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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교사 “수련할수록 몸과 마음이 가뿐해”

글/ 대륙 대법제자

[밍후이왕] 나는 중학교 교사다. 온몸이 아파서 정상적으로 일할 수 없어 1998년 만 47세 나이로 퇴직했다. 그때는 단지 몸만 나쁜 것이 아니라 마음속으로 이해되지 않는 일, 걱정스러운 일이 아주 많았으며 매일 수심에 찬 얼굴이었으며 인내심의 한계를 느끼고 있었다.

우리 지역에 파룬궁을 연마하는 사람이 두 명 있었는데 이 상황을 보고 반복하여 파룬궁을 소개했지만 나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늘 힘이 없어서 못 하고 생각이 없어서 안 한다고 했다. 그중 한 사람은 퇴직한 교육국 국장인데 눈 내리는 어느 날 저녁에 우리 집 5층에 올라와서 나에게 연공을 가르쳐 주겠다고 했다. 나는 도저히 거절할 수 없었고 아마도 연분이 닿은 것일 수도 있는데 하는 듯 마는 듯 연공을 시작했다. 그런데 이렇게 연공한 지 보름, 20일도 되지 않았는데 내 심장병, 자궁탈출증, 불면증, 오십견, 삼차신경통, 전신 무기력증 등이 모두 나았다. 다만 다리가 아직도 절다 말다 했는데 아프지는 않았다(퇴직할 때 다리가 아프고 절었다).

연공한 지 몇 달 되지 않아 나는 다시 사립 중학교에 가서 글을 가르쳤는데 다리가 언제 절지 않게 됐는지도 몰랐다. 내 느낌은 길을 걷거나 자전거를 타거나 계단을 오르거나 모두 이전보다 가벼운 것이다. 끊임없이 연공함에 따라 신체도 가벼워지고 마음도 홀가분해졌다.

1. 원망심이 사라지다

내가 두 번째 아이를 출산한 후 한창 계획생육(산아제한)의 최고점에 달해 나에게 내려진 처분은 해고였다. 이후에는 수정해 계속해서 고용하는 것으로 했지만 남편 임금은 두 단계 강등됐다. 그때는 매우 어렵게 느껴졌는데 더욱 어려운 것은 출근하면 아이를 돌볼 사람이 없기 때문이었다. 친정 부모님은 일찍 돌아가시고 시어머니는 딸의 아이를 봐주고 우리 아이를 봐주지 않았다. 보모를 찾으려 해도 없었다(주변 사람들은 모두 농사를 지었다.). 이리하여 나는 두 아이를 데리고 출근했는데 동서가 가끔 도와주었지만 그래도 아주 힘들었다.

해고된 후 다시 복직되었으니 업무를 더욱 잘해야 했고 두 아이도 돌봐야 했다. 나는 몸이 좋지 않아서 고생을 적지 않게 했다. 시어머니는 이 상황을 보면서도 상관하지 않고 딸의 아이만 봐 주었다. 시간이 오래되자 시어머니에 대한 원망이 갈수록 커졌다. 내가 아이를 다 키우자 시어머니도 늙으셨고 우리 집에 와서 여생을 보내시겠다고 했다. 나는 마음이 평형 되지 않았고 원한이 아주 컸다. 시어머니는 왜 우리가 그렇게 어려울 때 딸의 아이는 봐주면서 우리 아이는 봐주지 않아 우리를 그렇게 고생하게 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 매듭을 누가 나를 위해 풀어줄 수 있을까? 누구와 말을 할 수 있을까? 마음속을 가득 채운 원망, 시어머니의 일언일행에 대한 원망, 남편과 아들딸들도 내 말과 행동을 보고 들어서 모두 좋아하지 않았으며 가정불화가 수시로 발생했다.

‘전법륜’을 읽고 나서 나는 이 모든 것을 알게 됐다. 사부님께서 설법하셨다. “만사는 모두 인연이 있게 마련이다.” [1], 시어머니가 우리 아이를 봐 주지 않는 것은 시어머니가 우리에게 빚을 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람이 세상에 온 것은 모두 업력의 윤보 중에서 자신의 업을 갚고 있는데 시어머니는 세상에 와서 자신의 빚을 갚아야 한다. 그녀가 누구의 것을 빚졌으면 그의 것을 갚는 것인데 내가 좌우지할 수 있는 것인가? 시어머니 자신도 좌우지할 수 없다. 이 매듭이 풀리자 마음이 아주 홀가분해졌다.

