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대륙 대법제자
[밍후이왕] 수련생 사이에서는 “왜, 수련을 처음같이 하는 상태에 도달할 수 없는지”에 대해 많은 교류를 한다. 나도 애써 찾으면서 정말 노력을 하여 원인을 찾은 것 같았지만, 며칠을 견지하지 못했으며 또 제대로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으므로 ‘이전에 어떻게 걸어왔을까?’라고 생각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참으로 불가사의한 일이었다.’고 생각했다. 나에게 처음부터 다시 그렇게 하라고 하면 못할 것 같았는데 ‘나에게 아무리 높은 층차를 준다고 해도 할 수 없을 것’만 같았다.
밍후이왕에서 발표한 ‘점오상태에서 본 장기 병업(12)’의 제18구절 중에 “어떤 사람은 고생의 내포를 이해하지 못하고, 고생의 경계를 이해하지 못한다.”라고 한 말을 처음 봤을 때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으므로 그다지 마음에 두지 않았다. 하루는 좀 한가해서 또 그 문장을 다시 읽어보고, ‘고생에는 다 내포가 있다.’라는 것을 단번에 보아냈는데 일종의 경계의 체현이라는 것을 문뜩 깨달았다. ‘고생에는 내포가 있는 것으로 일종 경계의 체현인 것이다.’ 그럼 어디에서 체현되는가? 내가 곰곰이 생각해 보니, 고생은 단지 한 방면 혹은 몇 개 방면에서 체현되는 것이 아니라 포괄하지 않은 것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람은 살면서 여러 가지로 고생스럽다. 가정에서, 직장에서, 생활 속에서 여러 가지로 체현된다. 갖가지 환경과 의식주를 포함한 모든 것이 당신을 불편하게 한 사람이나 일은 모두 고생이다. 고생을 이기는 능력이 부족하면 두려운 마음이 심해진다. 예를 들면 추운 것이 두렵고, 아픈 것이 두렵고, 힘든 것이 두렵고, 번거로운 것이 두렵고, 더러운 것이 두려운 등등이다. 어떤 사람은 방이 어지러운 것을 두려워하며 더러운 것을 두려워한다. 방이 어지럽고 더러우면 참지 못하고 화를 낸다. 화를 내려는 것은 이 일을 감당하는 능력이 극에 달해 고생하기 싫고 마음이 불편한 것이다. 수고스러우니까 화를 내려는 것이다. 고생을 이기지 못하면 참지 못하면서 고생하려고 하지 않는다. 의식주에서도 고생이 체현된다. 의식주가 다 괜찮다면 좋은 것으로 여기고 마음을 조금이나마 편안해 한다. 사람은 모두 이렇게 생활을 추구하고 아름다운 생활을 동경한다.
수련인으로 말하면 속인 중의 모든 일, 모든 환경, 모든 생각이 당신을 속인의 경계 안으로끌어들이는 것인 줄도 모를 수 있다. 그것은 자신도 모르기 때문에 알아차리기가 어렵다.‘원래 모두 그런 것으로 인지상정이라 속인은 바로 그런 것이기 때문에 당연히 생활을 위해 조건을 창조해야 하는 것’으로 여긴다. 그러나 수련인은 아니다. 그런 마음을 포기해야 한다. 박해 초기에, 우리는 왜, 수시로 아주 빨리 승화하는 느낌이 있었으며 정신을 차릴 수 있었는가? 그때 우린 무엇이나 다 내려놓을 수 있었으며 생사마저도 다 내려놓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무슨 생활, 가정, 직장이든 머릿속에 이런 개념이 없었다. 그런데 기나긴 세월 동안 사람을 구하는 과정에서 우린 사람의 명, 이, 정을 또 가져왔다. 수련인도 생활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아름다운 생활조건을 추구했으며 서서히 속인의 경계 안으로 미끄러져 들었다. 사람은 그렇게 살며 분투하고 쟁투해 왔기 때문에 그것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모두 좀 안일하고 잘 살려고 한다. 이처럼 사람은 너무 안일하면 사람을 망치게 된다. 고생을 이기는 능력이 없으면 사람의 능력, 인내력, 의지가 없게 된다. 심지어 아무것도 할 수 없고 큰일을 이룰 수는 더욱 없다.
사람은 늘 순풍에 돛 단 것처럼 잘될 수가 없는데, 어려움에 부딪히고 타격을 받으면 뒷걸음질 치면 견디지 못 해한다. ‘전향’한 사람은 모두 두려움 때문에 전향한 것이다. 종합적인고생을 이겨내는 능력이 없으므로 고생을 두려워하고 아픈 것을 두려워하고 혹형 박해를 두려워하는 것이다. 또 좀 더 말을 한다면, 한 사람이 가정을 이루려고 할 때 그는 만족하고 마음에 꼭 드는 사람과 가정을 이루려 한다. 고를수록 사심이 커지면서 늘 상대방으로부터 만족을 얻으려고 하며 사욕을 채우려고 한다. 만족하지 못하거나 뜻대로 되지 않으면 평생 고통스러워한다. 상대방의 용모에 만족하지 않아도 고통스럽고 고생스러운 것이다. 현대인은 결혼, 이혼, 자유연애를 제창한다. 이는 신이 사람에게 배치한 소업의 기회를 파괴하는 것으로 소업의 환경을 파괴하는 것이다. 전통적인 결혼은 연분에 따르는 것이며 정해진 혼인은 바꿀 수 없다. 사람은 살면서 업을 짓기 마련이며 고생 속에 묻혀 있는 것이다.
나는 고생을 이겨야 하는 일부 내포를 알았고, 떨어진 원인을 찾았으므로 또 올라왔다. 이전에 소극적이면서 어쩔 수 없이 무감각했던 그런 것이 없어지고, 다시 정신을 차려 자신의능력을 회복시켰다. 이런 능력은 많고 많아서 끝없이 사용할 수 있었기 때문에 자신이 커진 것 같은 감이 들었다. 이것이 수련인이 마땅히 있어야 할 상태로 마땅히 있어야 할 능력인 것 같았다. 수련인은 고생을 이길 수 있어야 한다. 사부님께서는 “대법은 끝없는바(大法無邊), 당신의 그 마음에 따라 수련해야 하며, 당신이 얼마나 높이 수련할 수 있는가는 완전히 당신의 인내력과 고생을 견뎌내는 능력에 달렸다.” [1]라고 말씀하셨다. 수련인이나 속인은 모두 고생을 이겨내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 나는 지금 아이를 사랑하는 것이 아이를 망치는 것이라는 것을 진정하게 이해했다. 사실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 바로 업을 짓는 것이며 자신의 능력을 약화시키는 것이다.
글을 쓴 부분이 한정될 수 있으므로, 부족한 점은 수련생들이 바로잡아주기 바란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저작: ‘전법륜(轉法輪)’
문장발표: 2014년 12월 19일
문장분류: 명혜 주간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4/12/19/301699.html