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허베이 대법제자 후이롄
[밍후이왕] 나는 올해 69세다. 1996년 50세가 되던 날, 나는 대법을 운 좋게 얻었다. 대법을 연마하기 전 나는 안 아픈 곳이 없었다. 농담이지만 내가 기계라면 폐기된 지 옛날이며 작은 부품 하나도 정상인 곳이 없었다. 자비롭고 위대하신 사부님께서는 나를 지옥에서 끌어내 새로운 생명을 부여해 주셨다.
안 아픈 곳이 없어 죽지 못해 살다
29살 때, 나는 남편과 크게 다투면서 심장병이 발작했다. 툭 하면 심부전으로 응급실로 실려 가곤 했다. 30살이 되자 나는 또 신장염, 류머티즘성 관절염, 경추, 흉추와 요추 골극 증세로 거의 한 해 내내 입원을 해야 했고 가족들도 돌보지 못했다.
“병원은 병을 고치지만 목숨은 고칠 수 없다!”는 옛말이 있었다. 나는 아무리 발버둥 쳐도 병이 낫지 않았고 오히려 치질, 결장염, 유선증식 등 증세가 추가됐고 감기는 밥 먹듯이 걸렸으며 약을 먹어도 소용이 없었다.
입원만 하면 링거, 전기치료와 한의, 양의 전문가들의 진찰을 받았지만 그 어떤 것도 도움이 되지 않았다. 배는 북처럼 불러오고 하루 종일 밥도 잘 먹지 못했다. 체온은 35도였으며 모든 수치는 정상과 멀었다. 자주 탈진하고 응급상황에 처했다. 직장을 다니면서 하는 일은 적고 입원만 하면 회사에서 돈을 대주랴 간병할 사람을 보내랴 많은 폐를 끼쳤다. 남편은 바람이 나서 돈 한 푼도 보태준 적이 없었다. 내가 입원을 할 때도 나를 보살핀 적이 없었다. 밤이 되면 나는 직장동료를 돌려보내고 혼자서 병마와 싸우면서 쓸쓸하게 죽지 못해 사는 것 같았다. 죽고 싶을 때도 있었지만 아이와 어머니를 생각하면서 버티고 또 버텼다.
1990년 남편은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같은 해 나는 자궁암이 확진됐고 1992년에는 방광 속에 섬유성 종양과 포도 종양이 발견됐다. 병원에서는 베이징에서 전문가를 요청해 나에게 레이저수술을 권했고 수술 전 마취약 알레르기로 나는 목숨을 잃을 뻔 했다. 어쩔 수 없이 수술은 중단됐고 나는 또 고통을 견뎌야 했다. 1993년, 나는 갑자기 넘어지면서 왼쪽 좌골이 변형됐지만 돈이 없어서 치료받지 못했다. 당시 나는 월급의 60%밖에 받지 못했다. 남편은 사망하기 전에 바람이 나서 집안 살림에 돈을 보태지 않았을 뿐더러 나에게서 30위안(약 5400원), 혹은 20위안(약 3600원)을 가져가 술을 마시거나 카드놀이를 하곤 했다. 주지 않으면 폭력을 썼고 적금도 하나도 없는 상황이라 10%만 부담하는 약값도 내지 못했다. 그냥 하루하루 날만 세고 있었다.
대법을 연마한 후 새로 태어나다
운명은 늘 나만 괴롭히는 것 같았다. 1994년 나는 48살이 되는 해 자궁암 말기 진단을 받았다. 의사는 수술을 서둘러야 한다고 했다. 그제야 나는 마음을 굳게 하고 “이제부터는 치료를 받지 않겠습니다. 목숨은 그냥 하늘에 맡깁니다.”라고 의사에게 말했다. 집에 돌아와서 나는 딸에게 내가 체질이 약해 저항력이 없어서 아마 칼을 대기만 한다면 암세포가 전이 돼 더 빨리 죽을지도 모르니 나중에 빚만 늘리고 치료도 안 될 수도 있기에 그냥 포기하겠다고 했다. 딸은 울면서 치료 받으라고 난리가 났다.
