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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수염 환자가 새 삶을 찾다

글/ 윈난(雲南) 대법제자

[밍후이왕] 남편은 광산 노동자다. 1991년 9월, 작업하다가 왼쪽 대퇴골을 다쳐 분쇄성골절상을 입었다. 당시 아이가 아직 어리고 남편도 급히 직장을 옮겨야 했기 때문에 ‘화시(華西)의과대학이 발명한 자동압축 접골기로 접골하면 세 달 후 뼈가 붙을 수 있다’는 의사의 말을 믿었다. 하지만 1년이 지났지만 결국 남편의 다리는 전부 다 자색으로 변했고 땅도 밟지 못했다. 병원에 가서 사진을 찍어보니 그 자동압축 접골기 때문에 가골(假骨: 뼈가 부러진 경우, 그 자리에 새로 생긴 불완전한 골조직)이 격리되어 아예 흡수되지 않았다. 원래 자동압축 접골기는 실패한 연구 제작품인데 병원과 학교가 이익을 위해 환자를 곤경에 빠뜨린 것이다.

이 때문에 우리는 다시 수술할 것을 제기했지만 그 가골이 자동압축 접골기 전부를 모두 덮어버렸기 때문에 수술이 매우 어려운 상태가 되었다. 의사는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끝내남편에게 다시 수술을 해주지 않았다. 그러나 남편이 날마다 계속 고통을 받으면 안 되기에 나는 병원 책임자에게 가서 남편 주치의의 무책임한 행동을 말했다.

93년 3월에야 병원은 남편에게 다시 2차 수술을 실시했다. 그러나 2차 수술에서 뼈가 끊어진 곳에 강판을 고정한 볼트를 또 제대로 잠그지 않아 결과 며칠 안 되어 강판이 또 끊어졌다. 이렇게 남편의 다리는 네 차례 수술했고 이로 인해 다리에는 계란 크기만한 구멍이 아물지 않고 날마다 피고름이 흘렀으며 무릎관절이 강직됐는데 병원에서는 치료할 수 없는 병인 골수염으로 됐다.

남편이 고통을 받자 우리 가족도 따라서 고통을 받았다. 나는 매일 남편을 도와 상처를 깨끗이 씻고 주사기로 고름을 빨아내고 과산화수소로 소독했다. 나는 손에 힘이 없어 자주 거칠게 상처 부위를 건드려 남편은 할 수 없이 날마다 자기 스스로 천조각을 물고 세척하면서 작은 칼로 썩은 부위를 긁어내야 했다. 남편의 상처는 갈수록 악화됐고 성격도 갈수록 괴팍해졌다. 그때 우리 모자(母子) 둘이 가장 고통스러운 일은 바로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우리는 집에서 남편이 갑자기 크게 화를 내는 것이 가장 두려웠다! 그리고 이 화 때문에 나는 또 자주 동료에게 화풀이를 해대고 남편의 주치의를 더욱 원망했다. 1996년 5월, 나는 주, 성급 의료주관 부서에 남편의 의료사고에 대해 소송을 제기했다.

6년이 지나갔지만 남편의 다리는 여전했다. 시어머니는 남편의 다리 때문에 너무 속을 태운 나머지 일찍 세상을 떠나셨다. 아들도 이런 환경에서 생활하면서 몸도 좋지 않고 아무런 이유 없이 자주 열이 나고 때로는 온몸이 자색으로 변하며 입 양측에 흰 거품이 생겼는데 병원에서도 무슨 병인지 진단해내지 못했다. 나도 매일 머리가 어지럽고 혈압이 낮아 무더운 날에 목욕을 해도 감기 걸리고 발, 다리가 항상 부어 있었다. 이런 상황이 되니 달리 방법이 없던 나로서는 어떻게든 아들을 고모에게 입양시키고 우리 부부가 함께 죽어버리자고 늘 생각했다.

