지 못한다면 사람을 구하려는 선념과 강대한 정념이 있을 수 없고 그럼 우리가 사람을 구하는 효과도 뜻대로 되지 않을 것이다. 그 밖에 만약 속인들이 우리의 행위표현이 바르지 않는 것을 보면 그들은 마음속으로 우리를 인정하지 않을 것인데 그럼 어찌 당신이 말한 진상을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사부님께서는 설법에서 우리에게 간곡하게 가르쳐주셨다. “이러한 정황에서도 여러분은 또 자신이 사회에서 속인 이 방면에서의 형상을 고려하였다. 왜냐하면, 대법제자들은 어디에서도 모두 하나의 좋은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속인 사회 중에서 일하는 과정 중에서, 가정 중에서, 사회의 여러 면의 교제 중에서 사람들에게 모두 대법제자의 바른 형상을 남겨주어야 하였다. 조건이 제한되어 있으므로 여러분이 하기에 매우 곤란하고 매우 간고하였다. 비록 이러하였지만, 정법, 이 한 갈래의 길을 우리 역시 바르게 걸어야 했으며 비뚤게 걸어서는 안 되었다. 여러분이 알다시피 바르게 걷자면 바른길은 오로지 한 갈래뿐이며, 밖으로 한 발만 내딛더라도 빗나가게 된다. 빗나가서는 안 되기에, 우리 이 한 갈래 길은 걷는 것이 넓지 않았다. 어떻게 하고 싶다고 제멋대로 하고 그렇게 하려는 그것은 안 된다. 그렇게 되면 법은 바르지 않게 된다. 여러분은 법을 실증하는 길을 바르게 걸어야 한다. 매 한 걸음, 매 한 가지 일, 대법제자의 언행을 포함하여 사회에서 여러 면의 표현을 모두 바르게 해야 한다.” [6]

생각해보자. 우리가 매일 하는 일거수일투족의 작은 일들은 얼마나 되겠는가. 세인들이 이런 것을 본다면 좋은 평가를 하겠는가? 아니면 나쁜 인상을 주겠는가? 효과가 같을 수 있겠는가?

사부님의 법리는 우리가 마음을 닦고 수련할 수 있는 지침이다. 우리는 반드시 대법 법리에 따라 자신의 일사 일념을 엄격히 잘 닦고 일언 일행을 잘 규범 해야만 진정으로 정법시기 대법제자의 신성한 사명을 짊어질 수 있고 명실상부한 정법시기 대법제자가 될 수 있다.

개인적인 인식에 제한이 있으므로 적합하지 않은 부분은 수련생께서 자비롭게 지적해주시기 바란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정진요지 – 환경’

[2] 리훙쯔 사부님 저작: ‘2004년 뉴욕국제법회 설법’

[3] 리훙쯔 사부님 경문: ‘2014년 샌프란시스코법회 설법’

[4] 리훙쯔 사부님 저작: ‘정진요지-불성무루(佛性無漏)’

[5] 리훙쯔 사부님 저작: ‘각 지역 설법 11-대법제자는 반드시 법공부를 해야 한다’

[6] 리훙쯔 사부님 저작: ‘각 지역 설법 6-2004년 부활절뉴욕법회 설법’

문장발표: 2015년 9월 29일
문장분류: 수련마당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5/9/29/31677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