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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조인을 말하고, 자신을 보다

글/ 해외대법제자

[밍후이왕] 매일 밍후이왕에 수련생들의 교류문장이 수십 편 올라오는데 나는 특별히 강렬한 체험이 있다. 이런 교류문장은 바로 현재 대법제자의 정체상황을 체현하고 있다. 그중에 어떤 것은 내가 깨달은 도리로서 지금 교류하고 싶고, 어떤 것은 내가 모르는 것이지만 당장 봉착할 문제일수도 있어 일깨워 주는 것이 아주 좋고, 어떤 문제는 국내외 동시에 나타났는데 형식이 다를 뿐이다. 또 어떤 것은 개별적일 때 나 자신의 문장을 발표한 것이다. 어떤 정황이든지 막론하고 이런 문장은 모두 정법의 노정을 바짝 따라가기 때문에,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는 수련생은 매일 그날의 문장을 모두 자세히 읽어보는 것이 가장 좋다.

최근 연이은 몇 편의 문장은 모두 협조인의 문제를 말했다. 물론 국내의 상황이겠지만 똑같은 현상이 국외에도 보편적으로 존재한다는 것을 당신들은 알고 있는가? 예컨대 대규모 인력을 동원할 때 바빠서 숨 돌릴 새도 없고 자기를 돌볼 틈도 없이 공로를 쟁취하는 것처럼 앞을 향해 다투는데, 아주 나쁜 결과를 조성한다, 수련생들 중에서 자기를 내세우는데 눈에는 마치 사부님이 보이지 않는 것 같다. 이와 같은 각종 일이 적지 않다.

나는 협조인을 해본 적이 없는데 아마도 나이가 적기 때문일 것이다. 줄곧 보살핌을 받는 대상이 되어 배치한 일만 했다. 그러나 협조인은 어떤 사람인가에 대해 일부 얕은 인식이 있다.

우선, 문자 표면상의 뜻으로 협조는 바로 일치하게 협조한다는 뜻이다. 그럼 대법제자는 당연히 조사정법(助師正法)에 일치하게 협조해야 한다. 많은 항목에 대해 사람들 중에서 여전히 배치가 필요한데, 마치 한 회사처럼 순서가 있게 된다. 항상 관리가 있어야 하기 때문에 인재를 선발하고 임무를 분담하고 감독해야만 하나의 항목을 완성할 수 있다. 사실 도리는 같은 것이다. 그렇지 않고 배치하는 사람이 없으면 매우 어지러워 많은 인력과 물력의 낭비를 초래한다. 물론 조사정법을 위한 목적이라고 해도 질서정연하게 해야만 항목을 완성할 수 있다.

둘째, 수련인이라면 모두 무상으로 대법과 중생을 위해 헌신해야 한다. 돈을 벌기 위해 하는 속인과는 다르다. 조사정법을 위해 하는 것이고 협조인을 도와 정법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 협조인과 속인의 관리자와는 실제적으로 매우 차이가 있다. 이 점에 관해 국외의 협조인은 자주 실수하는 것 같은데 속인의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자칫 잘못하면 자신을 대법 위에 올려놓기까지 한다. 그리고 어떤 수련생은 협조인이 되기만 하면 내가 수련을 다른 사람보다 더 잘해서 협조인이 된 것으로 생각한다. 이런 문제는 구세력이 일부러 협조인을 교란하는 것이라고 나는 의심하는데, 그들이 정법을 교란하는 일부분의 배치일 수 있다.

셋째, 협조는 협조인의 수련형식이다. 사부님은 “수련의 길은 같지 않으나 모두 대법 가운데 있도다.”[1]라고 말씀하셨다. 그럼 나는 협조도 수련 중의 한 갈래 길이라고 생각한다. ‘길’에 대한 나의 이해는 일종 형식인데 마치 속인 중에서 사장, 교사, 학생, 농민, 아르바이트 등을 하는 것과 같다. 사실 모두 부동한 길이며 부동한 형식이다. 형식이 부동하지만 마음을 수련하는 것은 똑같다.