바로 내가 갈 곳이 없어 철저히 절망하고 있을 때, 즉 1996년 6월 어느 날 고모는 남편에게 ‘전법륜’이란 책 한 권을 가져다주면서 다른 사람이 준 것인데 자기도 아직 다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고모는 남편이 연공할 수 있기를 기대했지만 남편은 이전에 무술을 연마한 적이 있어 몇 장을 넘겨보더니 소림무술 동작과 별 차이가 없고 또 그의 몸 상태에서 그런 동작을 연마할 수 없다고 여겨 관심을 두지 않았다. 나는 매우 궁금해 남편에게 “당신이 연마하지 않으면 내가 연마 할게요”라고 말했다. 그러나 내가 어떻게 동작을 배워야 할지 걱정하고 있을 때 마침 한 친척이 또 나에게 ‘전법륜’ 한 권을 가져다주면서 연공하는 분이 그녀 집에서 연공하는데 와서 배우라고 알려주었다. 이때부터 나는 수련의 길에 들어섰다.

대략 한 달 후 우리는 연공장을 설립했다. 나는 또 사부님의 설법 비디오를 빌려와 걸음이 불편한 남편에게 집에서 듣게 했고 때로는 퇴근해 집에 돌아와서 밥도 바빠서 먹지 못하고 연공장에 연공하러 갔다. 며칠 안 되서 집안에는 병원 약냄새가 가득 풍겨 우리 집에 오는 사람들은 모두 물었다. “당신 집에서 병원 냄새가 왜 그렇게 심해요?” 나는 그들에게 내가 파룬궁을 연마하기에 우리 사부님께서 우리 가족의 신체를 청리해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주가 지난 후 남편의 다리 상처는 아물어 갔고 천천히 목발을 짚고 걸을 수 있게 됐다. 더욱 이상한 것은 그가 어릴 적에 뇌수막염에 걸려 얻은 두통도 좋아진 것이다. 어느새 아들의 신체도 건강해졌고 내 머리도 더 이상 어지럽지 않았고 발, 다리도 붓지 않았다. 몸과 마음이 가벼워 행복했다! 정말로 한 사람이 연공하면 전 가족이 혜택을 얻었다.

남편은 천천히 목발에서 벗어나 길을 걷게 된 후 그는 병원과 소송 일을 언급했다. 사고를 고소하면 희망이 있기에 이 소송에서 이기면 우리는 10만 위안의 보상금을 받을 수 있다. 10만 위안은 우리 가족에게는 아주 큰 액수였다. 당시 남편 직장도 부도가 난 것을 알았기 때문에 의료비도 청구할 수 없었고 남편의 다리 치료 때문에 우리집은 몹시 가난해졌다. 그래서 남편을 보기만 하면 나는 이때까지 받은 고통이 또 생각나서 자동압축 접골기로 접골을 시킨 그 마음씨 나쁜 의사를 원망했다. 그가 우리 가장을 망가뜨리게 했기 때문에 나도 병원과 소송해 울화를 풀고 싶었다.

이 생각이 떠오를 때 갑자기 사부님의 법리가 생각났다. “흔히 일부 사람들은 그 자신이 무슨 마난이나 좋지 않는 일이 있을 때 모두 업력윤보 중에서 그가 지은 업을 갚게 된다”, “무슨 일을 하든지 언제나 다른 사람을 고려하여 매번 문제와 마주칠 때마다 이 일을 다른 사람이 감당해 낼 수 있는가 없는가, 다른 사람에게 해가 되는가 안 되는가를 우선 생각해야 한다.”[1]

‘맞다. 우리 가족들이 어쩌면 전생에 이렇게 남을 대하였는지도 모른다. 빚을 졌다면 어찌 갚지 않겠는가? 의사가 그 접골기를 사용한 것은 표면 현상일 뿐이다.’ 그래서 나는 남편에게 “소송하지 말아요, 우리가 전생에 빚을 졌을 수도 있어요. 이 소송에서 이기고 지던 간에 우리는 모두 그 의사에게 상처를 줄 수 있고 그러면 우리의 마음도 편하지 못해요. 나는 대법을 수련하기에 다시는 남에게 상처 주는 일을 하지 않겠어요”라고 말했다.

주)[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전법륜(轉法輪)’

문장발표: 2015년 6월 24일
문장분류: 수련마당>신수련생마당>병을 제거하고 신체를 건강하게 한 이야기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5/6/24/31133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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