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선연(善緣)
[밍후이왕] 작자의 서문: 본문은 수련생이 참고하기만 바라고 법을 스승으로 하는 것이 근본이다. 다른 사람이 법을 실증하고 좋은 일을 하는 것은 우리도 거절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이 대법제자의 부족함을 지적했으니 우리는 마땅히 곳곳에서 법을 대조하고 안을 향해 찾고 자신을 바르게 연마하고 아울러 ‘신사신법하지 않는’ 근원을 깊이 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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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부님께서는 ‘전법륜’ 중에서 말씀하셨다. “지상불(地上佛)・지상도(地上道) 문제를 말한다. 또 한 가지 정황이 있는데, 중국 고대에는 많은 사람이 심산 밀림 속에서 수련했다. 왜 현재는 없어졌는가? 사실 없어진 것이 아니라 속인이 알지 못하게 한 것으로서, 조금도 적어지지 않았으며 이런 사람들은 모두 공능이 있다. 이 몇 년래 이런 사람들이 없어진 것이 아니며 이런 사람들은 다 있다. 현재 세계적으로 아직도 몇 천 명이나 있으며 우리나라에 비교적 많다. 특히 그런 명산대천(名山大川)에는 다 있으며 일부 고산(高山) 중에도 있다. 그가 공능으로 동굴을 다 막아 버렸기 때문에 당신은 그의 존재를 보지 못한다. 그의 수련은 비교적 느리고 그의 방법은 비교적 우둔하며 그는 수련의 중심을 잡지 못한다. 그러나 우리는 직지인심(直指人心)으로서, 우리 우주의 최고 특성에 따라 수련하고, 우주의 그런 형식에 따라 수련하므로, 당연히 공이 아주 빨리 자란다.”
얼마 전에 나는 이런 신선 한 분을 만났다. 입정했을 때 본 것이 아니고 속인 속에서 본 것이다. 사부님께서 그의 입을 빌어 대법제자들의 부족함을 알려주시는 것이라고 깨달았다. 이 한 단락 이야기를 간단히 써서 여러분과 교류하고 함께 법을 스승으로 삼고 진정으로 법 중에서 정진하려 한다.
이 분은 매우 평범한 ‘중년’이고 겉으로 봐서는 아무런 특이한 점이 없다. 하마터면 눈앞에서 스쳐 지나갈 뻔 했지만 사부님께서는 천목으로 보게 해주셨다. 나는 깜짝 놀랐다. 원래 그는 역사상 비교적 유명한 사람이고 대부분 사람이 모두 그를 알고 있다. 그는 그 사람에게 환생해서 온 것이 아니고 줄곧 지금까지 살아왔고 1800여세다.
사부님께서 ‘휴스턴 법회 설법’ 중에서 말씀하셨다. “내가 접촉한 사람 중 어떤 이는 4천여 년을 수련했다 한다. 그는 무엇 때문에 이렇게 긴 시간을 수련하는가? 그들은 층차가 모자라서 하늘에 올라가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 중 어떤 사람은 이미 삼계를 훨씬 초월했지만 올라가지 못하는데, 그들이 올라가는 것을 허용하지 않고, 그들을 받아들일 세계가 없어서다. 그는 무엇 때문에 공(功)이 자랄 수 있는가? 이것 역시 이 한 층 법리가 결정한 것이다. 그러나 그런 세간소도는 또 다르며 어떤 것은 인위적으로 조성한 것이다. 처음에 시작할 때는 한 문을 틀어쥐고 수련했는데, 도가에서 혹은 불가에서 수련했다. 수련하고 수련하다가 그는 괜찮다고 느꼈고 다른 사람이 그를 찾아와 ‘와서 이것을 수련해 보라.’고 하면 그는 또 가서 그것을 배웠다. 그렇게 되어 그의 공(功)은 난잡해졌다. 본래는 위에서 책임지고 있는 사부가 있었는데 위의 사부가 보니 이미 이렇게 되어 그는 받으려 하지 않는다. 위에서 받아주지 않으면 그는 삼계를 벗어날 수 없다.”
그는 내가 그의 과거를 본 것을 발견하자 나와 이야기했다. 물론 나는 그를 두려워하지도, 흠모하지도, 신기해하지도 않았다. 그의 법문의 것은 대법과 비교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불이법문(不二法門)의 법리를 매우 똑똑히 알고 있기 때문에 그는 나를 전혀 방해할 수 없었다. 아마 바로 이렇기 때문에 사부님께서 그를 보게 하신 것 같다. 그에게 대법을 전하려 생각했는데 그의 말을 듣자 이미 사부님의 설법을 봤다는 것을 알았다.