하지만 내가 듣지 않으니 딸은 “그럼 기공법이라도 해 봐요. 결과는 누구도 모르니까요.”라고 말했다. 그리하여 나는 몇 가지 기공을 해봤지만 돈만 들고 뛰어다니기만 했지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1995년 말 어느 날, 나는 공원으로 연공하러 가면서 누군가가 ‘파룬궁’을 하는 것을 봤다. 옆에는 파룬궁 깃발도 있었는데 아름다웠다. 나는 한 젊은 여성에게 다가가서 물었다. “이 공법을 배우려면 수강료는 얼마예요?” 그 중 수련생이 “받지 않습니다.”라고 답했다. “어? 다른 기공을 배우려면 수강료는 몇 십에서 몇 천까지 하는데 당신네 선생님은 왜 받지 않습니까?”라고 나는 물었다. “사람을 구도하기 때문입니다. 높은 층차로 승화해야 하니까요!” “당신네 선생님은 언제 오십니까?” “안 오십니다!” “그럼 내 병은 어떻게 합니까? 저는 수많은 병 때문에 배우고 싶은데요!” “아주머니, 앞으로 말을 할 때도, 일을 할 때도 시시각각 우주의 특성 ‘진선인’으로 자신을 요구한다면, 여기에서 연공을 하다보면 사부님께서 아주머니의 병을 다 제거해주실 겁니다.”라고 말했다.
나는 ‘진선인’의 ‘인’을 듣자마자 바로 “와, 이 ‘인’은 참으로 좋은 거네. 화를 내지 않으면 병이 어디서 온다구!”라고 혼잣말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넘어져서 다쳤던 좌골 쪽이 ‘쏴쏴쏴’하면서 무언가가 돌면서 또 누군가가 딱 달라붙은 딱지를 뜯어내는 듯하면서 너무 편했다. 정말 말로 표현할 수가 없었다! 집에 돌아와서 나는 옆집에 말하니 옆집은 내가 또 다른 병에 걸린 줄 알고 병원으로 가봐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이번에는 병이 아니고 편안한 거라고 말했다. 나중에 파룬궁수련생에게 물으니 사부님께서 파룬으로 내 몸을 조정해 주셨다고 말했다.
바로 그 연공장에서 수련하기도 전에 나는 사부님께서 내 몸을 조정해 주시는 것을 느꼈고 파룬은 분명히 내 몸에서 7번 돌더니 그 후부터 나는 허리를 펼 수 있었다. 너무나 기적 같았다!
1996년 1월 말은 내가 진정한 대법 수련생이 되던 날로, 처음으로 나는 단체 연공을 할 때 심장이 너무 아팠다. 마음으로는 두 번째 공법에서 포륜(抱輪)을 어떻게 견뎌낼 수 있을지 걱정했다. 하지만 나는 하는 만큼만 하자는 마음으로 두 팔을 들어 두전포륜(頭前抱輪)을 하는데 등 뒤에서 파룬이 ‘쏴쏴’하고 돌면서 나를 편안하게 했다. 나는 너무나 편해서 웃음이 절로 나오면서 사부님께서는 정말 대단하시다고 계속 생각했다. ‘어떻게 피부 속에 어디가 아픈지를 아실까? 사부님은 정말 대단하시다!’ 나도 모르게 어느덧 45분이나 지났고 파룬은 내 심장에서 45분이나 돌았다. 단 한 번의 연공으로 나는 몇 십 년간의 심부전과 자주 응급치료를 해야 했던 심장병이 나았다. 나는 그 어떤 말로도 사부님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표현할 수 없었다!
