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나는 30년대 초 중국에서 태어났는데 당시 외국이 침입했고 나라가 내란에 빠졌으며 천재 인화로 백성들은 도탄에 빠져있었다. 어머니가 나를 낳고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나는 극히 가난한 생활을 했다. 성년 후 한국전쟁 때 ‘지원군’에 참가해 중국공산당의 살인 무기로 됐었고 공산당의 여러 차례 정치운동 중에서 특별 안건을 처리하는 역할을 맡아 하늘과 싸우고 땅과 싸우며 사람과 싸우는 많은 나쁜 일과 그릇된 일을 했다. 저지른 죄가 컸기에 어릴 때부터 늙을 때까지 머리부터 발끝까지, 안에서부터 바깥까지 온통 질병이었다. 유전성 결핵성 늑막염(가래가 많았음), 동상, 위장병, 혈관염, 치루, 심장병 등, 환갑이 되고 인생이 쇠락하자 기공에 크게 기대하고 앞뒤 많은 기공을 배웠으나 병든 몸은 여전했고 효과가 거의 없었다. 대법 사부님을 만난 후에야 인생에 전기가 발생했다.
1. 광저우(廣州) 파룬궁 학습반에 참가하다
1993년 10월 25일은 내가 광저우로 달려가 대법과 인연을 맺은 잊을 수 없는 날이다. 기공 잡지에서 파룬궁 학습반을 개최한다는 소식을 봤는데 파룬궁의 ‘성명쌍수(性命雙修)’, ‘법이 사람을 연마함(法煉人)’이란 독특함에 마음이 끌렸다.
우리 일행 넷은 안내원이 배치한 방에 있었는데 작은 공원에 가서 사부님과 만난다는 소식을 들었다. 공원에 도착하자 젊고 깔끔한 옷차림에 만면에 웃음을 띠고 있는 사부님을 봤다. 사부님께서는 다정스러웠고 남달라 보였다. 사부님께서 사람들에게 명함을 나눠주셨는데 나는 나이가 들고 행동이 불편해 받지 못했다. 그리하여 “저희는 후난에서 왔는데 아직 명함을 못 받았어요.”라고 하자 사부님께서는 즉시 명함 몇 장을 주셨다. 광저우에 가서 법을 얻은 우리는 사부님과의 만남이 매우 즐거웠고 시간이 쏜살처럼 지나는 것 같았다.
무슨 원인인지 안내원은 우리 넷을 몇 십 명이 함께 사용하는 큰 방으로 다시 배치했다. 큰 방에는 모기장이 없고 설비가 누추했다. 나는 종업원에게 “아주 먼 곳에서 달려와 법을 얻는 것이라 쉽지 않은데 큰 방에서 자고 모기에 물리면 법을 배우고 공법을 배우는데 영향을 주니까 좀 배려해주세요.”라고 했다. 종업원은 냉정하게 “보살핌을 받으려면 학습반 책임자를 찾아가요.”라고 했다. 우리는 누굴 찾아가야 할 줄 몰라 큰 방으로 옮겨갔다. 9일 학습반이 끝난 후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모기에 물린 적이 없었고 코 고는 소리도 듣지 못했으며 신기하게 조용했다. 우리가 절실하게 법을 얻으려는 것을 보시고 사부님께서 공간장을 청리해주셨기 때문이다. 우리는 위대하신 사부님의 공덕무량을 체득했다.
그날 오후 5시에 사부님의 설법을 들었는데 파룬궁이란 첫 마디에 아랫배 부위가 끊임없이 돌았고 10여 년 변함없이 파룬이 도는 소리는 신기하게도 처음과 같았다. 이것은 절대 속인이 하려고 해서 해낼 수 있는 일이 아니다.