그가 내게 신사신법(信師信法)하느냐고 물었다. 나는 당연히 철석같이 믿는다고 했다. 그러나 그가 ‘홍음’ 중 “조용히 생각해 보니 집착한 일 얼마이더냐 사람 마음을 덜면 악은 스스로 패하리라”[1]를 어느 정도까지 믿느냐고 묻자 나는 말문이 막혔다.
또 그와 지금 대법제자 중 일부 마음을 다하지 못한 일들에 대해 교류했다. 그는 그의 견해를 말했고 나는 하나하나 대법으로 대조하고 문제의 엄중성을 인식했는데 또한 대법에 대한 이해가 깊어졌다. 다음에 간단하게 대의를 한번 말해보겠다.
그는 말했다. “속인은 대법의 위력을 볼 수 없습니다. 정말 100%신사신법할 수 있다면 어떤 문제도 나타나지 않고 어떤 문제도 가로막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문제가 나타나는 사람은 모두 신사신법하는데서 어느 정도로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어떻게 진짜로 믿는지를 표현하는데 그 표면의 정진과 확고함은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나 실제 마음과 행동은 어떠한 신의 눈도 속일 수 없습니다.”
사후에 나는 자신과 수련생을 생각해봤는데 정말로 이런 상황이 있었다. 관을 넘기지 못할수록 더욱 어떻게 확고하게 믿고, 확고하게 믿는 것으로 스스로 안을 향해 찾지 않고 자신의 실질을 개변하지 않는 것을 덮어 감췄다. 사부님께서 ‘더 정진하자’ 중 말씀하셨다. “우리가 하는 일은 사람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니고, 또한 항목의 책임자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도 아니며, 또한 불학회의 책임자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도 아니다. 그렇지 않은가? 당신은 사부에게 보여준다고 말하는데, 사부의 주체 역시 당신 앞에 있지 않다. 누구에게 보여주는가? 뭇 신들에게 보여주는 즉, 사부의 법신 또한 보고 있고, 무량한 우주의 중생들이 눈 한번 깜박이지 않고 당신들의 일사일념(一思一念)과 당신들의 사상동태를 주시하고 있다. 누구에게 보여주는가? 법을 실증하는 중에서 당신들이 한 아주 많은 대단한 일이 모두 우주의 이 한 시기 역사 중에 기재되고 있는데, 매 한 대법제자의 자그마한 것까지도 빠뜨리지 않는다. 그러나 만약 당신이 속인의 표면적인 것을 중요시한다면, 그것은 바로 당신의 집착이고 당신의 사람 마음이다.”
그는 말했다. “대부분 대법제자들은 정말로 잘 수련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인간세상 속에서 수련하는 것이므로 미혹이 너무 많습니다. 당신이 얼마나 높게 수련했든, 최종적으로 얼마 높은 성과를 얻든 주체가 속인 중에서 연마하고 가장 낮은 곳에 있으므로 잘하지 못한 모든 행위, 좋지 않는 모든 생각은 모두 번거로움을 초래합니다. 이런 것은 삼계 내의 신들도 한눈에 다 볼 수 있지만 그들은 모두 직접적인 원인을 말해줄 수 없고 사부님께서는 더욱 직접 말씀해줄 수 없으며 오로지 당신들 스스로 깨달아야 합니다.”
이런 것들은 별로 신선하지 않고 많은 수련생들도 다 알고 있다. 사부님께서 터놓고 말할 수 없는 법리를 대법 설법에서 여러 번 말씀하셨다. 사부님께서는 ‘도항(導航)-북미 대호수지구법회 설법’ 중에서 말씀하셨다. “수련생들은 많고도 많은 구체적인 문제, 아주 많은 곤란에 부딪혔다. 시작할 적에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잘 몰랐으나 나중에 차츰차츰 알게 되었는데, 시행착오를 거쳐서야 어떻게 하는지를 알게 되었다. 특히 그 시기에 나는 전혀 말을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내가 말해준다면 시험은 무산되기 때문이다. 시험이 무산된다면 두 가지 문제를 가져올 수 있다. 즉 구(舊) 세력은 전력을 다해 파괴할 것이고, 이를 사법(邪法)으로 여길 것이다. 그러면 내가 법을 바로잡는 이 일에 아주 큰 번거로움을 조성하게 되고, 온 우주에 아주 큰 혼란을 조성하게 될 것이므로 이것은 안 된다.”