그 후부터 나는 연공을 하든 안 하든 때를 가리지 않고 전신에서 파룬이 여기저기 도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강약을 조절하면서 병이 있던 곳은 다 돌았다. 나는 한 줄기 열기가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쏟아 내리는 것을 여러 번 느꼈다. 그 느낌은 정말 편안하기 그지없었다. 나중에야 알았는데 그것은 사부님께서 관정해주시는 것이었고 여러 차례 관정을 받은 후 나는 춥거나 차가운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항상 차갑던 손발은 뜨끈뜨끈하고 연공을 할 때도 손발은 뜨거워서 추운 겨울에 밖에서 연공해도 추위를 느끼지 않았다. 나는 20년을 넘게 핀 담배도 끊었다. 이젠 담배 냄새도 못 맡을 지경이다. 그 후 나는 세 차례 진한 변을 본 후부터 배는 불러오지 않았고 식욕이 생겨서 잘 먹고 잘 마시면서 모든 질병이 사라졌다. 길을 걸을 때면 힘이 솟아오르면서 질병이 없이 가벼운 몸을 느낄 수 있었다. 이 모든 것을 겪은 후 내가 어찌 절로 나오는 웃음을 억제할 수 있겠는가.
나는 비가 오든 눈이 오든 매일 아침 공원에서 연공을 했다. 한번은 밤에 큰 바람이 부니깐 나는 내일 칼이 내려도 연공은 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자전거를 타지 못하면 걸어서라도 가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그 다음날 나는 제시간에 연공장에 도착했다. 그때 그 열정은 정말로 막을 수 없었다.
사부님께 늘 감사의 마음이 있어 나는 다음에 사부님께서 설법하시면 꼭 참석하겠다고 다짐했지만 나중에 들었는데 사부님께서는 1995년에 외국으로부터 요청을 받아 출국하셨다고 했다. 그리하여 나는 사부님의 설법 영상을 방영하는 학습 모임을 방문했다. 하지만 영상을 보는데 눈꺼풀은 계속 내려왔다. 나는 나에게 “어떻게 생긴 기회인데 졸면 절대 안 돼”라고 말해도 또 졸았다. 눈을 크게 떠도 졸렸다. 나는 또 혼자말로 “어쩌면 이럴 수가? 눈을 떠도 졸다니?”라고 말했다. 나중에 ‘전법륜’을 보면서 사부님께서는 “그의 머리 안에 병이 있어 그에게 조정(調整)해 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머리를 조정하면, 그는 전혀 견뎌내지 못한다. 그래서 반드시 그를 마취 상태로 들어가게 하는데, 그는 알지 못한다”[1]라고 설법하셨다. 한번은 나는 3층에 자리하고 있는 학습 모임으로 사부님 설법 영상을 보려고 올라가는데 두 계단씩 뛰어 올라갔다. 하지만 자리가 없어서 나는 맨 앞줄 바닥에 앉았다.
내 신체는 아무런 질병도 없었고 약물들과 철저히 이별했다. 50여 세에 나는 생리도 다시 시작했다.
한 달 뒤, 회사에서 여직원에게만 건강검진을 했는데 내 차례가 되자 의사는 “음?”하더니 “그때 그 악성종양이 사라졌습니다!”라고 말했다. 나는 그림자조차 없냐고 묻자 의사는 아무 말도 안 했다. 그리고 의사 세 명이 모여서 내 진료 기록을 살피더니 다시 검진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다시 검진해도 종양은 진정으로 그림자조차도 없을 뿐만 아니라 혈압과 체온이 모두 다 정상으로 나타났다!
“당신은 무슨 보약을 먹었습니까?”라고 묻는 말에 나는 감격하며 큰 소리로 “나는 파룬궁을 연마한지 이제 한 달밖에 안 됩니다! 돈도 안 들고 사부님도 만나지 못했지만 ‘진선인’으로 말하고 행동하면서 연공을 시작했습니다.”라고 말했다. 의사는 “정말 믿을 수가 없네요. 이것은 기적! 기적입니다! 파룬궁은 너무나 초범적이네요!” 검진을 받은 동료들은 다들 병이 더 생겼지만 나만 모든 병이 사라졌으니 다들 흥분하면서 “우리도 파룬궁을 합시다!”라고 말했다.
교통경찰 지도원이 화가 나서 상을 치다
수련 후 나는 수시로 사부님께서 요구하신 ‘진선인’으로 말하고 행동해야 한다는 것을 떠올렸다.
