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후베이 대법제자 칭칭(靑靑)
[밍후이왕] 98년 대법이 널리 전해질 때 나는 많은 사람이 공원에서 파룬궁을 수련하는 것을 보았다. 호기심에 어찌 된 일인지 알려고 나는 파룬궁 연공장에 들어섰다. 나는 당시 사부님께서 나의 신체를 청리해 주실지 생각지도 못했다. 갑자기 나는 배가 불편한 것을 느꼈다. 나는 식중독이라고 생각해 즉시 집으로 돌아가 토하고 설사했다. 그러나 혈색은 좋았고 조금도 문제가 없었다. 이어 당일 밤 나는 큰 파룬을 보았다. 이튿날 연공장에 가서 연공하자 온몸, 손발 주위에 파룬이 돌았고 천목도 기묘한 반응이 나타났다. 나는 대법의 신기함에 경탄했고 추호의 망설임도 없이 수련의 대문에 들어섰다.
법을 얻은 지 얼마 되지 않아 99년 7.20 중국공산당은 사악한 탄압을 시작했다. 나는 시종 자신이 대법제자라는 것을 명심했다. 설령 가장 간고한 나날이라도 대법에 대한 바른 믿음을 동요한 적이 없었다. 또 이로 인해 뒤이어 여러 마난에 부딪혔다. 내 마음속에는 오직 사부님과 대법만 있었다. 그리하여 마난이 사라지고 대법의 위엄과 신기함을 실증했다.
(1) 자료점을 운영하다
2004년 노동교양소에서 돌아온 후 나는 집에서 자료점을 운영하기 시작했고 컴퓨터 한 대를 사서 CD를 구울 수 있었다. 컴퓨터를 파는 사람이 나에게 CD 굽는 법을 가르쳐주었다. 나는 아주 빨리 배웠고 스스로 CD를 굽고 배포했으며 또 다른 수련생에게 의존하는 마음을 제거했다. 이전에 나는 매번 수련생에게 가서 자료를 갖고 와 늘 배포하기 부족했다. 자료를 만드는 수련생도 매우 적었기에 나는 자료를 만들려는 염원이 있었다. 사부님께서는 내 이 마음을 보시고 자료를 만드는 수련생과 인연이 닿게 하셨다. 수련생의 도움으로 나는 또 프린터를 한 대 샀다. 내 자료점은 이렇게 자료를 만들면서 필요한 소모품, 설비 등을 추가했다. 천천히 나는 많은 것을 배웠다.
한 번은 직장 지도자가 나에게 이튿날 세뇌반에 가라고 통지했다. 나는 가지 않았고 핍박에 그날 저녁 집을 떠났다. 밖에서 유랑했고 그때는 큰 자료점에 한창 일손이 모자랐다. 수련생이 나에게 자료점에 가라고 하자 협조인이 위험하다며 반대했다. 나는 협조인이 나에게 요구하고 요구하지 않는 것 역시 나에 대한 고험이라 생각했다. 마지막에 그녀는 동의했다. 나는 매우 감동해 반드시 나의 일체, 심지어 나의 생명으로 자료점을 보호하는 것은 오직 법공부를 잘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이렇게 협조하자 10년이 흘렀다. 이 10년 동안 자료점에서 불가피하게 실수할 때, 또 심성의 마련(魔煉)이 있을 때 나는 대법으로 자신을 바로 잡았다. 사부님께서도 갈수록 나를 성숙되게 단련하시고 자료점의 매한가지 일을 갈수록 이지적이고 정념정행으로 잘하게 하셨다. 왜냐하면 “이는 진상을 똑바로 알리기 위해 하는 것이고, 사악의 박해를 폭로하기 위해 하는 것이며, 세인을 구도하기 위해 하는 것이다.”[1]
이 10년 동안 나는 자료를 만들고 배포했으며 여러 차례 붙잡혔다. 악인이 모함해 붙잡혀 한 번은 보름 동안 불법 구류 당했고 한 번은 4시간만 붙잡히고 한 번은 세뇌반에 보름 동안 있었다. 나는 모두 정념정행으로 나왔다. 우리들의 자료점은 무사했고 누구도 교란과 파괴하지 못했다. 우리 집 자료도 포함해 누구도 움직이지 못했다. 이것은 모두 사부님께서 부여하신 정토다.
