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헤이룽장 신수련생
[밍후이왕] 나는 금년 41세로 2013년 5월 6일 수련의 길로 들어섰다. 나는 이전에는 성질이 아주 나쁜 사람이었는데, 성격이 유별나게 강해서 무슨 일을 하든지 남에게 지려고 하지 않았다. 자존심이 너무 강해 사소한 일에도 굽히지 않고 끝까지 파고들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집에는 나와 성격이 똑 같은 시어머니가 있었다. 물론 시어머니는 살림은 물론 무슨 일이나 모두 잘 했지만 성질 또한 보통이 아니어서 멀리 소문이 날 정도로 아주 사나웠다. 내가 이런 시어머니와 함께 살게 되면서 나 역시 당연히 만만하게 보이려고 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우리 둘을 “바둑판에서 만난 호적수”라고 했다. 이렇게 고부간에 서로 지려고 하지 않았으니 둘의 관계가 어떠했는지는 상상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남의 집에 시집 온 며느리며 또 손아랫사람이었으므로 어쩔 수 없이 내가 양보하는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20여 년간을 살면서 많은 일에서 모두 화가 나도 내가 참아야 했다. 그러므로 남편도 중간에서 아주 난처한 입장에 처하게 되어 정신적으로 받는 압박감이 무척 심했다. 그러므로 항상 심기가 불편해서 얼굴에 웃음기를 띨 때가 극히 드물었다. 그런데도 우리는 고부사이의 관계를 원만하게 처리하지 못했다.
나는 밖에서 일을 할 때는 누구나 나를 보고 “일을 참 잘한다”는 칭찬의 말을 듣지만, 집에서는 언제나 시어머니 눈에 나기 때문에, 나는 영원히 그녀보다 못해서 늘 시어머니에게 흠을 잡혔다. 그러므로 나는 시어머니와의 모순적인 관계를 피하려고 될 수 있는 한 밖에 나가서 일을 했다. 그러니 나의 심정은 언제나 좋지 않았다. 장기적으로 억제를 당하는 데서 오는 심한 스트레스가 심신을 피로하게 하고 마음을 무겁게 하는 큰 부담감으로 오게 된 것이다. 어떤 때는 하루 일을 끝내고 밤을 맞게 되어도 불면증으로 온 밤을 뜬 눈으로 새우기도 했다. 이런 시간이 길어지자 결국 몸이 감당하지 못하고 문제가 생겼다. 목구멍에 멍울이 생겨 수술을 받았지만 역시 늘 목에 뭐가 걸린 것 같아 약을 먹었지만 시원치 않았으며 음성까지 변해 늘 쉰 목소리 같았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은근히 겁도 났는데, ‘이러다가 악화되는 건 아닌지?’ 하는 정신적인 압박이 매우 커서 혈압도 높아지고 정신마저 종일 흐리멍덩해졌다. 안색까지 누렇게 좋지 않아 하루 내내 이런저런 잡생각만 하면서 아무것도 하기가 싫었으며 몸은 더욱 무력해져 정말로 어찌할 방도가 없었다. 그런데 식구들은 이런 나를 보고 ‘게으름을 피운다’ 식의 표정으로 싫은 내색을 했다. 나는 20여 년간을 이런 압박감에 눌려 살면서 숨조차 제대로 쉬기가 어려웠으므로 정신이 붕괴지경에 이르러 사실상 살아갈 용기조차 없었는데, 그 마음의 괴로움은 이루 다 형용할 길이 없었다.
나는 바로 이렇듯 고통스러웠지만 무슨 방법이 없었다. 그러다가 이웃집에 가게 되었다. 그 집은 외지에서 온 사람으로 세를 얻어 살고 있었는데 집 주인인 그녀로부터 사연을 듣게 되었다. “집의 유일한 아들이 악성 뇌류증(腦瘤-신경관 결손으로 두개골이 열린 사이로 뇌실질이 돌출되는 뇌의 기형증세) 환자로 수술을 받았지만 얼굴이 마비되고 눈과 입이 비뚤어진 채 말을 할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스스로 혼자서는 거동조차 할 수가 없어서 항상 다른 사람들의 보살핌을 받아야 하는 그런 환자였다. 수술을 한 하얼빈 의과대학 담당의사는 ‘많아야 3, 5개월 정도 살 수 있다’는 진단을 내렸다. 치료비로 주택과 토지 자동차 등 가산을 모두 팔아버리는 바람에 이곳 셋집으로 이사 오게 된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그랬던 그 환자가 파룬궁(法輪功)을 연마하고 나서 신체가 회복되어 말도 정상으로 하게 됐고, 거동도 혼자서 스스로 하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혼자 빨래를 하고 청소도 하는 등 집안일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좋아졌다. 지금은 이미 수련한 지 6년이 되었다”고 했다.
