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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축513] 국보대장 “제 아이도 당신이 가르쳐 주십시오”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나는 20여 년간 교직에서 근속한 중학교 교사다. 여러분 알다시피 오늘날 중국 내 초·중등학교에서는 모순이 매우 대단하다. 학생 대다수는 피동적이며 강요에 의해 배우고 교직원도 강요에 의해, 점수를 위해 가르치고 있다. 사제 사이 관계도 긴장돼 선생님은 학생에 대해 책망하고 체벌을 주는 외에는 아무런 방법이 없는 것 같다. 그 속에 깊이 빠진 나도 마음이 몹시 지쳐 어쩔 수 없었다. 한 번은 내가 한 학생을 때렸는데 학생이 몹시 상심해서 울었고 내 마음도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나는 사제 관계란 마치 풀기 어려운 방정식과도 같다고 여겼다. 내 마음은 고통 속에서 몸부림치며 탈출구를 찾고 있었다.

“선생님이 반년 가르친 아이들은 6년간 배운 것보다 더 많이 배웠습니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우리 연공인(煉功人)에게는 모순이 갑자기 생길 수 있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 당신이 평소 늘 자비로운 마음과 상화(祥和)한 심태를 유지한다면, 문제와 마주쳐도 잘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것은 완충적인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당신이 늘 자비롭고 선(善)으로 남을 대하며, 무슨 일을 하든지 언제나 다른 사람을 고려하여 매번 문제와 마주칠 때마다 이 일을 다른 사람이 감당해 낼 수 있는가 없는가, 다른 사람에게 해가 되는가 안 되는가를 우선 생각한다면 문제가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당신은 연공(煉功)함에 높은 표준, 더욱 높은 표준으로 자신에게 요구해야 한다.”[1] 사부님의 법은 내 마음의 매듭을 하나하나 풀어주셨다.

가르치는 과정에서 예전에 나는 시험을 위해 가르쳤고, 학생의 점수를 위해 가르쳤으며, 자신의 명리에 손상을 입게 될까 봐 가르쳤다. 수련 후에 나는 가르침의 기점을 조정했는데 학생의 성장을 위한 각도에 서서, 학생이 어떻게 심신이 건강한 사람으로 양성할 것인가에서 결정했다.

우선 나는 ‘진(眞)ㆍ선(善)ㆍ인(忍)’의 이념을 가르침 중에 관통시켰다. 우리 학급 급훈(級訓)은 ‘성실은 우리의 품성, 선량은 우리의 본성, 관용은 우리의 흉금’이라고 정했고 크게 써서 벽에다 붙였다. 매 주 열리는 학급회의는 예전에는 비평회의였는데 방법을 고쳐 학급회의에서 더 이상 학생을 책망하지 않았고 이 세 마디 말을 둘러싸고 학생들에게 사람이 되는 도리를 말하고 또 예를 들어 설명하면서 심오한 내용을 알기 쉽게 표현했다.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알려주셨다. “인류에 책임지기 위해 반드시 어린이를 잘 교육해야 한다. 그들에게 무엇이 좋고 무엇이 좋지 않다고 알려준다면 그는 모두 머릿속에 담아 넣을 수 있다. 마치 하나의 가죽가방과도 같이 이 가죽가방에 금을 담았다면 남들은 이것을 금이라고 말할 것이고, 당신의 가죽가방 속에 흙을 담았다면 남들은 이것을 흙이라고 말할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은 바로 이러하다.”[2]

매우 분명하게 나는 ‘진선인’이 아이들에 대한 영향이 몹시 크다는 것을 발견했다. 학생의 작문에서, 일기에서 ‘진선인’의 이념이 사안에 대한 시비곡직(是非曲直)을 판단하는 표준으로 되었음이 반영돼 나왔다. 이후에 학생 간에 모순이 발생했을 때 학생들은 모두 먼저 자신을 보고, 모순 앞에서 더는 변명하고, 회피하며, 상대방을 책망하는 것이 아니라 먼저 자신의 잘못이 어디에 있는지 말하고 다음에는 더 이상 잘못을 저지르지 않겠다고 한다. 학생들은 갈수록 철이 들었다. 동료들은 모두 내가 아주 쉽게 담임교사 일을 한다고 했고 어떤 학부모는 나에게 “선생님이 반년 가르친 아이들은 6년간 배운 것보다 더 많이 배웠습니다”하고 말했다.