눈이 내리면 나는 집 앞마당을 쓸면서 대문 밖 길거리, 그리고 화장실로 가는 두 갈래 길까지 쓸어서 길을 냈다. 길을 갈 때 큰 돌멩이가 보이면 사람들이 지나가면서 다칠까 봐 주어서 버리곤 했다. 돈을 주우면 어떻게 해서든 주인을 찾아 돌려주곤 했다. 당연히 보답은 받지 않았고 대신 상대방에게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眞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를 말하면 복이 옵니다”고 알려주었다.
2002년, 단지 아파트 공용 수도 파이프가 고장 나 가정별로 앞마당을 나누어서 지하 수도를 수리하도록 조치를 받았다. 이전에는 다들 내가 몸이 안 좋은 걸 알고 나에게 부담하라고 한 적이 없고 지금도 다들 나는 안 해도 된다고 하지만 나는 주동적으로 나섰다. 내가 곡괭이를 들고 땅을 파니 다들 놀라면서 “어머! 쾌걸이 따로 없네!”라며 말했다. 나는 “내가 파룬궁수련생인 것을 잊었나요? 지금 힘이 넘쳐흘러요!”라고 답했다. 다들 서로 “파룬궁이 신기하긴 신기한가 봐, 이 약골이 이렇게 변하다니 정말 믿을 수 없어!” 다들 수군거리기에 나는 일부러 “당신들도 기억하세요, 파룬궁은 성명쌍수 공법이라 심신건강에 기적 같은 효과가 있고 절대로 TV에 나오는 거짓언론을 믿어서는 안 돼요. 그것은 전부 다 파룬궁을 모함하는 거예요!”라고 말했다.
수련 후 나는 4차례 교통사고를 당했지만 심각할 정도로 다친 것은 아니었다. 나는 남의 돈을 탐하지 않는다. 사부님께서는 “좋고 나쁨은 사람의 일념(一念)에서 나오며”[1]라고 설법 하셨다. 나는 신사신법으로 크게 다쳤어도 운전기사에게 “괜찮으니 병원은 안 가도 됩니다.”라고 말했다. 대법의 기적은 진정으로 내 몸에서 나타났다. 한번은 차에 치어 전신이 비틀어져서 지나가던 사람들도 깜짝 놀라는데 나는 아무런 상처도 없었다. 운전기사와 길을 지나던 사람들도 아마도 대법의 기적을 목격했을 것이다.
한번은 뺑소니 사고로 기사는 도망쳤다. 선량한 사람들이 그의 차번호를 벽에 적어서 경찰은 운전기사를 찾아 면허증을 빼앗고 3만 위안(약 540만원)의 벌금을 청구했다. 그리고 5천 위안(약 90만원)은 나에 대한 손해배상 비용으로 준다는데 나는 한사코 거절했다. 교통경찰 지도원은 화가 나서 상을 치면서 “남들은 교통사고를 당하고 배상비가 적다고 해서 합의가 어려운데 당신이야말로 받을 돈도 안 받고 나를 힘들게 합니까?”라고 말했다. 나는 “당신들이 나를 위해서 하는 것은 알겠어요. 돈을 따지자면 나는 돈이 너무나 필요한 사람이에요. 5천 위안 따위가 뭐에요. 5만 위안이라도 부족하다면 부족해요. 하지만 나는 파룬궁수련생이기에 대법의 수련원칙 ‘진선인’에 어긋나는 행위는 하면 안돼요”라고 말했다.
가게 장사가 나날이 잘 되다
나의 병도 나았고 퇴직할 나이도 됐다. 이전에는 월급이 적은데다 돈은 돈대로 치료에 쓰다 보니 적금이 없었다. 나는 아이의 대학 학비를 벌기 위해 자그마한 음식점을 열었다. 나는 표준 분량으로 공평하게 장사했다. 길거리 음식을 찾는 사람들은 대부분 수입이 적어 배불리 먹을 수 있으면 된다. 나는 양을 푸짐하게 넣으니 차차 방문하는 손님이 늘어났다. 가끔은 준비한 떡줄이 부족하면 손님들이 스스로 자르곤 했다. 어떤 남자는 떡을 손가락처럼 크게 잘랐지만 다들 그냥 웃으면서 줄을 서서 기다렸다.
