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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은 어디에 있는가? 마음속에 있다

글/ 허베이 대법제자

[밍후이왕] 장쩌민 고소 열풍이 갈수록 고조되고 있지만 하늘을 어기는 혼탁한 역류도 나타나고 있는데 장쩌민 무리들이 계속 방해하고 소란을 피우고 있다. 박해를 멈추려 하지 않는 장쩌민 무리들은 아직도 발악하고 있으며 이것이 바로 수련 중의 마난이다. 그럼 어떻게 방해를 제거하고 장쩌민 고소라는 대사를 성공시키겠는가?

먼저 방해의 원인을 똑똑하게 인식해야 한다. 근본적인 원인은 여전히 대법제자들의 마음에 의해 촉성된 것이다. 외부 변화는 실질적으로는 대법제자들 내심 세계의 반영이다.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속인사회에서, 오늘날에 발생된 일체 일들이 모두 대법제자들의 마음에 의해서 촉성(促成)된 것이다.”[1]라고 말씀하셨다. 각 층차의 마난은 모두 수련인의 심성을 제고하기 위한 것으로, 심성에 누락이 있으면 사악이 틈을 타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은 두려움 때문에 관망하면서 장쩌민 고소 문제를 소극적으로 대한다. 어떤 사람은 장쩌민을 고소해 그를 넘어뜨릴 수 있을지 의심하고 있다. 장쩌민은 비록 무대 아래에 있지만 그의 앞잡이들이 아직도 있고 정치국상무위원회의 절반은 여전히 장쩌민의 무리다. 또 중국은 공산당 천하로 장쩌민을 반대하는 시진핑 파들도 공산당이다. 때문에 실제 그들 중 어떤 사람은 “장쩌민이 무너져도 공산당이 있는 한 당신들을 탄압할 것이다!”라고 광적으로 부르짖지 않았던가. 어떤 사람은 어느 관리가 올라가고 어느 관리가 내려가는지, 누구의 권력이 얼마나 큰지, 무엇을 장악하고 있는지에 관심을 두고 형세를 분석한다. 마치 전쟁에서 형세를 분석하듯이 하고 지피지기하기 위해 일부러 소식을 알아보고 형세 발전을 보려고 한다. 하지만 똑똑히 볼 수 없었다. 장쩌민 고소 바람은 거세지만 교란과 방해도 따르고 있고 복잡하고 변화가 많기로 어지러울 지경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똑똑히 볼 수 없다. 앞길이 어두운데 어찌 똑똑히 볼 수 있겠는가? 송나라 악비는 금나라를 소멸하고 황룡부로 쳐들어가기 직전에 급사했고, 삼국의 적벽대전에서 군사 대가인 조조는 대군을 거느리고 절대적인 우세를 차지했지만 패했으며, 유비 역시 형제의 복수를 위해 대군을 거느리고 동쪽 오나라를 쳤지만 패했고 무적의 조운(趙雲)은 장판파(長坂坡) 전투에서 용맹을 떨쳤지만 혼군을 모셔 멸망을 가속화했다. 모르는 것이다. 공산당 지도자들은 형세가 어떻게 발전하는지 알겠는가? 그들 자신도 알 수 없다. 그들은 자신의 목숨도 마음대로 할 수 없는데 장쩌민을 무너뜨리는 일을 그들에게 기대하면 그들은 또 누구에게 기대하겠는가? 겉보기에 우연한 아주 사소한 일이 대사의 성패를 가를 수도 있다.

어지럽고 시끄러운 이 세상은 육안으로 제대로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람은 미혹 속에서 똑똑히 볼 수 없다. 속인은 반드시 미혹 속에 있어야 하므로 똑똑히 보지 못하게 되어 있다.