2004년 ‘9평 공산당’이 나왔다. 우리는 대량으로 ‘9평’을 만들기 시작했고 사악을 폭로했다. 그때 나는 혼자 자료점에 있었다. 온 집안에 모두 만들어 놓은 대법 책이며 9평 책과 CD 또 진상 자료가 있었다. 자료점의 설비는 있어야 할 것은 모두 다 갖춰져 있었다. 우리는 사악의 압력을 무릅쓰고 세인을 구도하는 일을 했다. 듣자하니 ‘9평’ 한 권을 수색당해 검거되면 어떠어떠하다고 들었다. 나는 “그것을 해체하라. 내가 한 일은 가장 바른 일이다.”라고 말했다.
(2) 생사를 내려놓고 아슬아슬하게 관을 넘다
2006년 상하이 수련생이 경문, 또 ‘9평’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우리는 고려한 후 자료를 갖다 주려고 결정했다. 동시에 그들을 도와 자료점 하나를 설립하려 생각했다. 현지에 자료점이 있으면 얼마나 편리한가. 종이 재단 칼을 제외하고 한 세트의 완벽한 설비를 준비했다. 경문, ‘9평’ 책, 컴퓨터, 프린터, 설비 등이 각각 한 상자로 모두 네 상자였으며 아주 무거웠다. 기차표를 모두 샀다. 한 수련생이 걱정되어 말했다. “기차를 타러 들어가고 나오는 사람은 모두 검사하며 안전하지 않아요. 장거리 버스를 바꿔 타는 것이 좋겠어요.” 나는 즉시 불안전 요소를 부정했다. 나는 두려운 마음이 생기지 않았다. 우리는 사악의 대법제자 박해가 매우 창궐하다는 것을 안다. 그때 역전, 부두 곳곳에 사악이 있고 수상하면 가방을 열고 검사했으며 극도로 두려웠다. 그러나 나는 한 가지 일념을 내보냈다. 전반적으로 부정하는 것이었다. ‘사부님께서 계시고 법이 있으며 무슨 차를 타도 모두 안전하다. 아무리 사악해도 한 속인이 내 상자에 담은 것이 무엇인지 어찌 알겠는가? 또 내가 파룬궁을 수련하는지 어찌 알겠는가? 그는 사람이고 신이 아니다. 내 이 설비는 모두 사람을 구하는 법기다. 사부님 가지해 주세요! 사악이 못 보게 해 주세요.’
나는 마음을 단단히 굳혔다. 나와 언니(속인)는 파트너가 됐다. 길이 너무 멀기에 길에서 도와주는 사람이 필요했다. 언니도 상하이에 놀러 가고 싶어 했고 내 딸도 상하이에서 일하고 있었다. 상자에 담은 것이 무엇인지 언니는 몰랐다. 우리는 순조롭게 검문소를 지났다. 기차에서 나는 줄곧 정념을 유지했다. 상하이에 도착해 출구를 벗어날 때 검문소 직원들이 갑자기 나를 가로막고 한 편을 가리켰는데 마치 검사하려는 것 같았다. 순식간에 나는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고 또 생각할 겨를도 없이 필사적으로 ‘하겠다. 겁낼 것이 뭐가 있느냐.’라는 일념이 나왔다. 그 일각 정말 생사를 내려놓고 사부님께 가지를 청했고 강대한 정념을 내보냈다. ‘멈춰(定), 누구도 움직이지 못한다. 사부님은 바로 내 신변에 계신다.’ 그 순간 상황이 변했고 그녀들도 상자를 열지 않고 “당신의 물건이 너무 많아 중량을 초과했어요. 벌금을 내야 해요.”라고 말했다. 사부님께서는 “우리는, 좋고 나쁨은 사람의 일념(一念)에서 나오며, 이 일념의 차이가 부동(不同)한 후과(後果)를 가져올 수도 있다고 한다.” [2]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이 일체를 사부님께서 모두 보호해 주신다는 것을 알았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제자가 정념이 족하면 사부는 회천력(回天力)이 있노라” [3]였다.