나는 그날도 괴로운 심정으로 그 이웃집에 가서 혈압을 재보았다. 그러자 그 집 언니는 내가 그토록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보고 좋은 말로 위로를 하면서 나에게 “파룬궁을 연마해 보라”고 권했다. 나는 그녀의 아들이 파룬궁을 연마하여 악성 뇌류가 나은 것을 보았으므로 파룬궁을 믿고 있었다. 그리고 나 역시 이런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마음으로 파룬궁을 연마하기로 마음을 굳혔다. 그런데 그토록 신기할 줄은 예상조차 하지 못했다. 당시 나는 1장 공법만 따라 했는데 허약한 신체가 제법 지탱할 수 있었다. 그러나 제2장 공법을 연마할 때는 어지럼증으로 단번에 소파에 쓰러졌다. 언니가 나에게 ‘전법륜(轉法輪)’ 책을 주며 “집에 갖고 가서 보라”고 해서 집으로 돌아왔다.
나는 책을 읽으면서 금방 책속에 빠져 버렸다. 이 책은 ‘참으로 좋다’는 생각이 들면서 볼수록 더 보고 싶어져서 단숨에 30여 폐이지를 읽었는데, 이튿날 기적이 발생했다. 나의 전신이 모두 변했다. 어디도 괴롭지 않았으며 온 몸에는 힘이 넘쳐났다. 일찍 일어나 밥을 짓고, 혼자 밭에 나가 감자도 심는 등 해야 할 일을 전부 해치웠다. 가족들은 그런 나를 보고 모두 기분 좋은 표정을 지었다. 대법은 정말 참으로 신기했다. 나는 수련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신체적인 변화가 무척 컸다. 무슨 일이든 다 할 수 있었다. 혈압도 높지 않았으며 말소리도 우렁찼고, 심성도 좋아졌으며 생활에는 신심이 일게 되었다. 몸이 괴롭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온 몸은 가볍고 힘이 있어 늘 쓰고도 남는 힘이 넘치는 것 같았다. 며칠 안 되어 식당일을 하게 되었으며 월급이 거의 4천 위안이나 됐다. 나는 아무리 직장일이 바빠도 시간만 있으면 법 공부 팀에 가서 법 공부와 연공을 했다. 법 공부를 통해 심성을 닦아야 함을 알게 됐으며, 모든 일은 진선인(眞善忍)에 맞게 자신을 요구했으며, 남을 배려하면서 부단히 자신의 부족한 점을 찾아내 그것을 파버렸다. 심성관에 부닥쳐 넘기 어려울 때는 노수련생을 찾아 물어보면서 나는 서서히 수련을 할 줄 알게 됐다.
더는 시어머니와 마음속 겨룸을 하지 않았다. 나는 시어머니 입장에 서서 생각해 보았다. 시어머니의 한 생은 쉽지 않았다. 시아버지가 일찍 세상을 뜨자 그녀는 혼자 자식들을 위해 평생을 고생했다. 그러나 지금도 시어머니가 하는 일이 적지 않다. 나는 마땅히 더 많이 시어머니를 이해하며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을 생각하게 되었다. 식당일이 끝나면 저녁 늦게 집에 돌아오게 된다. 그래서 아침이면 시어머니가 걱정하지 않게 일찍 일어나 조반을 마련했다. 수련 후부터는 언제나 싱글벙글 하면서 될수록 집안일을 많이 하여 시어머니에게 좋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지 않도록 노력했다. 무슨 모순된 일에 부닥치면 심성을 닦고 안으로 찾을 줄 알게 되었다. 어느 날 비가 오고 있었다. 나는 우산이 없어서 시어머니의 우산을 빌렸는데, 시어머니는 “저녁에 교회에 갔다 와야 한다”고 했다. 내가 출근했다가 저녁에 돌아오니 시어머니의 안색이 좋지 않아 보였다. 틀림없이 아침의 우산 건 때문에 심기가 불편한 것 같았다. 그래도 나는 개의치 않고 자발적으로 먼저 말을 걸면서 “오늘은 마작하러 안 가셨어요?”라고 물었으며, 얼른 참외를 사다가 깨끗이 씻어서 시어머니 침대머리에 가져다 놓았다. 어머님은 자신이 화를 내고 있음에도 내가 내색을 않고 자신에게 잘 대하는 걸 보고 화가 풀린 듯 좋아졌다.