그러나 수련인은 초범적인 사람으로서 당연히 속인의 관념으로 문제를 봐서는 안 된다. 신의 길을 걸으면서 많은 천기를 알고 있는바, 인류사회의 일은 신이 배치한 것이고 특히 대법제자는 역사 무대의 주역이라는 것을 잘 알기 때문에 더욱 속인들처럼 문제를 봐서는 안 된다. 사부님께서는 “속인 중에서 당신이 이 이치를 보고서 옳다고 여기지만, 그것이 정말로 옳은 것은 아니다. 고층차에서 보아야만 진정 맞는 것이며 흔히 이러하다.”[2]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실제 문제를 처리할 때면 장악하기 쉽지 않다. 예를 들어 장쩌민 고소 중 두려움이 있는 것은 바로 속인의 관념으로 문제를 보고 위험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좋고 나쁨은 사람의 일념(一念)에서 나오며”[2]라고 알려주셨다. 때문에 생각이 바르지 않으면 번거로움을 초래할 수 있다. 관념을 없애야 한다는 것은 모두 다 알고 있지만 해내려면 쉽지 않아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관념이 생기는데 심지어는 생사를 내려놓을 수 있다는 진짜 수련자들도 예외가 아니다.

동북 지역 수련생 류청쥔(劉成軍)은 TV 삽입방송은 ‘목이 떨어질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던가? 비록 그는 생사를 내려놓을 수 있었고 용감하고 비장하게 죽었지만 수련에서 더 멀리 가지 못한 것도 유감스러운 점이 아닐 수 없다. 알 때도 있지만 방식을 바꾸면 알지 못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수련 초기에 병업관을 넘길 때 약을 끊으면 병이 심해진다는 관념 때문에 감히 약을 끊지 못했다. 그러나 고층차에서 보면 연공인은 초범적인 사람이고 사부님의 법신이 보호하고 있기에 위험이 없다. 이렇게 생각해 과감히 약을 끊으면 그 관을 넘길 수 있다. 교통사고도 마찬가지로 정념이 있으면 즉시 넘길 수 있다. 그러나 방식을 바꾸면 어떻게 되는가? 교통사고가 아니라 흉악한 경찰에게 붙잡히고 전기봉 폭행을 당한다면 사부님 법신이 보호하고 있다는 것을 생각할 수 있는가? 나를 포함한 매우 많은 수련생들은 ‘전법륜’에서 이런 일에 대해 말하지 않았기에 깨닫지 못한다. 기억나는데 한 수련생은 사부님께 “아무리 봐도 ‘전법륜’은 정법 수련에 대해 지도 작용이 없는 것 같습니다”라고 질문했다. 사실 당시 나도 동감이었다. 책에서 정법시기에 대한 일을 언급하지 않았고 한 가지를 통해 열 가지를 깨닫지 못했기 때문에 흉악한 경찰이 전기봉으로 폭행할 때 여전히 속인 마음으로 대치했다. 이는 근본상 속인의 관념을 개변하지 않아 일마다 법으로 대조하지 못한 것이다. 속인의 관념을 근본적으로 개변하면 자연적으로 일마다 대조할 수 있고 시시각각 정념으로 정법시기의 문제를 대할 수 있다.

장쩌민 고소 문제를 다시 말하자면 매우 많은 사람들은 위험하다고 생각하며 심지어 ‘현대판 반혁명’이라고 생각한다. 중국공산당이 몇 십 년 동안 주입해 형성된 사유와 관념의 뿌리는 개변하기 어려울 만큼 깊다. 이는 속인의 관념일 뿐만 아니라 부패된 속인의 관념이다. 공산당 천하에서 공산당을 반대하면 박해 받는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미국에서 국민들은 여당을 반대한다고 박해 받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중국 대륙에서 어떤 수련생의 사상은 심지어 ‘문화대혁명’ 시기의 관념에 머물러 있다. 개혁개방 이후 외국의 것을 배우고 점차 국제사회와 접촉하면서 속인들조차도 ‘사상해방과 관념전환’을 말한다. 중국도 더 이상 정치범을 체포하지 않고 있고 ‘현대판 반혁명’도 범죄가 아니며 당을 반대하고 사회주의를 반대해도 범죄자가 아니다. 다른 나라들은 줄곧 그래왔으며 당이 잘못했으면 항의할 수 있다. 이는 법률이 시민에게 부여한 합법적인 권리로서 범죄자들도 고소할 권리가 있는 것이다. 우리는 포고문에 ‘피고인이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다’라는 문구가 있는 것을 자주 보는데 바로 이 뜻이다. 우리는 죄를 짓지 않았고 합법적인 시민이므로 더욱 상소권이 있다. 하물며 지금은 ‘모든 사건은 반드시 입안하고 모든 고소장은 반드시 처리해야 한다.’고 하는데 천상 변화 때문일 것이다.