2008년 두 협조인이 불법적으로 붙잡혔다. 소모품을 사던 남자 수련생이 판결을 받아 이 지역 각 자료점은 마비 상태에 처했다. 나는 늘 자료를 만들었고 자료를 만든 시간이 길고 경험이 많았기에 자발적으로 자료점의 모든 중임을 짊어졌다. 안정되게 이 길을 걷기 위해 첫째는 법공부를 잘하고 둘째는 자신을 착실히 수련해야 했다.
나는 어떤 수련생이 일만 하고 법공부를 적게 하고 일하는 것을 수련으로 간주하는 것을 보았다. 나는 묵묵히 새 협조인과 협력했다. 나는 자료를 만드는 수련생은 매주 단체 법공부를 이틀 참가하게 해 법에서 제고했다. 내 심성도 끊임없이 승화했다. 자료점에서 프린터, CD 굽는 기계, 소모품 구매 등은 기본적으로 내가 시장에 가서 산다. 나는 또 간단히 기계를 수리하고 컴퓨터 시스템을 설치하는 것을 배웠다. CD를 다운로드 하는 것을 배우고 수련생을 도와 자료점을 설립했고 또 가르쳐주었다. 고생스럽고 또 중요하며 안전에도 주의해야 했다.
(3) 신기한 오토바이
한 남자 수련생이 불법으로 판결받은 후 그의 짐을 싣던 전기 오토바이를 타는 사람이 없었다. 나는 그것의 작용을 발휘하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는 옮길 수 없고 탈 줄도 몰랐다. ‘어떻게 해야 할까, 포기할까? 안 된다. 나는 배워 이 오토바이로 소모품을 운송해야 한다. 사부님 가지해 주세요.’ 나는 배우면서 운전했다. 오토바이 앞부분을 안정적으로 잘 잡고 브레이크를 기억해야 했다. 나는 마침내 배웠다. 그것의 작용은 정말 컸다. 내가 산 모든 소모품은 오토바이와 나와 협조해 한 것이다.
한 번은 아주 먼 곳에 가 프린터를 가져오게 됐다. 거의 한 시간이 되어 그곳에 가보니 와! 온 집안에 모두 수련생이 수리한 프린터였다. 나는 재빨리 옮겼다. 한 대, 두 대, 3대 모두 8대를 옮겼다. 이후에 4대를 쌓으니 매우 높았다. 앞에 두 대를 쌓고 양쪽에 각 2대 걸었다. 이 8대를 실으니 나는 오토바이에 오르지도 못했다. 수련생의 도움으로 나는 오토바이에 올라탔다. 그러나 두 발을 얹을 자리가 없었다. 어떻게 어렵든지 막론하고 오토바이가 달릴 수 있어 괜찮았다. 번화한 구역을 꿰뚫고 사람 무리를 지나 무사히 갔다. 공교롭게 그날 곳곳에 경찰이었다. 나는 보행로에서 달렸다. 두 경찰이 축전지차를 운전하며 좌우에서 나를 향해 왔다. 나는 ‘그들은 나와 상관이 없으며 그들은 차를 관리하는 사람이다’라고 일념을 발했다. 나는 지나갔다. 또 경찰 한 무리를 지나갔다. 그러나 다른 한 경찰이 나를 가로막았다. 나는 당황하지 않고 속으로 사부님께 가지해달라고 빌었다. 경찰은 나에게 운행증을 요구했다. 나는 매우 자연스럽게 운행증을 꺼냈다. 그러나 내 손은 온통 잉크자국이었고 잉크 자국을 그들이 보지 못하게 했다. 이렇게 놀라기만 하고 위험이 없이 집(자료점)으로 돌아왔다.
