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밍후이 편집부의 ‘출발점’을 읽고

글/ 중국 대법제자 진언(眞言)

[밍후이왕] 어제 2015년 2월 27일자 밍후이 편집부의 글 ‘출발점’을 보고 나는 매우 놀랐으며 관련 문제를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

지명당한 사람은 내가 비교적 잘 알고 있는 사람으로 최근 몇 년 간 접촉도 꽤 많았다. 작년에 그에게 경고하는 글이 밍후이왕에 게재된 바 있다. 그는 사부님의 한 경문은 자신을 위해 쓴 것이라고 주장했다는데 우리에게도 이와 유사한 말을 한 적이 있다. 나는 당사자이기 때문에 이 소문이 사실이라는 것을 증명할 수 있다. 선의적인 지적은 법의 한편에 서서 법을 보호하는 것이고 또한 그 사람을 아끼고 도와주려는 것이다.

밍후이편집부의 글 ‘출발점’에서 말한 것처럼 “법을 마음속에 놓고 자신의 언행을 지도해야” 하는데, 지적 받은 사람은 바로 이 점이 부족했다.

수련은 대법으로 자신의 언행을 요구하는 것이지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사욕과 사람의 마음을 만족시키는 것이 아니다. 수련생들 중에서 자신의 ‘명’과 ‘위신’을 첫 자리에 놓고 가장 높게 본다면 “말은 착하게 하나 마음에 마(魔)가 있어 중생을 미혹시키고 난법(亂法)하게 된다.”[1]

아직 최종 결론이 내려진 것은 아니지만 지명당한 사람은 수련생들에게 떠받들려 서서히 사망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 우리는 간단하게 사당(邪黨)식 비판을 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명철보신이고 자신을 ‘깨끗이 씻으며’ 자신을 위해 회피하는 사당 당문화 행위다. 그것은 수련이 아니며 자신을 수련하지 않는 것이다. 우리는 마땅히 법을 사부로 삼고 옳고 그름부터 똑똑히 가려야 하며 그다음 무엇이 잘못됐는지 안으로 찾아야 한다. 잘못은 두렵지 않다. 수련은 바로 실수하며 걸어가는 것으로서 잘못했으면 고치면 된다. 이것이 내가 이 글을 쓴 출발점이기도 하다. 당시 나의 잘못은 사람을 따라 하고 법을 따라 하지 않으며, 법을 사부로 삼지 않고 사람을 사부로 삼은 것이었다. 그리하여 자신의 법을 실증하는 길을 걷지 못했고 법에서 자신의 견해를 수련해 내지 못했다.

나는 또 한 가지 문제를 깨달았는데 바로 마음 깊은 곳에서 사부님을 정말 사부님으로 생각했느냐는 것이다. 이것은 경사경법(敬師敬法)에서 있어서 가장 근본적이고 가장 본질적인 문제다.

사부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명(名)에 집착함은, 유위(有爲)적인 사법(邪法)이라, 만일 세간(世間)에 이름을 날리려면 기필코 말은 착하게 하나 마음에 마(魔)가 있어 중생을 미혹시키고 난법(亂法)하게 된다.”, “색(色)에 집착함은, 악한 자와 구별이 없으며 입으로는 경문을 읽으면서도 음흉한 눈길을 마주치니 도(道)와는 너무나 먼 것이라, 이는 사악한 속인이다.”[1]

일부 특별히 ‘유명한’ 수련생을 포함하여 어떤 수련생들은 내심 깊은 곳에 사부님을 사부님으로 여기지 않을지도 모른다. 자아가 팽창하는 마음이 일어나면 아주 위험하게 된다. “수련은 자신에게 달렸고(修在自己), 공은 사부에게 달렸(功在師父)다”[2]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자신이 얼마나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심지어 무의식중에서 자신이 사부님을 능가했다고 생각하는데 이미 구세력에게 약점을 잡혔다. 이는 마에 속아 자심생마에 빠진 것이다. 경사경법하지 않으면 우주에서 가장 나쁜 사람이다. 구세력도 이런 사람을 떨어뜨리려고 하며 한 걸음 한 걸음 훼멸시켜 나중에 사부님께서도 그를 거두지 못하게 한다.

다시 우리 자신을 되돌아보자. 만약 밍후이편집부에서 이번 통지를 발표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 ‘유명한’ 수련생이 우리에게 그를 ‘협력’해 어떻게 하라고 하면 우리는 전처럼 그를 ‘아주 높게’ 볼 것이 아닌가? 아주 적극적으로 그에게 협력할 것이 아닌가? 지명당한 한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자신의 문제다! 십 몇 년을 수련했는데 우리는 무엇을 수련했는가? 미혹 앞에서 우리는 어떤 역할을 했는가? 대법을 혼란하게 하고 수련인을 혼란하게 하는 행위에 참여하고 말려들고도 모른다면 나쁜 역할을 한 것이 아닌가? 대법의 대립 면에 선 것이 아닌가? 우리는 무엇을 수련했는가? 혼란을 똑똑히 분별하지 못해서야 되겠는가? 하지만 만약 교훈을 얻어 깨어날 수 있고 법을 더욱 깊이 이해할 수 있으며 수련의 내포를 더 잘 깨달을 수 있다면 이 일은 우리로 놓고 말하면 나쁜 일이 좋은 일로 변한 것이다.

지적당하는 아픔을 두려워하지 말고 체면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하며 관건적인 문제를 회피하지 말아야 한다. 관건적인 때야말로 진정하게 법을 어느 정도로 배웠는지, 법을 얼마나 깊이 이해했는지 고험할 수 있다. 뜨거운 불을 견디는 것은 금일 수도 있고 모래일 수도 있지만 법을 배워 진정으로 수련해야 금으로 변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파도가 모래를 일 때 조만간 씻겨 나갈 것이다.

이상은 개인적인 인식으로서 부족한 곳은 지적해주시기 바란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정진요지-수련자 금기(修者忌)’

[2] 리훙쯔 사부님 저작: ‘전법륜’

문장발표: 2015년 3월 6일
문장분류: 수련마당>정법수련마당>이성인식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5/3/6/30590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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