늘 책을 보고 법공부를 하며 주동적으로 적극적으로 진선인(眞善忍)에 동화해 자신의 마음이 점점 선량해졌는데 시어머니도 매우 고생스러워 보였다. 계절마다 똑같은 옷을 한 해 또 한 해 입으셨다. 나이가 들자 자식들의 눈치를 보시는데 늘 웃으시며 언짢아하실 때가 없었고 말을 아주 적게 하셨다. 나는 늘 시어머니의 마음이 아주 고달프다고 느껴졌다. 시어머니에 대한 원망도 점점 사라지고 시어머니가 매우 불쌍하고 고생스럽게 느껴졌다.

끊임없이 수련함에 따라 나는 시어머니에게 점점 잘 대했다. 계절마다 시어머니에게 옷을 사 드렸다. 시어머니가 처음으로 내가 사준 윗옷을 입었을 때 80여 세 노인의 표정이 마치 어린아이와 같았다. 당신도 모르게 웃으면서 말했다. “바지도 하나 사 주려무나.” 나는 시어머니의 마음에서 우러나온 웃음을 보고, 마음에서 우러나온 말을 듣고 그녀가 아주 행복해한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웃었다, 남편도 웃었고 아이들도 웃었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내가 만약 대법을 배우지 않았다면 어떻게 이런 장면이 있을 수 있겠는가. 온 가족이 화목하고 행복하고 얼마나 좋은가!”

나는 자주 시어머니에게 목욕을 시켜드린다. 목욕한 후 시어머니가 편안하고 만족해하시는 모습을 보면 내 마음도 매우 홀가분하다. 시어머니는 주동적으로 나와 함께 비닐봉지에 진상자료를 담고 함께 션윈을 보며 함께 설법을 듣는다. 마치 아이처럼 내가 무엇을 하면 그녀도 무엇을 하는데 내 마음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이 편안하다.

법공부를 하고 마음을 수련함에 따라 남편에 대한 원망도 없어졌다. 남편은 밥이 오면 입을 벌리고 옷이 오면 손을 내미는 사람이다. 나는 두 아이를 데리고 출근하고 가사도 거의 나 혼자 하다시피 했다. 수련하기 전에는 역시 이해되지 않았다. ‘두 사람 모두 직장을 다니는데 무엇 때문에 아이 돌보기와 가사가 나 혼자 몫이지? 내가 버는 돈도 그가 버는 돈보다 적지 않은데 불공평해!’ 이 때문에 우리는 자주 다투고 서로 아는 체하지 않으면서 시어머니를 찾아 시비를 가렸다. 나는 종종 울면서 이혼을 하겠다고 소란을 피웠지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나는 아무런 원망도 없이 마음이 평온하고 태도가 온화하게, 즐겁게 내가 해야 할 일을 하고 있다. 수련한 후 무엇 때문이라는 것을 나는 알았기 때문이다. 사람은 일생이 아니라 생생세세다. 지난 생에 나는 남편에게 은혜가 있는데 은혜를 갚아야 한다. 이번 생에서 나는 그의 아내가 되어 은혜를 갚는 것이다. 그에게 밥을 해주고 설거지에, 옷을 사고 빨래하고 동시에 내 흉금도 넓히고 심성도 제고했는데 이는 또한 내가 수련하는 좋은 환경이기도 하다.

남편과 시어머니에 대한 원망만 없어진 것이 아니라 불공평한 일에 부딪히더라도 법에 서서 보면 어떤 원망도 모두 없어진다. 누구네 아이가 결혼하는데 나는 그들과 왕래가 없었지만, 나에게도 청첩장을 보냈다. ‘결혼식에 참석하면 백 위안을 내야 하는데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이해가 되지 않네. 갈까 말까?’ 법에 서서 생각해 보니 ‘아마도 그녀는 나와 연락해 나에게 구해달라고 하는 것이다. 아마도 지난 생에 내가 진 빚을 갚으라는 것일 수도 있지.’ 이렇게 생각하니 ‘그래, 결혼식에 참석하자. 빚은 갚고 사람은 구하자.’ 기쁘게 결혼식에 참가하러 갔다.

오늘 물건을 사는데 판매자가 돈을 더 받았다. ‘아, 또 빚 하나를 갚았구나.’ 내일 그는 까닭 없이 나에게 인상을 썼다. 나는 태연히 웃으면서 속으로 또 빚 하나를 갚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수련한 후 마음이 아주 홀가분해졌다. 나는 내심으로부터 한마디 했다. ‘파룬따파 감사합니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2. 두려운 마음이 적어지다