이후에 한 수련생은 “당신이 어디 60여 세 같이 보여요? 젊은이보다 더 잘해요.”라고 말했다. 나는 그렇다! 이 길에서 모두 사부님이 보호하시고 사부님께서 내가 두 팔로 핸들을 꽉 잡게 가지해 주셨다. 나는 한 번도 부정적이나 혹은 좋지 않은 요소를 생각하지 않았다. 나는 사부님께서 상관하신다. 나는 확실히 자신의 나이를 잊어버렸다. 비록 60여 세지만 내가 한 일은 모두 젊은 남자 수련생이 한 일이다. 늘 시장에 가서 이것을 사고 저것을 사고 한 번 사면 5~6 상자인데 또 메고 계단을 올라야 한다. 간혹 중도에서 오토바이에 전기가 없으면 나는 그것과 소통한다. “오토바이야, 넌 내 법기(法器)다. 전기가 없어도 넌 나와 이 화물을 날라야 한다. 고마워.” 이렇게 하면 정말 기적이 나타나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4) 박해에서 움직이지 않다
우리 지방의 한 수련생이 세뇌반에 납치됐다. 자료를 만드는 수련생은 모두 그녀를 알고 있기에 모두 압력을 느꼈고 두려운 마음이 나왔다. 어떤 수련생은 자료를 만들지 않았다. 나는 심상치 않았다. ‘어찌 자료 제작을 중단할 수 있는가, 이것은 구도중생에 대한 손실이 아닌가?’ 나는 그들과 교류했다. “여러분은 두려워하지 마세요. 그녀는 당신과 관계없고 박해와 관계 없습니다. 나와 그녀는 가장 가깝고 무엇이나 다 압니다. 내가 두려워하지 않는데 여러분이 두려울 것이 뭐가 있겠어요? 저는 그녀와 관계가 없고 박해와 관계가 없습니다. 모두 관계가 없습니다.” 우리는 발정념만 했다. 수련생들은 듣고 많이 분명해졌다. 두려운 마음이 즉시 해체됐다. 각 자료점은 또 운행되기 시작했다. 사악은 자료점을 가장 두려워하고 또한 자료점은 중생구도에서 가장 중요하다. 이후에 이 수련생은 세뇌반에서 나온 후 우리 여기에 왔다. 한 수련생이 그녀에게 “당신은 다른 곳을 말했는데 왜 우리를 말하지 않았나요?”라고 물었다. 그녀는 “생각나지 않았어요. 나는 당신들과 상관없다고 느꼈어요.”라고 말했다. 우리의 정념이 그녀를 억제했다.
한 번은 차를 타고 수련생과 함께 세뇌반에 가서 진상 자료를 붙이다가 골목 입구에서 한 경찰차 헤드라이트 4개가 우리를 비추고 있었다. 당시 나는 뒤의 수련생을 위안하며 “두려워하지 말아요. 그는 우리와 상관이 없어요.”라고 말했다. 우리는 무사히 그들의 신변을 스쳐 지나갔다.
한 번은 노동교양소에 수련생을 맞이하러 갔다. 한 경찰차 한 대가 나와 좀 떨어진 곳까지 와서 멈추더니 우람한 체격의 경찰 5명이 내렸다. 그들은 나에게 무엇을 하는 사람이냐고 물었다. 나는 사람을 데리러 왔다고 했다. 경찰은 내가 파룬궁수련생이라며 다짜고짜 내 두 팔을 비틀었다. 나는 재빨리 가방을 수련생에게 던져주었다. 경찰은 나를 경찰차가 있는 곳으로 걸어가라고 밀었다. 차 문까지 걸어갔을 때 내 한쪽 발은 이미 오르려고 들려 있었다. 나는 갑자기 힘껏 몸을 180도로 비틀면서 경찰에게서 벗어났다. 나는 큰 소리로 “어떤 환경이든지 사악의 요구, 명령과 지시에 협조하지 말라.” [4]라고 말했다. 경찰들은 단번에 놀라 당황해하며 “누가 말한 거예요?”라고 물었다. 나는 “사부님이 하신 말씀이다.”라고 말했다. 그들은 “우리는 당신을 감히 풀어주지 못합니다. 우리 상부의 지시를 기다립시다.”라고 말했다. 좀 지나 그쪽 상사가 전화를 걸어와 풀어주라고 했다.
