简体 | 正體 | 대법서적

근본 집착을 제거하고 진정으로 자신을 수련하다

글: 해외대법제자

[밍후이왕] 뉴욕법회가 갓 결속되고 수련생 발언고 ‘어떻게 실질적으로 수련할지를 깨닫다’의 한 단락 말이 나의 주의를 불러 일으켰다. “나는 자신이 대법을 이용하고 있음을 인식했다. 직접적으로 말하면 나는 대법을 자신의 병을 치료하는 약으로 여긴 것이다. 법공부할 때 법공부한 후의 두뇌 청성과 마음의 평온함을 추구했다.” 나는 최근에 줄곧 안을 향해 찾고 수련의 근본 목적을 사고하고 있었는데 그와 같은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닌가, 대법을 이용하여 내심의 평온을 추구하지 않았는가? 나는 왜 수련하는가? 왜 수련을 초기처럼 하지 못하는가? 무의식중에 수련생이 작곡한 곡의 “공명리록(功名利禄)은 오래가지 않는다”라는 가사를 보게 되었다. 이 한마디에서 나는 근본집착을 철저히 인식하게 되었다. 아울러 이 집착은 내가 이전에 볼 때는 잘못되었다고 느끼지 못했는데 그것이 아주 깊이 숨어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초기에 수련하게 된 것은 바로 속인의 것이 너무나 무상하고 너무나 오래가지 못한다고 느꼈기 때문이었다. 나는 속인의 슬픔, 즐거움, 이별, 만남 등의 정과 번뇌 속에 빠지고 싶지 않았는데 그것은 나를 아주 고통스럽게 하기 때문이다. 해서 나는 명리정과 수많은 집착심을 제거하여 청정함과 자유로움, 초탈함에 도달했다. 나는 나의 오랜 수련에서 나의 집착 제거가 속인의 것을 전부 가져가지 못한다는 생각에서 형성된 것임을 발견했다. 그래서 나는 내려놓아야 했고 만약 이러한 논리에 따른다면 반대로 말하면 청정함, 자유로움, 영원함에 대해 내가 줄곧 추구하고 집착했던 것이었다. 나는 더 높은 기점에 서 있지 못했는바 중생구도, 무사무아의 기점에서 자신을 수련하고 집착을 제거하지 못했다. 속인의 명리정의 고통을 받지 않으려고 자신을 수련한 것이다. 이는 구우주의 위사위아의 일종 체현이고 개인 해탈을 구하는 것이고, 또한 대법을 이용하여 자신의 사심에 도달하려는 목적과 동등하다.

내가 초기에 법을 얻었을 때의 근본 목적은 불순한 것이었다. 이는 나로 하여금 이 몇 년간의 수련 중에 아주 소극적이고 수동적으로 변하게 했다. 시간이 길어지자 또 천천히 수련에 대한 의지를 침식시켰고 수련을 초기처럼 하려는 열정이 없어졌으며 세 가지 일을 하는 것도 형식적으로 변하여 대법의 심오한 내포는 더 보지 못했다. 오로지 감성으로 법을 인식하고 이성에서 끊임없이 승화하지 못했고 옅은 층차에서 수련의 이해에 계속 머물러 있었으며 집착심을 제거한 후의 청정함과 자유로움에 집착했다. 그래서 수련 이후의 높은 도덕 상태로 인해, 속인은 나를 늘 좋은 사람이라고 칭찬하거나 항목에서 잘할 때 수련생이 긍정해주어 나도 모르게 환희심, 허영심, 과시심이 생겨났고 이로 인해 더 나아가 명에 집착하게 되었다. 근본 집착을 제거하지 못하여 끊임없이 기타 새로운 집착이 생겨났고 이런 것들은 모두 수련에서 내가 끊임없이 전진하지 못하게 가로 막는 물질들이었다.

내가 현재의 층차에서 자신의 수련 기점이 순정하지 않음을 인식했을 때 나의 사상은 자신의 사명을 더욱 명확하게 했다. 나는 자신의 신의 일면이 강대해짐을 느꼈고 발정념할 때 에너지가 무척 순정해졌다. 개인의 인식으로는 만약 우리가 매분매초 수련하고 집착심을 제거하는 것을 중생구도를 위한 기점에 입각할 수 있고, 사심이 없음의 기점에 입각할 수 있고 대법 속에서 보답을 얻겠다는 마음이 한 치도 없어야 우리가 행한 일체는 비로소 의미가 있고 비로소 힘이 있으며 사람을 구도할 수 있으며 비로소 대법제자의 칭호에 자격이 있다.

적절치 못한 곳은 시정해주기 바란다.

문장발표: 2015년 5월29일
문장분류: 수련교류>정법수련마당>수련체험>씬씽제고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5/5/29/310129.html

ⓒ 2024 명혜망.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