우리 반에는 말썽꾸러기 학생 하나가 있었다. 그가 늘 무단결석하고 숙제를 하지 않으며 싸우고, 시간 중에는 또 떠들어서 각 과 선생님들이 몹시 골치가 아팠는데 그는 이미 선생님들의 ‘마음의 병’이 됐다.

사부님의 한 단락 말씀이 늘 내 마음속에서 메아리치곤 한다. “나는 단지 당신들에게 대법(大法)만을 가르친 것이 아니라, 나의 작풍(作風) 역시 당신들에게 남겨놓은 것이다. 일 처리 중의 어투, 선한 마음, 도리(道理)를 더하면 사람의 마음을 개변시킬 수 있으나 명령은 영원히 할 수 없다! 사람들은 마음속으로는 불복하고 겉으로만 복종할 따름이다. 그렇다면 보지 않을 때는 여전히 자신의 뜻대로 일을 처리할 것이다.”[3]

나는 반복적으로 사부님의 이 단락 말씀을 외우면서 아이에 대한 편견을 버리고 아이의 입장에 서서 그를 배려했다. 그 학생은 이혼한 가정에서 생활하고 있으며 아버지는 정리해고를 당했고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살았다. 나는 가정 방문을 했는데 그들의 생활수준은 극히 낮았다. 다시 아이와 대화를 나누면서 심태를 바로잡고 완전히 그를 배려하는 각도에 서서 사람이 되는 도리를 말해주었다. 생각 밖에 아이는 눈물을 줄줄 흘렸다. 이는 이전에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 후부터 이 아이는 많이 유순해졌다. 나는 ‘진선인’의 거대한 법력, 파룬따파는 정말로 사람의 마음을 선하게 할 수 있음을 직접 보았다.

대법은 나에게 타인을 배려하는 것을 가르친 동시에 타인을 존중하는 것도 배우게 했다. 중국 내에서의 학부형 회의는 이미 일부분 학생과 학부형이 두려워하는 일이 되어버렸다. 왜냐하면 학부형 회의를 열면 선생님마다 각 학생의 결점을 나열하고는 한바탕 비평했기 때문이다. 학부형들은 모두 전전긍긍하면서 아래에 앉아서 자신의 체면이 또 깎이지 않을까 걱정했다. 수련 후, 나는 이 방법을 바꾸어 학생의 한 학기 동안의 각 방면의 진보와 제고를 적었다가 학부형 회의에서 아이를 칭찬했다. 이렇게 하니 첫째로는 학생의 자신감을 키워줄 수 있었고, 둘째로는 학부형과 아이 간에 소통하고 교류할 수 있는 교량 역할을 할 수 있었다. 학생에게 존재하는 문제는 다만 회의가 끝난 후에 학부형과 단독으로 의견을 교환했을 뿐이었다. 동시에 나는 또 수련 가운데서 배운 남과 잘 어울리며 처세하는 도리를 학부형과 나누어 학부형의 찬성을 받기도 했는데 이후의 학부형 회의에서는 내가 교실에 들어가 아직 입을 열기도 전에 학부형들은 열렬한 박수를 보냈다.

수련 후, 학부형, 학생이 나에게 주는 박수소리는 더욱 많아졌다. 한 동안 중국공산당의 박해로 인해 가르치고 학급 담임이 되는 권리를 박탈당했다. 그러나 다른 선생님이 앓거나 일이 있으면 언제나 내가 대신해 강의하게 했다. 이러했지만 나는 매 한 시간 강의도 대충하지 않았고 성실히 했다. 중학교 1학년, 2학년, 3학년 과목을 나는 모두 대신 강의했다. 대신 강의하는 매 반마다 거의 모두 나에게 이렇게 말하는 학생이 있다. “선생님, 앞으로 우리 반에 와서 강의해 주세요.”, “선생님, 우리 반 담임선생님을 해주세요!”