2. 정저우(鄭州) 파룬궁 학습반에 참가하다
1994년에 나는 열 명 길동무와 함께 사부님의 정저우 학습반에 참가했는데 장소는 펑위(風雨) 축구장이었다. 그날 우리가 사부님 설법을 공손히 듣고 있는데 갑자기 먹구름이 몰려오고 큰 천둥소리가7 들리더니 원래 맑던 날씨가 갑자기 새까맣게 되고 비가 억수같이 내리고 벼락이 축구장 지붕을 때려 큰 구멍이 생겼다. 사부님께서는 설법을 멈추고 침착하게 강단에 앉아 가부좌하고 대수인(大手印)을 하셨다. 10분쯤 되자 먹구름이 흩어지고 태양이 나왔으며 빛이 한 가닥씩 축구장을 비췄다. 사부님께서는 법을 전하는 것을 방해하는 마귀를 책상 위 물컵에 넣었다는 손동작을 하셨다. 그리고 계속해서 설법하셨다. 설법이 끝난 후 여관으로 돌아오는 길에서 물이 많이 고인 것을 보고 폭우가 정말 흉악스러웠다는 것을 알았다.
3. 지난(濟南) 파룬궁 학습반에 참가하다
정저우에서 법을 들은 후 나는 집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우리 일행 셋은 직접 차를 타고 사부님의 지난(濟南) 제2기 학습반에 참가했다. 이때 대법은 이미 전국 각지로 전해졌고 각지 인연 있는 사람은 끊임없이 소식을 듣고 달려와 온 체육관에 빈자리가 없었다. 아마 4천여 명이 참가했을 것이다.
여름 날씨가 무더웠기 때문에 어떤 수련생은 참지 못하고 큰 부들부채로 쏴쏴 부채질했다. 어느 날 사부님께서는 사람들에게 부채를 내려놔도 무방하다고 말씀하셨다. 나는 즉시 부채를 내려놓고 부채질하지 않자 한 가닥 미풍이 솔솔 불어와 조금도 덥지 않았다.
여관에 돌아와 휴식하고 아침에 일어나 연공할 때 연공장은 온통 붉은빛이었고 매우 편안했다. 그땐 원인을 몰랐다. 이후에 ‘전법륜’을 본 후에야 알았다. 사부님께서는 “우리의 연공장(煉功場)은 다른 어떤 공법의 연공장(練功場)보다도 좋은데, 우리의 그 장은 당신이 가서 연공(煉功)하기만 하면 당신이 병을 조리하는 것보다 훨씬 낫다. 나의 법신(法身)이 한 바퀴 둘러앉았고, 연공장(煉功場) 상공에는 또 씌우개가 있으며, 위에는 큰 法輪(파룬)이 있고 큰 법신(法身)이 씌우개 위에서 장을 지키고 있다. 그 장은 일반 장이 아니며 일반적으로 연공(練功)하는 그런 장이 아니라 수련하는 장이다. 우리 공능이 있는 많은 사람이 모두 우리 法輪大法(파룬따파)의 이 장이 붉은빛으로 씌워졌고 온통 붉은 것을 보았다.”라고 말씀하셨다.
학습반에서 누가 돈, 금귀걸이, 금목걸이 등 물건을 떨어뜨린 것을 수련생이 주우면 전부 제출했고 사부님께서는 잃은 사람에게 올라와 하나하나 가져가라고 하셨다.
4. 천저우(郴州) 파룬궁 학습반에 참가하다
1994년 7월 15일, 사부님께서는 후난 천저우에서 4일 학습반을 개최했다. 당시 나는 천저우의 현장요원이었다. 원래 사부님의 1994년 학습반은 빼곡하게 다 배치했는데 1994년 1월 6일 천저우 기공협회에서 사부님을 요청해 학습반을 개최하시라는 소개장을 보냈다. 사부님께서 동의해 우리는 계약서를 체결했다. 천저우 기공협회에서는 한 장당 50위안(약 8,700원)의 푯값으로 적극적으로 매표를 계획했다. 그런데 이후에 파룬궁연구회에서 사부님께서 너무 바빠서 천저우 학습반을 취소하겠다는 전화가 왔다.
