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12기 중국대법제자 법회 투고 마감일인 9월 15일까지는 열흘도 채 남지 않았다. 일부 수련생이 아직도 펜을 들어 법회 교류문장을 쓰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서, 왜 쓰지 않는지 물어보니 그들이 하는 말은 거의 예전과 다름없었다. 무엇을 써야 할지 모르고, 잘하지 못했으며, 쓸 것이 없고, 너무 바빠 쓸 시간이 없다는 등등이었다.
나는 이번 법회 원고를 거의 다 썼다. 퇴근 후에 매일 시간을 내어 조금씩 썼는데, 아무리 바빠도 쓰려고 했다. 나는 예전의 모든중국 법회와 ‘5.13 원고모집’을 포함해 한 번도 빠짐 없이 모두 참가했다. 이전의 모든 투고와 마찬가지로 나는 지금껏 참가해야 할지 말지를 생각한 적이 없었고 오로지 어떻게 써야 할지만을 생각했다. 매번 모두 열심히 썼는데, 어떤 것은 발표되고 어떤 것은 발표되지 않았으며, 어떤 것은 평소 밍후이 문장에 발표됐다. 처음 몇 년 동안은 발표 여부에 집착했지만, 지금은 거의 큰 집착심 없이 당연히 써야 한다는 것 외에 다른 생각이 없다. 아마 이 방면의 태도가 비교적 바르기에 사부님께서 내가 써야 할 내용을 사전(법회 원고모집 전)에 여러 번 머릿속에 반영해주시어 매번 써야 할 것들을 찾게 된 것 같았다.
수련생들이 법회 투고 참여를 중시하지 않는 것은 그 위대한 의의를 깨닫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여러 해 동안 문장을 쓴 경험을 되돌아보면 정말로 아주 신성했다. 나는 직접 겪은 체험을 통해, 교류문장을 쓰는 과정은 모두 대량의 죄업을 제거하고 심성을 제고하며 층차를 승화하는 과정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여러 번의 법회문장을 쓸 때마다 정말로 거의 넘어갈 수 없었던 고난에서 걸어 나왔으며, 벗어나기 어려운 소침한 상태에서 뛰쳐나왔다.
법회 투고에 참가하라고 하는 것은 사부님께서 우리를 도와주시는 것이고, 우리를 성취케 하시는 것이며,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시는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우리가 가지려고 하는지, 감당하려고 하는지만 보시는데, 사실 우리가 사람 속에서 한 그 작디작은 일들은 모두 우리 자신을 위해 하는 것이다. 하지만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은 우리가 감당한 것보다 몇 배나 더 되는지 모른다.
아주 오래전, 나는 법을 실증하는 일을 조금 했는데, 꿈에서 나는 수십만 위안을 지불했지만, 사부님께서는 수천만 위안을 주셨다. 그것은 수백 배에 달하는 것이다. 사실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은 정말 이런 비례로 비교할 수 없다. 사람 속에서의 평범한 표현, 예를 들면, 문장을 쓰는 것과 같은 것도 진실한 우주 중에서는 무수한 중생이 구도되고 새로 생기는 과정이며, 대법제자가 제자리로 돌아가는 한 과정일지도 모른다. 두 번 이상의 법회 투고 후, 꿈에서 아주 웅장하고 아름다운 경치를 보았는데, 아주 큰 광장은 인산인해로 사람의 끝이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조용히 거기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내가 천천히 광장으로 날아 들어올 때 사람들은 자동으로 한 갈래 길을 비켜주었다. 두 번 모두 아주 비슷했다.
수련생들은 자신이 잘하지 못했기에 쓸 것이 없다고 하는데, 이것은 최근 몇 해 동안 많은 수련생이 법회 투고를 함에 있어 가장 큰 장애가 되었다. 사실 수련 중에는 완벽한 사람이 없고 완전무결한 수련자도 없다. 여러 해 동안 내가 만난 수련생 가운데 이런 사람은 없었다. 나 역시 결함이 많고도 많다는 것을 알고 있고, 너무 많은 경우 사람 마음과 집착을 끊기 어려웠다. 하지만 사람마다 장점이 있고 결점이 있듯이, 우리가 잘했을 때는 법 학습을 잘하고 법에 있을 때이며, 잘못했을 때에는 법에서 빗나가고 법에 있지 않은 때였다. 여러 해 동안의 수련에서, 세 가지 일하는 중에서 분명히 잘했을 때가 있을 텐데, 써내는 것은 자신의 공적을 자랑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법을 실증하기 위해서이다.
물론 자신이 잘못한 부분도 알고 있는데, 그것을 정시하고 안으로 찾아 자신을 개변하여 제고해 올라오는 것 역시 아주 좋은 소재가 아닌가? 왜 쓸 것이 없다고 하는가? 자신이 잘하지 못했기에 쓸 것이 없다는 생각을 자기 생각이라고 여기지 마라. 그것은 사악이 무서워서 가로막고 있다. 이 문제에 있어 주위 수련생들이 서로 일깨워주어 소재를 찾을 수도 있고 사부님께 도움을 청할 수도 있다. 우리에게 법을 실증하려는 진실한 마음만 있다면 사부님께서는 반드시 우리에게 당연히 있어야 할 지혜를 주실 것이다. 또한, 현재 진행되고 있는 장쩌민 고소에 많은 수련생이 참여했으며, 많은 수련생이 참여 과정에서 생사를 내려놓고 사람 마음을 많이 제거했다. 장쩌민을 고소하는 과정 역시 수련의 승화 과정과 진상을 알리는 과정이 아닌가? 이 과정을 써내는 것도 아주 좋은 소재가 아닌가?
다시 한 번 ‘제12기 중국법회 원고모집 통지’의 요구사항을 보면 우리가 써야 할 글의 방향을 찾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지금 대법진상이 널리 전해지고 있고 장쩌민 고소 붐이 일어나고 있다. 수련생께서 각자 정법 수련 중에서 심성을 제고하고 진상을 알린 과정과 체득을 써내어 서로 참고함으로써 처음과 같은 수련 열정으로 더욱 착실히 정법수련의 길을 잘 걷자.’
해외의 성대한 법회 때마다 세계 각지의 많은 수련생은 온갖 방법을 다 생각해 모두 참가한다. 왜냐하면, 법회는 특별하고 신성하며 아주 소중하다는 것을 모두 알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중국대법제자 법회도 마찬가지인데, 모두 사부님의 안배로서, 단지 인간 세상에서의 표현형식이 다를 뿐 내포된 의미와 의의는 같다. 만약 당신에게 해외의 그렇게 크고 성대한 법회에 참가할 기회를 준다면 당신은 어떻게 해서든지 놓치지 않으려고 할 것이다. 같은 의미를 지닌 중국대법제자 법회를 놓친다면 당신은 훗날 반드시 후회할 것이다. 매 한 차례 기회는 더는 없을 것이다. 곧 끝난다는 말이 아닌데, 이런 마음을 지닌다면 잘못된 것이다. 우리 수련의 각도에서 이해하면 더욱 좋을 수 있는데, 예를 들면 12기 중국대법제자 법회 투고를 놓친다면 이 12기 중국대법제자 법회는 영원히 다시 오지 않을 것이다. 이번에 응당 제고해야 하고 승화해야 할 소중한 수련의 기연을 영원히 잃은 것이 아닌가? 이토록 장엄하고 신성한 법회, 전 우주의 뭇 신들이 모두 지켜보고 있을 대법제자의 소중한 성회에 우리가 어찌 결석할 수 있겠는가?
문장발표: 2015년 9월 9일
문장분류: 수련마당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5/9/9/315403.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