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대륙 대법제자
[밍후이왕] 사부님의 ‘2015년 뉴욕법회설법’을 학습한 뒤의 소감을 수련생들과 교류하고자 한다. 나는 수련인이 많은 번거로움과 마난에 부딪히고 수련에서 장기적으로 승화하지 못하는 근본 원인은, 법공부를 잘하지 못해서 대법의 법리에 대한 이해가 깊지 못한 데 있다고 생각한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바로 정에서 뛰쳐나오지 못한 것이다. 늘 인위적인 일을 하는데 그러면 속인사회의 사람과 사람 간의 인연관계를 교란하게 되고, 그러면 끊임없이 업을 짓게 되어 수련 중에서 무척 많은 마난을 조성하게 된다. 그러므로 정에서 뛰쳐나오고 사람에서 걸어 나오는 게 모든 수련에 대해서는 하나의 고험인 것이다. 뛰쳐나올 수 있는가 없는가는 최후까지 걸어갈 수 있는가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데 이는 큰 층차의 구분이다.
우리는 이미 최후의 최후까지 수련해 왔고 곧 천국으로 돌아갈 것인데, 이런 사람의 정이나 사람의 것은 정말로 담담히 보아야 한다. 우리는 사람과 같은 생명이 아니라 우리는 신의 길로 걸어가는 사람이다. 가령 법리적으로 제고하지 못하면 장쩌민 소송이 끝났다 해도 사상 경지가 여전히 승화되지 못하면, 데려갈 수 있는 사람은 여전히 제한될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사람이 산다는 것이 바로 업력윤보(業力輪報)다.” [1] 사람은 바로 이렇게 살고 있으며 바로 이렇게 끊임없이 윤회한다. 중국 고대 역사에서 많은 속인도 신을 믿었고, 신을 존경했으며, 선악에는 응보가 있음을 믿었다. 그러나 대부분 속인은 모두 수련할 생각도 하지 않고 그저 그렇게 살아가면서 속인은 정으로 사는 것이야말로 재미있다고 여긴다. 각종 체험이 많으니, 어떤 안 좋은 점이 있다는 것을 역시 느끼지 못한다. 좋은 아들이 있고, 좋은 아내가 있으며, 부유한 생활을 하는 게 아주 즐겁다고 생각한다. 남을 도와주길 좋아하고, 선을 행하면 내세에 복을 받는다는 것도 알고 있으며, 나쁜 일을 하면 내세에 소, 말 등으로 전생해 빚을 갚아야 하는바, 이 역시 아주 정상이고 자연적이라는 것도 안다. 사람이란 바로 이러하며 속인이 추구하는 것이란 정 속의 집착과 느낌으로 그는 바로 이 경지 중의 생명인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신으로 가고, 삼계를 벗어나며, 윤회를 벗어나 자신의 천국으로 돌아가서 진정한 육친과 만나려고 한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은 천국으로 돌아가는 것으로 배우는 것은 우주의 대법이며, 알려고 하는 것은 우주의 진상이다. 우리는 속인과 완전히 다른 경지의 생명이다. 우리는 단지 속인의 환경을 빌어 수련할 따름이므로 정말로 이 정을 담담히 내려놓아야 한다. 무슨 정이든 모두 내려놓아야 하고 담담히 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사람을 초월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럼 사람이라면 그가 무엇을 하든 멋대로 하게 내버려두라. 평소 우리는 최대한도로 이 관계를 바로잡으면 되는 것이다.
정(情)에 이끌려 괴로울 때는, 이 방면의 사상이 승화하지 않고 투철히 깨닫지 못해서가 아닌지 생각해 봐야 한다. 사람 마음이 너무 중하고 이런 것을 담담히 보지 않아서이다.
수련하는 사람은 모두 알고 있다. 속인의 일생 역시 신이 정해놓은 것이다. 어느 날 어느 일보에 무슨 성가신 일과 곤란은 반드시 생기는 것이며, 모두 피할 수 없는 것으로 속인 사회의 일체는 모두 신이 정해놓은 것이다. 간단히 말해서 바로 속인의 일은 모두 신이 책임지고 있으므로 우리의 수련은 이러한 안배를 교란할 수 없다.