천저우 기공협회 회의 때 어떤 사람은 몹시 화가 나서 “계약을 위반하면 소송을 걸어야 한다.”라고 했다. 나는 속으로 ‘사부님의 몇 개 학습반을 참가했다. 얼마나 좋으신 사부님이신데. 사부님께 소송을 거는 것이 좋지 않다. 가장 좋기는 소송을 걸어서는 안 된다.’라고 생각하고 매표 상황을 다시 연구회에게 반영해보자고 건의했다. 이후에 시간을 짜내 9일 학습반을 4일 학습반으로 축소해 설법하시고 시간 관계로 법만 전하시고 공법을 전하시지 않는다고 하셨으며 더 많이 받은 돈을 돌려주라고 하셨다. 신 수련생은 30위안(약 5,200원), 노 수련생은 20위안(약 3,500원)의 표준으로 받겠다고 하셨다. 우리는 돈을 거둬야 할 뿐만 아니라 또 하나하나 돈을 되찾아주느라 바빴지만, 매우 기뻤다.
사부님께서는 혼자서 천저우에 오셔서 학습반을 개최하셨다. 4일 만에 설법을 다 하시려고 낮과 저녁에도 야근해야 하셨기 때문에 매우 고생스러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부님께서는 수련생에 대해 매우 관심을 가지셨다. 직접 전화해서 베이징 연구회보고 ‘파룬궁’ 서적을 보내주라고 하셨고 사진을 찍고 기념을 남기려는 수련생의 요구까지도 들어주셨으며 쑤셴링(蘇仙領)에 가서 천저우의 환경 등도 관찰하셨다.
어느 날 연구회 사람을 찾으러 체육관 호텔에 갔는데 마침 사부님도 거기에 계셨다. 사부님께서 웃으며 먼저 내게 인사했고 앉으라고 손짓해 부르셨다. 학습반이 끝난 후 호텔 식당에서 밥을 먹을 때 사부님께 무엇을 드시겠느냐고 묻자 사부님께서는 “아무것이나 다 먹습니다. 다만 긴 벌레(뱀을 가리킴) 같은 것은 먹지 않습니다.”라고 하셨다.
5. 중국에서의 마지막 학습반에 참가하다
1994년 12월 24일 광저우 파룬궁 학습반은 중국에서의 마지막 학습반이었는데 대성황을 이뤘다. 온 사람이 너무 많아 강당에도 회의장에도 다 들어갈 수 없었다. 법을 얻으려는 사람의 소원을 만족시키기 위해 사부님께서는 광저우 수련생보고 표를 멀리에서 온 외지 수련생에게 양보하라고 하셨고 TV 중계방송으로 수련생보고 다른 장소에서 TV를 보면서 사부님의 설법을 들으라고 하셨다.
사람이 아무리 많을지라도 내가 참가한 매 학습반은 매우 조용했다. 매 학습반에서 사부님께서는 모두 직접 수련생의 신체를 조절해주셨다. 전체 수련생은 일어나 자신의 병 있는 신체 부위를 생각하면서 사부님께서 팔을 아래위로 ‘하나, 둘, 셋’하고 헤아리고 ‘셋’ 할 때 함께 발을 굴렸는데 발구르는 소리는 일치해야 했고 잡소리가 있으면 다시 해야 했다. 몇 개 반에서 내려오자 신체의 질병은 다 온데간데없이 사라졌고 근골이 강철처럼 단단했고 마음도 매우 크게 정화됐다.
물론 수련 중 고생해야 하고 넘기 어려운 고비도 많았지만, 사부님의 대법 지도가 있었기 때문에 18년간 나는 무사히 걸어왔다. 이렇게 많이 주신 사부님께 감사드린다! 다시 한 번 사부님을 뵙길 바라고 다시 한 번 사부님의 설법을 경청할 수 있길 바란다.
문장발표: 2011년 6월 25일
문장분류: 나의 사부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1/6/25/242982.html
영문위치: http://www.clearwisdom.net/html/articles/2011/7/3/126416.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