한번은 손님이 하도 많아서 나는 “미안하지만 가게가 너무 작아서 여러분을 대접할 수 없으니 다른 곳으로 가세요”라고 말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다른 곳은 2위안(약 360원)에 한 그릇으로 양도 적어서 배불리 먹지 못한다고 말했다. 나는 “한 그릇에 얼마나 들었나요?”라고 물었다. “양으로 정하는 것이 아니니 먹든 안 먹든 얼마 없으니 배불리 먹을 수 있어야죠. 여기는 딱 정확한 근수로 나오니 배불리 먹고도 저렴해 여기서 먹을래요!” “수저가 부족하면 더 보태세요. 우리는 밖에서 먹어도 돼요”라고 말했다.
그리하여 나는 수저를 더 구입하고 밖에 목판을 얹어 밥상으로 사용했다. 그래도 손님은 줄지 않았다.
나는 손님들에게 “밖에서 대접해야 하니 정말로 미안해요!”라고 말하자 손님들은 “우리가 좋아서 하는 데요 뭘. 걱정하지 마세요! 우리가 여기서 먹으면서 당신네 가게를 홍보하는 거예요. 비싼 광고비도 안 내고 좋죠!” “당신은 마음이 선해서 분량대로 주는 걸 우리는 다 알고 있어요. 그래서 여기 아니면 안돼요!”라고 말했다. 나는 얼른 “이전에 나는 온몸이 병으로, 고쳐지지는 않고 죽지 못해 살았는데 파룬궁이 제 병을 고쳤어요. 돈 한 푼도 안 들고 말이죠! 나는 사부님의 자비로운 구도를 무엇으로 보답해야할지 몰라요. 우리 사부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말과 행동을 우주의 특성 ‘진선인’으로 요구하라고 하셨어요. 그래서 나는 사부님의 말씀대로 스스로 ‘진선인’으로 요구하고, 그래야지 사부님과 대법을 떳떳하게 대할 수 있어요. 사람을 해치는 일은 절대로 할 수 없어요.”라고 말했다.
마늘 장사를 하는 할아버지는 전 시내를 한 바퀴 돌면서 장사를 한 후 우리 가게로 돌아와 식사했다. 할아버지는 남은 마늘을 저렴한 가격에 나에게 넘기겠다고 해서 나는 전부 다 구입해서 가게 가운데 놓고 손님들이 먹고 싶은 대로 가져가게 했다.
계란을 파는 할아버지도 한 바퀴 팔고나면 우리 가게로 돌아와서 식사했다. 노인은 전 시내에서 우리 가게가 가장 저렴하고 양도 푸짐하다고 했다. 다른 가게에 가면 노인이 파는 계란을 볶아 달라고 해도 20전을 추가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 할아버지도 팔다 남은 계란을 나에게 팔겠다고 해서 어차피 나도 필요하니깐 전부 다 사들였다.
우리 음식점은 점점 더 대박이 났다.
그들은 진정으로 돈이 안 드는 광고를 해줬다. 수많은 손님들은 내가 파룬궁을 연마해 ‘진선인’으로 요구한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왔다. 단골손님이 “지금 같은 사회에서 진선인으로 수련하는 사람만이 공평한 장사를 한답니다! 당신은 손실이 아니라 더욱 대박이 날 겁니다!”라고 말했다.
사부님께서는 나에게 새로운 인생을 주셨고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사회에 환원해 사부님의 은덕을 보답하겠다!
주)[1] 리훙쯔 사부님 저작: ‘전법륜(轉法輪)’
문장발표: 2015년 5년 14일
문장분류: 수련마당>정법수련마당>수련체험>언행으로 대법을 실증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5/5/14/30853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