그럼 수련인의 각도에서 보면 우리는 대법을 보호하고 정의를 지키며 전 우주에서 가장 신성하고 공덕무량한 일을 하고 있는 것이므로 자연히 사부님과 호법신의 보호를 받을 수 있어 위험이 있을 수 없다. 대법에 부합되기만 하면 교통사고 같은 직접적인 타격도 우리를 다치게 할 수 없는데 하물며 장쩌민 고소임에랴? 이것은 가장 신성한 일인데 누가 감히 막겠는가? 인류사회는 모두 정법을 위해 존재하고 정법의 수요에 따라 움직인다. 우리야 말로 인류역사의 주역이고 사회의 모든 것을 결정한다. 장쩌민, 후진타오, 시진핑 등 사람들의 표현은 모두 대법제자의 마음이 촉성한 것이다. 대법제자의 마음이 어디에 있으면 상응하게 어떤 형세가 나타나는데 우리가 또 누구에게 의지하려고 하는가? 오직 안을 향해 우리의 심성에서 찾는 수밖에 없다. 생각이 바르지 못하면 마난이 나타나는데 진정한 위험은 법을 빗나간 마음이다. 생각이 바르면 형세는 좋아진다. 사소한 장쩌민 고소는 아무 것도 아니다. 관건은 일에 부딪혔을 때 어떻게 생각하는 지다. 예를 들어 장쩌민에 대한 어떤 고소장은 최고 검찰원, 최고 법원에서 지방으로 돌려보내졌고 지방 관리가 집으로 찾아가는 바람에 어떤 수련생은 두려워했다. 사실 두려울 것이 있겠는가? 나는 지방에서 처리되는 것은 오히려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최고 법원은 직원이 제한되어 있어 업무량을 재분배하는 것은 정상적이다. 그렇게 되면 더욱 많은 사람이 고소장을 보게 되고 진상을 알 수 있다. 우선 지방 공검법에 소장을 제출한 후 최고 법원으로 전달을 요구하자고 주장하는 수련생도 있지 않는가. 목적은 더욱 많은 사람이 고소장을 보게 하는 것으로 매 한 고소장은 하나의 진상자료다. 상급 법원에서 사건을 돌려보낼 경우 박해하지 않는다는 의미가 있으므로 더욱 좋다. 어떤 지방 법원 사람은 태도가 나쁜데 그것은 그 사람 개인이 어리석어 형세를 똑똑히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장쩌민 고소는 반드시 성공할 것이다. 하늘이 변하려면 누구도 막지 못한다. 마난이 아무리 많아도 대법제자가 걸어갈 수 있는 길은 반드시 있다. 나는 길이 어디에 있느냐고 묻는다면 바로 대법제자의 마음속에 있다고 말하고 싶다!

개인적인 깨달음이니 맞지 않는 곳은 수련생들께서 자비로 지적해 주기 바란다.

주:
[1]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각 지역 설법2- 2002년 미국필라델피아법회 설법’
[2]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전법륜’

문장발표: 2015년 8월 10일
문장분류: 수련마당>정법수련마당>이성인식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5/8/10/31387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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