우리가 속인에게 진상을 알려 중생을 구도하지 않고 속인 중의 일을 상관한다면 그건 유위적인(有爲的) 것이다. 그러면 공이 떨어지고 층차가 떨어지며 누락이 생겨 성가신 일이 나타날 것인바, 관건은 우리가 늘 자신을 속인과 혼동하고 늘 정속에 잠겨있는 것이다. 그러면 필연적으로 유위적인(有爲之事) 일을 하게 되고 그러면 곧 업을 빚어내게 된다. 만약 늘 승화하지 못한다면 그건 정말로 위험하고, 정말로 원만을 향해 걸어갈 방법이 없다. 참다운 수련을 해야 하는데, 사실 아주 많은 수련생은 이 방면에서의 법리가 분명하지 못하므로 늘 사람의 정 속에 잠겨 해탈하지 못하고 있다.
한 가지 예를 들겠다
한 수련생은 그의 친척(속인)과 함께 가게를 운영했다. 그는 낮에 출근하고 그의 친척은 밤에 출근했다. 수련생은 오전 10시경 가게를 인계받고, 그의 친척은 오후 7시경 인계받도록 했다. 그러나 대부분 그의 친척은 가족에게 저녁밥을 차려준 뒤 8시경에야 왔다. 이렇게 되자 모순이 나타났다. 수련생은 처음에는 전화로 친척을 빨리 오라고 재촉했고, 뒤에는 친척을 직접 원망하면서 네가 나의 수련에 영향 준다며 자신은 집에 돌아가서 법 공부를 해야 한다는 등등을 말했다. 항상 그런 말을 하다가 2년 후에는 아예 가게를 떠나 버렸다.
잇따라 그에게 하나의 증상이 나타났다. 바로 계단을 오를 때 다리에 힘이 없고 아파서 손으로 짚고 다녔으나 평지를 걸을 때는 영향이 없었다. 이 수련생은 당시 세 가지 일도 다 하고, 날마다 아침에 일어나 법 공부하고 출근하는 길에 진상자료를 배포했다. 그런데 이 다리는 왜 이럴까, 이전에는 이런 병업 증상이 나타난 적이 없었는데.
후에 이 수련생은 마음을 가라앉히고 법 공부했다. ‘일거사득(一举四得)’[2]을 학습했을 때 그는 알게 됐다. 모순에 부딪혔을 때 심성을 지키지 못해 너그럽지 못했으며, 선하지 못하고 밖으로 밀면서 자신을 연공인으로 간주하지 못했다.
그가 안으로 찾고 깨달았을 때 다리는 금방 나았고 자유롭게 계단을 오를 수 있었고 달릴 수도 있었다. 그런데 후에 또 안 되었다. 나중에 사부님께서 그에게 점화해 주셨는데 명백해 지긴 했지만, 또 감당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번에는 수련생도 자신이 제고할 때가 됐는데 제고하지 못했고, 고험(모순)에서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사실에 명백했다. 그 뒤 병업 증상이 서서히 줄어들었고 2년 남짓 지나서야 완전히 나았다.
다른 수련생이 그에게 ‘당신은 자신이 나쁘다고 하면서도 오히려 최근 한 달가량 자신이 어떤 법리를 알게 됐는지, 알게 된 후에는 또 어떻게 제고하고 소업 했는지 참답게 총괄하지 않았다. 지금 자신이 도대체 제고했는지, 안 했는지 생각해 보라.’고 말했다.
몇 년 전 비교적 점오 상태가 높게 열린 수련생을 만났다. 그는 어느 날 비몽사몽 간에 한 생명이 자신을 사부님 곁으로 데리고 가는 것을 보았다고 했다. 사부님께서는 당시 일을 하고 계셔서 그는 한쪽에서 기다렸다. 조금 후 사부님께서 길고 긴 명부를 그에게 보여 주셨다. 대략적인 뜻은 70% 또는 80%의 사람은 대법을 배웠지만, 모두 법을 얻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내가 일정한 정도로 수련했을 때 나에게도 이런 점화를 해 주신 적이 있었다. 그러므로 진정한 수련을 하는가는 모순 앞에서 법으로 자신을 요구하고 집착을 찾아내며, 사람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는가를 보아야 한다.
주:
[1] 리훙쯔 사부님 저작:《전법륜-轉法輪》
[2] 리훙쯔 사부님 저작:《시드니 법회설법-悉尼法會講法》
문장발표 : 2015년 7월 13일
문장분류 : 수련마당
원문위치 :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5/7/13/312350.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