중국공산당이 파룬궁을 박해한 후 주변 수련생들은 드문드문 박해당했다. 어떤 이는 판결을 받았고, 어떤 이는 감금되고, 어떤 이는 가산을 압류당하고 자료점이 파괴됐다. 주간을 볼 수 없었고 자료도 받지 못했다. ‘어떻게 하지? 내가 자료점을 만들어야겠다, 나도 꽃을 하나 피워야지.’ 이 문제를 생각하자 무서웠다. 박해당할까 봐 무서웠고 컴퓨터를 배우지 못할까 봐 무서웠으며 인쇄를 배우지 못할까 봐 무서웠다. (그 해 나는 59세인데 컴퓨터, 프린터 등은 아무것도 몰랐다.) 또 가족들이 알까 무서웠고 일이 터지면 아이 직장에 영향이 있을까 봐 무서웠다. 자료점은 또 만들고 싶었으나 이것도 무서워하고 저것도 무서워하면서 온종일 주저하고 걱정했다.

나는 이러한 두려운 마음을 제거해 버리려면 반드시 법을 많이 배워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나는 분초를 다투어 법을 배우고 법을 외우고 법을 베끼면서 엄격히 법으로 자신을 요구하였다. 두려운 생각이 나오기만 하면 나는 “당신이 두려워하면 그놈은 붙잡을 것이요 생각이 바르면 사악은 무너지리라 수련하는 사람은 법을 간직하고 있다네 정념을 발하면 썩은 귀신 터져버릴지니 신이 세상에서 법을 실증하고 있음이로다” [2], 를 외웠다. 이리하여 정념은 점점 충족해졌고 두려운 마음은 점점 적어졌다.

법공부를 통해 나는 이것저것을 두려워하는 것은 모두 속인 마음이며 모두 수련인이 버려야 하는 마음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사부님을 따라 집으로 돌아가려면 나는 이런 속인 마음을 모두 내려놓아야 한다.

2009년 가을, 나는 수련생을 찾아 노트북 컴퓨터, 프린터를 샀다. 컴퓨터는 어떻게 사용하고 프린터는 어떻게 사용하는지 나는 백지 상태였다. 노트북을 전원과 연결해야 한다는 것조차 몰랐다. 처음에 노트북 충전 전원을 다 쓰고 나서 노트북이 켜지지 않아 수리하려고 보니 그제야 가방 안에 있는 선으로 연결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나는 생각했다. ‘백지라, 뭐가 두려운가. 사부님께서 계시고 법이 있는데, 백지라 해도 나는 가장 아름다운 그림을 그려낼 것이다. 나는 사부님의 말씀을 들을 것이다.’ 나는 컴퓨터와 프린터를 배우고 밍후이왕에 접속해 자료를 받는 것을 배웠는데 밤중까지 배우기는 다반사였고 반복하여 연습했다. 기술을 배우면서 노트에 차곡차곡 메모했다. 종이도 많이 썼고 시간도 많이 들었다. 지금은 주간, 주보, 소책자, ‘9평’, 신경문을 인쇄하고 밍후이왕에 접속해 삼퇴 하고 문장을 밍후이왕에 올리는 것도 아주 숙달되어 7, 8명에게 진상자료를 공급해주고 10여 명에게 신경문을 공급해 준다.

지금은 두려운 마음이 많이 적어졌고 압력이 그다지 높지 않아 이전보다 아주 수월해졌다. 나는 내심 다시 한 번 말했다. ‘사부님께 감사드립니다! 파룬따파에 감사드립니다!’

3. 조바심과 환희심이 적어지다

처음 자료를 만들 때 프린터에 종이가 끼는 바람에 나는 조급해서 어쩔 줄 몰랐다. 이렇게 해 보고 저렇게 해 보다가 급해서 땀범벅이 됐다. 프린터가 고장 나서 멈춰서 돌아가지 않자 나는 급해서 잠을 잘 자지 못했다. 한잠 자고 깨어나서 프린터를 생각하면 잠이 안 왔다. 자료를 인쇄할 때 종이를 잘못 배치해 수십 장 되는 진상자료가 모두 잘못되는 바람에 무릎을 치고 발을 굴렀다. 무엇 때문에 자꾸 문제가 생기는 걸까? 사부님께서 설법하셨다. “안으로 찾는 것만이 수련이리라” [3]. ‘이것은 모두 조바심으로서 조급해할수록 문제가 생긴다. 나는 반드시 이 조바심을 제거해 버릴 것이다, 하나를 발견하면 그 하나를 버릴 것이다.’