어떤 반은 내가 처음으로 대신 강의했는데 교실에 막 들어서자 학생들이 열렬히 박수를 쳤다. 나는 이 박수의 배후에는 하나의 정보를 전해주고 있다는 것을 깊이 알고 있다. 그것이 바로 사회는 ‘진선인’을 필요로 하고 있으며, 사람마다 마음속으로 ‘진선인’을 갈망하고 있다는 것이다.

내가 ‘진선인’의 원칙에 따라 자신의 일언일행을 바로잡을 때면, 학생들의 공부도 피동적에서 능동적으로 변한다. 어떤 때 시험을 잘 치지 못하면 학생들은 스스로 점심시간과 방과 후에 30분 정도 책을 외운다. 이는 과거에는 아예 불가능한 일이었다. 한 학생은 늘 무단결석을 했는데 그의 담임선생님의 수업시간도 결석했다. 학생들은 나에게 알려주기를 그는 내 강의에만 참가하며 한 번도 빠지지 않는다고 했다. 학기말 시험에 내가 가르친 과목은 그도 합격했다. 그의 담임선생이 나에게 말했다. “이런 학생도 선생님은 합격이 되게 가르치나요?” 불가사의하다는 것이다. 사실 나는 나에게 무슨 능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내가 대법에서 수련해낸 선념(善念), 선심(善心)이 아이의 마음을 감동시켰음을 나는 알고 있다. 사실 사람의 마음은 서로 통하는 것이다.

2003년 일이라고 기억되는데 내가 박해로 노동교양소에서 나온 후 출근할 땐 학생들은 이미 졸업했다. 한 동료가 나에게 알려주는 말이, 내가 없을 때 학생들은 다른 선생님의 말을 듣지 않았고, 교장의 말도 듣지 않았다고 한다. 교장이 그들에게 달리라고 하자 한 남학생은 땅에 누워 일어나지 않아서 교장이 무척 화를 냈다고도 한다. 내가 돌아왔다는 말을 듣고 학생들은 모두 나를 보러 왔다. 땅에 누었다는 그 학생도 왔는데 키가 1미터 80이나 됐다. 그는 일부러 1백 위안을 들여 나리꽃 한 다발을 사서 나에게 주었다. 나는 이렇게 비싼 꽃을 사지 말아야 한다고 말하니 그가 말했다. “선생님! 마땅히 사야 합니다.” 이후에 그는 인생에 대한 그의 많은 생각과 태도를 나와 이야기했다. 나는 그의 사람 됨됨이와 처세가 이성적이고 듬직하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는 자습해 각종 자격증 시험에 참가했고 자신의 회사를 차렸는데 실적이 엄청 좋았다. 또 한 반에 있던 다른 동창도 불러다 회사에 출근하게 했고 매달 3천위안의 월급을 주었다. 내가 그에게 그때 왜 바닥에 누워 일어나지 않았냐고 물었을 때 그는 말했다. “선생님, 우리 반 학우들은 다른 선생님과 교장에게 뭘 어쩌자는 것은 아니고 그저 우리는 그들의 그런 교육 방법을 접수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려주자는 것뿐이었습니다.”

나는 듣자마자 곧 알아차렸다. 아이들은 이미 무의식간에 ‘진선인’의 표준으로 주변 사람과 일을 가늠할 줄 알게 된 것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내가 만약 대법을 수련하지 않았다면 나도 과거처럼 일에 부딪히면 명령, 강제, 책망과 징벌의 수단으로 해결했을 것이다. 참으로 무서운 일이었다.

날 수감했던 국보대대장 “앞으로 우리 애도 당신이 가르쳐주세요.”