잇따라 그는 문제의 엄중성을 지적했다. “그러나 적지 않는 사람은 오랫동안 깨닫지 못하고 관을 넘길 수 없자 점차 사부님을 믿지 않고 법을 믿지 않게 됐습니다. 어떤 사람은 공능이 좀 나오자 법공부를 깊게 하지 않는 대법제자가 그를 추켜올리기 시작했고, 이후에는 특무가 전문적으로 그에게 아첨하자 그는 똑똑히 분별하지 못하고 갈수록 하늘 높은 줄 모르게 됐습니다. 사부님의 능력을 보지 못했기 때문에 오히려 자신이 ‘사부님의 육신’보다 낫다고 생각하고 특무들도 법을 깊게 배우지 못한 노수련생을 속여 그를 따르게 했습니다. 해외 개별적인 책임자도 특무에게 추켜올려져 매우 편안해 하고 있고 특무를 절친으로 생각합니다. 점차 대법이 말한 것이 허황하다고 ‘사부님의 능력에 한계가 있다’고 스스로 꿰뚫어봤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다른 법문에 있었더라면 이런 제자는 벌써 제명됐을 것입니다. 그러나 대법은 거듭 그에게 기회를 주었습니다. 깨닫고 돌아오는 기회를 줄수록 사부님께서는 더욱 말할 수 없으셨고 그는 자신이 더욱 강하다고 생각하고 갈수록 사부님을 믿지 않고 법을 믿지 않게 됐습니다.”
이후에 생각났는데 어떤 수련생이 일단 신사신법에 문제가 생기면 법공부할 때 정말로 마음에 닿게 할 수 없어 그들과 철저히 교류해야만 진심으로 ‘병의 근원’을 인식할 수 있었다. 사부님께서 ‘20년 설법’ 중 말씀하셨다. “사부는 사람과 마찬가지로 표현할 것이다. 정법이 종결되기 전까지는 누구에 대해서도 신처럼 하지 않을 것이다. 만약 내가 지금 신과 마찬가지라면 당신들의 수련 환경을 파괴하게 되며, 당신들이 수련 중에서 깨달아야 하는 이 미혹이 타파됨으로써 당신들이 한 것과 당신들의 수련 이후를 모두 인정할 수 없게 된다. 이 일체를 망가뜨리면 중생도 구도될 수 없다. 그러므로 당신들은 사람 마음으로 법을 가늠하지 말고, 사람의 생각으로 사부를 보지 말라. 사부가 전한 이 법은 당신들을 수련시킬 수 있으며, 당신들은 이 법 중에서 수련하고 있다. 이 법으로 대조하라. 법은 틀림이 없다. 법은 그의 가장 표면적인 사람의 문자, 사람의 문자 구조가 있다. 하지만 결코 이러한 표면에 국한되지 않으며, 층층층층 법의 내포가 있다.”
그는 말했다. “세상을 뜬 그 대법제자들은 몰래 진통제를 먹었거나 몰래 병을 치료하러 갔거나 신체검사 명의로 병원에 갔던 사람들이고 남몰래 직접 병을 치료하고 수술하고 입원한 것들이 적지 않습니다. 국내에도 있고 해외는 더욱 심각합니다. 심지어 일부 책임자도 포함되어 있고 신수련생보다 못합니다. 신수련생은 반신반의할 수 있는데, 믿음이 의심보다 크고 잘 연공하면 병이 나을 수 있지만 노 수련생은 반드시 확고하게 믿고 절대 반신반의하지 말아야 관을 넘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의심을 없애지 못하면 ‘병’은 질질 끌게 되고 악순환이 되면 그들은 심지어 ‘다른 사람이 연공해서 병이 나은 것은 운이 좋았기 때문이고 원래 연공하지 않아도 병이 저절로 낫는 것이다’라고 생각했습니다. 이것은 전형적인 사오(邪悟)입니다. 만약 다른 법문에 있었더라면 이런 제자는 철저히 끝장났을 것입니다. 그러나 대법은 계속 그를 자비하게 대하지만 그는 갈수록 깨닫지 않고 스스로 다른 사람보다 높고 철저히 깨달았다고 생각합니다. 좀 나은 사람은 대법을 의심하지 않지만 자신에 대해 신심이 없고 사부님께서 그를 관할해주시지 않는다고 생각하는데 이것도 신사신법하지 않는 것입니다.”
물론 대법은 신수련생에 대해 그렇게 높게 요구하지 않는다. 사부님께서 ‘로스앤젤레스 시 법회 설법’ 중 말씀하셨다. “나는 신수련생이라고 말하거나 혹은 자신이 그다지 정진하지 못한다고 여기는 이들은 병이 있으면 그래도 병원에 간다. 그럼 가면 간 것이다. 수련과정으로 치고 이후에 수련을 더 잘하면 점차 어떻게 할 것인지 명백해질 것이다. 수련은 늘 과정이 있고 어차피 사람에게 기회를 주어야 한다. 물론 정진하는 사람은 말할 필요가 없다. 마음속으로 신심이 없다고 여기는 이는, 당신이 가도 사부 역시 뭐라고 말할 수 없다.”