끊임없는 법공부와 심성 수련에 따라 지금은 컴퓨터가 됐든 프린터가 됐든 문제가 생기면 나는 기본적으로 우선 자신에게 어떤 버려야 할 마음이 있는지 찾을 수 있게 됐다. 동시에 조용히 해결 방법을 찾는다. 조급해하지 않고 서두르지 않으며 마음을 움직이지 않는다. 인터넷에서 해결방법을 찾고 수련생에게 도움을 청한다. 때로는 무슨 마음을 버려야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해서 생각이 미치자 문제도 해결됐다. 어떤 때는 안으로 찾아도 찾지 못하고 속인 방법으로도 해결하지 못해 사부님의 설법을 생각했다. “한 마음이 움직이지 않으면 만 가지 움직임을 제약할 수 있다.” [4], 바로 조급해하지 않고 서두르지 않으며 사부님이 계시고 법이 있으면 반드시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다. 이렇게 끊임없이 수련함에 따라 조급할 때가 점점 적어졌다.

원래 내가 사용했던 것은 레이저 프린터였는데 백지에 검은 글자였다. 사람을 구하는 효과가 컬러만 못하다고 생각돼 수련생의 도움으로 컬러 프린터로 바꾸었다. 컬러 프린터로 인쇄된 진상자료는 너무 훌륭했고 게다가 아주 편리했다. 이전 프린터는 오늘 토너가 떨어졌으면 토너를 넣어야 하고, 내일 폐기 토너 분말이 많으면 청소해야 했다. 그래서 자주 고장 나고 자주 바꿔야 했다. 컬러 프린터는 편리하고 효과 또한 좋았다. 가장 나를 기쁘게 한 것은 한편으로 인쇄하고 한편으로 가사를 하거나 책을 볼 수 있어서 많은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는 것이다.

처음 프린터를 쓰던 그 며칠은 마음이 매우 시원했다. 프린트할 때도 흐뭇했다. 한 권 한 권의 예쁜 소책자와 한 장 한 장의 알록달록한 진상 전단을 볼 때 역시 흐뭇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프린터가 작동하지 않았다. 내가 어떻게 해도 꿈쩍도 하지 않았는데 마치 감각을 잃어버린 것 같았다. 안으로 찾아도 찾지 못하자 어쩔 수 없이 금방 산 프린터를 매장에 다시 갖다 주었다. 그래도 잘 수리되지 않아 프린터 수리점에 맡겼지만 역시 수리하지 못했다. 새 프린터가 왜 이럴까? 도저히 방법이 없어서 나는 사부님께 도와달라고 청하였다. 이렇게 사부님의 가지 하에 기술을 모르는 수련생이 프린터를 수리해 냈다. 이후에 나는 반복하여 생각했다. ‘이렇게 비싼 프린터가 이틀도 되지 않아 고장 났고 게다가 판매자도 수리하지 못하고 프린터 수리점에서도 잘 수리하지 못했다. 무엇 때문에 잘 수리되지 않았을까. 왜냐하면, 내가 마음을 버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큰 환희심을 버리지 않아서야 되겠는가?’

지금에야 깨달았는데 마땅히 환희심을 버려야 했다. 사부님께서 내가 도저히 깨닫지 못하는 것을 보시고 기술을 모르는 수련생에게 수리하게 하셨다. 프린터는 전혀 큰 문제가 없었다. 다만 한 부품이 접촉이 잘 안 되었을 뿐이다. 조급해하는 것도 마음을 움직인 것이고 환희심도 마음을 움직인 것이다. 내가 마음을 움직이면 나는 바로 사람이기에 마음을 움직이지 말고 번거로운 일에 부딪혀도 조급해하지 말고 서두르지 말아야 한다. 순조로운 일에 부딪혀도 기뻐하지 말아야 한다. 프린터는 수리됐고 내 마음도 조용히 인쇄하고 있었다. 프린터가 고장 나자 나도 조용히 안으로 찾았는데 고장이 어디에 났는지 조용히 찾았다. 마음을 바르게 놓자 파도가 세차도 놀라지 않았다. 다른 사람이 슬픈 이야기를 해도 따라서 울지 않았고 오랜만에 친척 친구를 만나도 그렇게 기뻐하지 않고 마음이 조용했다. 언행에서 최대한도로 당시 상황에 부합되면 된다. 마음이 조용하고 아주 좋았는데 매우 편했다. 만약 수련이 아니었다면 내가 어떻게 이런 심경이 있을 수 있겠는가. 나는 다시 한 번 마음에서 우러나와 말했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전법륜법해’

[2] 리훙쯔 사부님 저작: ‘홍음2-두려울 것 뭐냐’

[3] 리훙쯔 사부님 저작: ‘홍음3-논쟁하지 말라’

[4] 리훙쯔 사부님 저작: ‘정진요지2-마지막 집착을 제거하자’

문장발표: 2015년 1월 6일
문장분류: 수련교류>정법수련마당>수련체험>수련경력>진상을 알려 세인을 구도하다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5/1/6/30277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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