수련 전에는 수업 준비하기가 아주 번거롭고 머리 아픈 일이었다. 가르칠 교과서 본문에 대해 먼저 대량의 참고자료를 본 다음 다시 교안(教案), 교학순서와 교안의 세부 내용을 작성해야 하고 어떻게 설명할지 상세히 써내야했다. 이렇게 해도 여전히 빈틈이 있고 빼먹을까 걱정이 됐고 날마다 대량의 수업준비, 강의, 숙제검사를 해야 했으며 학생의 학습 중 여러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때문에 날마다 몹시 지치고 고생스러웠으며 심정은 아주 초조해 선생님은 학생을 욕하지 않으면 체벌을 주거나 심지어는 때리는 일까지 초래하게 된다.

대법을 수련한 후, 대법의 초범적이고 현묘함이 나의 가르침 중에 늘 나타났다. 수련한지 얼마 안 되어 나는 상술한 이런 마음의 안개 속에서 벗어났다. 사부님께서 나의 지혜를 열어주신 것이다. 매 한 편의 가르칠 본문은 한 번 펼쳐 보기만 하면 머릿속에 어느 것이 중점이고 어느 것이 어려운 점인지 분명하게 알려주어 나도 더 이상 장편의 교안을 짤 필요가 없게 됐다. 마음속에 교학 목적이 명확하기 때문에 교실에서 교학의 중점과 어려운 점을 중심으로 하여 학생들이 문제를 제출하도록 하고 분석 해결하게 했다. 이렇게 교실에서 학생이 주로 강의를 담당하고 내가 이끌어 주면서 말하니 내 부담을 덜었을 뿐만 아니라 학생도 능동적 입장이 되어 학습에서 적극성이 향상됐고 또한 억지로 외울 필요 없이 사고 분석과정에서 관련 지식을 파악할 수 있었다. 게다가 또 분석 능력을 양성해 옳고 그름을 판단하고 문제 해결의 능력을 키웠다. 실천은 학습효과가 갈수록 좋아짐으로 증명됐다. 와서 강의를 본 동료들은 교실에서 학생들이 다양한 견해를 내놓는 것을 보고 나에게 말했다. “선생님의 학생들이 말한 답안은 모두 표준 답안입니다.” 내가 가르친 학급은 시에서 실시하는 일제고사와 고등학교 시험에서 모두 성적이 아주 우수했다. 이 몇 년 동안의 내 교학 능력과 사람 됨됨이는 학생, 학부형, 동료와 지도부로 하여금 나를 인정하게 했다.

한 번은 본 성의 교육전문가가 이른 아침에 갑자기 우리 사무실로 와서 내 첫 시간 강의를 듣겠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날 마침 평강(評講-시험답안을 풀이하는 강의)을 하려 했다. 그는 시험지를 평강하는 시간이라고 해도 듣겠다는 것이었다. 교직자들은 모두 시험지를 평강하는 것을 잘 하기가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으며 자칫하면 실패할 경우가 많다. 나는 20여년 가르치면서 평강 과목을 공개적으로 강연한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다. 하지만 나는 더 많은 생각 없이 듣겠으면 들으라고 했다.

그날 내가 강의할 내용은 구성이 아주 섬세하고 자연스러웠다. 어떤 부분의 설계는 예전에 생각도 다 못했던 것인데 그때는 입에서 불쑥 나가는 것이 마치 진작 배치가 있던 것 같았다. 나는 시험지를 정정하고 평어를 덧붙일 때는 아주 상세하게 기록하고 평어를 달았는데 이때에 모두 써먹었다. 강의가 끝난 후 전문가가 평가했다. 나는 그가 원래는 결함을 찾아내려 왔다는 것을 알았다. 생각 밖에도 나의 이 한 시간 강의가 그가 한 평생 연구한 이 방면의 교학경험 성과를 모두 체현해 냈던 것이다. 이후에 그는 학교에서 본 학과 모든 선생님들을 조직해 나의 강의를 듣게 했다. 강의는 성공했지만 나는 조금의 환희심도 없었다. 나는 이 일체가 모두 사부님께서 주신 것이며 대법이 나에게 지혜를 열어준 결과임을 깊이 알고 있다.