그는 또 말했다. “대법 법리 중 크고 끝이 보이지 않는 공능과 에너지가 있지만 많은 대법제자는 진짜로 믿는 것이 아닙니다. 출소한 후 구타당해 반신불수로 된 사람이 만약 정말로 대법을 믿고 진정으로 수련하고 진정으로 자기의 마음을 개변하면 모두 매우 빨리 다 나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의 정념은 박해받아 없어져 자신이 다쳐서 이렇게 됐다며 이미 대법을 의심했고, 그들은 나와서 법공부하고 정진하는 것도 모양새만 내는 것일 뿐이고 남에게 보여주는 것입니다. 수련 당초 그들은 ‘병’이 매우 심했을 때도 지탱하고 연공할 수 있었지만 지금 그들은 연공을 견지할 마음도 없어졌고, 반신불수 되지 않았고 움직일 수 있지만 스스로 괴롭다는 각종 핑계로 연공하지 않았습니다. 왜? 그들의 마음속으로 이미 반신반의하게 됐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사람을 속일 수 있지만 어떠한 신의 눈도 속이지 못합니다. 법에 대해 한 치의 의심이 있어도 ‘생사대관(生死大關)’을 넘길 수 없는데, 하물며 그들의 의심은 절대 조금 뿐만 아닙니다. 법에 대한 깨달음도 이미 속인과 같은 수준이라 관을 넘길 수 없게 된 것입니다. 장기적으로 깨닫지 못한다면 더는 수명을 연장할 수 없습니다. 만약 그들이 명백하게 할 수 있고 정념이 나오게 하고 처음과 같이 정진하게 할 수 있다면 그는 절대적으로 건강을 회복할 수 있습니다. 반신불수로 된 대법제자, 위독한 대법제자가 매우 빨리 회복한 것이 적지 않지 않습니까? 법에 대해 한 치의 의심도 없어야만 기적이 있고 잘해야만 정말로 탄복하는 것입니다.”
적지 않은 수련생이 출소한 후 매우 많은 수련생은 속인처럼 그들을 돌봐줬지만 그들을 이끌고 진정으로 시간을 다그쳐 법공부하고 연공하지 못했고 심지어 마지못해 그들과 영합했다는 것이 생각났다. 그들 자신도 진정으로 연공하고 싶지 않았고 법을 들어도 정신이 딴 데 팔렸고 이후에 다친 상처가 너무 심해 세상을 떠났는데 아마 여기에 원인이 있었을 것이다. 또 출소한 어떤 수련생은 가족에게 그는 대법을 믿지 않는다고 말했지만 수련생들은 모르고 계속 단체 발정념하자 결국 그는 세상을 떠났다. 이런 사람은 몇 명이나 된다. 만약 당시 그들과 철저하게 교류했다면 아마 이 모든 것을 되돌렸을지도 모른다.
그는 자신의 법문은 대법과 비교할 수 없으나 그는 100% 바른 믿음으로 삼계의 마난을 걸어지나왔다고 했다. 작은 법문도 이런데 왜 어떤 대법제자는 해낼 수 없는가? 그는 대법이 그렇게 신기하다는 것을 믿지 않고 자신을 법의 밖에 막아놓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전법륜’ 중 말씀하신 “당신이 끊임없이 수련할 때 끊임없이 당신의 생명을 연장해 줄 것이다. 당신이 끊임없이 연마(煉)하면 끊임없이 연장해 주어 근기(根基)는 좋은데 나이가 많은 사람, 당신의 연공 시간 또한 넉넉해진다. 그러나 한 가지 표준이 있는바, 당신이 하늘에서 정한 원래의 생명노정을 지나 나중에 이어온 생명은 전적으로 당신에게 연공하는 데 쓰라고 준 것이므로, 당신이 사상적으로 조금이라도 편차(偏差)가 생기면 생명에 위험을 가져올 것이다. 왜냐하면 당신의 생명노정은 이미 지나가 버렸기 때문이다. 다만 당신이 世間法(쓰젠파) 수련을 지난 이후에는 이런 통제를 받지 않는데, 그때는 곧 다른 상태다.”를 더욱 깊게 이해하게 됐다.
물론 그는 다른 것들도 말했지만 근원은 모두 대법제자가 ‘신사신법’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도 말해볼 뿐이었고 나도 그에 대해 아무런 호기심도 없이 다만 대법과 대조했고 자신과 다른 수련생이 법리상 심오하지 않고 그릇된 부분을 많이 봤다.
많은 대법제자는 자신을 봉쇄하고 있고 정진하게 표현하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문제에 부딪혔을 때 만약 은폐하지 않고 만약 마음의 문을 활짝 열고 수련생과 교류하며 법리상 깊게 명백하다면 굽은 길을 적게 걸을 수 있고 많은 손실을 감소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상은 개인의 인식이고 정확하지 않는 곳은 여러분께서 지적해주시기 바란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저작: ‘홍음2-슬퍼하지 말라(別哀)’
문장발표: 2015년 3월 31일
문장분류: 수련마당>정법수련마당>이성인식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5/3/31/306893.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