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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쩌민 고소’ 문제에서 신사신법을 논함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어제 나는 ‘장쩌민 고소’ 형사고소장을 발송하자마자 자신의 수련이 또 하나의 새로운 기점을 찾아서 새롭게 정진하는 것을 느꼈다. 아래에 이 기간 나의 체험을 밍후이왕의 모서리를 빌어 여러분과 교류하려 한다.

최근 뉴욕법회에서 장쩌민 고소에 관한 사부님의 설법을 보고 우리는 사부님께서 ‘장쩌민 고소’를 승인하셨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사부님께서 이전에 중대한 문제는 밍후이왕의 태도를 보라고 하셨고 또 밍후이왕은 5월초부터 이미 ‘장쩌민 고소’ 코너를 신설했다. 현재 ‘장쩌민 고소’는 더욱 밍후이왕 보도의 주류로 됐는바 ‘장쩌민 고소’는 정법노정의 추진, 더욱 큰 범위의 중생구도, 또 우리 개인수련에 연관된다.

나는 과거에 못난 제자 중 한 사람이었다. 박해 중에서 한 번에 정정당당하게 걸어나오지 못하고 압박에 의해 이른바 ‘회개서’를 썼다. 5월 장쩌민 고소가 시작되면서부터 줄곧 자신의 정념이 효력이 없다고 느낀 나는 이전에 정정당당하게 걸어나오지 않아 지금 써도 될까 생각했다. 박해의 그림자는 줄곧 머릿속에서 맴돌고 있었다. 나는 늘 ‘장쩌민 고소’는 속인 중에서 사회영향력이 있거나 수련이 잘된 수련생들이 하는 일이라고 인식해서 자신을 대법제자 중에 놓지 않았다. 현재 ‘장쩌민 고소’에 직면한 우리는 정말로 마땅히 안을 향해 잘 찾아야 하고 자신의 일사일념을 바로 잡고 정체적으로 잘 파악해서 잘 협력해야 한다.

사부님의 ‘정진요지’ 중의 경문 ‘뿌리를 캐다’에서부터 4.25와 7.20이후의 진상 알리기, ‘9평 전하기’, 션윈 매표가 주류사회로 전해지기까지, 우리는 두려운 마음과 사람의 관념이 정법과 수련에 방해가 된다는 것을 모두 체험했다. 사실 ‘신사신법’에 관한 하나의 문제인데 법 중에서 우리는 신사신법만이 가장 안전하다는 것을 알았다. 생각해보면 만약 그해 4.25때 전국의 1억 대법제자 중에 만 명이 아닌 천만 명이 갔더라면 99년 박해가 발생하지 않을 수도 있었다. 베이징에 늦게 갈수록 단속이 더 심해진 원인은 모두 우리의 마음이 조성한 것인데 많은 사람들이 이후에 모두 불순한 마음을 품었거나 들뜬 마음을 가졌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밍후이왕에서 ‘장쩌민 고소’ 코너를 추진한 후 만약 우리가 즉시 정법노정에 따라 발송한 장쩌민 고소장이 지금의 12만이 아닌, 2백만, 2천만이 된다면 정법과 중생구도에 대해 또 어떤 효과가 나왔을까?

사부님께서는 ‘2014년 샌프란시스코 설법’ 중에서 “대법제자가 비바람 속에서 걸어온 길은 사람의 각도에서 말하자면 한 곡의 장엄한 노래이고, 신의 각도에서 말하자면 이는 용광로에서 진금(眞金)을 제련하는 과정이다. 수련 중에는 큰 파도가 모래를 이는 일이 있을 것이다. 이 일체는 모두 역사에 남겨놓을 것으로서 아마도 영원토록 전해 내려갈 것이다. (박수) 대법제자가 이 기간에 잘하거나 잘하지 못하거나, 이 일은 지나가 버리면 되돌릴 기회가 없다. 왜냐하면, 그 사악은 이미 존재하지 않고, 그런 사악은 점차 소멸하여 이미 능력이 없으며, 다시 당신을 고험하고 당신을 새롭게 한번 걸어가게 할 기회가 모두 없기 때문인데, 자신이 한 일이 어떤 모양이면 아마 바로 어떤 모양일 것이다. 다행히 이 일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대법제자로서 어떤 환경에서든 당신은 모두 마땅히 잘해야 하고 더욱 잘해야 하며, 하루빨리 그런 부족함과 그런 있어서는 안 될 것들을 제거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모두 한번 생각해보자. 장쩌민을 고소하면 정말로 안전하지 않을까? 그런 것이 아니다. 관건은 우리가 박해받는다는 집착심 때문에 두려워하는 것이다. 수련생이 실명으로 장쩌민을 고소할 때 어떤 수련생은 두려운 마음이 나타나 제때에 정법노정에 따라가지 못하고 또 제때에 자아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법에서 법을 인식하여 사부님께서 요구하신 것을 원융해야 한다. 한번 물어보겠는데 정법은 도대체 누가 주재하는가? 창세주인가, 아니면 구세력인가? 물론 이런 상황에서의 수련은 개인 문제에 속하는 만큼 사부님은 결코 어느 누구에게도 강요하지 않으신다. 오로지 자신이 진정으로 걸어나와야 한다.