나는 ‘이젠 내가 대법을 수련하고 있으니 반드시 수련을 잘 해야 하며 절대로 대법에 먹칠을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수련 후에는 시어머니와의 모순이 발생하지 않았다. 과거에는 언제나 자신의 사(私)적인 각도에서 시어머니를 보았을 뿐, 시어머니 입장에서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렇게 큰 모순이 나타났던 것이다. 내가 그렇게 불쾌해 하는데 시어머니가 어찌 기쁠 수 있겠는가? 내가 고생스럽다고 생각하는데, 그녀인들 어찌 고생스럽지 않겠는가? 앞으로는 더 많이 시어머니를 이해하고 잘 대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시누이는 특히 내가 이렇게 변한 모습을 보고 기뻐하면서 나에게 “수련을 잘 하라”고 고무격려 해주었다.
나는 나쁜 성질을 철저히 고쳤다. 한 번은 목욕하러 가면서 휴대폰을 가지고 가지 않아 남편의 전화를 받지 못했다. 집에 돌아오니 남편은 술에 취해 있었는데 밤새도록 욕설을 퍼부었다. 나는 ‘이젠 수련인이므로 사부님 말씀대로 심성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고 한 마디 대꾸도 하지 않고 묵묵히 눈물만 흘렸다. 남편은 술이 어느 정도 깨고, 내가 우는 것을 보고는, 스스로 도리에 어긋났다고 생각했는지 더는 욕을 하지 않았다. 나는 이튿날 남편에게 사리분별 있게 말했다. “나는 대법을 수련하기 때문에 당신과 같지 않게 대했어요. 하지만 앞으로 다시는 무고하게 나를 욕하지 말아야 합니다”고 일깨워 주었다. 남편도 내가 대법을 수련한 후 좋게 변했다는 것을 시인하면서, 자신과 시어머니에게 모두 좋게 대한다는 것을 인정했다. 그러면서 나의 대법수련을 적극 지지한다고 했다.
시어머니도 이 일을 알고는 나에게 “남편과 똑같이 하지 말라”고 하면서, 남편에 대해 “갱년기라서 그런 모양이다”고 했다. 나는 남편이 갱년기인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대법을 수련하며 심성을 닦음으로 해서 가정은 확실히 화목해졌고, 남편과 시어머니에게도 좋게 대했으며, 모든 면에서 확실히 좋게 개변됐음을 스스로 인정 할 수 있는 일이다. 시어머니도 나의 대법수련에 대해 적극적으로 지지했으며, 나에 대한 시어머니의 태도도 변하여 늘 나에 대해 관심을 보여주며, “연공하러 가라”고 일깨워 주기까지 한다. 나는 이렇게 여러 해가 돼서야 가정의 행복과 따스함을 느끼게 되었다. 수련 후 더 이상 어떤 번뇌도 없이 심신이 홀가분하고 마음은 말할 수 없이 즐겁다. 남들은 모두 나를 보고 “몇 년이나 젊어졌다”고 한다. 직장에서도 진선인(眞善忍)의 요구대로 자신을 요구하면서 누구와도 모두 사이좋게 지내 모두들 나를 몹시 좋아한다.
사부님께서는 나에게 건강한 신체를 주셨을 뿐만 아니라 또 행복한 가정을 주셨다. 나는 여기에서 사부님께 감사드리며 대법에 감사드린다.
문장발표 : 2015년 1월 6일
문장분류 : 수련마당
원문위치 :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5/1/6/302686.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