어느 한 번 나는 자전거를 타고 물건을 사러 갔다. 길목에 도착하자 한 중형버스가 나를 향해 질주하는 것을 보았다.커브를 돌 겨를도 없이 나의 큰 자전거에 부딪혔다. 내 자전거는 멀리까지 부딪쳐 날아갔고 나는 ‘팍’하고 땅에 엎드렸다. 마치 심장이 멈춘 것처럼 말도 하지 못했다. 움직이지도 못하고 나는 묵묵히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를 염했고 다른 공간의 사악의 교란과 박해를 깨끗이 제거했다. 천천히 소리가 나왔다. 운전사는 ‘파룬따파하오’를 염하는 것을 듣고 두려워했다. 나는 “당신은 듣는 것을 두려워하지만 ‘파룬따파하오’ 이 몇 글자 아니면 나는 죽었을 겁니다. 말해보세요. 당신이 어떤 결과를 치렀을지.”라고 말했다. 나는 말했다. “오늘 당신은 파룬궁을 수련하는 사람을 부딪쳐 넘어뜨렸어요. 저는 당신의 돈을 갈취하지 않을 겁니다. 저는 괜찮습니다. 기적이 나타날 겁니다. 우리들의 인연은 보통이 아닙니다. 저는 생명으로 당신에게 알려주겠습니다. 삼퇴는 평안을 보장합니다.” 그리고 진상을 말했다. 그는 당단대(黨團隊)를 탈퇴했다. 나는 또 그에게 말했다. “당신은 오늘 발생한 일을 다른 사람에게 알려주세요. 당신은 좋은 사람을 만났다고요. 그렇지 않으면 큰 빚을 졌을 거라고요.” 나는 천천히 자전거를 끌고 집에 돌아왔다. 집으로 돌아온 후 나는 몸이 격렬히 아팠다. 나는 사부님의 가르침을 깊이 새기고 박해를 부정했다. “특히 중국 대륙의 대법제자는, 마난의 박해 중에서 일사일념(一思一念)이 모두 아주 관건적이다.” [5] 남편이 부축하고 3일이 지나 나는 스스로 일어났고 10일 만에 밖에 나갔다. 이것이 바로 기적이다.
나는 아직도 많은 정념정행 이야기가 있으며 전부 신사신법(信师信法)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사부님의 한 단락 법으로 서로 격려하자. “당신은 정념의 작용 하에서, 당신 신변의 일체와 당신 자신에 모두 변화가 발생할 수 있는데, 당신은 여태껏 해보려고도 하지 않았다.” [6] 나는 정념이 나오자 시험 삼아 해보니 성사됐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정진요지2-유럽 원명망(圓明網)에 보냄’
[2] 리훙쯔 사부님 저작: ‘전법륜’
[3] 리훙쯔 사부님 저작: ‘홍음2-사도은(師徒恩)’
[4] 리훙쯔 사부님 저작: ‘정진요지2-대법제자의 정념(正念)은 위력이 있다’
[5] 리훙쯔 사부님 저작: ‘각지 설법11-무엇이 대법제자인가’
[6] 리훙쯔 사부님 저작: ‘20년 설법’
문장발표: 2015년 5월 20일
문장분류: 수련마당>정법수련마당>수련체험>정념으로 박해를 선해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5/5/20/308813.ht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