2002년, 나는 국보 경찰에 납치됐다. 그들은 나를 모함하는 이른바 나에 대한 ‘증거’를 얻기 위해 학생 중에서, 나의 동료 중에서, 학교 지도부와 학부형 가운데서 나에 대한 조사를 진행했다. 불법 심문할 때 경찰이 모든 사람들이 나에 대한 말을 아주 긍정적으로 좋게 진술했다고 알려주었다. 나는 경찰에게 알려주었다. “‘진선인’을 수련하는 사람은 모두 좋은 사람입니다.” 이후에 그 국보대대 대대장은 의외로 자신의 아이를 앞으로 나에게 보내겠으니 가르쳐 달라고 했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불성은 사람마다 있다.”[1] 사람의 명백한 그 일면에는 마음에 선념이 존재한다. 경찰 중의 절대 대부분은 역시 중국공산당에 의해 이용당하고 중독됐고 진상을 알지 못해 피동적으로 대법과 대법제자에 대한 박해에 참여한 것이다. 그들의 마음속 깊은 곳에는 역시 모두 ‘진선인’에 대한 갈망이 있다.

“당신이 이러한 조건을 접수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습니다”

대법 가운데서 “잃지 않는 자는 얻지 못하고, 얻으려면 곧 잃어야 한다.”[1]는 인생의 도리를 알게 된 후, 나는 명리를 담담하게 보았고 직장에서 직위를 평가하는데도 다투지 않았다.

2003년 노동교양을 마치고 돌아온 후 본 시의 610 사무실(중국공산당이 파룬궁 박해를 위해 설치한, 나치의 게슈타포 비슷한 기구), 정법위는 교육국과 학교에 지시를 내려 내가 강의하지 못하게 했다. 나의 직위도 1급 교사로부터 직원으로 떨어졌다. 부교장은 나에게 당신이 강의하지 않는 것은 교육자원의 낭비라고 했다. 이후에 학교에서는 교원이 부족하다는 핑계로 상급기관을 속이고 나에게 교습을 담당하게 했다. 나는 기쁘게 접수했다. 이리하여 나는 직원 월급으로 1급 교원 사업을 하게 됐으나 마음속에는 불평이 없었고 원망도 없었다. 훈육주임은 “저는 당신이 이러한 조건을 접수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습니다”하고 나에게 말했다. 그렇다, 나는 ‘진선인’은 일체 오해와 불공평을 풀어주리라는 것을 확고히 믿는다.

이 몇 해 동안, 학부형은 나에게 많은 선물을 보내왔다. 어느 한 학생이 졸업한 후 학부형이 나에게 금반지를 보내 감사를 표했다. 평소에 설을 쇠거나 명절이 되면 선물이 아주 많았는데 돈으로는 많을 때가 천 위안이고 적으면 몇 백 위안이었다. 과일, 식품, 옷가지 등등 각종 선물이 다 있었는데 나는 이런 것들을 일일이 다 되돌려 주었다. 정말 돌려줄 수 없을 때는 현금으로 계산하든지 아니면 기타 선물로 학부형에게 돌려주었다. 이렇게 하니 깨끗한 사람이 되는 이런 감각은 그야말로 너무 좋았다.

‘진선인’을 수련해 나의 마음속은 환골탈태의 변화가 생겼다. 성실함으로 허위(거짓)를 대체했고, 선량이 이기적인 것을 대체했으며, 관용이 협애함을 대체했고, 평화가 불안을 대체했다. 파룬따파를 수련하니 나에게는 이로움이 너무너무 많다, 인류의 언어를 다 사용한다 해도 은사(恩師)에 대한 감격의 정을 표현할 수 없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전법륜’

[2] 리훙쯔 사부님 저작: ‘유럽법회 설법’

[3] 리훙쯔 사부님 저작: ‘정진요지-청성’

문장발표: 2015년 5월 11일
문장분류: 수련마당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5/5/11/30852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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