1999년 장귀(江鬼)가 방금 대법을 박해했을 때 당시 장귀가 정권을 장악했어도 우리는 감히 베이징에 청원하러 가서 직접 그를 고발했다. 서로 비교해보면 현재 환경은 이처럼 느슨한데 ‘형사고소장’을 발송하는데 무슨 어려움이 있는가? 수련인은 줄곧 처음처럼 정진하는 마음을 유지해야 하지 않는가? 정법노정의 추진과 대법제자의 명백한 진상 알리기 추세에 따라 우리의 환경은 갈수록 느슨해지고 가정과 생활이 갈수록 온화해져서 그런가. 아니면 안일 중에서 정진하기 어려워서 그런가? 그러나 대법은 속세를 벗어나 수련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하지만 우리 마음은 오히려 수시로 속세를 벗어나야만 삼계를 벗어날 수 있다. 그리고 어떤 사람이 접수가 잘 되지 않는다고 해도 근심하지 말아야 한다. 1999년 7.20 이후를 돌이켜보면 사부님의 9개월 간 거대한 노력이 없었다면 우주 속의 당신, 나, 그가 있을까? 장귀 일당의 운명조차 일찍이 없어졌을 것이다!

법 중에서 우리는 사전(史前)부터 현재까지 사부님께서 우리의 생명을 만드시고 우리와 주불이 먼저 서약이 있었기에 오늘날 우리가 중생이 주목하고 있는 생명-정법시기 대법제자가 됐다는 것을 알았다. 우주의 중생에 대해 말하면 가장 큰 선념(善念)은 바로 사부님의 정법에 대해 무조건 인정하는 것이다. 정법노정의 관건적인 시각에 어떤 중생이 정법에 대한 자신의 선념으로 창세주의 선택을 받게 되면 영원한 영광을 지닌 생명이 된다. 역사가 이 한 페이지를 지날 때 우리가 억만 년의 기대와 회귀(回歸)를 자신에게 주지 않는다면 중생구도에 어떠한 유감을 남겨줄 것인가?

일체 모든 것은 사부님께서 순서 있게 배치하신다. 현재 ‘반부패 장쩌민파 제거’는 우리에게 이미 기초를 다져준 것이 아닌가? 일체 모두 사부님께서 순서 있게 배치하신 것이다. 이렇게 많은 해를 거쳐 장귀는 서산에 지는 해와 같고 사람과 신이 모두 분노하는데 장귀에게 남은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다. 자비롭고 위대하신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홍대한 위덕을 수립할 기회를 남겨주셨다. 그런데 우리가 아직도 속인이 대법을 회복시켜 주길 바란단 말인가?

사부님께서는 ‘정진요지’(뿌리를 캐다)에서 우리에게 “관건적일 때, 내가 당신들에게 사람과 결별하라고 하면, 당신들은 나를 따라오지 않는데, 기회는 두 번 다시 있을 수 없다.”라고 알려주셨다. 그해 4.25를 회상해보면 전국에 1억 대법제자가 있었지만 1만 명밖에 가지 않았다. 우리는 이미 좋은 시기를 놓쳤다. 정법과 생명에 영원히 보충할 수 없는 깊은 유감을 남겼다. 현재 사부님이 말씀하신 ‘전민 반(反)박해’ 천상을 보면 중생은 우리가 인도해주길 바란다. 사부님은 정법노정을 배치하시는 동시에 우리의 자아가 순정하게 회귀하도록 함께 배치하신다. 이렇게 많은 해를 돌이켜보면 우리는 천지를 뒤덮는 압박 중에서 수많은 고통을 받았는데 박해받을 때 잘못된 두려운 마음과 관념을 버릴 때가 됐다. 특히 박해의 압박 중에서 잘하지 못한 수련생들에게 자기의 오점을 다시 씻을 수 있는 기회를 사부님이 주셨는데 빨리 해내야 한다. 우리는 대법 중에서 얻은 정념정각(正念正覺)으로 그것들을 대체하고 철저하게 사람 중에서 걸어나와 천체의 더욱 높은 대궁(大穹)으로 가서 신우주를 주재하는 홍대한 천체의 왕과 주인으로 되어야 한다.

수련생들이여, 앞길이 아직 얼마나 남았든지 신사신법은 절대로 개변할 수 없는 것이다. 정법노정의 매 한 차례 변화는 우리가 사람의 관념과 대법에 대한 모든 구우주의 변이된 관념을 전부 포기할 것을 요구하는데 합격된 우주의 보위자로 되면 미래의 각자(覺者)로 되는 것이다. 현재의 인간세상은 바로 가장 좋은 실습 현장으로서 모든 대법제자가 천상의 각자(覺者)로 될 수 있는가를 고험하고 있다.

문장발표: 2015년 8월 14일
문장분류: 수련마당>정법수련마당>수련체험>이성인식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5/8/14/31407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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