넷째, 어떻게 경사(敬師)하는가 하는 문제이다. 협조인은 사부가 아니기에 수련생들 중에서 더욱 자기를 강조하지 말고 자기를 실증하지 말아야 한다.

사실, 협조인이 어떻게 배치하든지 다른 공간에는 모두 사부님의 배치가 없으며, 확실한 것은 사부님의 법신이 대법제자의 수련을 배치하고 있다. 협조인이 다른 사람의 수련을 배치할 수 있는가? 불가능하다. 마치 어느 문장의 작자가, 자신의 부모가 수련을 잘하지 못한 수련생에게 밀려서 수련을 하지 않는다는 정황을 언급한 것과 같이, 만약 정말로 그 수련생이 부족한 탓이라면 그 수련생이 모두 책임져야 한다. 나는 대법제자이기 때문에 무슨 문제나 다 사부님이 포용해야 하고 무슨 시끄러움도 다 사부님이 바로 잡아주어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이렇게 하면 수련하는 사람인가? 사부님은 “행한 악은 죄다 갚아야 하는데”[2]라고 말씀하셨다. 설마 이 법이 대법제자에 대해 서로 다를 수 있단 말인가? 같다. 다만 수련을 아주 잘하였을 때 업력이 소멸되고 사람 마음이 없어지는데, 많은 것은 사부님이 또 감당하신다. 그래서 속인처럼 그렇게 많은 난이 없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협조인이 문제가 있는 것인데 이것은 대법제자의 정체적인 누락을 초래했다. 사실 많은 때에 나는 협조인의 상태가 좋지 않아 그 정체 수련생들의 수련도 결코 좋지 않다는 것을 발견했다. 만약 수련을 모두 아주 잘했다면 마당도 아주 바르고 똑같이 협조를 이끄는 수련생이 좋은 방향으로 이끌 수 있다. 따라서 정체도 제고된다. 그렇지 않으면 악성순환되어 사악에게 교란당하고 사람을 구하는 일을 잘하지 못한다. 사실, 그런 협조인이 표현해낸 사람 마음은 협조를 하지 않는 수련생에게도 매우 많은데, 다만 이 방면에서 표현하지 않을 뿐이다. 예컨대 어떤 수련생은 협조인을 관리로 본다. 협조인이 된 것은 분명히 근기가 좋고 내원이 높다고 여기면서 그를 부러워하고 추켜올린다. 왜 진정으로 법을 스승으로 삼지 않는가? 그리고 우리는 늘 협조인의 문제를 붙잡고 하루 종일 투덜거리거나 혹은 마음을 불안하게 하면서 자신을 잘 수련하지 않는데 또 구세력의 교란을 받는 것이 아닌가?

이외, 현재 존재하는 여러 가지 중대한 문제는 구세력이 결속하려 한다는 말을 듣고 우리가 다시 해도 소용이 없다는 생각을 가지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사부님이 거듭 강조하신 ‘수련은 처음처럼 해야 한다’는 것에 따라 하지 않는 것인데, 최후의 한걸음 고험 속에서 아직도 우리가 구세력을 따르는 것이 아닌가? 정말로 신사신법 하는 것이 맞는가? 구세력의 배치에 따라 결속되지 않으면 정법이 실패한 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하는 것이 아닌가? 그러면 또 구세력을 사부님의 위에 올려놓는 것이 아닌가?

그러므로 협조인 또는 수련생을 막론하고 모두 사부님의 제자이기에 더욱 마땅히 서로 이해하고 공동으로 잘 배합해야 한다. 그래야만 조사정법, 구도중생을 더욱 잘할 수 있고 하루 빨리 정법의 큰일을 완성할 수 있다! 그것이 바로 중생이 기대하는 것이다.

이 문제의 사고에 관해 부당한 곳이 있으면 지적해 주기를 바란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시, ‘홍음2-가로 막지 못하리’

[2]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시. ‘그래도 미쳐 날뛸 거냐’

문장발표: 2015년 5월 7일
문장분류: 수련마당>정법수련마당>>이성인식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5/5/7/30855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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